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 / 심보선
구름이 내게 모호함을 가르치고 떠났다
가난과 허기가 정말 그런 뜻이었나?
나는 불만 세력으로부터 서둘러 빠져나온다
그러나 그대들은 나의 영원한 동지로 남으리
우리가 설령 다른 색깔의 눈물을 흘린다 한들
굳게 깍지 꼈던 두 손이 침착하게 풀린다
좋은 징조일까?
그러나 기원을 애원으로 바꾸진 말자
붙잡고 싶은 바짓가랑이들일랑 모두 불태우자
깃발, 조국, 사창가, 유년의 골목길
내가 믿었던 혁명은 결코 오지 않으리
차라리 모호한 휴일의 일기예보를 믿겠네
지나가던 여우가 어깨를 다독여주며 말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
그 모든 것들로부터 멀리 있는
너 또한 하찮아지지 않겠니?
지금은 원근을 무시하고 지천으로 꽃 피는 봄날
그렇구나, 저 멀리 까마득한데
벚꽃은 눈 시리게 아름답구나
여우야, 나는 이제 지식을 버리고
뚜렷한 흥분과 우울을 취하련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
저 꽃은 네가 벚꽃이라 믿었던 그 슬픈 꽃일까?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는 것은
알 수 없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나가던 여우는 지나가버렸다
여기서부터 진실까지는 아득히 멀다
그것이 발정기처럼 뚜렷해질 때까지 나는 가야 한다
가난과 허기는 또 다른 일이고
- 심보선 시집『슬픔이 없는 십오 초』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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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허기에 대한 입장 차가 있다.
가난이 왜 생기는 건지, 어떻게 유전되고 어떻게 극복되는지,
아니면 극복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덩치를 키우는 부에 맞서 가난끼리 연대해야 하는 것인지,
부가 부를 나누어 주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하는지
그도 저도 아니면 마음이라도 가난해지기를 바라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창은 하나도 아니고 투명하지도
않다. 서로 다른 생각으로 “불만 세력”과 자신이 척을 진다고
해도 “다른 색깔의 눈물”처럼 일정량의 진실이 서로에게
있다고 믿고 있으며 실제 그렇기도 할 것이다.
시인은 벚꽃에서 아름다운 것을 느낀 것처럼 미덥지 못한
지식보다는 자신의 직접적인 감정에 더 신뢰를 보내려
했지만, 여우의 말에 다시 혼란에 빠진다.
벚꽃은 정말 벚꽃인가?
어제의 그것과 지금의 그것은 같은 건가?
착각도 깨지 않으면 진실이다.
세상의 비밀을 또는 진실을 다 “알 수 없다”고 거듭 말하는
것은 내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진실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로
한 걸음 내디딜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여우는 떠나고 어린왕자는 자신의 별로 돌아갔지만
시인은 이 별에 남아서 어떤 식으로든 포즈를 취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과 허기를 고민하면서.
/ 이동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