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학교 공간
지난 여름 뜨거웠던 날씨보다 더 뜨거웠던 곳은 학교 현장이었다. 그리고 가을이 완연한 기온이 된 지금도 그 뜨거움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학교는 함께 또 각자 성장과 배움의 공간이어야 하는데 어느 사이에 갈등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건축가로서 그 과정에 기존의 학교 공간은 잘못이 없는지 돌아봐야 함을 느낀다. 그 갈등이 관계의 고착이나 존중의 부족,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다면 학교의 공간이 그에 일조를 해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학교 공간은 전국 어디나 같은 사이즈의 교실이 있고, 복도를 따라 나란히 붙어있다. 같은 활동, 같은 방향, 같은 위계 공간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제도만 바뀌고 있으니 공간이 구성원들의 관계를 담지 못하고 극단화된 입장 관계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은 아닌지 건축가로서 조심스러운 언급이지만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배경에서 어느 학교나 적용할 수 있는 완벽한 공간적 해결책이라기 보다 하나의 ‘대안’으로서, 얼마 전 설계했던 한 초등학교의 공간을 소개하고자 한다.
학교공간 조성 프로젝트 진행 순서도
공근초등학교 학생들의 기존 야외 수업 모습. 지역의 독특한 산봉우리 배경에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마을교육과정의 공근초등학교
강원도 횡성의 공근초등학교는 전교생 51여 명으로, 마을교육과정을 특성화 교육으로 지향하고 있다. 마을과의 소통, 마을을 활용하는 다양한 프로젝트가 무학년제 활동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교육활동을 진행하기 위한 학교공간이 필요했고, 학교 내 도서관은 낙후하여 접근성이 떨어지고 서고로서의 도서관은 대출 기능만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새로 만들 도서관은 기존 영어체험실·컴퓨터실과 연계하여 ‘러닝 커뮤니티 센터’(LCC: Learning Community Center)로 개념을 확장, 다양한 배움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로 활용하기로 했다.
아울러 5, 6학년 교실을 별동 1층에 조성하면서 학년별 프로젝트가 가능한 유연한 교실을 만들기로 했다. 이를 통해 학교 교육과정은 물론, 마을 커뮤니티까지 확대된 공공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담당 선생님은 학교 내에서 모은 선생님들의 의견을 정리해 건축가에 전달해 주셨다.
도서관 LCC 공간의 전체 구성도. 중첩된 강원도의 산세를 닮은 책장 배치와 가변 커튼을 활용한 다양한 공간을 볼 수 있다.
학생 주도적 활동의 학교 도서관 새로운 유형 제시
도서 대출·독서교육 같은 정형화된 도서관을 넘어 지역에 아이들이 찾아갈 수 있는 유일한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공간을 운영하고 사용하도록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강원도의 산세를 닮은 책장을 디자인·배치하고, 주변 자연환경이 실내로 들어올 수 있게 창문을 막지 않은 방향으로 설계했다. 책장 사이, 창가, 모둠테이블, 라운지 소파, 계단식 벤치, 이동식 책걸상 등 다양한 장소를 그때그때의 활동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한 고정 요소와 가변 커튼벽을 적절히 배치하여 배움 활동, 동아리 활동, 개인별 활동 등 활동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조합의 공간이 가능하도록 했다. 투시형 책장을 만들어 답답함을 덜어내는 등 크지 않은 기존 학교 내 공간에서 최대한 학생들의 주도적 잠재성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고려했다.
도서관 LCC 완공 후, 오른쪽에는 모둠용 테이블, 가운데는 라운지 의자, 왼쪽에는 꺾인 책장이 있고 그 사이로 외부 창문을 통해 강원도의 산세가 보인다.
도서관 LCC의 가장 안쪽에는 계단식 공간과 학생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화이트보드를 설치했다.
책장은 개방형이면서 동시에 약간의 각도를 갖고 꺾이게 만들었다. 끝에는 계단식으로 처리해서 시각적으로 답답하지 않고 중첩된 산의 느낌을 살렸다.
방과 후 활동, 동아리 활동, 수업, 자유로운 이용 등 다양한 활동이 실제 벌어지는 모습.
일반적인 복도와 교실을 벗어나 다양한 활동과 배움의 장이 되는 장소
LCC의 아래층에 위치한 5학년, 6학년 교실. 총 4개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었다.
기존 학교 건축물의 직사각형 교실과 복도를 넘어 공각아고라, 공각마루 등 중간 영역이자 다양성 영역을 더했다. 필요에 따라 ‘가변적’인 사용이 가능하고, 방과 후 활동 등 주체적 활용이 더해질 여지를 포함하여 디자인했다.
교실 간 일부 투명 창을 통해 소통을 강조하고 사각지대가 없도록 하였다. 또 수업 준비실을 별도로 마련하여 배움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합리적인 교실 공간이 되게 했다.
공유 공간인 ‘공각 아고라’의 전경. 학교 건물 후면의 수목이 시원하게 뷰가 된다.
‘아고라’와 ‘마루’ 영역은 평면적인 학교 공간에서 입체성을 더하여 유연한 관계가 조성되도록 여지를 남겼다.
새 교실이 오각형이다 보니 다양한 배치의 수업이 가능하다. 마루 공간도 폴딩 도어로 가변성을 활용한 다양한 배움이 가능해졌다.
지역성과 장소성을 고려한 디자인
학생들이 매일 같이 마주하는 지역의 지형과 학교를 오가는 과정의 경험을 고려하여 실내까지 이어지게 공간을 디자인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동시에 학생들 기억에 남는 학교 공간을 만들었다.
프로젝트 초기 지역의 문맥을 분석하는 과정. 학교를 오는 학생들은 이런 문맥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학교 내부 공간까지 이어짐을 잊지 않아야 한다.
협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진행 과정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형식적 절차로만 제대로 이뤄지는 경우는 없다. 특히나 배움의 공간은 그것을 실제로 설계하는 전문가와 학교 구성원, 교육청 등 행정지원의 마음과 의지가 합쳐져야 비로소 진정한 공간이 된다.
학교 내에서 본 프로젝트를 담당한 선생님은 일찌감치 학교 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공부해 왔다. 또 가장 적합한 공간 설계를 위해 건축가를 찾고, 완성된 타 공간을 방문했으며, 진행 과정에서도 충분히 협력했다.
이는 신뢰와 의지가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학교 내 의견 수집, 학생 워크숍, 건축가 초대, 계약, 회의, 설계, 진행, 시공감리, 학교 구성원들과의 소통, 준공 이후 다양한 활용과 확산의 과정 등 모든 것을 건축가와 공유하면서 함께 시너지를 만들었다.
거기에 더하여 새로 조성된 공간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수업 개발까지 진행했다. 이는 제도와 의무만 있는 ‘용역’ 형태로 진행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이는 참여하는 전문가들의 마음을 포용하면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