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 시인의 <미디어 시in>에서 모셔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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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턴피시* 외 2편
윤석호
멸치만큼 작아요 심해에 삽니다
밤마다 불을 켜고 수면으로 올라와 바다를 청소해요
생태계를 떠받치며 지구를 지키는 것이
집채만 한 고래인 줄 아셨죠
캄캄한 밤에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갑니다
불을 깜박이며 도시의 살비듬을 쓸어 담고 버려진
탄소 덩어리를 심해로 옮겨요
낮에도 방은 심해처럼 어둡습니다
포식자를 피하기엔 적당하죠 생존 연습을 하듯 야광
조끼를 꺼내 충전하고 밝기를 맞춰 놓습니다
‘나 여기 있어요’
물가가 오르자 수온이 따라 올랐어요
갈수록 랜턴피시가 숨쉬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맞춰 놓지도 않은 알람에 놀라 잠에서 깼습니다
예보도 없이 폭우가 쏟아져요
시계가 뭘 느끼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빗물이 들이닥칠까 봐 다시 잠 못 들 때가 많습니다
탄소중립은 마음 편한 영세중립 같아요
친한 사람도 별로 없고 몰려다닐 일이 없으니까
저도 관계 중립입니다 좀 단조로운데, 시끄럽게 살면
탄소가 금방 쌓여요 포집하는 데 애를 먹습니다
바다 눈**이 하얗게 내립니다
누군가 바닥에 모여 불을 밝힙니다
어둠을 견디며 바다를 보살피는 것이
멸치만 한 꼬마 물고기인 줄 모르셨죠
* 랜턴피시는 심해에서 사는 작은 물고기로 밤에 수면으로 올라와 먹이를 먹고 심해로 돌아가 배설함으로써 지구의 탄소 조절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 해수면에 사는 생물들의 사체나 배설물이 심해에 눈처럼 내리는 걸 말한다. 심해 생물들에겐 중요한 먹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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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푸른 점*
떠밀어 보내고 그를 잊었습니다
딱 한 번 뒤돌아보더군요
0.12 픽셀의 푸르고도 창백한 점 하나가
그의 눈에 보였습니다
우주가 둥글면 그가 다시 돌아올 텐데
우린 계속 푸를 수 있을까요
어릴 때 어떤 밤이었어요
많이 아팠죠 열이 펄펄 났습니다
어머니가 얼음물로 닦고 부채로 부치니까
금방 열이 내렸어요
빙하가 녹고 홍수와 태풍이 왜 자주 덮치는지
전 알아요 빙하 속 푸른빛은 해열제일까요
주문을 합니다 먼 마을에 경보가 울립니다
색을 먹이고 재단을 하고 무늬를 박아 넣습니다
아이들이 울고 트럭이 달리고 바다를 건너갑니다
배송센터에서 쪽잠을 자고 어느 문 앞에 던져집니다
잠깐 거울 앞에 섰다가 다시 문밖으로 밀려납니다
먼 나라 바닷가에 산더미처럼 쌓입니다
0.12 픽셀이 창백해집니다
떠밀어 보내고 잊었습니다
누군가 그를 기억하고 망원경을 켭니다
우주가 둥글면 다시 돌아올 텐데
우린 계속 푸를 수 있을까요
우릴 알아볼 수 있을까요
* 1990년 2월 14일,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가 지구로부터 약 60억 킬로미터 밖에서 촬영한 지구의 사진이자 이를 모티브로 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저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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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와의 인터뷰
에어컨과 히터만 있으면 바깥세상 상관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에요 가습기나 공기청정기가 필요하긴 해요
채광이 중요하지만 조명이 알아서 하죠
이중 샤시로 단절을 강화하고 합금 문으로 괜한 소통을
막았어요 무거운 생수통 들여놓는 게 제일 힘들어요
작황이나 어획량이 안 좋다는 말을 들으면 미리 택배
주문해 놓습니다 물가가 너무 오르는데 탄소세 도입은
말도 안 되죠 폭염 오기 전에 냉장고를 바꿔야 할 것 같아요
귀찮을 땐 배달 음식 시키는데 일회용품 치우는 것도 일이에요
산불 뉴스를 자주 봅니다 우린 다행이다 싶어요 고층이라
집중호우 걱정도 없고 교통대란 나도 재택근무니까 괜찮아요
친구들은 늘 SNS에 죽치고 있어서 금방 연락됩니다
아파트가 지겨우면 가성비 좋은 동남아 한번 다녀옵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있으니까, 연예나 유행에 밀리지 않아요
운동할 때만 아래층이 약간 신경 쓰입니다
환경, 중요하죠 특히 아파트 환경이 제일 중요해요
관리비가 좀 비싸지겠지만
이제 뭐가 남았죠?
아, 연애 뭐 그런 거요? 결정사*가 다양해서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에요 스펙은 미리 준비돼 있어요
아직 냉동 보관 생각할 나이는 아니죠
늘 기후 환경을 생각합니다 건강과 직결되니까요
경제도 물론 체크하고요 삼성이나 엔비디아가 잘하고
있으니까 주식도 오르고 안정적인 세상이 지속되겠죠
* 결혼정보회사의 줄임말.
―《시산맥》 2026년 기후환경문학상 공동(김숙영 시인)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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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호 | 201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시 등단. 2025년 《시산맥》 창작지원 공모 선정.
시집으로 『4인칭에 관하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