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배냇저고리 / 이규대
후텁지근하던 여름이 꼬리를 슬그머니 내린다. 가을에 바통을 넘기려나,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완연하다. 장마에 눅눅해진 옷가지를 꺼내 햇볕에 말리려고 옷장 문을 열었다. 우연히 한쪽 구석에 움츠린 작은 종이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전에도 몇 번 보기는 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쳤던 물건이다.
‘명가 김’이라는 상표가 새겨진 종이 박스를 꺼내 침대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아, 어머니!’
신음 소리와 함께 온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이내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그 작은 박스 안에 어머니의 삶이 오롯이 남아있었다.
순간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아득한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가물거리는 기억들을 애써 더듬어 나갔다. 고향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안방 장롱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셨다.
“이게 네 배냇저고리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입은 옷이야.”
쓰다듬으면서 보여준 바로 그 옷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까마득하게 잊고 지낸 지가 오래 되었다. 그 동안 이사를 여러 번 다녔다. 무심하게 잊고 지냈던 옷이, 용하게 여기까지 따라와 주었다.
혹시나 하고 박스 뚜껑 옆면을 보다가 또 한 번 놀랐다.
‘아빠 옷’.
굵은 펜으로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1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글씨였다. 사람은 가고 없는데 글씨는 세월을 뛰어넘어 또렷이 남아있었다. 잠시 잊고 지냈던, 함께한 세월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박스 안을 들여다보니, 맨 위에는 배냇저고리가, 바로 밑에는 새까맣게 물들인 무명옷이 보였다. 긴 잠에 든 어머니를 깨우는 것 같아 망설이다가, 조심조심 하나씩 들어내어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먼저 흰 배냇저고리, 그 밑에 검정색 버선 한 켤레, 소학교 때에 입었던 것으로 보이는 검정색 무명저고리 그리고 중학 교복 상의. 나는 그것들을 차례대로 꺼냈다. 맨 밑에는 고무줄로 동여맨 편지 한 묶음도 함께 들어 있었다. 열어 보니 직장 생활 중에 잠시 스위스에 머물렀을 때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였다.
옷가지와 편지, 어느 것 하나 살갑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배냇저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80년이라는 시간의 지층 속에서 견디느라 색이 바랬고, 형태는 군데군데 일그러져 있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층을 하나하나 걷어냈다. 포개진 배냇저고리의 소매를 조심스레 펼치고, 반으로 접은 길과 옷고름을 바로 잡았다. 손을 쫙 펴면 그 속에 통째로 들어 올 것만 같았다. 자그마한 것이 마치 잠자리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듯했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옷. 흰색이 누르스름하게 변했고, 턱 언저리에는 유독 얼룩이 많았다. 침을 흘리기도 하고, 먹은 젖을 토해낸 흔적이리라. 소맷귀도 많이 닳았고, 옷고름은 접은 데가 해져서 너덜거렸다. 한숨 쉬어가듯 홈질해 놓은 어머니의 살뜰한 손길이 느껴졌다. 젖내라도 남아 있을까 흠흠대 보았다. 그러나 시간 속에 묻혀버렸는지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명주실로 짠 배냇저고리 속에 손을 살그머니 밀어 넣어 보았다. 온기가 느껴지고, 새 생명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탄생의 기쁨과 축복을 한껏 받은 옷이리라. 그 작은 옷 속에서 배냇짓과 옹알이를 하면서 내가 자랐다고 생각하니, 섣불리 다룰 옷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배냇저고리는 예로부터 “운수 좋은 옷”으로 여겨, 빨지도 않고 남에게 빌려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잘 보관해 두었다가 시험이나 재판, 전쟁에 나갈 때 겉옷의 등판 속에 꿰매었다고 한다. 효험은 장남이 입었던 옷이 좋고 장손 것은 더 좋단다.
수능을 앞둔 가정의 부모는 아이들 못지않게 또 다른 전쟁을 치르게 된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입소문만 나면 멀리 대구의 갓바위를 찾아가고, 또 절을 찾아 백팔 배를 서슴지 않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던가. 어디 그뿐이겠는가, 수능 당일에는 교문에다 엿을 붙여놓고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교문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이 바로 부모의 모습이리라.
그래서인지 아내도 배냇저고리의 힘을 빌리고자 했다. 막내가 수능을 보러가던 날 배냇저고리를 꺼냈다. 끈을 단 빨간색 보자기에 배냇저고리를 싸서 겉옷 속에 두르고 가게 했단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막내는 그 치열했던 시험의 관문을 뚫고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했다.
버선은 발목을 경계로, 아래쪽은 올이 굵은 무명, 위쪽은 올이 가는 것으로 멋을 부렸다. 초등학교 때 입던 옷은 속에다 흰 무명천을 받치고 겉감은 까맣게 물들였다. 중학 교복의 상의 칼라는 살아 있는 듯 빳빳했다. 단추 구멍이 해지고 헐렁한 것으로 보아 두어 해는 너끈히 입은 것 같다. 교복 도련 위의 흰 실밥은 까만 천 위에 의장대가 도열하듯 나란히 박음질해 놓았다. 곤히 잠든 자식 머리맡에 앉아 고단한 밤을 몰래 지켰을 어머니의 긴긴 밤이 느껴졌다.
오랜 세월을 상자 속에 갇혀 지낸 터라, 우선 통풍부터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창문을 열고 옷가지들을 베란다의 건조대에 나란히 올려놓았다. 긴 세월을 동면하던 촘촘한 올들이 스치는 바람결에 하나 같이 일어서는 것도 같고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는 것도 같았다. 재봉틀 하나 없이, 어떻게 저렇듯 반듯하게 옷을 지어 놓았을까. 어머니는 아플 새도 없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조는 모습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밥숟갈 놓기 바쁘게 몸을 던져 일에 몰두했다. 여자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어머니로 사신 분이었다. 장독대로 가던 어머니의 종종걸음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불행하게도 어머니는 첫 아이를 일찍 잃었다. 살림 밑천이라고들 말하는 딸이었다. 젊은 나이에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혼자 감내하였으리라. 이른 새벽 정화수 떠놓고, 건강한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신령님께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뒤이어 아들이 태어났다. 작고 여리디 여린 나를 안고 어르면서 얼마나 행복해 했을까. 그런 어머니 생의 한 자락이 은하수를 건너 내게로 왔다. 마치 어머니가 곁에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 끝까지 곁에 있어줄 것 같은 사랑마저도 세월이 흐르면 멀어지고 잊게 된다. 그러나 만국 공통어인 어머니란 이름은 다르다. 마음속으로 가만히 떠올리기만 해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어디서 어머니라고 부르는 소리만 들려도 두 귀가 긴장한다. 불러도 불러도 정겨운 이름이 어머니란 이름이다.
고단한 하루를 접고, 눈을 감으면, 배냇저고리가 말을 걸어온다. 아니, 어머니가 말을 걸어온다.
“오늘 하루 잘 지냈느냐?”
“네, 어머니.”
그렇게 대답을 하고나면 마음이 편안하다.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수필집『나의 배냇저고리』2020. 이지출판
이규대 (수필가. 시인)
경북 영천 출생
경북고, 경북대 경제과 졸업
쌍용화재 상무, 대표이사, 감사 역임
2014년『문학의강』 수필 신인상
2015년『심상』신인상
2020년 수필집『나의 배냇저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