18년 8월 5일 일요일 흐림
충희와 친구들이 간다기에 정산 차부까지 나갔는데 차 시간이 맞지 않았다.
동대전 행을 타려면 50분을 기다려야 한다네. 에어컨도 없는 대합실에서.....
“가자. 아빠가 공주까지 데려다 줄 게” 오전 내내 땀 흘리고 오후 낮잠시간이습관 된지라 눈이 저절로 감기려고 하는데, 어쩔 수 없지.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방학 때 또 놀러 와라. 서로의 우정을 잊지말고....” “예 고맙습니다” 순수하니 대견한 애들이었다.
우리 아들이 좋은 친구를 사귀고 있다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하더라.
집에 오자마자 잠에 떨어졌지.
“아줌니 계슈” 잠결에 들려오는 낯선 소리였다. 여자분 목소리답지 않게 걸걸하더라. “누구유 ?” 장모님의 목소리도 들려 온다.
“앞 동네 영주 엄마유” ‘아 밤조함 조합장님이시구나’ 잠이 확 깨더라.
후다닥 뛰어나갔더니 윗몸이 런닝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네. ‘이 걸 어떡하나 ? 다시 들어가 입고 나와 ?’ 그런데 조합장님이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으시고, 그려러니 개의치 않으시더라. 그냥 어울렸지. “조합장님 웬일로 여기까지 직접 오셨어요 ?” “밤 농약이 나와서 드릴려고 왔어유. 이 집이 스물 다섯 개니깨....” 두 박스하고 다섯 개를 내어 놓으신다.
“작년에는 밤농약이 안 나왔는데요” “그류. 작년까진 이장이 밤조합 일을 봤걸랑유. 그런디 작년에 농약이 안 나와서 왜 안 나왔느냐구 물으니깨 모른대유. 그래서 알아봤더니 이장이 신청을 안 했대는 거 아뉴. 그래서 내가 항의를 했더니 화를 내면서 ‘그럼 형수님이 밤조합장 해유. 하잖어유. 그래서 내가 그렇기 할려면 내놓으라구 했슈” “잘 하셨어요. 저는 아주 안 나오는 줄 알고 분제 농약을 사다 했어요. 이 거는 물에 타서 주는 농약이네요. 이 게 불편한데....” “아뉴 가루 농약은 몸에 묻으면 안 좋대유. 그래서 이 걸루 바뀌었대유. 우리두 어제 그늘있는디만 농약을 했슈. 올인 너무 가물어서 다덜 밤농사 포기했슈. 다 말라서 쭉징이밲이 안 남었대유.”
“예. 밤농사를 포기했어요 ?” “그류” 충격이 너무 컸다. 어떻게 지은 밤농사인데.... 벌써 그렇게까지 됐나 ?
그래도 오늘 낼 사이에 비가 온댔으니까 한 줄금 소나기라도 오면 괜찮을줄 알았는데.... 속에서 깊은 한숨이 나온다.
“그럼 저 가유. 전화번호나 줘봐유. 연락할 일이 있으면 전화 드릴 게” 내 명함을 받으시더니 오토바이를 몰고 가신다.
‘대단한 여장부님이시다. 티미한 이장보다 열 배는 낫겠다’
그런데 그 때부터 ‘올 농사 다들 포기했슈’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하긴 올 같은 가뭄은 본 적이 없다. 어진간하다가는 그래도 비가 와줘서 고비를 넘겨왔는데....
오후에 서당골에 들어가서 예초기를 돌리는데 영 신명이 나지 않는다.
하늘에는 구름이 오락가락 하기만 하고, 비 한 방울 떨어지질 않는다. 요즘에는 하루에 열 번도 더 일기예보를 들여다 보는데.... 강릉에는 물난리가 났다는데 그 반만이라도 이리 보내주지 않고서....
저 많은 밤송이들이 말라붙어서 빈쭉정이만 매달고 있단 얘기 아닌가.
멍하니 바라보았지.
옆의 백일홍 꽃에는 벌들이 찾아와 윙윙거리며 꿀을 찾고 있더라.
아무 걱정 없이 한가롭게 노니는 그 모습이 부러웠다. 모처럼 호박벌의 모습이
보여 유심히 바라보았지. ‘너는 가물어도 상관이 없나 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