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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실한 신앙인이 되려면 신앙훈련이 필요합니다.(출2:11-20)
2023, 8/6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출2:11-20절 말씀으로“신실한 신앙인이 되려면 신앙훈련이 필요합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무더운 날씨에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요즘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로 일사병 환자기 급증하는 등 더위 때문에 고생이 많습니다. 그러나 낼 모래가 가을로 들어가는 입추고, 목요일이 삼복 중 마지막 복인 말복입니다. 이제 더위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데 막바지더위 잘 이겨내셔서 건강한 여름 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성도는 고난 받는 형제와 이웃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11-12절)
둘째로, 신앙인은 사회정의에도 관심을 가져야합니다.(16-17절)
셋째로, 주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 신앙훈련이 필요합니다.(17-19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나라백성이 되면 우리는 두 개의 시민권을 갖게 됩니다. 하나는 육신의 나라인 대한민국 국민이고, 하나는 영적인 나라 하나님나라 국민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갈 때 의식주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일해야 하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 삶이 우선되어야합니다.
왜 그래야할까요? 이 땅 국민의 수명은 백년을 넘지 못하지만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써 삶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한데 그중 하나가 바로 고난 받는 형제와 사회정의에 반하는 것에 방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신앙교육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은 신앙을 견고히 세우고, 주님 주신 사명도 잘 감당하기 위해 신앙교육과 훈련을 잘 받아 정의를 세워가는 일에도 열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신실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성도는 고난 받는 형제와 이웃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11-12절)
본문 11-1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사람이 한 히브리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아멘.
모세는 그동안 어머니로부터 귀가 닮도록 들었던 고센 땅에 살고 있는 동족들이 궁금했을 겁니다. 모세가 장성하여 40살 쯤 되었을 때, 한 번은 고센지역에 살고 있던 자기 동족들을 보러가서 그들의 노동 강도가 어머어마 한 것을 보고 놀랐을 겁니다. 물론 모세도 이미 히브리인들이 고된 노동에 동원되어 힘들게 살아간다는 소리는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풍문으로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우리도 어디서 싸움이 나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를 들으면 아~ 누가 죽었나보다 그러고 말지만, 만약 그곳에서 그 광경을 직접 보았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트라우마 때문에 상당 기간 고생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모세도 마찬가지일겁니다. 동족들이 강한 노동에 시달리는 것을 풍문으로 들었을 때는 큰 반응이 없다가 고센에 가서 직접 동족들이 심각한 노동으로 고통당하는 것을 보니 마음에 측은지심이 들었을 것입니다.
행7:23절에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모세는 나이 사십이 되었을 때 애굽의 왕자보다는 고난받는 히브리인의 구성원으로서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며 그들을 돕고자 결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모세의 태도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귀한 교훈을 주는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은 안락한 현실에 안주해 형제와 이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할까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잠시잠깐 머물다 떠날 이 세상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형제와 이웃과 함께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모세는 자기 동족 때문에 애굽의 왕자로서 최상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을 포기합니다. 물론 사람을 죽이면 안 되지만 그럼에도 모세는 특히 애굽 사람을 죽이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를 알면서도 동족을 도왔습니다.
고대근동의 절대왕권시대에 왕자가 사람 하나 죽였다고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특히 애굽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 모세가 같은 동족인 히브리인들을 선동해 반역을 꾀한다는 의심을 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모세도 애굽 사람을 죽였을 때 그를 모래 속에 감추었고, 그런 행위가 탄로 나자 두려워했으며, 바로 왕도 모세가 동족을 위해 애굽인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자 그를 죽이기 위해 찾은 것을 볼 때 모세도 애굽인을 죽이면 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동족을 위해 애굽인을 죽였던 것입니다.
히11:24-26절을 보면 모세가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기꺼이 동족들의 아픔에 동참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하늘의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형제들과 이웃들이 당하는 고통을 방관할 수 없어서 지금까지 누렸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형제들의 고난에 기꺼이 동참한 것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모세가 이렇게 행동한 이면에는 고난당하는 형제나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측은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라면 이런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독하고 나만 알고 내 것만 챙기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약하고 힘없는 형제를 무시하고 홀대하는 것도 안 됩니다.
사1:17절에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며 모든 것을 다 주고 가셨습니다. 사역할 때도 가난한자와 약한 자, 소외되고 힘든 자, 병든 자들에게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쏟으셨습니다.
이런 걸 볼 때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가능한 선한 마음으로 형제들의 고난에 동참하며, 긍휼한 마음과 측은한 마음으로 형제들과 이웃을 대해야할 것입니다.
마크 트웨인이란 작가가 쓴‘왕자와 거지’에서 거지소년‘톰’과 같은 날 태어난 잉글랜드왕자‘에드워드’가 서로 생김새가 너무나 닮은 것을 알고 서로 옷을 바꿔 입고 놀다 왕자는 병사들에게 쫓겨나고, 거지 톰은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왕실의 우려에도 헨리 8세가 죽자 왕이 되어 타고난 영민함과 착한 마음씨로 왕의 자리에 잘 적응해갑니다. 한편 진짜 왕자 에드워드는 졸지에 거지가 되었지만 왕자답게 행동하다 미쳤다는 핀잔을 받으면서도 가난한사람들과 가까이 하면서 그들의 어려움을 알고 나중에 톰의 도움으로 왕위를 되찾았을 때 특히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훌륭한 왕이 되었답니다.
행20:35절에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고난 받는 형제들과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돌아보며 함께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로, 신앙인은 사회정의에도 관심을 가져야합니다.(16-17절)
본문 16-17절 말씀 읽겠습니다. "미디안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떼에게 먹이려하는데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떼에게 먹이니라." 아멘.
모세가 동족을 학대하던 애굽인을 살해하고 모래 속에 은폐했지만 그 사실이 탄로 나 이것이 정치적 문제가 되었고, 이 때문에 모세는 바로왕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아주 먼 곳, 미디안으로 도망을 갑니다.
도피한 모세가 어느 우물가에서 쉬던 중 미디안의 제사장 딸 7명이 양들에게 물을 먹이려는데 일단의 목자들이 와서 자기들 짐승에게 물을 먹이려고 제사장 딸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그녀들을 도와 무사히 물 먹이는 것을 도와줍니다.
모세의 이런 행동은 우리 신앙인들이 불의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데, 1대지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측은지심과 긍휼한 마음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남이 불이익을 받거나, 사회정의에 반하는 불의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볼 때 그냥 못 본 척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이 너무 강퍅해서 남의 일에 끼어들었다가 덤떼기를 쓰거나, 큰 손해를 입는 경우가 있어서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위험에 처했거나, 사실관계가 명백한데도 보신을 위해 눈을 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남을 도우려는 선한 목적으로 시작했다면 나쁜 결과가 나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고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월삭 마지막 날 새벽에 교회로 오는데 우리 아파트정문 앞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서 술 취한 걸로 생각했다 뇌출혈이면 큰일이다 싶어 차를 옆에 세우고 확인했더니 술 취했더라고요. 그래도 만약을 위해 112에 신고하고 교회로 왔습니다.
이번 수해에 오송 지하차도에 물이 감겼을 때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차에서 빠져나온 트럭기사가 물이 차는 위급한 상항에서도 차에 갇힌 다른 사람 셋을 구했다는 기사를 보고 참 흐뭇했는데, 이분이 신앙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돕는 것은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믿는 자의 의무입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보면 그들의 목적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인지, 망가뜨리려는 것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정치인들이 법을 만들고, 그 법이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방종과 패악질을 방관만 할 수 없습니다. 당장 차별금지법이 다수를 역차별하고 기독교존립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 않습니까? 기독교는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성경에도 없는 이상한 주장을 하는데, 이승만을 비롯해 김구, 조만식, 안창호 이런 선각자들이 다 기독교인으로 나라를 경영하거나 정치에 관여했고, 3.1독립 선언문 서명자 33인 중 기독교인이 길선주 목사님을 포함해 16명이 정치에 관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치인들이 국가를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가면 결연히 일어나 막아야하고, 사회정의가 실현되면 다시 교회로 돌아가면 됩니다.
시15:2절에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작게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의한 것이나, 불법적인 것, 비양심적인 것에 목소리를 내는 것도 되지만, 크게는 국가적 아젠다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것도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물론 살인은 안 되지만 모세가 같이 동족이 맞는 것을 보고 도운 것이나, 오늘 낯선 남자들의 위협에 맞서 여자들이 무사히 가축에게 물을 먹이도록 도와준 것도 믿는 자로서 사회정의를 실현한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불의에 항거하며 죄악에 굴하지 않는 용기와 의로움으로 세상을 살아가야합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바랍니다.
셋째로, 주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 신앙훈련이 필요합니다.(17-19절)
본문 17-1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떼에게 먹이니라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 아멘.
미디안으로 도피한 모세가 우물가에서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의 딸들을 도와준 공으로 르우엘의 집에 머물면서 그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아들도 얻습니다.
이때부터 모세는 약 40년간 목동생활을 하며 신앙훈련을 받게 되는데, 이 40년의 훈련이 끝난 후 하나님은 드디어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게 됩니다.
신앙훈련의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하나님나라 백성이 된 사람과, 주의 일을 감당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당연히 그날부터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의 몸 된 전인 교회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인 복음을 전하는 것과 형제들을 섬기고 신앙으로 공동체를 바르게 세워가야 할 사명을 부여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일을 감당하면서 교육도 훈련도 없다면 그야말로 오합지졸, 향방 없이 허공을 날리는 주먹과 같지 않겠습니까?
예수를 믿는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예배는 왜 드리며, 공동체에서 봉사와 헌신은 왜 하며, 복음을 전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3년의 공생애를 위해서 30년을 준비하셨고, 예수님의 12제자도 3년 동안 주님을 따라 다니며 신앙훈련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성군으로 평가받는 다윗도 참으로 오랜 세월 사울왕을 피해 광야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은 내공 때문입니다. 또한 사도바울도 본격적인 전도자가 되기 전 아라비아광야에서 3년간의 훈련을 받았고,(갈2:1) 디모데나 디도도 사도바울을 따라다니며 훈련을 받았습니다. 목회자도 8-9년을 학교에서 신학을 배운 후 목회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 신앙교육과 훈련을 받는 것이 맞습니다. 신앙훈련 없이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은 무모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일도 오랫동안 학문과 기술을 연마한 후 하고, 회사도 사원을 뽑으면 교육과정과 수습사원을 거쳐 정식직원이 됩니다.
그런데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과, 말씀을 배우고 익히는 교육과정,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배우지 못한다면 문제 아니겠습니까? 딤후2:21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의 일을 감당하는 여러분들은 철저한 자기수양과 신앙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뚝 서야합니다. 그래서 주의 일을 잘 감당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