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4장]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9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20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
21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설교]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로마에서 죽음을 맞기 전에 남긴 유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 디모데를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9절에서 바울은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고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의 목회와 선교를 마무리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죽음을 맞기에 앞서 반드시 완수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잘 알았습니다. 목회자요 선교사인 바울은 이제 자신의 후계자를 세워야 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자신이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도 각 지역의 교회들에는 목회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자신의 과업이 이미 충분히 완수되고도 남은 이 시점에도, 자신을 이을 목회자인 디모데를 부릅니다. 그리고 끝으로 디모데의 얼굴을 보면서 주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직분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일깨워주고자 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바울의 모습이 오늘날 교회에서도 은퇴를 앞둔 모든 성도들이 완수해야 할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어진 10절 말씀 이하에서 바울은 그동안 자신과 함께 하였던 동료들의 이름을 열거합니다. 하지만 10절과 14절에 등장하는 네 사람은 이제 바울을 버리고 떠나 다른 곳으로 뿔뿔이 흩어진 인물들입니다. 특히 10절의 데마는 골로새서와 빌레몬서에서 누가와 함께 언급될 정도로 바울의 매우 중요한 신앙의 동역자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서 데마는 이제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는 더 이상 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하지만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다시금 복음을 떠나갔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의 품을 떠나 소돔과 고모라로 떠나갔던 롯과 같이, 데마는 그리스도의 품을 떠나 세상 가운데로 다시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데마와 같이, 바울의 동료들 중 몇몇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버리고 다시금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일평생 복음을 위하여 살았던 바울은 이렇게 복음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간 동료들을 보면서 큰 상실감과 아픔을 겪었습니다. 목회자로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 된 자들이 복음을 떠나가는 일을 여러 번 겪으면서 분명 큰 좌절을 겪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당장에라도 자신의 사역을 제쳐두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결코 이러한 일들로 낙심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이러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죽기까지 자신의 사역과 목회를 감당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자신의 동료들이 모두 자신을 버리고 떠나가는 이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자신의 사명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이 본문 17절에서 밝혀집니다. 바울은 17절에서 자신이 이 사명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었던 이유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곁에 단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을지라도 그럼에도 끝까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 바로 주께서 언제나 함께 계셔서, 저에게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고백이 단지 말뿐인 고백일까요? 아니겠지요. 실제로 바울은 주께서 그와 항상 함께 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깊이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본문 17절에서 바울이 고백하듯이, 주님께서는 실제로 바울을 “사자의 입에서부터 건져주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다니엘서 6장의 다니엘이 경험했던 이적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그를 사자들로부터 직접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악한 바벨론으로부터 주님을 믿는 신자를 하나님께서 직접 지키시고 보호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주님을 믿음으로 신실하게 복음의 길을 따르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사자와 같은 세상에서도 우리를 능히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러한 바울의 고백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 이 사자와 같은 세상을 향하여 담대하게 나아가야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시시각각 불어 닥치는 세상의 미혹에 빠져, 그만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곁에서 가장 신실했던 성도들조차 ‘아차!’하는 순간 세상으로 떠나가는 일들이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계속해서 지키고, 끝까지 주께서 말씀하신 좁은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속 바울의 고백을 묵상하며, 이 시간 우리 주께서 우리에게 늘 힘주시고, 늘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길 바랍니다.
‘우리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라는 삶의 경험과 뚝심 있는 믿음이 없이는 우리 신앙과 삶은 결코 온전히 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아침, 다른 무엇보다 여주동행! 주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시기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성도님들 되길 바랍니다. 바울은 이제 편지를 마치며 제일 끝으로 이러한 말씀을 남깁니다. 22절,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러한 은혜가 여기 계신 저와 여러분 모든 성도님들의 심령 속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이러한 은혜로써 오늘 이 시간 기도함으로 우리 주께로 나아가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