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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판 서문
나는 이제 완성된 저서를 동시대인이나 동포에게가 아니라 인류에게 내놓으며, 좋은 것의 운명이 흔히 그렇듯이 이것이 나중에 가서야 인정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지는 않을 거란 확신을 갖는다. 나의 두뇌가 흡사 나의 뜻을 거스르다시피 하면서 자신의 일에 끊임없이 몰두한 것은 한때의 망상에 사로잡혀 훌쩍 지나쳐가는 동시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 내 작업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나는 그릇된 것과 나쁜 것, 급기야는 불합리하고 무의미한 것이 지속적으로 일반의 칭송과 존경을 받는 것을 보았기에 그것의 가치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진정하고 정당한 것을 인식할 능력이 있는 자가 너무 희귀해서 우리가 그런 자들을 20여 년에 걸쳐 찾아보아도 찾지 못하는 게 아니라면, 그런 것을 창작해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수가 그리 적지 않아, 그런 자들의 저서가 후세에 지상적인 일의 무상함 가운데 하나의 예외를 이룰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높은 목표를 세운 자가 힘을 내는 데 필요한 후세에 대한 기분 좋은 전망도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실질적인 이익이 되지 않는 사물을 진지하게 다루고 추구하는 자는 동시대인의관심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는 대개 그 사이 그러한 사물의 가상이 세상에 널리 통용되고 득세하는 것을 볼지도 모른다. 세상사란 으레 이런 것이다. 사물 자체는 그 자신을 위해 추구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일에나 고의적인 의도는 모두 통찰력에는 위험해서 그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 문학사가 증명하듯이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이 성가를 인정받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이 오락적인 것이 아니라 교훈적인 것일 때는 특히 그러했고, 그 동안은 그릇된 것이 빛을 발했다. 사물을 그것의 피상적인 겉모습과 일치시킨다는 것은, 그게 불가능한 것은 아닐지라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결핍과 욕구의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이런 것들을 위해 봉사하고 부역해야 한다는 것은 저주인 것이다. 그 때문에 사실 이 세상은 그 속에서 빛과 진리를 얻기 위한 것과 같은 고상하고 숭고한 노력이 방해받지 않고 순조롭게 진행되어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할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일단 효력을 발생해 이로써 그에 관한 개념이 도입된다 하더라도 곧장 실질적인 이해관계, 개인적인 목적이 주도권을 잡아 그것들의 도구나 가면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따라서 철학은 칸트가 새로 명성을 얻게 해준 후에 그것도 얼마 되지 않아 위로는 국가적인, 아래로는 개인적인 목적의 도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철학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유령에 불과하지만 철학으로 통용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다수의 인간은 속성상 실질적인 목적 말고는 다른 것을 세울 능력이 전혀 없고, 그런 것을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로지 진리만을 추구하여 노력한다는 것은 너무나 고상하고 기이한 거라서 모든 사람들, 혹은 많은 사람들, 아니 소수의 사람만이라도 거기에 성실하게 참여하기를 기대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예컨대 사실 지금 독일에서처럼 눈에 띠게 철학이 활기를 띠고 있고, 일반적으로 철학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며 말하고 있는데, 그 같은 움직임의 근본동기, 즉 감추어진 내적 동기는 아무리 위엄을 부리고 호언을 한다 해도 이상적 목적이 아니라 단지 실제적인 목적에 지나지 않음을 단언해서 말할 수 있겠다. 즉 그럴 경우 개인적이고 직무상의 이익, 종교적이고 국가적인 이익, 요컨대 실질적인 이익을 염두에 두고 있다. 따라서 단순한 당파적인 목적이 철학자로 자처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필봉을 그토록 활발히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소동을 벌이는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별은 통찰력이 아니라 고의적인 의도이며, 그래서 진리란 이 경우에 확실히 마지막으로 고려된다. 당파성이 있는 사람들에겐 진리란 아무래도 상관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철학적 논쟁이 난무하는 가운데도, 마치 말할 수 없이 경직된 교리에 사로잡힌 세기의 칠흑 같은 겨울밤을 보내는 것처럼 진리는 그렇게 조용히 남의 주목을 끌지 않고 제 갈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시기에 진리는 가령 비밀교의처럼 소수의 연금술사에게만 전달되었거나, 양피지에만 전해졌다. 정말이지, 나는 철학이 한편으론 정치적 수단으로, 다른 한편으로 생계의 수단으로 창피하게 잘못 쓰이고 있는 이 시대처럼 그것에 불리한 시대는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또는 가령 그렇게 노력하고 법석을 떨다보면 아무튼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진리가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진리란 자신을 갈망하지 않는 자에게 치근대는 창녀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친다 해도 그녀의 호의를 확신할 수 없는 쌀쌀맞은 미인과 같다.
그런데 정부들이 철학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 학자들은 철학 교수직을 다른 모든 직업과 마찬가지로 이에 종사하는 사람을 먹여 살리는 직업으로 본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마음가짐이 훌륭하다는 것을, 즉 앞에서 말한 목적에 도움이 되리라 확신하고 앞 다투어 교수직을 얻으려 몰려든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약속을 지킨다. 즉 진리도 명료성도,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아니라 거기에 봉사하도록 지시받은 목표가 그들을 이끌어가는 별이며, 그것이 즉각 참된 것, 가치 있는 것, 존중할 만한 것, 그것과 반대되는 것의 표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그 분야에서 아무리 중요하고 탁월한 것이라 해도 비난을 받거나, 또는 그것이 위험하다 싶으면 다 같이 무시하여 질식시켜버린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범신론에 반대하는 것을 보라. 그들이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그런다고 생각할 멍청이가 어디 있겠는가? 빵을 얻기 위한 생업으로 전락한 철학이 어찌 궤변으로 타락하지 않겠는가? 사실 이는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일이고, ‘자신의 신세를 진 사람의 편을 든다’는 규범은 예로부터 통용되었으므로, 고대인들도 철학으로 돈을 버는 것을 궤변가들의 특징이라 간주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덧붙일 것으로는, 이 세상 어디에도 평범하지 않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고, 요구되지도 않으며, 돈을 주고도 얻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여기서도 그런 사실에 만족해야 한다. 그에 따라 우리는 독일의 모든 대학들에서, 스스로를 희생시켜, 그것도 규정된 표준과 목적에 따라 여태까지 존재하지 않던 철학을 만들어내려고 애쓰는 사랑스러운 평범함을 보게 된다. 이는 차마 비웃기에도 안쓰러운 참혹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철학이 이미 오랫동안 한편으로는 공적 목적을 위한, 다른 한편으로는 사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봉사를 해오는 동안 나는 이에 구애받지 받고 않고 30년 이상 전부터 나의 독자적인 사상을 추구해 왔다. 나는 자신의 본능적인 성향에 따라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고 달리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래도누군가 참된 것을 생각하고 감춰진 것을 조명해 준다면 언젠가는 사색하는 다른 사람에게 이해되어, 그에게 말을 걸고 그를 기쁘게 하며 위로해줄 거라는 확신으로부터 뒷받침을 받을 수 있어서였다.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진리를 말하고, 그로 인해 이러한 삭막한 삶에서 우리에게 위로가 되었듯이, 우리는 이런 사람에게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그 문제를 그 자체 때문에, 그 자신을 위해 추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철학적인 성찰에서는 자신을 깊이 사색하고 탐구한 것만이 훗날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지, 애당초부터 남을 생각해서 그렇게한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이다. 알다시피 전자가 성격상 보통 솔직한 것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을 속이려 하지는 않는 법이고, 자신에게 알맹이 없는 호두를 제공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궤변을 농하거나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게 되고, 그 결과 쓰인 모든 문장은 그것을 읽느라 들인 수고를 즉시 보상해 준다. 이와 같이 나의 저서는 솔직함과 공명함이 특징인데, 그것만으로도 칸트 이후 시기의 세 명의 유명한 궤변가들의 그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언제나 반성, 즉 합리적인 사유와 솔직한 전달의 입장에 있으며, 지적인 직관으로 불리거나 절대적인 사유로도 불리는, 적당한 이름으로 부른다면 허풍과 협잡으로 불리는 영감의 입장은 결코 아니다. 나는 이러한 정신으로 작업해 오면서, 그 동안 줄곧 그릇된 것과 나쁜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받고, 그리니까 허풍(피히테와 셸링)과 협잡(헤겔)이 최고로 존경받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나는 동시대인들의 갈채를 받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다. 20년 동안 헤겔과 같은 정신적인 괴물이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고 떠벌려져 왔고, 그 반향이 전 유럽에 크게 울려 퍼진 이 시대에 이러한 것을 보아온 사람으로서 그들의 갈채를 갈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시대는 수여할 명예의 화관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으며, 시대의 갈채는 더렵혀졌으므로 그것을 비난해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게 나의 진심이라는 사실은, 내가 동시대인들의 갈채를 받으려고 했다면 그들의 모든 견해와 완전히 상반되는, 그러니까 부분적으로 그들의 불쾌감을 자아냈을 게 분명한 20군데의 구절을 삭제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갈채를 받으려고 단 한 개의 철자라도 희생시키는 것은 범죄 행위로 간주할 것이다. 나를 이끄는 별은 진정으로 진리였다. 그 별을 따르며 맨 처음 나는 나 자신의 갈채만 받으면 되었고, 보다 고상한 온갖 지적 노력이라는 점에서 볼 때 심각하게 타락한 시대, 그리고 고상한 말을 천박한 신념과 결합시키는 기술이 정점에 달한 문학, 예외적이라 할 정도로 타락한 국민문학을 완전히 외면해 버렸다. 누구나다 그런 걸 갖고 있듯이, 물론 나는 내 본성에 필수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결점과 약점을 결코 피할 수 없지만, 품위를 떨어뜨리는 순응을 하면서 그것을 증가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이러한 제2판에 관해서 볼 때 나는 25년이 지난 지금 아무 것도 철회할 게 없어서, 근본적인 나의 신념이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입증되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기쁘다. 초판의 본문만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제1편에서 변화된 내용은 따라서 본질적인 것을 건드리지 않고, 일부는 사소한 내용에 관한 것일 뿐이며, 대부분은 짤막하게 해설하며 군데군데 추가로 끼워넣은 글이다. 칸트 철학에 대한 비판만은 상당히 교정을 했고 추가로 상세하게 보충했다. 나 자신의 학설을 개진한 4권이 제2편에서 각각 보충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칸트 철학에 대한 비판을 교정하고 보충한 것을 여기서 별책에 수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것들을 늘리고 보충하는 이러한 형식을 택한 것은, 초판이 나온 이래 25년이 지나면서 나의 서술방식과 문체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고, 제2편의 내용을 제1편의 그것과 완전히 하나로 합칠 수는 없는 일이었으며, 만약 그럴 경우 두 편 다 곤란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두 저서를 분리시켜, 지금 같으면 완전히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는 이전의 서술은 그대로 내버려둔 곳도 적잖게 있다. 노년에 접어든 내가 젊은 시절의 노작에 트집을 잡아 그것을 망치지 않게끔 조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고쳐야 할 게 있다면 제2편의 도움을 받아 독자의 정신 속에서 어느 새 저절로 고쳐질 것이다. 이 두 편은 단어의 완전한 의미에서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는데, 말하자면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어떤 연령이 지적인 면에서 다른 연령을 보완해 준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각 편은 다른 편이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쪽의 장점은 다른 쪽이 부족한 것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내 저서의 전반부가 후반부에 비해 청춘의 정열과 최초의 착상의 에너지를 줄 수 있는 반면, 후반부는 오랜 인생항로와 그 노력의 결실로만 얻어질 수 있는 사상의 원숙함과 철저한 완성이라는 면에서 전반부를 능가할 것이다. 나는 내 철학체계의 근본사상을 독창적으로 파악해서, 그것을 즉각 네 개의 가지로 나누어 탐구하고, 그 가지들에서 이를 통합하는 줄기로 거슬러 올라간 다음 전체를 분명하게 서술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체계의 모든 부분들을 완전하고 철저하며 상세하게 완성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다년간에 걸쳐 그 체계를 성찰해야 그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수한 사실로 체계를 검토하고 해명하며, 극히 다양한 예증으로 그것을 뒷받침하고, 온갖 방면에서 그것을 밝게 비추어보며, 여러 가지 관점에서 대담하게 대조해서 다양한 소재를 철저하게 가려내고 그것을 잘 정리해 내놓기 위해서는 성찰이 꼭 필요했다. 그러므로 물론 독자들은 나의 전 작품이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서로 합쳐야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주물鑄物로 생각하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내가 인생의 두 시기에 걸쳐서만 가능했을 일을 인생의 한 시기에 해내야만 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나는 서로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성질을 지니는 특성을 한 시기에 가져야 했으므로 나의 저서를 서로를 보완하는 두 부분으로 나눌 필요가 있었다. 이는 색이 없는 대물렌즈를 만들 경우 하나의 부분으로는 그것을 만들 수 없으므로, 플린트 유리의 볼록렌즈와 크라운 유리의 오목렌즈를 서로 짜맞춰 결합된 효과를 냄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거둘 수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독자는 같은 두뇌와 같은 정신이 아주 상이한 시기에 같은 대상을 다루는 걸 보는데서 얻는 기분 전환과 위안으로 두 편을 동시에 사용하는 불편함에 대한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철학을 아직 잘 모르는 독자라면 제2편을 같이 보지 말고 제1편을 통독하고 나서 두 번째로 읽을 때 비로소 제2편을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제1편에만 제시되어 있는 내 철학의 연관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제2편에서는 주요 학설이 하나하나 보다 상세하게 규명되고 완벽하게 차근차근 펼쳐져 있다. 제1편을 두 번째로 통독할 결심이 서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제1편을 읽은 후 제2편을 장의 정식 순서에 따라 그것만 따로 통독하는 게 나을 것이다. 물론 제2편의 각 장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지만, 독자가 제1권을 잘 파악했다면 그것을 기억에 떠올림으로써 빈틈이 완전히 메워질 것이다. 게다가 나는 제2편의 도처에서 독자가 제1편의 해당대목을 참조할 수 있도록 해놓았고, 이러한 목적을 위해 초판에서는 단지 구분선을 표시해 놓았던 장을 제2판에서는 장의 번호로 표시해 놓았다.
나는 이미 초판의 서문에서 나의 철학이 칸트 철학에서 출발했으며, 따라서 독자가 칸트 철학을 철저히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는다고 설명했는데, 이런 사실을 여기서 다시 되풀이 하고자 한다. 칸트의 철학은 그것을 파악한 모든 사람들의 머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데, 그 변화가 너무 커서 정신적인 재탄생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말하자면 유일하게 그의 철학만이,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지성의 원래적인 규정에서 비롯되는 실재론을 정말로 제거할 수 있는데, 이런 일은 버클리나 말레브랑시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이들이 너무 일반론에 머물러 있는데 반해, 칸트는 특수한 것을 다루며, 그것도 모범이나 모조물이 없는, 유례가 없는 방식으로 아주 독특하고도, 말하자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 결과, 정신은 근본적으로 미몽에서 깨어나며, 앞으로는 모든 사물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그래야 비로소 정신은 내가 하려고 하는 보다 적극적인 해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와 반대로 칸트 철학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사람은 그밖에 무엇을 연구한다 해도, 습사 순진무구한 상태,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태어날 때와 같은 자연 그대로의 어린애 같은 실재론의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다. 이런 상태로는 다른 것은 다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철학만은 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람과 칸트 철학을 이해한 사람의 관계는 미성년자와 성년이 된 사람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성 비판이 나온 이후 첫 30년 동안은 결코 역설적으로 들리지 않았지만, 오늘날은 역설적으로 들린다.
그 이유는 그 동안 칸트를 잘 알지 못하는 세대가 성장한데다, 그의 저서를 대충 훑어보고 성급하게 읽거나 남이 쓴 보고문을 읽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 잘못된 지도를 받은 결과 이러한 세대가 평범한, 그러니까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나 세상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칭찬하는 허풍선이 궤변가들의 학설을 읽느라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기본 개념에 혼란이 일어나고, 그렇게 교육받은 세대가 스스로 학설을 내세우며 뽐내고 허세를 부리는 데서 일반적으로 더없이 거칠고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쓴 글로도 칸트 철학을 알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은 구제할 길 없는 오류에 사로잡히게 된다. 오히려 나는 특히 근래에 나온 그러한 보고문에 대해 심각하게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실로 최근 들어 나는 헤겔학파의 저서들 가운데 칸트 철학을 서술한 것을 보곤 하는데, 정말 어처구니없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미 혈기왕성한 청년기에 헤겔류의 허튼 소리로 왜곡되고 망가진 머리가 어떻게 칸트의 심오한 연구를 따라갈 수 있단 말인가? 일찍부터 그들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쓸데없는 말을 철학 사상이라 간주하고, 빈약하기 짝이 없는 궤변을 예지라 생각하며, 어리석은 망상을 변증법이라 여기는 데 익숙해 졌다. 그리하여 무언가를 생각하기 위해 헛되이 정신을 고문하고 혹사시키는 미친 듯한 단어의 조합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들의 정신은 망가졌다. 이들에겐 이성 비판은 아무런 쓸모가 없고, 철학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의 약제이며, 우선 정화제로 건전한 상식을 다루는 짧은 과정을 밟게 한 다음, 그들에게 철학을 논할 능력이 있는지를 계속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칸트 자신의 저서가 아닌 어딘가에서 칸트 철학을 찾는다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런데 칸트 자신의 저서는 그가 잘못 생각하거나, 틀린 경우에도 무척 교훈적이다. 그에겐 독창성이 있으므로 모든 진정한 철학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을 그에게도 아주 잘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보고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저서를 통해서만 이들 진정한 철학자들을 알 수 있다. 그런 비범한 철학자들의 사상은 평범한 두뇌로 여과되는 것을 허용치 않기 때문이다. 광채를 발하는 두 눈 위, 넓고 훤하며 멋지게 도드라진 이마 뒤에서 태어난 이러한 사상은, 개인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우둔한 눈빛으로 요리조리 엿보고, 좁고 짓눌려 있는 벽이 두꺼운 두개골이란 집과 낮은 지붕에 옮겨지게 되면, 모든 활력과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본래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 되고 만다. 정말이지, 평범한 두뇌는 이러한 류의 고르지 않은 거울과 같은 작용을 해서, 여기에 비춰지면 모든 것이 왜곡되고 일그러져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잃어버려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고 만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철학 사상을 오로지 원래 창시자로부터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므로 철학에 이끌림을 느끼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들의 저서라는 고요한 성소에서 그 자신의 불멸의 교사를 찾아야 한다. 이들 모든 진정한 철학자들의 주된 장에 서술된 학설에는 범속한 두뇌의 소유자들이 내놓는 답답하고 왜곡된 보고문에서보다 백 배 이상의 통찰이 담겨 있다. 게다가 이러한 범속한 자들은 대체로 그때그때의 유행 철학이나 그들 자신의 인정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은 이들에 의해 간접적으로 서술된 것을 더욱 선호하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런 경우에는 친화력이 작용하는 것인지, 그 힘으로 인해 평범한 사람은 자신과 같은 사람에 이끌리며, 그 결과로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가 말한 것조차도 오히려 자신과 같은 사람이 쓴 것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다. 어쩌면 이는 어린애는 자신과 같은 어린애한테서 가장 잘 배운다는 상호 교육이 학설과 같은 원리에 근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철학 교수들을 위해 한 마디 더 하도록 하겠다. 그들은 나의 철학이 출현하자마자 그들 자신의 노력과 아주 이질적이고 위험천만한 것으로, 또는 통속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그들의 목적에 맞지 않은 것으로 인식했다. 나는 그들이 보여준 예지, 진실하고 세심한 태도와 확실하고 총명한 책략 뿐만 아니라 그러한 책략에 힙입어 그들이 나의 철학에 맞서기 위해 찾아낸 적절한 대응 방식, 이를 수행하며보여준 일치단결된 태도, 마지막으로 그런 방식을 집요하게 고수하는 것에 언제나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밖에 아주 실행하기 쉽다는 점에서도 권장할 만한 것으로 되어 있는 이러한 방식은 알다시피,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것을 가로채서 은폐하는 것을 뜻하며, 괴테의 심술궂은 표현에 따르자면 전적으로 무시해서 비밀에 부치는 것을 본령으로 한다. 이러한 은밀한 방법의 효과는, 뜻이 통하는 정신적인 신생아가 태어난 것을 서로 축하하고, 그리하여 일반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보지 않을수 없었을 때 그에 관해 환영 인사를 나누고 우쭐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미친 듯 떠들어댐으로써 고조가 된다. 이러한 방식이 의도하는 목적을 알아차리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일단 살고 난 다음, 철학을 논한다’는 원칙에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작자들은 생계를 유지하려고 하며, 그것도 철학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이들에게 철학은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생계수단이므로, “철학, 너는가난하여 헐벗은 채 다닌다”라는 페트라르카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철학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하지만 나의 철학은 그것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다. 나의 철학에는 두둑한 급료를 받는 강단 철학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일차적인 필수 요소, 즉, 무엇보다도 사변 신학이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비판 철학으로 이미 칸트가 성가시게 굴고 있음에도 바로 이것이야말로 모든 철학의 주된 테마여야 하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철학은 전혀 모르는 것을 줄곧 말해야 하는 과제들 떠맡게 되는 셈이다. 정말이지, 나의 철학은 철학 교수들이 교묘하게 꾸며내고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되어버린 허구, 즉 직접적이고 절대적으로 인식하고 관조하며 인지하는 이성이라는 허구를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방식으로, 칸트에 의해 우리의 인식에 전적으로 영원히 차단된, 모든 경험의 가능성을 초월하는 영역으로, 흡사 쌍두마차를 몰고 가듯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독자들이 이성이란 허구를 믿게만 하면 된다. 그 영역에서는 유대화해 가는 낙관적인 근대 기독교 정신의 근본 교리들이 직접적으로 계시되고, 아름답기 그지 없게 꾸며지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러한 필수적인 요소들이 결여되어 있고, 의도하는 목적이 없으며 생계수단도 못되면서 심사숙고해야 하는 나의 철학은 아무런 보답이나 편들어 줄 동지가 없고, 때로는 박해까지 당하고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북극성으로 삼아,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앞으로 곧장 나아간다. 이러한 나의 철학이 저 양육의 어머니, 유익하고 영양가가 높은 대학 철학, 언제나 군주에 대한 두려움, 정부 의지, 기존 교회의 교의, 출판사의 소망, 대학생들의 호응, 동료들의 호의, 시국의 추세, 대중의 일시적인 향배 및 그밖의 모든 것을 염두에 두면서 백 가지 의도와 천 가지 동기를 짊어진 채 조심스럽게 자신의 길을 돌파해 가고 있는 대학 철학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아니면 나의 조용하고 진지한 진리 탐구가 사사로운 목적을 마음 속 깊이 내적 동기로 삼아 항시 강단과 청강석에서 벌어지는 저들의 요란한 논쟁과 무슨 공통점이 있단 말인가? 오히려 이러한 두 종류의 철학은 근본적으로 상이하다. 따라서 나에게는 어떠한 타협도, 어떠한 동지도 없는 것이다. 오로지 진리만을 추구하는 자 말고는 누구도 나에게서 이득을 얻지 못하고, 다들 자신의 목적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당대의 여러 철학 집단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없는 셈이다. 그러한 목적은 어떠한 통찰에 의해서도 이루어질 수 없지만, 나는 이런 어떠한 목적과도 맞지 않는 통찰밖에 제공할 게 없다. 그래서 나의 철학이 강단에서 논할 만한 것이 되려면 전혀 다른 시대가 와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도 생계의 수단이 될 수 없는 어떤 철학이 공기와 빛을 얻고, 심지어 대대적인 주목을 얻게 된다면 멋진 일이 되리라! 따라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를 해야 했고, 모두들 하나같이 그것에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에게 맞서 그리 쉽사리 논쟁을 벌이고 논박할 수 없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대중이 그 문제에 관심을 돌리고, 나의 저서를 읽게 되어, 철학 교수들이 야간작업한 성과물에 대한 대중의 취향을 망쳐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심히 껄끄러운 방법이었다. 진지한 것을 맞본 자에게는 특히 지루한 류의 것일 경우 농담이 더 이상 입맛에 맞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장일치로 채택한 침묵의 방식이야말로 유일하고도 올바른 방식인 셈이다. 나는 그런 방법이 통하는 한, 즉 언젠가는 무시가 무지를 뜻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그런방식을 고수하고 계속 그런 식으로 나가라고 충고할 수 있을 뿐이며, 그때 가서라도 아직 생각을 바로잡을 시간은 있을 것이다. 집에서는 사상의 과잉에 그리 압박을 받곤 하지 않으니까 그 동안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서 가끔 작은 깃털을 잡아 뜯는 것도 각자의 자유일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내가 아직 살아 있는 얼마 동안은, 이미 그런 식으로 많은 이득을 본 무시와 침묵의 방식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동안에는 가끔씩 경솔한 소리가 들린다 해도 그것들은 전혀 다른 것들을 가지고 거드름을 피우며 대중을 즐겁게 해줄 줄 아는 교수들의 우렁찬 강의에 이내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한결같은 방식을 보다 엄격하게 고수하여 특히 때때로 경솔하기 짝이 없는 젊은이들을 감시하라고 충고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설령 그렇게 한다 해도 그런 칭찬받을 만한 방식이 영원히 지속될 것라고는 보증할 수가 없고, 최종 결과에 대해서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체적으로 선량하고 고분고분해 보이지만 이런 대중을 조종하는 건 까다로운 일이다. 거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고르기아스나 히피아스와 같은 궤변가들이 제일 윗자리를 차지하고, 터무니없는 것이 대체로 전성기를 누리며, 한 개인의 소리가 우롱하고 우롱당하는 자들의 합창을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럼에도 어느 시대에나 진정한 작품만이 아주 독특하고 은밀하며, 완만하고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작품이 마치 지구의 두꺼운 대기층에서 보다 순수한 공간으로 솟아오르는 풍선처럼 마침내 지상의 소동으로부터 높이 떠오르는 것을 경탄해 마지 않으며 바라보게 된다. 일단 그런 작품이 그러한 곳에 도달해 계속 거기에 머무르게 되면 더 이상 아무도 그것을 아래로 끌어내릴 수 없는 것이다.
1844년 2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