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쟁으로 온 세계가 난리법석이다. 몇 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는 내게 강 건너 불이었다.
당연히 전쟁을 반대하지만 멀리 있는 두 나라가 싸운들 나한테 큰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벌이지고 있는 중동에서 전쟁은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기 때문에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전쟁 터진 직후 휘발유 값이 폭등을 했고 주가지수가 폭락했다.
자칫 정치 논쟁으로 번질 수 있기에 대놓고 특정 나라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전쟁을 결사 반대하고 국가든 개인이든 나는 약자 편이다.
이번 전쟁에 대한 비유가 될지도 몰라 오래전에 있었던 기억을 소환해 본다. 어릴 적 고향 마을에 툭하면 마누라를 때리던 남자가 있었다.
이유도 가지가지, 힘이 없는 여자는 자주 맞으면서 살았다.
어느 날 잘못 맞는 바람에 아내가 팔이 부러졌고 병원에 입원을 했다. 아내가 없으니 남자와 아이들의 끼니가 문제였다.
한동네 사는 형수가 얘들 걱정에 집안을 들여다 봤더니 남자가 밥을 해서 아이들과 간장에 비며 먹고 있더란다.
형수가 혀를 끌끌 차면서 시숙에게 말했다.
"그러게 왜 그렇게 마누라를 때려요?"
남자가 대뜸 그러더란다.
"맞을 짓을 하니까 때리는 거지요."
이 말을 듣고 형수는 기가 찼지만 문제는 동네에 이 남자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이 일부 있다는 것,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죽하면 남편이 여자를 때릴까. 맞을 짓을 했으니까 그러는 거겠지.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자 때리는 남자를 경멸하면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여자를 무시하거나 때리는 남자는 개다.
이것을 국가로 넓혀 보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때리는 것과 같다. 태도가 불량해서, 내 말을 잘 안 들어서, 나중 나보다 힘이 세질 것 같아서 등,,
때리는 쪽에서도 분명 이유를 내세우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전쟁을 반대한다.
내가 일하는 직장에 젊은 동료가 있다. 1999년 생인 그는 얼마전부터 주식투자를 했는데 수익률이 짭짤하다면서 좋아라 했다.
그런데 중동 전쟁이 터진 다음날 주식이 폭락을 했다. 그 친구가 폭락한 지수를 보면서 대뜸 이 말을 내뱉었다.
트럼프 개 새끼
얼마전까지 미국 대통령이 잘한다고 하더니 왜 욕을 하냐고 내가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이랬다.
주식이 폭락해서 내가 손해를 봤잖아요.
그렇다. 그한테도 전쟁이 그동안 강 건너 불이었는데 주식이 폭락하자 이제서야 발등의 불로 인식을 한 것이다.
이래서 세상에는 나와 무관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빙하가 녹아 북극곰이 살 수 없을 때 생태계가 흔들려 기후위기가 오고, 브라질에 가뭄이 오거나 베트남에 흉년이 들어도 나중 우리 밥상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하물며 전쟁이 끼치는 영향은 오죽할까. 폭등했던 휘발유 값이 아직까지는 안정적이라지만 전쟁이 길어질수록 유가 불안은 계속될 것이다.
이러다 더 큰 발등의 불로 번질까 봐서 걱정이다.
우리가 겪은 6.25 때도 그랬지만 전쟁은 언제나 힘없는 백성들만 죽어 나간다. 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아름다운 시가 있어서 옮긴다.
그 겨울의 시 - 박노해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 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느린걸음/ 2010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나는 이 대목에서 가슴이 뭉클하다. 1957년 생인 박노해 선생은 지금 평화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그는 노동운동가였고 시인이었고 사형수이기도 했다.
석방 후에 그가 평화운동을 하겠다고 하자 일부는 변절자라 부르기도 했지만 그는 자기 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그는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이나 남미 오지의 탄광촌 등을 찾아 카메라에 담았고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세상에 알렸다.
그는 사랑을 실천하는 평화운동가였다.
일요일인 오늘 광화문 인근에 있는 라 갤러리를 다녀왔다. 박노해 선생이 운영하는 곳으로 그가 세운 비영리 사회단체 <나눔문화>가 주축이다.
1층은 카페, 2층은 갤러리인데 박노해 선생의 사진전을 상설로 전시한다.
나는 종종 광화문 책방이나 인사동을 갈 때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이곳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박노해 선생의 사진 작품도 보고 가능하면 이곳 커피를 팔아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요즘 <산빛>이라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데 오늘 아내와 함께 방문해 사진전도 보고 커피를 마시고 왔다.
아쉽게도 이 갤러리가 곧 문을 닫는다.
나눔문화는 정부나 재벌기업의 후원을 일체 받지 않는 시민단체로 순전히 후원자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결국 폭등하는 임대료를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도 아니고 완전 폐업이라니 더 아쉽다. 소중한 문화공간 하나가 또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3월 29일까지만 운영한다고 하니 이곳도 오늘이 마지막 방문이지 싶다. 아래는 전시장에서 본 산빛 작품이다.
전시장에서 휴대폰으로 찍은 거라 선명하지는 않지만 긴 여운이 남는 멋진 사진이다.
사랑하다 죽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사랑 없이 사는 것은 더 두려운 일이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오늘 전시장에서 본 박노해 선생 문장이다. 그의 시 <참사람이 사는 법> 또한 참 좋다. 평화운동가 박노해 선생의 앞날에 평화가 함께 하기를 빈다.
첫댓글 며칠 전
지는 해가
너무 아쉽고
고와서
찍어봤습니다.
간만에
현덕님 닉이 보여
반가움에
덥썩 댓글 달아요.
전쟁은 정말
이땅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와우~ 멋진 사진이네요.
저물녘 풍경은 사람을 참 겸손하게 만들지요. 강물에 비치는 붉은 윤슬 또한 자연이 진정한 예술품임을 알게 합니다.
반가운 페이지님, 이 사진 속 풍경이야말로 진정한 평화의 모습입니다. 평화로운 일요일 밤 되시기 바랍니다.
울페이지님
사진 정중히 모셔갑니다. ^^*
@수피 네
영광입니다.
수피님^^♡
모처럼 들렀더니 현덕님이 보여 오늘은 반가움에 안부남깁니다.
앗! 토말촌장님 저도 반갑습니다.
요즘 토말촌장님의 글을 삶방에서 볼 수가 없던데 남녘의 봄소식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안부 인사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길위에서님의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사랑과 죽음을 바꾸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살아 있을 때만이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고 봅니다.
박노해 선생님의 <참사람이 사는 법>이란 시가 참 가슴을 울렸습니다. 고운밤 되시기 바랍니다.
글도 좋지만
저
산빛 사진 한 장으로
박노해시인이 품은 인류애를 보는 듯요
저도
언더독효과에 편승하며
살아가는 평화주의자 입니다ㆍ
그렇지요.
저도 아내도 이 사진 앞에서 오랫동안 바라보며 감상을 했답니다. 박노해 선생 사진이 주로 흑백인데 이번에는 컬러 작품이 몇 점 걸렸더군요.
글구 윤슬님도 언더독 효과에 편승한 분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마음의 동지를 만난 기분입니다. 윤슬님의 일상에 항상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좋은 밤 되시구요.
글은 글대로
사진은 사진대로..
시인에 대한 감동은 감동대로 좋군요
특히 사진이 여백의 미가 최고 입니다
그림이든 글이든
여운을 남기는 것이
가장 좋은 작품이라 생각하는 한사람으로
그래서 이 글이 좋군요
모카님 반갑습니다.
작품 보는 눈이 저와 닮아서 좋네요.
시인이 걸어온 길이야 파란만장했지만 평화운동가인 지금의 모습이 가장 빛나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커피를 즐겨 마시는데 모카향이 좋아서 모카만주도 잘 먹지요. 모카님, 부족한 글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
[[전쟁아 잠들어라
평화야 평화야 어서 와라]]
어떤 경우에서라도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전가하는건 아니죠ㅠ
인류역사상 전쟁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는데
인간의 이 욕망 어이하리요
지금도 뉴스에서 전쟁이야기중입니다
요즘 바빠서
카페 휙 다녀가고 댓글도 못하는데 현덕님은 보고갑니다
박노해 선생의 시를 패러디한 정아님의 댓글 첫 부분이 오늘 제가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이기도 합니다.
먼 나라 전쟁이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기에 우리도 피해자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피해배상 청구를 하고 싶지만 방법이 없네요.
그냥 지나가지 않고 다정한 댓글 두고 간 정아님 감사합니다. 바쁘다는 것은 그만큼 열심히 산다는 것이기도 하지요.
모쪼록 건강한 날들이기를 빕니다.
박노해님 시 ㅠㅠ 그랬지요 그 추운밤 바깥 거지들까지 걱정하시는 할머니 마음
과거는 왜 그렇게 모든게 추웠는지 더웠다는 기억보다 춥고 배고픈 시절만 살아
온 거 같은 느낌 현덕님 글 잘 읽습니다 다 맞지요 내가 중요하고 그 다음이 나라걱정이지요
인사동에도 찾아 주시고 여튼 두루두루 인문학적 현덕님이십니다 ㅎㅎ
저는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아주 감동이었기에 필사해 두고 자주 읽는 시입니다.
박노해 시인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좋은 작품이지요. 어쩌면 지금 그가 평화운동을 하는 것도 이런 할머니의 영향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저도 배고프고 추웠던 것을 조금은 알기에 운선님이 겪은 모진 세월에 공감을 합니다. 광화문에서 인사동까지는 한때 저의 나와바리였답니다.ㅎ
편안한 밤 되세요.
어제 친정 혼사에 다녀와 일찌감치 잠들었다 깨어 유현덕님 글을 읽었습니다.
정 많으신 할머님 품안에서 자란 넉넉한 품성이 유현덕님 글마다에서 엿보입니다. ^^*
아하~ 그러셨군요.
점점 저는 결혼식장보다 장례식장 가는 일이 더 많아지는데 혼사가 있는 집이 있으면 무조건 기뻐할 일입니다.
저는 할머니 품보다 엄니 품에서 자랐는데 누이한테 종종 속 좁다는 지청구를 듣곤 했지요.^^
수피님, 우리 웃으면서 살아요.ㅎ
@유현덕
울톡수방 정모 4월 19일 공지로 올랐습니다.
19일 이수 울톡수방 정모에서 반갑게 뵙길 바랍니다. ^^*
@수피 넵! 그러겠습니다.
친절한 수피님, 감사합니다.ㅎ
제가 신혼때 애들같이 키우면서
어울려 지냈던
다솜이 엄마
신랑은 술만 먹었다하면 폭력을ᆢ
참다참다 결국 이혼하고
아이둘 두고 갔네요ㅠㅜ
몇개월뒤 전화가 와서 자리잡으면
애들 데리고 갈꺼라면서 울먹였어요
유현덕님의 글 읽으면서 이런저런
숨어있던 기억들이 뛰쳐나와
가슴먹먹 울컥했네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미소가득
기분좋은 하루 되세요
둥근해님 주변에 그런 분이 있었군요.
저도 인천 달동네에 살 때 다솜이 엄마 같은 분을 본적이 있답니다. 그분은 집 나갔다 다시 돌아온 걸로 기억하네요. 그땐 왜 그렇게 아내 때리는 남자가 많았었나 몰라요.
맞을 짓으로만 보면 철없는 남자들이 훨씬 많기에 때려야 한다면 남자들이 더 많이 맞아야 할 겁니다. 저는 남자들끼리 싸움도 때리는 것을 반대합니다.
말로 하지,, 아니면 멱살을 잡든가^^
둥근해님도 활기찬 오후 되시길요.
마지막 사진이
정말 아름답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파란여우님, 사람 보는 눈은 비슷해서인지 전시장에서도 대부분의 관람객이 이 사진에 눈길이 가는가 보더군요.
박노해 선생은 아직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진을 찍는 분이랍니다. 좋은 날 되세요.
시골 고향의 내 사촌형님은 부부싸움하면
본인이 맞고 살더라구...
아니, 왜 여자한테 두들겨 맞냐고 했더니~
차라리 본인이 맞는게 편하되요. 왜 ?
마누라를 때리니까 , 자기는 물론 애들까지
밥을 굶고, 마당의 개까지 밥을 굶는다나 뭐라나..
(*_*)
ㅎㅎ 저는 맞는 남편을 보진 못했으나 아내한테 맞는 남자가 있다는 소리를 듣긴 했네요. 적토마 형의 사촌이 그랬었나 봅니다.
어쩌면 때리는 것보다 맞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할지도 모르지요. 여자 주먹이 쎄면 얼마나 쎄겠어요.
우리 부부싸움은 폭력이나 말싸움 대신 오직 침묵으로 싸운답니다. 마눌이 화가 나면 일체 말을 않거든요. 몇 시간 바짝 엎드려 눈치보고 있으면 슬쩍 풀리지요.
여자한테 잘하면 돌아오는 게 두 배,,^^
@유현덕
여자를 이기면 굶는건 밥이요.
맞으면 떡이라도 생긴다 (공자테스)
아~ 테스형 훈아형 세상이 왜 그래 ?
현덕님 라 갤러리를 다녀오셨군요
지난 2월 23일 3.29일자로 문을 닫는다는
문자를 받고 나의 안식처이자 쉼터인 한 곳이
사라진다하니 얼마나 가슴아프고 허전하던지요
누군가 후훤자기 있길, 바램하고 있는데
무척 아쉽습니다
14년간 41만명이 머물었다구요
대체로 전시기간이 길어 다른 인연들과도 가고
혼자서도 즐겨 찾는 곳입니다.
전시장에 사진, 글 흐르는 곡이 좋아 마냥 있다 옵니다
카페도 아름답고, 박노해 시인 책도 사오고,
언제 인연되면 전시 됐던 작품들 이야기 나누고 싶어집니다
29일까지여서 마지막 전시 꼭 참여하려고 합니다
아래 첨부한 사진은 작년 전시했던 작품입니다.
와우~ 김지원님한테도 라 갤러리가 마음의 안식처였던가 봅니다. 14년간 41만 명이나 다녀갔다니 대단하네요.
라카페갤러리가 아는 사람만 아는 숨은 명소였지요. 그래서 한번도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간 사람은 없었나 봅니다.
저도 자주 갔던 곳이라 이곳이 그리워질 겁니다. 은행잎 지는 가을에 거기서 커피 마실 때면 저절로 시인이 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요.ㅎ
지원님도 문 닫기 전에 방문하신다니 다행이네요. 김지원님의 아름다운 문화생활을 응원합니다.
뒷 배경을 보니 저도 봤던 작품들이네요.
유리에 비친 어떤 분이 마치 현대판 모나리자 같기도 하구요.ㅎ
이쯤 살아보니 그래도 아웅다웅 그러면서 사는게 맛이 나겠지요
난 아예 미리 도망갑니다
왜? 내가 대부분 잘못해서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란 말도 있지요.
다툼이 생겼을 때 잠시 도망가는 것도 한 방법이겠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복구가 될 테구요.
우리집도 대부분 제가 잘못하고 산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