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암탉이 여섯 마리 있다. 세 마리는 몇 해 묵은 닭이고, 나머지 세 마리는 작년 장날에 사 온 중병아리를 키운 것이다. 그렇게 여섯 마리가 집에서 단백질을 책임지고 있다.
며칠 전부터 그중 한 마리가 ‘고고고’ 소리를 내며 병아리를 부르는 듯하더니, 무정란을 품기 시작했다. 닭은 알을 품기 시작하면 스무 날 가까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먹고 마시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자리를 지킨다.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스무 날을 더 품기도 한다. 그 긴 시간 동안 알은 낳지 않고, 오직 품는 데에만 몰두한다.
예전 경험이 있어, 나는 친구 집에 가서 유정란 열 개를 얻어왔다. 사인펜으로 표시를 해 두고, 기존의 무정란을 꺼낸 뒤 그 자리에 유정란을 넣었다. 장갑 낀 손등을 쪼아대면서도, 닭은 끝내 자리를 비키지 않는다. 닭이 인간의 손길을 가장 강하게 거부하지 못하는 순간이 바로 이때다. 알을 품는 동안, 모성이 작동하는 그 시기뿐이다.
가끔 다른 닭들이 산란실에 들어와 무정란을 낳고 가면, 품던 닭은 그것까지 끌어안는다. 그래서 나는 매일 한 손으로 닭을 살짝 들어 올리고, 표시되지 않은 알을 골라낸다. 그대로 두면 상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손등을 쪼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모습에서, 모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집요한지 새삼 느낀다.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이어진다. 그래, 우리 모두 모성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생명이다. 제삿날도 아닌데 돌아가신 어머니들이 떠오른다. 나는 어머니가 넷이다.
아버지의 본처인 영광 정씨는 딸 둘을 낳고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뵌 적이 없다. 그 뒤로 이천 서씨 어머니가 들어와 딸 하나를 낳고 나를 길러주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원했고, 다시 한 여인을 맞아들였지만 또 딸만 낳았다.
그리고 예순이 넘은 나이에, 이미 여덟 남매를 키우고 있던 평산 신씨, 또 내 생모를 들이셨다. 그렇게 해서 내가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데에는 재산을 둘러싼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생모에 대한 서운함이 마음 한켠에 늘 남아 있었다. 그런데 알을 품는 닭을 보며 생각이 달라진다.
이미 오래전에 모두 세상을 떠난 어머니들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은 헤아려 보게 된다. 내 생모는 나까지 아홉 남매를 낳았다. 젖은 암소처럼 크고 단단했다고 한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외가 쪽에서 아이를 낳다 죽은 집안의 아이까지 함께 품어 키웠다고 한다. 결국 열 명 가까운 아이를 한 몸으로 먹여 살린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서운함보다 먼저 감사가 올라온다. 나는 생모의 제사를 직접 모시지 못한다. 이씨 집안의 사정대로 형님이 챙겨왔고, 이제는 그 아들이 이어갈 것이다. 그렇다 해도 마음까지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략이었든 무엇이었든, 나는 그 몸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그래서 오늘 아침, 모성과 그 젖을 떠올리며 조용히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방 안에서는 바람이 조금 빠진 짐볼에 몸을 기대고 책을 읽는다. 가끔은 그것을 끌어안고 이렇게 글을 쓴다. 생각해보면, 이 짐볼 또한 지금의 나를 받아주는 또 하나의 어머니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
첫댓글 속이 텅빈 짐볼을 끌어 안고
글을 쓰시기도 하시는 실상님!
네 분의 어머니를 두셨고
네 번째 어머님이 실상님 어머니
그리고 10남매 가까운 자식을 ᆢ!
그 가족사를 알만합니다ㆍ
실상님 글에서
3주 동안 알을 품고 있는 어미닭에서
줄탁동시가 떠오르게 되고
세상에 가장 힘 센 장수는
새끼 딸린 어미란 말이 새삼
생각나게 하는
참으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ㆍ
실상님 어머님의 유량이 좋으셨다는
말씀에 예전에 긁적여 놓은
가물 거린 내용이 떠올라
비슷하게 올려봅니다
반달/
언니
오빠가 빨아 먹고
빈 튜브같은
늙은 어미의 젖을
젖통이라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ㆍ
나만이라도
엄마의 젖을
반달이다
부르자 !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성은 숭배해야 할 대상입니다
모성에 의해 살아남았고 젖을 내줘서 키웠으니
인간에 영원한 고향이 어머니 젖무덤입니다
그래서 병사가 전장에서 마지막 숨넘어갈 때
어머니 부르며 숨을 거두나 봅니다
관심과 글 감사드립니다
후후
나이가 들어서인지
댓글 하나 쓰는데도
몇번을 고치기를 하느라
댓글 수가 많이 표시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실상님! 을
사실님! 이라
쓰는 바람에 ㅎㅎ
시끄러웠을 겁니다ㆍ
무정을 품어 유정이 되게하고
유정을 품었으나 무정스런 인연이 되기도 하는
이 뭣꼬~덧 없는
또한 뜻 있는 인생~
나이들고 보니
모두 까닭이 있어 감사하게 여겨지더라구요.
책 몇권 쓰여질 쉽지않은 삶의 이야기~~
나이 들어서도 감사할 줄 알게 될 때
어른이 됩니다 ^^
무정을 품어 유정이 되고 유정이 유정을 낳아서
스펙터클한 인생을 만들어 주는 거 아닐까요
삶 중에서 해봐서 손해 나는 건 없답니다
최소한 하지 말아야지 교훈이라도 얻는 거니까 ㅎ
평화로운 화요일 되십시오
무자식 상팔자란 말을 쓸 만큼 핏덩이 낳아 사람 구실 할 만큼
키우느라 겪는 고생이 그 만큼 자심하단 거겠지요
자식 겉 낳지 속 낳느냐는 옛말도 그 고생을 실감케 하고요
여자의 일생이란 사람 속에 버티는 수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남편의 수발 인내 자식의 성장 과정에서 오는 인내와 감싸주고 덮어 주느라
가슴 깃털 벌겋게 뽑혀 나가 종내 맨가슴으로 남는
미물의 짐승도 저리 따순 가슴으로 새끼를 품으려는 본능이 있는데
말이지요 실상님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의 생존본능 은
모두 수행자적 관점이라 생각이 듭니다
미물의 행위만 봐도 살고자 하는 것이
어쩌면 처절해 보이기도 하고
나 어릴 적 이웃할머니 배고픈 시절이야기 듣다가 운 적이 있습니다
출산하고도 먹을 것이 귀해 차가운 갯가에 나가 먹을 걸 줍는데
뻘밭을 걸을 때마다 하혈을 해서 혈을 발로 문질러 감추며 살았노라
하시던 말씀을 듣고 얼마나 가슴 아팠던지 지금도 가슴이 저리네요
이렇게 길러낸 자식들이
지금 우리들입니다
허접한 글에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솔하고 공감 가는 귀한 글 읽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엄마로 살아온 날들이 힘겨웠고 지금도 힘들지만
그 고마움을 알아주고 엄마를 지극히 사랑해주는 딸들이 제 삶의 의미요 보람입니다.
실상님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하며 응원합니다! ^^
어머니는
내가 울 때마다 밤을 지새우며
자신의 잠을 잘라
내 이불이 되어주신 분.
그분의 젊음은
내 성장 속에 스며 사라졌고,
그분의 눈물은
내 이름을 부르며 마르셨습니다.
@@@이글은 카톡에서 잘라 왔습니다
응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