口尙乳臭일 때, 어린이 위인전에서 읽은,
복잡하게 얽힌 노끈을 一刀兩斷으로 푼 알렉산더의 해법에 멋지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이 들어 여러가지 경험을 하고 난 결과,
그 멋진 처리는 해법이 아니라 문제의 회피였음을 실감하게 된다.
노끈은 끊어졌고, 이를 다시 이어 쓰기에는 이미 틀린게 아니었을까?
사물의 이치가 이럴진데,
인간관계의 복잡다기함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
전생에 자식은 빚쟁이요, 마누라는 웬수였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는데,
이게 그렇게 웃고 넘길 일이 아닌 것이다.
얽힌 인연을 못 풀면, 풀 때 까지 반복해서 제기되는게 인생의 수수께끼라 하겠다.
몸에 해로운 줄 알면서 습관적으로 해 오는 흡연 과음 같은 악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년말에 일체의 망년 송년회를 피해가고 있음에도 연 삼일 과음을 하게 되었다.
간단히 차 한잔이나 점심을 하자고 모여도, 반드시 술이 끼게 되고,
술이란 마물이 손님 역할을 하다가, 반드시 주인 역할을 하려고 덤비기 쉬운데,
이를 물리치기가 애주가에게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아예 자리를 피하는건 알렉산더 식 회피일터이고,
인생이 제기하는 수수께끼는 얼마나 주인자리를 지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제기라고 하겠다.
여기에 실패하면 영원히 문제제기를 당하다 취생몽사하는데 이르고,
다음 생을 기약하리라는 것이 소생의 경험과 전망이다.
단순한 술 문제도 이럴진데, 마음이 제기하는 貪 嗔 痴, 갈구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상태를
초월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이겠는가?
아제 아제 바라아제 라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강수현을 떠나 보내면서, 도반인 비구니가 읊는 담마파다의 한 구절이 이러하였다.
잠 못 이루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지쳐있는 나그네에게는 지척도 천리.
바른 진리를 깨닫지 못한 자에게는
윤회의 밤길이 아득하여라.
임권택은 이 영화로 강수연을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에 올리는 기염을 토하였고,
씨받이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그녀를 최고의 배우로 만들었으나,
한승원 원작 소설을 임김독이 각색했다고 하는 이 영화의 초점은 강수연의 보살행을
주장하고 싶었겠으나, 예술가들의 역할이요 한계는 바로 이러한 자기탐닉에 있다 하겠다.
오히려 도반인 비구니가 수행자로서의 바른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거두절미 대승 보살행을 강조하는 우리의 종교문화 풍토에서,
소승을 이루지 못한 설익은 대승 보살행의 무의미를 윤회의 거듭함을 설파하는 나레이션
(담마파다는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한 소승경전 아함경의 꽃이므로)으로 끝을 맺어,
이중적 해석이 가능하게 하였음은, 임감독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나, 진리의 말씀인 것이라.
이어서 주말에 상영한 이문열의 소설을 영화화한
젊은 날의 초상화 역시 마찬가지라고 소생은 생각하는 바,
이들 예술작가들을 이해 하자면, 타고난 영성지능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른지,
아니면 전생의 끊지 못한 습이 그들을 끌고 다닌다고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첫댓글 강수연을 강수현으로 오기했음에도 지적하는 회원이 없어 관련기사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몇줄 더 첨언하였다.
이견제기를 허락하신다면, 알렉산더가 노끈을 일도양단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라는 점을 높히 사주어야 하지않을까요. 아울러 복잡한 세상사를 본질을 파악하여 간명하게 처리하는 어프로치를 인정해주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결국 차원이 다른 문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武斷이란게 低次元의 해법이긴하지요. 알렉산더도 역사의 법정에 선다면, 변호인의 조력이 필요할테니 잘 변호해 주시기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