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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장, 막바지 무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해가 지고 나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무더위로 인해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된다. “어미야! 아름이 덥지 않게 에어컨을 아끼지 말고 틀어놓아라!“ “네, 어머님!” 문정숙은 그런 어머님의 자상하심이 고맙다. 그래도 온 집안의 방중에서는 아름이의 방이 가장 시원하게 바람이 잘 들어오는 방이고 방안이 넓어서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 방이다. 그러나 워낙에 무더운 날씨라서 그 방도 예외는 없다. 문정숙은 밥을 잘 먹지 않는 아름이를 위해서 온갖 곡물로 미숫가루를 만들어 시원하게 해서 아름이의 책상위에 가져다준다. 아름이가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살금살금 소리 없이 걸어 들어가 조심스럽게 놓고 나온다. 그러나 그토록 물러가지 않을 줄 알았던 무더위도 한 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주는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 김윤희는 늘 그랬듯이 가족들을 위한 영양식을 준비한다. 이제 며칠이면 승규가 제대를 하고 나온다. 손자의 제대를 축하해주는 뜻이기도 하고 온 가족이 오랜만에 둘러 앉아 몸보신을 하기 위함이다. “어미야! 이번에는 우리 승규가 좋아하고 잘 먹는 것으로 해라!“ 문정숙은 시어머님께서 주신 돈으로 해물 닭백숙을 준비한다. 시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문어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전복, 소라 대하 그리고 인삼과 대추를 넣어서 푹 곤다. 여름을 지나느라 많이 힘들어 있을 몸을 위해서 원기를 북돋아주는 보양식이지만 워낙 많은 재료들이 들어가기에 맘먹은 대로 자주 해 먹을 수 없다. 그러나 승규가 제대를 하고 나온다고 해도 다시 아름이의 수능이 코앞이라서 소란스럽게는 환영을 해 줄 수가 없다. “한승규 군임무 완성하고 돌아왔습니다.” “오냐! 내 새끼,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김윤희는 손자를 끌어안으며 기뻐한다. 집안의 장손이다. 이제 집안이 그득하게 찬 느낌이 들며 마음이 든든해진다. 그들은 아름이를 신경 쓰면서 환영인사도 조용조용히 해 나간다. 송이 또한 모처럼 일찍 집으로 돌아온다. 오빠의 전역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케이크를 준비해 가지고 온다. “오빠!” “잘 지내고 있었어? 여전히 공부에 빠져서 살고 있다며?”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공부밖에 더 있나 뭐! 이제 오빠도 복학을 해야지?” “다음 신학기부터 복학을 해야 하니까 그동안 아르바이트라도 나가서 사회경험을 해 봐야겠다.” “그렇게 아르바이트에 매달리지 마! 이제는 오빠도 공부하면서 취업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그래야겠지만 그래도 가을과 겨울까지 만이라도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고 그렇게 해서 용돈을 좀 벌어야지만 사랑스러운 내 여동생들에게 선물이라도 해 줄 것이 아니냐?“ 승규는 송이와 한참을 그렇게 가벼운 말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눈다. 식탁이 푸짐하게 차려진다. 아름이도 잠시 시간을 낸다. 언제나 저녁식사는 온 가족이 함께 하는데 빠지지 않는 아름이다. 하루에 쉬는 시간은 저녁식사 시간이다. “오빠! 제대한 것을 축하해!“ “고생이 많다. 이번에는 반드시 네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믿는다.“ “반드시 그렇게 되게 만들 거야!” 참으로 오랜만에 온 가족이 행복한 마음으로 저녁식사를 한다. 아름이는 매우 수척해진 모습이다.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잠을 잘 자지도 않는 아름이는 몸무게도 상당히 줄었다. 그런 아름이가 건강을 해칠까 싶어서 문정숙은 매우 신경을 쓰며 보살피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많은 소모를 하고 있는 수능이 아름이의 체중을 줄어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어서 수능이 끝나기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엄마 문정숙의 마음이다. 다시 집안은 조용하고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고 있다. 이제 다시 아름이의 수능이 코앞이다. 승규는 그런 집안분위기를 감지하며 늦은 시간까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승규로서는 다시 복학을 하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의 분위기도 파악을 하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가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복학을 하고 나면 취업준비를 본격적으로 할 생각이다. 졸업 전에 취업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추석이 다가오자 김윤희는 추석음식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 “어머님! 차례를 지내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에미야! 지금 아름이가 수능이 코앞이잖니? 공연히 차례를 지낸다고 집안이 번잡스럽고 음식냄새를 피우면 아름이의 마음이 흐트러질 것이 아니겠어? 차례를 한 번 지내지 않는다고 해서 조상님들이 노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아름이의 수능으로 우리 집안의 조상님들께서도 이해를 해 주실 것이다. 그러니 조용하게 추석을 넘어가자.“ “어머님! 정말 무엇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그런 정성으로라도 아름이는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합해서 기도하는 심정으로 보내자. 아름이가 저렇게 열심히 하는 것을 보니 할미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김윤희는 언제 당신이 아름이를 미워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게 아름이의 생각을 많이 해주고 있다. 따지고 보면 금쪽같은 당신의 핏줄인 것이다. 특별히 미운 짓을 하는 아이도 아니었다. 당신의 유별한 성정으로 인해서 힘든 세월을 많이 살아온 손녀라는 생각을 하면 미안해지는 마음이 많다. 문정숙은 차례 음식을 준비하지 않는 대신 시부모님들의 입맛에 맞추어 정성을 다해서 명절 음식을 준비한다. 해마다 송편을 햅쌀로 직접 만들곤 했지만 집에서 만드는 대신 유명한 떡집에서 맞추어 온다. 시아버님께서 송편을 유난히 좋아하시기에 빠질 수 없는 명절 음식이다. 기름으로 지지고 볶고 튀기는 음식이 줄었기에 집안은 조용하다. 명절이라고 해도 번잡하지 않게 온 가족이 아침을 즐긴다. 아름이는 명절이라는 생각도 없는 듯 그저 무심하게 아침을 먹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 앉는다. 학원이 쉬는 날이다. 이제는 혼자서 공부를 해도 초조하거나 짜증스럽지 않다. 나름대로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는다. 그렇게 추석명절이 조용하게 지나고 나서 완연한 가을바람이 분다. 더욱 긴장감이 감도는 집안 분위기다. 아름이에게 다시 보약을 지어다 먹인다. 아름이는 책상위에 가져다 놓으면 언제 마시는 것인지 모르고 마신다. 갈증이 나면 무엇인지 보지도 않고 그대로 입안으로 가져간다.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아름이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진다. 지난해처럼 초조한 마음이나 불안한 마음이 없다. 평소처럼 시험지를 대하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송이 역시 더욱 공부에 매달린다. 사법고시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공부를 해 나갈수록 더욱 힘들고 어려워진다. 청춘의 아름다운 시절을 공부에만 매달리는 자신이 때로는 어이없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성을 사귈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 중형승용차를 가지고 다니는 송이를 선배들은 대단한 집안의 딸인 줄로 생각을 하고 데이트신청이 제법 들어오기도 하지만 송이는 단 한 번도 그런 신청에 귀를 기울여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송이다. 미혼모의 딸이고 생모가 실종된 상태에 있는 자신의 환경을 누가 환영을 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곤 한다. 송이는 자신을 낳아준 생모를 늘 생각하곤 한다. 생모의 사진을 수없이 보아서 그런지 늘 곁에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을 한다.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는데 언제나 사진을 보아왔던 송이는 생모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젊은 모습이지만 결코 많이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김윤희는 그런 손자와 손녀들을 보면서 대견스럽게 생각하면서 다시 당신의 딸 기영이를 생각한다. 기영이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더 없이 잘 살아온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많은 것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처음 시댁에서 물려받은 것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집이 전부다. 큰 재산은 아니라고 해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집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온 것 또한 시댁이 베풀어준 은혜인 것이다. 김윤희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것을 아끼면서 살아오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장사를 한 것이 지금의 재산을 있게 한 것이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포목점을 했던 김윤희다. 장사는 생각보다 잘 되었고 아이들 또한 아무런 병도 없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김윤희는 장사를 해서 벌어놓은 자금으로 지금의 빌딩이 있는 자리에 건물을 사서 임대를 받기도 하면서 다시 자금을 모은다. 건물을 헐어내고 새롭게 신축을 하기 위한 자금을 모으고 그것만 실행이 된다면 더 이상 장사를 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악착스럽게 살아온 세월이었다. 두 아이들에게 남겨줄 무언가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다행이 기범이와 기영이가 대학을 들어가기 전에 빌딩을 새로 신축할 수 있었고 임대료를 받아가면서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었다. 기영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 제일 처음 운전면허를 손에 쥐었지만 아직은 어리다는 이유로 가지고 싶어 하는 승용차를 사 주지 않았던 것이 살아가면서 내내 마음의 짐이 되고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도 씻어 내릴 수가 없다. 그러한 까닭으로 송이가 대학을 합격하고 바로 운전면허를 손에 쥐게 한 것도 그런 마음의 응어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김윤희는 다시 깊은 한숨을 내 쉰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조금도 퇴색하지 않은 딸에 대한 그리움이다. 딸처럼 친구처럼 그렇게 유별난 기영이와의 사이었다. 순간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아직도 가슴이 저려온다. 이제 송이를 믿고 매달려봐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송이라면 제 엄마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아낼 것이고 믿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힘을 기르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송이의 말을 믿는다. 김윤희는 내일 모래가 수능일임을 생각하면서 무엇을 해 줄까 잠시 고민한다. 지난해처럼 엿과 찰떡을 준비하면서 봉투를 따로 준비한다. 아무래도 아름이의 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 것은 현금일 것이다. 저녁식탁은 늘 아름이와 함께 한다. 송이와 승규의 귀가시간은 언제나 늦는다. 아름이는 생각보다 편안한 모습이다. “아름아! 이제 내일 모래지?“ “네, 할머니!” “내일은 푹 쉬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네, 그러지 않아도 내일은 푹 쉬려고 합니다. 오늘로서 학원도 마지막으로 다녀왔으니까요.“ ”그렇구나! 자, 이것은 시험을 잘 보라고 엿과 찰떡이다.“ “고맙습니다.” 아름이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고맙다는 표현을 한다. “아름아! 자, 그동안 고생하고 애를 많이 썼다. 이것으로 시험이 끝나고 나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던지 사고 싶은 것을 사던지 하면서 그동안의 피로를 풀거라!“ 아름이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지금까지 할머니에게 용돈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아름이다. “할머니! 이 돈을 제게 주시는 거예요?“ ”그래! 그동안 할미가 우리 아름이에게 용돈을 한 푼도 준 적이 없지?“ 아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미안하구나! 할미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언니나 오빠를 줄 때 아름이도 함께 주마!“ “할머니, 정말요?” “그래, 너 역시 할미의 소중한 핏줄이 아니더냐? 그리고 이제는 어린아이도 아니니 더 이상 서운하게 해서는 안 되겠지?“ ”고맙습니다. 정말 기분이 좋고 그동안 서운했던 마음들이 봄 눈 녹듯이 모두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아름이는 한껏 즐겁고 행복한 표정이 된다. 수능 전날 아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을 푹 잔다. 개운하고 기분이 상쾌하다. 그동안 자고 싶었던 잠을 어느 정도 자고 나니 오히려 머리가 더욱 맑고 기분도 가볍고 상쾌한 느낌이다. 수능 일에 다른 날보다 더욱 일찍 잠에서 깬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서 모든 문제들을 하나씩 가볍게 본다. “아름이 일어났니?” 아름이의 방에 불이 켜지는 것을 보며 문정숙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엄마!” “지금 무슨 공부를 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한 번 훌터 보는 거예요. 아무래도 그냥 집을 나선다는 것이 뭔가를 빠트리는 것 같아서요.“ ”그랬구나 어서 씻고 밥 먹고 갈 준비를 하자. 오늘도 역시 일기예보대로 매우 추운 날씨니까 속을 든든하게 채워야만 덜 춥고 떨리지 않는다.“ 온 가족들은 모두 아름이에게 힘을 실어준다. “아름아! 절대로 떨지 말고 침착해야 하는 거 알지?“ 승규의 부탁이다. “네! 이번에는 절대로 떨지 않아! 침착하게 문제는 하나하나 잘 풀어나갈 것이야!“ 수험장에는 승규가 아름이와 부모님을 모시고 나가기로 한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서는 아름이다. 지난해와는 달리 불안한 모습이 없다. 그렇게 아름이의 수능 일에 온 가족은 초조한 마음으로 아름이가 실수하지 않기를 기원한다. 지금까지 노력해 온 대로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문정숙은 아무리 추워도 아름이가 들어간 학교의 교문을 떠나지 않고 두 손을 마주 잡고 열심히 기도를 한다. 특별히 믿고 있는 종교가 없는 문정숙이다. 예전 엄마에게 본대로 그저 부처님을 찾을 뿐이다. 실수 없이 무사하게 시험을 보게 해 달라고만 빌고 또 빌어본다. 애가 타고 초조하기만 하던 시간들이 흘러간다. 학생들이 시험을 끝내고 나오기 시작한다. “어, 지금 끝난 모양이에요.”승규는 아름이를 찾느라고 눈동자가 바삐 움직인다. 그러나 아름이는 많은 수험생들이 나오고 나서도 나중에서야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한기범은 생각보다 늦게 나오는 아름이를 보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을 들고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아름아!” 승규가 손을 들고 아름이를 부른다. 아름이 또한 가족들을 발견하고 온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우며 온다. “어땠어?” 승규가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글: 일향 이봉우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감!
즐감하고 감니다
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