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수퍼드라이 론칭(레귤러 맥주팀)
89.7 - 91.2
하이네켄 맥주 론칭과 마케팅을 3년 한 후
다시 부산지점으로 발령받고 판매2과를 거쳐
업무과 대리, 판매 1과장으로 3년 정도 근무했다.
87년 9월 정기인사에서 마케팅 레귤러팀으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 국내 맥주시장은 올림픽을 거치면서
오비의 시장점유율이 고공상승(70%)하면서
조선맥주(크라운)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때 가까운 일본에서 아사히 수퍼드라이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맥주시장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는 상대회사에 있어 절호의 기회가 된 것이다.
드라이 시장에서 성공하게 되면 시장점유율 회복은 물론
1위까지도 탈환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게된 것이다.
* Dry Beer(일본)
- 87년 일본 아사히 수퍼드라이 발매
- 만년 3위 아사히맥주가 산토리 맥주를 제치고 2위로 등극
- 절대강자 기린맥주 시장점유율 80%에서 50%로 폭락.
아사히맥주 8%에서 30%로 급상승
이러한 맥수시장 상황에서 조선맥주는 올림픽 기간에
드라이 맥주를 개발, 출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비도 대응을 하기 위해 맛을 개발하고 시장조사등을 하고 있었지만
상대사에 비해 준비가 덜 된 상태로 조급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상대회사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면서
우리는 빠르게 출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
89년 7월 초 크라운수퍼드라이 맥주를 출시할 예정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더욱 초조해졌다.
먼저 출시하는 것이 시장선점에 훨씬 유리하기에
마타도어 작전(상대를 교란시키기 위해 거짓 정보 유포 등)을 써가면서
상대사의 드라이 출시를 지연시켰다.
예를 들면, 상대사가 가격을 서브프리미엄으로 책정했다는 정보를 입수,
우리는 레귤러 가격으로 한다고 거짓 정보를 유포했다.
이렇게 상대회사의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작전을 펴가며
서둘러 출시준비를 끝내고 나서 기습적으로
우리도 서브프리미엄 가격으로 2주일 먼저 출시했다.
정말 신제품 출시는 총성없는 전쟁인 것이다.
Dry Beer(한국)
- 한국에서 만년 꼴찌 조선맥주와 절대강자 동양맥주의 드라이맥주 출시 준비
- 동양맥주 89년 7월 20일 오비 수퍼드라이 발매
- 조선맥주 89년 8월 1일 크라운 수퍼드라이 발매
- 동양맥주의 마케팅 및 물량공세로 초기 시장 선점
- 동양맥주 레귤러 시장(오비라거) 점유율 침해를 우려한 소극적 대응으로
조선맥주의 드라이맥주 시장점유율 급상승(동양 55% vs 조선 45%)
- 전체 맥주시장에서 드라이맥주 시장파이 정체(10% 미만)
- 93년 조선맥주 하이트맥주 판매전까지 맥주시장 점유율은
동양 70% 이상, 조선 30% 이하로 변화없이 이어짐
위의 광고CF 영상을 보고 있으니
1989년 광고모델 이현세, 오리콤 CF팀, 미국현지 촬영팀과 함께
오비수퍼드라이 광고촬영차 갔었던 모뉴멘트 밸리가 떠오른다.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34년이나 세월이 흘렀다.
위 사진들은 서부영화의 거장 John Ford 감독이 좋아했던
모뉴멘트 밸리 '포드죤'이라 불리는 장소이다.
무척 추운 날씨 일출 1시간 전에 도착해 5시간 이상을 추위에 떨며
광고촬영을 하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때 큰 온수통에 타와서 먹던 아메리칸 커피도 잊을 수 없다.
미국촬영팀이 타와서 수시로 꼭지를 틀어 머그잔에 마시던
따뜻하게 몸을 녹여주던 얕은맛의 커피~~
이와같이 드라이 전쟁을 치렀지만,
오비맥주에서 소극적으로 드라이 시장에 대응했기에
전체 파이를 10% 미만으로 유지함으로써
전체 시장점유율은 70%를 웃돌게 유지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조선맥주의 회심의 공격을 우리가 잘 방어한 것이다.
이로써 맥주시장은 다시 종전처럼 유지되며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