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대지가 그대로 푸름이다. 청신한 녹음 속에 건듯 부는 바람이 더위를 식힌다. 하늘에 점점이 떠가는 흰 구름이며 익어가는 과일들이 초여름을 구가하고 있다. 지음(知音)을 찾는 애타는 마음인가, 산허리에 뻐꾸기 울음이 길게 걸친다. 그 울음소리 끝을 따라서 메아리만 되돌아올 뿐 새벽부터 토해내는 구음에 목이 메는 것 같다.
푸름을 주조로 한 수채화 같은 초여름 풍경은 왠지 모를 애수에 젖게 한다. 지나온 길 위에서 겪었던 바스러진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움을 찾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이다. 그리움은 잠시 스쳤던 간이역 같은 것. 그 도정에 흘렸던 쓰라린 눈물도 움켜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알 같은 시간 속에서 꽃으로 핀다.
폐역이 된 간이역. 경부선의 고모역을 찾았다. 70년대 후반 대구로 기차 통학하던 시절 늘 지나치던 곳이기에 정이 가는 역이다. 고모역은 1925년에 세워졌다가 이용객이 줄어들자 2004년에 여객취급을 중지하고 2019년부터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에 작년부터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하며 관람객들에게 이 역에 얽힌 이야기를 안내해 주고 있었다.
고모역은 일제 강점기에 징병과 징용으로 끌려가는 자식과 어머니가 생이별한 장소였다. 당시 증기기관차는 경사를 이룬 고개를 단번에 올라가지 못하고 더디게 넘어갔는데 이때 아들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모여든 어머니들로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고개가 고모령으로 불렸다 하며, 여기에 영감을 얻어서 만든 노래가 비 내리는 고모령이다.
전시실에는 고모역의 역사와 이 노래를 부른 가수 현인의 레코드 자켓을 비롯하여 여러 옛 가수들의 사진과 흑백영화 장면들이 걸려 있다.
고모역을 나와서 앞에 야트막하게 놓인 형제봉을 넘어서 모명재로 향한다. 모명재는 임진왜란 당시 원군으로 왔던 명나라 장군 진인과 함께 출병했다가 조선으로 귀화한 두사충 장군의 후손이 지은 재실이다. 모명재는 '명을 그리워하다'는 뜻을 지닌 두사충의 호(모명)를 딴 것이다. 두사충의 묘와 가까운 이곳에 1912년 처음 지었다가 중수하였다.
두사충은 명이 기울고 청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조선 사람이 될지언정 오랑캐 백성이 될 수는 없다"면서 명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조선에 귀화하였다. 조정에서는 그가 원하는 곳에 살게 해 주었는데, 풍수지리에 밝았던 그는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대구에 정착하였다.
두사충은 두고 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서 대구 앞산에 올라 명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곤 하였는데, 나중에는 앞산 밑으로 집을 옮겨와 명나라를 생각하는 뜻에서 동네 이름을 대명동이라 지었다. 현재까지도 대명동으로 불리며 대구에서 면적이 가장 큰 동네가 되었다.
두사충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각별한 사이였으며, 이순신이 두사충에게 보낸 시가 남아서 전한다.
奉呈杜僕射(봉정두복야) 두복야에게 드리는 시
北去同甘苦(북거동감고) 북으로 가면 고락을 같이하고
東來共死生(동래공사생) 동으로 오면 생사를 함께 하네
城南他夜月(성남타야월) 성 남쪽 타향의 밝은 달 아래
今日一盃情(금일일배정) 오늘 한 잔 술로써 정을 나누세
모명재 뒤 형제봉에 있는 두사충의 묘이다. 풍수지리에 박식했던 두사충이 몸을 뉘어 쉬고 싶은 안식처가 이곳이었을까?
어렵던 그 시절 젖은 어머니의 눈물을 단채 정지된 세월 속에 비켜서 있는 고모역과 귀화를 택하였으나 마음 속에 늘 두고 온 고향 나라를 잊지 못한 두사충의 애절한 서사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첫댓글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회장님, 가입을 허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청도문학신문의 회원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같이 어울려 좋은 문학활동을 하시기를 기대합니다.
고모령이 대구에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노래의 배경도 육이오동란인줄 알았습니다.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靜岩 유제범 문학공간에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고모역 과 모명재 소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천이 제 고향이라 일찌기 부산에서 객지 생활하며
완행 열차타고 고향가는 길에 많이 보았던 낮익은 이름입니다
그 때는 단순한 간이역이 아니라
고향이 가까워 졌읆을 알리는 역이였습니다
말씀을 듣고보니 옛 완행열차 여행 풍경이 떠 오릅니다
문학신문 가족이 되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환영 합니다
고맙습니다. 김천이 고향이시군요.
옛날에 부산에서 출발하던 김천행이라는 완행열차가 있었습니다.
청도역을 오후 4시 조금 넘어 지나가던 기차로 기억 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아 정말 가슴 아픈
역사를 읽었습니다~~^^
그 분들이 있었어
오늘이 있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감사히 읽고 느끼고 갑니다~~^^
반갑습니다.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청도문학신문 까페에 회원으로 가입해주시고 고모역을 중심으로 한 애환을 잘 풀어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좋은 작품 많이 올려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회장님을 비롯하여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