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안군 칠원현(漆原縣) 한시(漢詩)편> 고영화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칠서면·칠북면 일대에 있던 옛 고을이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가야의 영역이었다가 신라의 세력 확장에 따라 이곳에 칠토현이 설치되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칠제현으로 개칭, 의안군(창원)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에 칠원현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018년(현종 9)에 김주(김해)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그러나 1390년(공양왕 2)에 감무를 파견함으로써 독립했으며, 이때 구산현을 병합했다. 조선초 군현제 개편에 의해 1413년(태종 13)에 칠원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칠원의 별호는 구성·무릉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진주부 칠원군, 1896년에 경상남도 칠원군이 되었으며,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비입지인 구산면을 창원에 이관했다. 1908년에 칠원군이 폐지, 함안군에 병합되었다.
1) 칠원 동헌[漆原東軒] / 홍성민(洪聖民 1536∼1594)
小縣依山是漆園 산에 의지한 작은 고을 여기가 칠원인데
一燈春夜掩朱門 봄철 밤에 등불 하나 밝혀 붉은 문을 엿본다.
曉來殘夢驚蝴蝶 새벽에 어렴풋한 나비 꿈에 놀라 일어나보니
紅杏臨窓浥露飜 창문 곁의 붉은 살구꽃이 이슬에 젖어 나부끼네.
2) 칠원 택승정 차운[次漆原擇勝亭韻] / 홍성민(洪聖民 1536∼1594)
琪樹風來颯作涼 아름다운 나무에 바람이 불어와 스산하게 하더니
露荷珠瀉暗生香 이슬 내린 연잎에 물방울 쏟아지니 향기가 은은히 풍겨오네.
此身正在空明裏 이 몸이 마치 물에 비친 달 속에 있는 듯하고
倒影樓臺半入塘 연못의 수면에는 누대의 그림자가 반쯤 비친다.
3) 칠원 연못에서[㓒原池堂] / 어득강(魚得江 1470∼1550)
主人十日九臨鏡 주인은 십일 동안 아홉 번을 거울을 보는데
不厭西施淡掃粧 서시(西施)도 화장 지워 깨끗한 건 싫어하지 않았네.
添得六郞君子友 여섯 사내와 군자의 우정을 나누었으니
姓名從此襲馨香 이로부터 성명에서 그윽한 향기 엄습해오누나.
[주] 서시(西施) :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의 미녀. 왕소군, 초선,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녀로 꼽힌다.
4) 칠원부(漆原府)에 나아가서 앞서 고헌(高軒)이 내 집에 들러준 데 대하여 사례하고, 간단하게 술을 마시고 밤에 돌아오다.[進漆原府 謝高軒過 小酌夜歸] / 이색(李穡 1328~1396)
巍巍冢宰壓三韓 우뚝한 총재 지위는 삼한을 압도하는데
九日朝回菊露漙 국화 이슬 흠뻑 젖은 구일의 퇴청 길에
暫枉高軒顧窮巷 높은 행차가 잠시 궁벽한 시골 왕림하자
孟光驚喜進梨盤 맹광은 놀라 기뻐하며 배 쟁반을 올렸네
半庭蒼蘚俄留迹 뜨락의 이끼 위엔 갑자기 발자국 남기고
八秩春風尙溢顔 팔순에도 춘풍은 아직 얼굴에 넘치었네
拜謝又蒙堂上飮 사례드리고 또 당상에서 술대접 받고는
歸來薄暮對龍巒 돌아와서 저녁에는 용수산을 마주하노라
[주] 맹광(孟光) : 후한(後漢) 때의 은사(隱士) 양홍(梁鴻)의 아내 이름으로, 전하여 은사의 아내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곧 목은의 부인을 가리킨다.
5) 칠원의 동헌 운에 차하여 동년인 최 사군에게 주다[次漆原東軒韻贈同年崔使君] / 김종직(金宗直 1431~1492)
武陵村巷半桃樹 무릉촌 길거리는 복사나무가 절반이라
藹藹浮陽特地春 성대히 넘치는 양기 특별한 봄이로세
氷雪已消山帶礐 얼음 눈 이미 녹아 산은 자갈을 띠었고
簿書多暇硯留塵 공무가 늘 한가해라 벼루엔 먼지가 끼었네
靑雲事業君須了 청운의 사업을 그대는 의당 마쳐야 하리
白屋襟期我自新 초막집의 회포는 내 스스로 새롭다오
耿耿一燈相對處 반짝이는 등불 아래 서로 마주 앉아서
淸罇聊且話精神 맑은 술로 애오라지 정신을 이야기하네
6) 칠원(漆原)의 동헌(東軒)에 부쳐 제하다.寄題漆原東軒 / 김성일(金誠一 1538∼1593) 경상우도초유사에 임명, 그 뒤 경상우도관찰사 겸 순찰사.
先祖出宰日 선조께서 수령되어 나갔던 날에
遺愛留桐鄕 끼친 사랑 동향에 남기었음에
至今黎庶間 지금도 백성들 사이에서는
尙欽名字芳 오히려 선조 이름 흠모하누나
憶初金鑾殿 생각건대 처음에는 금란전에서
晉接承玉皇 성상을 가까이서 모시었었지
時事眼中移 시사가 순식간에 변하여짐에
坐見虞與唐 앉은 채로 우와 당을 두루 보았지
吏隱亦非計 이은함도 또한 계획 아니었음에
故山薇蕨香 옛 동산엔 고사리가 향기로웠지
飄然委手版 표연히 수판을 위임하고는
作賦歸柴桑 시 읊으며 시상으로 되돌아왔지
從此遂長往 이로부터 마침내 훌쩍 떠나가
潛德幽不揚 덕 숨긴 채 드러내지 아니하였지
孱孫庇餘休 못난 후손 남긴 덕의 비호를 받아
竊祿慚無良 녹 훔치나 잘못함이 부끄럽구나
每念割雞秋 닭을 잡던 그때를 생각하면은
百感集中腸 온갖 감회 오장 속에 모여드누나
題詩聞在壁 선조께서 지은 시가 벽에 있어서
伯氏賡遺章 큰형께서 이어 시를 지어 남겼지
陳迹今在否 그 시가 지금에도 남아 있는가
南望愁茫茫 남쪽 보니 걱정스러운 맘 아득하네
須君下車日 모름지기 그대는 내려가는 날
留眼看東廂 동헌의 벽을 한번 유심히 보게
煙塵如晦蝕 글음 끼어 흐릿하게 되었으면은
爲我發幽光 날 위해서 그윽한 빛 드러내 주게
[주1] 동향(桐鄕) : 중국 안휘성(安徽省) 동성현(桐城縣)에 있는 지명인데, 수령이 어진 정사를 베푼 고을을 뜻한다. 한(漢) 나라 때 주읍(朱邑)이 어려서 동향(桐鄕)의 색부(嗇夫)가 되었는데, 청렴하고 공평하게 정사를 하였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면서 존경하였다. 그 뒤에 주읍이 병들어서 죽게 되었을 때 아들에게 유언하기를, “내가 옛날에 동향의 관리가 되었을 적에 그 백성들이 나를 사랑하였었다. 그러니 반드시 나를 동향에 장사 지내라.” 하였다. 주읍이 죽자 그 아들이 동향에다가 장사 지내었는데, 동향의 백성들이 과연 사당을 세워서 세시(歲時)로 제사를 지냈다.
[주2] 금란전(金鑾殿) : 당 나라 때 학사(學士)와 문인(文人)들이 있던 궁전으로, 예문관(藝文館)을 가리킨다.
[주3] 이은(吏隱) : 이록(利祿)에 마음이 매이지 아니하여 비록 관직에 있기는 하지만 은자(隱者)와 같이 지낸다는 말이다.
[주4] 수판(手版) : 관원들이 지시를 하거나 일을 기록하기 위하여 가지고 다니는 좁고 긴 판자를 말한다.
[주5] 시상(柴桑) : 고향을 가리킨다. 시상은 본디 심양(潯陽)에 있는 고을 이름인데, 도잠(陶潛)의 고향이 이곳이다.
[주6] 닭을 잡던[割雞] : 지방의 수령을 한다는 뜻이다.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수령이 되어서 예악(禮樂)을 제창하자, 공자가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는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