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군대가 독일 남부로 폭풍같이 진군하고 있을때 우리의 오스트리아 군은 뭐하고 있었을까요?
오스트리아는 원래 나폴레옹과 싸울 생각이 없었습니다. 오스트리아 군이 신나게 이탈리아서 프랑스군에게 발리자
당시 오스트리아의 두 명장이 프랑스와의 외교를 놓고 줄다리기를 펼쳤는데요. 한명은 이탈리아서 나폴레옹에게 탈탈
털리던 카를 마크 폰 라이베리히 장군이었고, 한명은 라인전선에서 나름 선전하고 이탈리아서도 프랑스 군과 어느정도
맞붙었던 카를 대공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내부에서는 상당한 군 전문가로 불리던 카를 마크 본 라이베리히 장군-
-프란츠 2세의 동생이자 오스트리아 장군 중 그나마 나폴레옹과 싸웠던 카를 대공-
문제는 카를 대공이 너무도 뛰어난 것에 있었습니다. 황제의 동생인데다가 군 지휘능력까지 갖추었으니, 프란츠 2세는 이런
동생을 자신의 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나폴레옹이 황제를 선언하자, 카를 대공은 나폴레옹을 인정한 뒤에
시간을 벌어서 오스트리아 군을 증강시키고자 했는데, 이는 결정적으로 프란츠 2세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결국 새로이 영국
수상에 취임한 소 피트가 빈 궁정에 뇌물을 돌렸고, 이는 카를 대공의 정적들의 활동자금이 되어 프란츠 2세를 마구 뒤 흔들었
습니다. 결국 카를 대공은 좌천되어 이탈리아 방면으로 떠나버렸고, 카를 마크 본 라이베리히 장군이 오스트리아의 주력인
바이에른 침공군을 맡게 된것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군 7만명은 바이에른으로 향했습니다-
바이에른 공국은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뽑을 수 있는 권한이있는 선제후가 다스리던 공국이었는데, 미리 오스트리아가 사신을
보내서 회유와 협박을 통해 바이에른과의 동맹을 맺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여론과 선제후가 '곧 프랑스 군이 올테니 자신을
믿고 버터라'라는 나폴레옹의 편지를 받은 터였고, 선제후 스스로도 오스트리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동맹을 거부한 대신
바이에른의 수도 뮌헨을 버리고 뷔르츠 부르크로 물러나서 방어태세를 갖췄습니다. 결국 바이에른을 손쉽게 접수한 마크의
군대는 바이에른과 뷔르템베르크 사이에 있는 도시 울름에 들어가서 울름시가지 뒤쪽 고지대에 위치한 요새화 된 미헬스베르크에
진을 치고 동맹군인 러시아군이 오기까지 기다린다는 작전을 세웁니다.
-울름을 접수한 마크의 오스트리아 군대-
한편 나폴레옹은 이미 마크의 작전을 눈치챘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이 바이에른을 침공함과 거의 동시에 브르타뉴에 집결해 있던
프랑스군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죠. 나폴레옹은 울름 전면에서 기만작전을 펼치는 동안 다부 원수가 이끄는 제 3군단과
네 원수가 이끄는 제 6군단에게 명해 울름을 북쪽으로 크게 우회하여 뮌헨과 이어지는 보급선을 차단하여 울름을 포위시키려
했습니다. 1805년 9월 25일 라인강을 건넌 제 3군단과 제 6군단이 포위망을 구성했지만, 이런 사실을 마크가 알아차린것은
10월 3일 경이었습니다. 뒤늦게 프랑스군이 울름을 포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오스트리아군은 도나우강을 건너올꺼란
생각에 도나우강 북쪽으로 급히 프란츠 아우펜베르크 장군을 급파했지만, 이미 그곳에는 제 5군단 뮈라 원수의 기병대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불리했던 베르팅엔 전투-
프란츠 아우펜베르크 장군의 군대는 뮈라의 기병대에 의해 베르팅엔이란곳에서 전멸당했습니다. 다음날 이번에는 네의 제 6군단
이 도나우 강을 건너기 위하여 군츠부르크 다리로 돌격했습니다. 다리를 지키던 오스트리아군은 용감히 저항했지만 이번에도
프랑스군을 막지못하고 패퇴했습니다. 이제 울름으로 향하는 길이 하나 둘 점령당하자, 나폴레옹은 이제 마크가 울름에서 탈출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크가 울름에서 탈출하여 남동쪽으로 내려가 티롤지방으로 향할것이라는 생각이 미친 나폴레옹은
모든 군대를 몰아서 남쪽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후위에는 제 5군단 뮈라원수를 남겨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해 대비했고,
제 6군단 네에게는 울름에 남은 잔존병력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한편 나폴레옹이 남쪽으로 향했는데도, 네 원수에게는
아직 오스트리아군이 많이 남아있다는 전령이 계속들어옵니다. 네원수는 휘하의 사단중 피에르 뒤퐁장군이 지휘하는 사단에게
울름으로 향하여, 남아있는 적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계속 오스트리아군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걱정이 된 네 원수는
피에르 뒤퐁장군의 뒤를 쫒아 제 6군단 전체를 이동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제 5군단 뮈라 원수가 이 계획에 반대했죠. 결국 두
원수가 설전을 벌이는 사이 10월 11일 피에르 뒤퐁장군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울름 교외에 도착합니다.
-피에르 뒤퐁사단의 운명은??-
첫댓글 잘봣습니다 다음화가 기대되네요
예고:사단급이 군 전체급과 싸우는 전투가 발생하게 되고 나폴레옹은 감자봤지만 마크는 꿈만 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