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에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시인 박인환과 극작가 이진섭은 명동싸롱에서 차를 마시다 술을 마시기 위해 당시 맞은 편에 경상도집이라 불리던, 새로 생긴 술집 은성(배우 최불암의 모친이 운영)으로 갔다.
술을 마시며 동석했던 가수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했는데 주저하자 이진섭이 박인환이 시를 쓰고 자신이 바로 곡을 붙이면 불러달라고 제안을 했다. 전날 첫사랑의 무덤에 갖다왔던 박인환은 바로 일필휘지로 시를 적고 샹송을 좋아했던 이진섭 역시 앉은자리에서 바로 그런 스타일로 곡을 만들었다.
하지만 나애심은 가창을 사양했다. 한 두 시간 후 나애심과 다른 일행이 돌아가고 난 뒤 테너 임만섭과 이봉구 등이 합석을 했다. 악보를 본 임만섭은 그 자리에서 우렁찬 성량과 미성으로 노래를 불렀고 술집의 사람들과 길 가던 행인들이 모두 멈춰서서 구경을 했다. 그리고 이 곡은 이후 명동에서 유명한 곡이 되었다는 것이다. 열훌 후 박인환은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박인환의 사망 두 달 후 나애심이 처음으로 곡을 녹음했다.
그러나 다른 건 몰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곡을 만든 건 아닌 것 같다. 1956년 발간한 잡지 아리랑과 주간희망, 2014년 근대서지 상반기호에 실린 염철의 '세월이 가면의 증언 자료에 대하여’ 등에 따르면 박인환과 이진섭은 어느 날 명동을 적셔줄 샹송 스타일의 곡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한 뒤 박인환이 바로 다음날 시를 써 오자 그로부터 열흘 뒤에 이진섭이 곡을 완성한 것으로 지금까지의 전설을 정정한다.
박인희는 2016년 컴백한 뒤 여러 인터뷰에서 이 곡의 인기에 대해 "팬들은 이 곡을 들으면서 누군가의 노래고, 누군가의 시로 기억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젊은날, 가버린 사랑, 이루지 못한 옛 기억들을 떠올리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박인희는 박인환과 이름이 비슷해 친인척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박인희
춘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