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다섯살때 엄마가 홀연히 하늘로 떠나면서
위로 누나와 형의 슬픔도 컸지만 나와 두살배기
여동생은 누나와 형이 왜 우는지조차 몰랐다.
그저 배가 고플뿐인데, 왜 엄마가 나타나지않고
처음 보는 여자가 나타나서 포악스럽게 성질을
부리며 어떤 때는 주먹질까지 해되니 형과 누나는
집에 들어오지않고, 나와 여동생은 훌쩍훌쩍
울며 엄마를 찾았다.
엄마~ 엄마~ 어디있어...배고파 흑흑~
결국 여동생은 세살때 새엄마의 주먹질에
장파열로 엄마를 따라 하늘로 떠났고...
나는 한글을 깨우치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고향이 경기도 "연천"이라는걸 알았다.
외삼촌과 외할머니의 온기가 남아있을테고
엄마의 체취가 너무나 그리워 꼭 가보고 싶은
"연천"이었지만 녹녹하지 않은 삶의 쳇바퀴속에
세월은 무심하게 흐를뿐이었다.
대학에 입학후 서울에서 "인천"으로 혈혈단신
들어와 4년만 살겠노라 했는데, 벌써 47년의
세월이 물 흐르듯 흘렀다.
몇해전 가정경제가 한참 힘들때, 정말 죽고싶은
심정으로 어느 밤, 술에 많이 취해 택시를 탔는데
언뜻 밖을 보니 "황천길"이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아~ 이제 나는 "황천(黃泉)"으로 가는구나...
죽고싶었으니 가겠지만 그래도 가족들한테
작별인사도 못 했는데 어쩌나하며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밖을 보니 "황천길"이 아니라 "홍천길"
표지판을 잘못 본것이었다. 에고~
그 이후 "인천"에서 경기도 "연천"까지 전철이
개통되면서 출.퇴근시에 "연천"행 전철을
수시로 보는데, 무조건 올라타고 "연천"까지
가고싶어지는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점점 엄마의 체취와 외가쪽 식구들의
추억도 희미해져가고 있는건 세월의 흐름 탓
이려니...
하지만, 언젠가 나도 이 세상을 떠나게 될날이면
영혼(靈魂)이라도 "인천" 집에서 "연천"행
전철을 타고 엄마의 고향을 한바퀴 돌아 "황천"
으로 훨훨~ 날아가리라...
노래나 한곡 하면서 훨훨~어이 어이 훨훨~
이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나의 미련이 무엇이냐
세상만사가 춘몽중에 또 다시 춘몽일세...
첫댓글 예전에 서울에서 청수장근처에 사셨다는 글을 본적이 있는데
인천으로 내려와 47년이나 보내셨군요
저도 서울이 고향이지만 떠나산지 40년이나 되었습니다
어머님의 고향 연천인근인 포천 관인면에 부모님 묘소가 있었는데
작년 여름에 이천호국원으로 이장하였지요
연천에 가보실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네~ 고교때까지 청수장 근처에 살았습니다.
저의 아버님이 청수장 지배인을 하셨거든요.
아~ 이제는 연천에 가도 반겨줄 사람이 없으니
그게 아쉬운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편한 저녁시간 되세요.
연천은 내가군생활한곳 28사단 무적태풍 35개월 10일 근무
1975~1977년12월24일 전역
@김종문백운
아~ 연천에서 군복무 하셨군요.
전방에서 고생 많이하셨습니다. 충성~!!
무적태풍부대에 근무하셨네요
저하고 입대 년도가 같네요
저는 부산2관구사령부와 홍천 11사단에 오래 근무했습니다~~
건강하세요~`
@절벽 아휴 반갑습니다
글쿤여,
그런 사연이 적토마님께 있었군요~~
산 사람은 어찌어찌 살게 되는게 인생인데,
무도하고 잔인한 폭력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 동생은,
무슨 인연과 업보로 그리도 짧은 시간 만을 허락 받았던 것일까요~~
참 가슴이 아립니다~~
살아오면서 사춘기를 넘기전에 몇몇의
혈육들을 떠나보내며 나름대로 삶의
의미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해보게된
경험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숙한 어린이가
되었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엄마가 보고프면 외갓집이라도 찾아 보셨으면 엄마 본 듯 마음이라도
위로 받으셨을 텐데 평생 가슴에 한으로 남으셨겠어요 전 보고 싶은 사람이
없고 미워하던 사람만 많아서 그 또한 한으로 남았는데 그리움의 한이
그래도 영혼을 덜 다치게 하겠지요 제 생각입니다.
엄마의 죽음이 아버지 탓이라며 그 아버지의
아들도 보기싫다고 그날 이후부터 외가에서
저와의 인연도 끊어버리더라구요.
다섯살 애가 어른들이 저지른 일을 뭘 안다고...
그래서 가보고싶은 외가도 못가던 신세였죠.
적토마 친구도 이젠 슬픈 기억에서 벗어날때도 되지않을까 싶네요.
뒤 돌아보지말고요.
그렇지요. 그냥 잊을 수는 없으니 담담하게
생각하며 현실을 잘 살아가는 지혜로 승화
시킬뿐이라네...아무쪼록 늘 건강하세~
저도 도봉구로 시집와서 40년째 도봉댁으로 삽니다.
연천.
오리더덕구이 먹으러 여러번 가본 곳이네요.
녹슨 기찻길 위로 가을바람에 고운 들꽃이 슬프게
흔들리고 있더군요.
적토마님의 엄마닮은
꽃이.
우리 와이프 할머니가 도봉댁이라오.
도봉동에 사신것 같지는 않던데 왜 도봉댁인지...
어느해 어떤날 큰누이 손을 잡고 엄마 산소에
가니까 빨간 할미꽃과 패랭이꽃이 피었던데...
엄마와 나를 닮은 꽃이 었을까 ?
제 남편이 연천 전곡초와 군남초에서 근무했던 인연으로 지금도 가끔 바람 쐬러 연천엘 갑니다.
적토마님의 지난 이야기를 읽노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에 지지 않으신 강인함에 감탄합니다.
연천.전곡.파주.동두천...등등
모두 가슴에 남아있는 지명들이죠.
비바람이 몰아친후 들꽃은 스러지지않고
더욱 강한 향내를 풍기며 강인함으로
꽃씨를 남기었나봅니다. 감사합니다.
조 위 울리진님 글에 한 표 얹겠습니다.
아주 잊힐리야 없겠지만,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다 흘러내 버리시고 새로운 마음으로 가볍게 사시면 좋겠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인간사 아무리 복잡해도 사계절은 꾸준히
오고가고 하네요. 겨울의 추위를 잘 견딘
보리의 푸르름처럼 늘 봄을 기다리며 겨울을
잘 견디어 보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5살 망아지가 보살핌 없이 들판의 풀을 스스로
뜯어 먹으며 적토마로 성장한 세월이네요.
강한 지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인한 사람이라고 , 우리도 끝까지 가봅시다.
화이팅 ~!!
앗 적토마 ?...
연천은 나의 본적지
남양 홍가네 집성촌 이죠.
나랑 같이 가자구 연천.
봄날 잘지내요.
아~ 홍짱 형님의 본적지가 연천이시군요.
저의 고향인 양주 회천 건너편 동네에도
남양 홍가 집성촌인데요. ㅎㅎ~
연천은 아들이 군복무 할때 두어번
면회 갔었어요.
군 생활 빡세게 해보고 싶다고 그곳
수색부대에 자원 했거든요.
지피에 들어가면 며칠씩 연락도
안된다고 해서 마음을 졸였는데 후에
태권도 교관으로 임명되서 한시름
놨지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을 어머님의
고향 연천..
아릿하게 그리울것 같아요.
인천주민 올림^^
아~ 아들이 연천의 GP에서도 복무했군요.
태권도 교관으로도 임명되었고, 멋진 아들입니다.
그러게요. 언제 연천을 가보게 될지 ...
인천에서 연천가는 전철을 보면서 종종
그리움을 끄집어 내어봅니다.(^_^)
어린시절 아픔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갑니다
그리하여
적토마가 되셨네요
행복누리시고 ᆢ그저
건강하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누구나 아픔이 있겠지만 그 아픔을 잘 딛고
일어서는 건강한 시람으로 살아가보자고요.
화이팅 ~!!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가뭄에 콩나듯 뜬금 없이 연락이 되는외사촌
형제하고 같이 가보곤 싶은데...
혹시 가게되면 오는 길에 엄마 산소도 들러서
노래 한곡 불러보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어려서 어머니를 떠나보낸 슬픔의 고통은 말로 표현이 불가하지요
어머니를 그리면서 연천을 잊지 못하면서 살아온 세월의 힘듬을 감히 생각해 봅니다
연천 홍천 황천 인생의 허무함이지만 그길을 가야함에 아쉬움을 느낌니다
홍천에 오래 살고있습니다만 황천도 멀지 않은거 같네요
건강유의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