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을 비롯한 지방의회 의원 등 정치인은 근로자가 아니므로 현행법상으로는 파업할 수 없다. 그럼에도 국회의원은 서너 달 이상 법안처리, 예산심의를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파업하는 경우와 같은 사태가 자주 발생한다. 이번 세월호 사건 발생일인 2014년 4월 16일부터 2차 합의일인 2014년 9월 30일까지 5개월 15일 동안 국회의원은 파업하였다고 하여도 무방하다. 장외에서의 투쟁도 정치행위의 일종이라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시민단체의 회원이 아니고 국가기관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투쟁을 하더라도 장외투쟁보다 국회 내에서 상임위나 본회의 활동을 통해서 책임추궁을 하는 것이 도리이다.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적 시대는 종말을 고하였으므로 이제는 장내에서 정부와 상대 당을 향하여 토론과 설득, 때로는 추궁과 감사를 통하여 국정의 방향을 설정하여야 한다.
그런데 5개월 반 동안 야당은 세월호 사건을 빌미로 장외투쟁을 하였고 여당은 국정 파트너가 없어서 여야 국회의원 모두 파업을 하는 사이에 국제정세 및 국내정세는 엄중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이 동아시아의 패권을 노리며 적대정책을 펼치고 있고 수시로 불똥이 한반도에 떨어진다. 우리나라 군대의 방위력과 정신력은 점점 해이해지고 북한의 위협에 의연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적 초일류기업인 삼성의 위상이 추락하고,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다른 대기업도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환율 하락으로 수출기업, 해외진출 기업의 어려운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국회차원에서 규제 개혁, 세제 개혁을 통해 대책을 세워 경기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도왔어야 한다.
경제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으므로 정책의 타이밍이 중요하다. 여야 간에 별로 이견이 없는 법안도 세월호특별법에 발목이 잡혀 처리되지 못하였다. 철도노조 등 1개 단위사업장의 한 달 파업도 경제에는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국회라는 국가의 중추기관이 5개월 동안 본회의 무개최, 법안처리 0건이라는 파업을 하는 것은 정책의 예측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으로써 국가적 폐해가 막심하다. 문제는 이런 사태가 수시로 발생할 수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다수결의 원리를 부정하고,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이나 여야 합의가 없으면 안건을 상정하지 못하는 국회법 제85조를 비롯한 몇몇 조항(속칭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국회의원은 여야를 막론하고 언제든지 장기간 파업을 할 수 있다.
복지문제에 대한 교통정리도 시급한 과제이다. 2014년 7월 1일부터 소득 하위 70%의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복지확충의 역사에서 일대 전환을 가져온 사건이다. 전체 복지예산은 한정되어 있는데 기초노령연금으로 막대한 복지자금이 지급되니 상대적으로 초등학생에 대한 무상급식, 영유아에 대한 무상보육 예산이 부족하게 되고,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도 대폭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에 맞추어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공무원연금제도에 대한 개혁도 대두되었지만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허송세월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사회갈등의 원인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도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복지예산의 집행은 지방정부에서 해야 하는데 자금이 없어서 난리다. 복지수요에 맞추어 지방정부는 조세 중에서 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중을 늘리려고 노력하지만 중앙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도대체 갈등이 없는 곳이 없다. 정치는 획일적 행정에 의하여 국민 사이에 생긴 갈등을 해소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정치인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커녕 오히려 정파적 이해에 의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지난 6개월 동안 발생하였거나 심화된 국정 현안들이다. 그런데 국회가 이런 산적한 현안을 도외시하고 세월호특별법에만 올인하여 국정이 마비되었다.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은 경제회생과 자국안보에 진력하는 것과 달리 유독 한국은 정치적 혼란으로 경제 및 안보의 앞날이 어둡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국민도 옥석을 구분하여 당리당략에 휩쓸리지 말고 중심을 지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황현호/변호사 (황씨대구종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