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할 일을 앞두고, 휴일만큼은 다 내려놓고 쉬기로 했다. 그러나 꿈은 여전히 내 안의 불안과 긴장을 비춰주고 있다. 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휴일 동안 나는 여러 행동으로 무의식적인 긴장을 달래고 있었던 것 같다. 군것질을 하거나,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 이런저런 움직임을 반복한다. 그 아래에는 오래된 불안이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오랫동안 이런 메시지 속에서 살아왔다: "이것으로 충분치 않다. 더 해야한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진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불안을 자각하고 그것과 함께 머물러 보는 용기이다. 이미 몸에 밴 사회적 긴장이 나를 충분히 움직이게 하고 있으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는 믿음, 그리고 때가 되면 삶이 저절로 나를 준비시킨다는 신뢰가 필요하다. 융의 개성화 과정에서 존재의 독특함은 새로운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적응하며 몸에 밴 불안과 긴장을 알아차리고 하나씩 내려놓을 때, 본래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어쩌면 무위(無爲)는 무의식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을 조용히 알아차리고 본연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닐까. 필요할 때는 성실하게 에너지를 쓰고, 쉴 때는 삶이 스스로 움직이는 힘을 믿으며 온전히 쉰다. 그럴 때 자기조절력과 에너지의 흐름은 가장 자연스럽게, 그리고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무위는 방임이 아니라 깨어있음에서 비롯되는 균형인 것 같다. 자신을 신뢰하며, 몸이 보내는 신호를 놓치지 않고, 불안을 억누르기 보다 따듯하게 알아차리며 응답한다.
그것은 더 애쓰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에너지를 자각하고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