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에서 / 김종관
가늠할 수 없는 삶의 높이에 늘 발바닥이 간지러운
내 곁으로 기적도 없이 기차는 왔다
표정을 깎아낸 각진 얼굴과 매정하게 도막진
모서리진 시간을 싣고.
진공을 찢고 입김을 불어 희열의 정상까지 올라
등 뒤에 둥그레 박혀 세상을 잇고 있는 이음새를
여전히 발기된 채 격정을 기다리는 그 이음새를 쓰다듬으며,
기차가 운다 새끼 잃은 암소처럼 운다 손길을 거부한
침엽수에 찔려 철철 운다 남는 것이 더 슬픈데.
뒤돌아보며 깜박인다 레일 뒤로 뚝 뚝 떨어지는
사랑을 치마폭에 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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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연의 이 시가 주는 느낌은 만남과 이별이 주는
느낌의 처절함이다. "싣고" "쓰다듬고" "담고" "고"로
끝맺음을 통일함으로 인하여 리듬감이 살아 있다.
더불어 그 리듬감이 단절어미인 "다"가 아닌 연결부사인
"고"로 맺음으로써 끊어지기 싫어하는 화자의 마음을
암시하는 효과가 있어 그 처절함을 더하고 있다.
여러 시인의 시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시의 제목이
설정한 역이라는 이미지는 만남과 이별을 상징한다.
하나 김 시인은 여타의 시와 달리 역에 도착하는
기차라는 객체를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역은 자신, 즉 시 속의 화자를 상징적으로 예시한다.
이는 세속적인 이미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이미지와 닮았으나 정작 에시에서는 스스로 역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 세속성을
뛰어 넘고 있다.
/ 전형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