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도서 앞 나무 탁자에 무늬로 앉아 바라다본 대아호텔 층층이 창마다엔 화상처럼 불빛이 일그러져 빛나고 십 년의 세월을 견디어 지워지지 않는 그을린 기억이 붙박혀 있다. 그 겨울의 불씨가 건물 어딘가에 곰팡이처럼 숨었으리라는 예감. 서면로타리 돌아 동보극장 뒷골목에 즐비했던 학원들 오뎅 국물 잔소주에 취하던 나날의 검정고시생들은 한 번씩의 실패를 나누어 갖고 지금은 다시 어떤 실패를 준비하고 있을까?
열아홉의 노이로제는 만화가게 골방 질 나쁜 포르노 화면으로도, 송정 바닷가 언덕에 기댄 첫 담배의 어지럼증으로도 잠재울 수 없었다. 동양고무 라인 조장이던 누이를 기다리던 당감동 고개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조화도 없는 영구차가 화장터를 오르고, 자취방 쪽문으로 저녁 햇살이 꼬리를 사리면 66번 버스 안내양에게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썼다.
가죽 공장 다니던 도한이를 만나면 달에 한 번은 자갈치 시장 좌판에 쪼그려 앉아 꼼장어를 씹었다. 그럴듯한 내일이 있기라도 한 것인 양 남폿불이 깜박이고 싸구려 포부를 떠벌이기에도 지치면 대선소주를 물컵에 따라 들이키곤 했다. 그 매서운 겨울이 다 가도록 불타는 호텔 창문에 매달렸던 창녀의 바람에 날린 치마 안 곱게 감추어진 빨간 속옷을 지울 수 없었고, 밧줄 매듭이 풀리자 떨어져 즉사한 죽음의 기억이 종이컵 속에 커피 자국으로 묻어 있다.
[어떤 청혼], 실천문학사, 1999.
첫댓글 1987년 서울역은 천냥의 행복으로 밤 이슬을 피할 수 있었던 만화방이 많이 있어지요.주머니 사정이 뻔한 서울 촌놈들은
25도 두 꺼비에 새우깡으로 깡을 키웠고, 밤새 틀어 주던 포르노에 헛 힘만 쏟던,벌써 삼십년전 얘기입니다.민주열사들이 무림을 평정하기전 우리는 쓴 속을 맹물로 달래고 다음이라는 기약도 없는 청춘 마차를 타고 나만의 목마의 숙녀를 쫒아 가던 꿈처럼 아련한 포 르 노 만 화 방. 소파 뒤에 누구누구 누구누구 XYW에 누런 곰팡이가 피어 담배와 함께 사라져간
내 스물의 시간들은 오늘 먼 그리움의 배가 되어 정박하지 못 하고 못 하고 .................
사랑이라는 수수께끼에 오늘도 문을 노크하는 다래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