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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노비에프 편지 사태는 큰 나비효과를 낳았다. 콘스탄틴 공작이 혁명자금을 대고 해외에서 친소련 여론을 만드는 것을 대가로 황가의 망명을 요구하였고, 그 요구를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장 그리고리 지노비에프가 동의했다는 사실은 어떤 언론에도 공개되지 않았지만, 소련의 대미정책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특히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것은 콘스탄틴 공작이 편지로 제안한 새로운 거래를 소련 지도부가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미국 기업의 소련 투자를 끌어낼 테니 알렉산드라 황후를 석방하여 해외로 내보내라’라는 제안은 좌파공산주의자들의 지지 속에 결국 통과되었고, 소련에 파견되어 있던 인터내셔널과 KGR 요원들은 극소수만 남긴 채 구대륙으로 돌아갔다.
웨스트버지니아주 블레어 산에서 IWW 창설자인 메리 제인의 주도하에 봉기를 일으켰던 미국 노동자들은 대뜸 ‘마르크스주의를 부정하는 세력과 협력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하고 떠나는 인터내셔널과 소련 인사들의 행태에 경악했다. 당장 미 군경과 자경대에게 대학살을 당할 위기에 처한 IWW는 대표적인 ‘프랑스 노선’ 주장자인 휴이 롱의 주도하에 극좌/극우를 막론하고 반자본주의, 반기득권주의 세력과의 대연합을 선포하였다. 이윽고 인디애나주에서 활동하던 극우 신문 기자인 데이비드 커티스 스티븐슨이 이 흐름에 동조하여, 미국의 혁명운동은 ‘반가톨릭, 반자본, 반이민주의’를 주장하는 조합주의 운동으로 서서히 형태를 갖춰갔다.
반면 1월의 추방 위기를 간신히 넘긴 주미소련대사 루트비히 마르텐스는 소련에서 특사로 파견된 아나스타스 미코얀과 함께 미국 기업들의 대소 투자를 알선하기 시작하였다. 환하게 웃으며 찰스 에번스 휴스 미국 국무장관과 악수하는 마르텐스의 사진이 미국 신문의 1면에 실리자, 반대급부로 미국 혁명운동의 반소감정은 커져만 갔다.
*
블레어 산 전투가 미국 육군항공대의 폭격으로 종결 국면에 접어들며 미국 노동계급의 등골이 부러지는 동안, 1921년 8월 24일 마침내 국민당의 북벌이 정식으로 국민대회에서 의결되었다. 천중밍의 계파는 북벌 자체와 장제스의 총사령관 임명에 끝까지 기권표를 던졌지만 더는 강짜를 놓지 않았고,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에 위축된 국민당 우파와 체카의 테러활동으로 활동이 약화된 국민당 좌파 모두 쑨원 노선에 절대복종할 것을 맹세하며 국민당은 점차 기틀을 갖춰갔다.
독일 인민군 총참모장직을 명목상 최고사령관이었던 쿠르트 폰 함머슈타인에크보르트에게 위임한 표트르는 모스크바의 복잡한 정치판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았기에 중국행을 자처하였다. 붉은 군대 최고사령관인 솔제니친이 직접 뽑은 블라디미르 트리안다필로프라는 젊은 장교와 함께 소련 군사고문단을 구성한 표트르는 당연하다는 듯 국민당의 군사고문으로 위촉되었다. 독일 인민군 명예 원수로 추대된 뒤 받은 원수 제복과 마우저 C96 권총을 허리에 차고 광저우 항에 도착한 농민 출신의 전쟁영웅을 보기 위해 국민당 수뇌부 전체가 몰려나오다시피 했고, 소련 고문단은 일리야의 지시로 제공된 독일제 기관단총과 경기관총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보답했다.
“국민당은 중화민국 전역의 합법적인 수권정당이자 중국의 노동자, 농민, 지식인, 소상공인들 대표하는 정치적인 울타리로써 삼민주의 이념에 입각한 헌정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입니다.”
국민당 정치고문인 카튜셰프, 신임 주중국 소련대사로 임명된 미하일 보로딘, 국민당 군사고문 표트르는 쑨원과의 공동 발표에서 국민당의 중국 전역에 대한 훈정체제 회복을 시도할 것을 정식으로 선포하였다. 소련 고문단에 대한 짝사랑에 빠진 듯한 쑨원은 독일제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국민혁명군의 정예부대를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다이리의 지속적인 설득에도 불구하고 내내 소련에 회의적이던 장제스조차도 그 광경을 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고 말 정도였다.
“혁명군사위원회 위원으로서 당신들의 책임자와 만나고 싶소.”
그러나 하루 일정을 모두 마친 표트르가 찾은 것은 편안한 잠자리가 아닌 체카 요원들과의 면담이었다. 혁명군사위원회 위원이자 당·정의 간부인 표트르가 직접 책임자와 만날 것을 요구하자, 한참을 논의하던 체카 요원들은 결국 담뱃대를 문 데이비슨을 데려와 표트르와 대면케 하였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원수 동무.”
“그렇소. 조만간 국민혁명군의 공세가 시작될 텐데, 체카에서는 그에 대비하여 어떤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고 있는지 알고 싶소.”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원수 제복을 입어 이전의 농민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한 표트르가 진중하게 말하는 것을 보던 데이비슨은 다리를 꼬고 앉았다. 담배 연기를 옆으로 내뿜은 데이비슨은 미동도 없는 표트르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떤 대답을 듣고 싶으십니까, 원수 동무. 체카는 오직 체카 의장 제르진스키 동무, 전연방 인민위원회 주석이신 레닌 동무, 그리고 중앙집행위 상무위원회 위원분들께만 보고하는 기관입니다. 말씀드릴 수 있는 선까지는 말씀드릴 수 있지만, 그런 대답을 바라고 절 부르진 않으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소. 제대로 된 공작업무는 KGR과 GRU가 진행 중일 테고, 나도 평범한 업무를 위해서라면 그쪽 직원들을 불렀을 것이오. 다만 데이비슨 동무. 나는 혹시라도 내가 알지 못하는 체카의 비밀스러운 작전이 국민혁명군의 공세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체카와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소.”
데이비슨은 불쾌하다는 감정을 감추지도 않고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눈가에 새겨진 흉터 또한 크게 일그러져 보였다.
“지금 말씀하시는 건 협박입니까, 원수 동무.”
“나는 체카 요원이 불상사를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지만…. 빌어먹을, 이딴 말투 따위. 그렇소. 이건 협박이오. 난 당신들이 아나톨리아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보았소. 여기서도 비슷한 짓을 저지르고 있겠지.”
표트르는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찍고는 불이 타오르는 듯한 눈빛으로 데이비슨을 노려보았다. 의외의 기개라고 생각했는지 데이비슨은 눈을 살짝 크게 떴지만, 이내 특유의 나른한 표정을 다시 지었다.
“저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원수 동무.”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소?”
“슬슬 시간이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데이비슨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 어리둥절해진 표트르가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 중국 측에서 특별히 설치해준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수화기를 집어 든 표트르는 데이비슨을 한번 보고는 헛기침을 한 뒤 입을 열었다.
“표트르 표트로비치요.”
“표트르. 납니다.”
“사샤 세르게예비치 동무. 이 시간에 무슨 일입니까?”
“동무, 지금 체카 요원인 해리엇 데이비슨 동무와 만나고 있습니까?”
표트르는 고개를 홱 돌려 데이비슨을 바라보았다. 데이비슨은 대답 대신 고개를 돌리고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그렇소만.”
“돌려보내십시오. 데이비슨 동무와 체카의 모든 활동은 지도부의 확인을 거친 사안입니다. 고문단이 간섭할 사안이 아닙니다.”
“아니, 사샤. 그게 무슨 소리랍니까. 체카가 하는 게 대민 지원 같은 게 아니란 걸 알잖소. 그런데도 그냥 넘어가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시간을 끌어봤자 데이비슨 동무는 결국 아무 말 하지 않을 것이고, 모스크바서는 협조하라는 공문이나 잔뜩 보내올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포기하란 말입니까?”
“나라고 처음부터 포기했을 것 같습니까?”
카튜셰프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제야 카튜셰프의 의도가 데이비슨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단 표트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에 가깝다는 걸 깨달은 표트르는 수화기를 손으로 가리고 데이비슨을 바라보았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겠소?”
여러 의미가 함축된 질문이었다. 데이비슨은 표트르의 의도 중 몇 가지를 알 수 있었다. 테러, 습격, 인종청소, 간접적으로 수백만 명을 사망케 이르는 ‘체카의 일’, 당·정·군의 지휘체계를 우회하는 행태,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목적과 권한…. 그러나 아마 가장 우려하는 것은, 체카가 언제든 ‘같은 혁명 동지’들을 노릴 수도 있다는 우려일 터였다. 실제로 국민당 내 극좌파를 습격한 것이 체카였으므로, 표트르의 걱정이 괜한 것은 아니었다.
“저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원수 동무. 밤이 늦었으니, 편히 쉬시죠.”
데이비슨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나서는 데이비슨을 보던 표트르는 말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데이비슨이 듣는지 마는지 상관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대답할 수 없습니다, 가 아니군….”
*
“이 사단장 출신 애송이가 감히…. 우페이푸 이 자식을 찢어 죽여버려야겠어!”
장쭤린은 분노에 차 탁자를 여러 번 내리쳤다. 북양정부의 재무 관료들을 연이어 암살하고 소련의 외몽골 진출, 일본의 산둥반도 조차지 진출 등 온갖 가짜뉴스를 흩뿌린 체카와 GRU의 공작은 한때 굳건한 동맹이었던 차오쿤, 우페이푸의 직예군벌과 장쭤린의 봉천군벌의 사이를 완전히 틀어버렸다. 지급되지 않는 군비는 군벌들이 가지고 있던 북양정부에 대한 약간의 신뢰마저 날려버렸고, 진원펑 내각은 총사퇴를 선언하고 북양정부의 행정권은 차츰 붕괴되는 상태였다.
“외몽골은 중국의 일부입니다. 그런 몽골이 넘어가게 두어야 하겠습니까? 일본의 지원을 받아 몽골에서 러시아 적군을 추방하고, 산해관을 넘어가야 합니다.”
봉천군벌의 군사 실력자인 양위팅이 열심히 외치자, 주변의 눈치를 보고 있던 장쭤린의 아들 장쉐량 또한 그에 호응하여 맞장구를 쳤다.
“차라리 소문대로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직예군벌이 웨이하이와 칭다오를 일본에 팔아넘기려 하고, 그걸 막기 위해 동삼성의 군대가 움직인다고 하는 겁니다. 일본 처지에서야 중국 인민의 반발만 잔뜩 받을 조차지 강탈을 진행하느니, 새로이 수립될 중원의 제국과 친하게 지내려 할 겁니다.”
“아니. 일리는 있지만. 너무 급진적이야. 일본을 얼마나 믿을 수도 있을지가 문제고.”
조금 전까지 화를 마구 냈던 것이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장쭤린은 표정을 굳힌 채 보고서 뭉치들을 뒤적거렸다. 양위팅과 장쉐량이 갑작스레 바뀐 장쭤린의 태도에 서로의 눈치를 보는 사이,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리고 흥분한 표정의 장징후이가 들어왔다.
“아니, 갑작스럽게 무슨 일이야?”
“장군. 이걸 보십시오. 직예군벌 놈들이 공산주의자들이랑 손을 잡았다고 합니다.”
“뭐? 국민당이 아니고?”
아부하기 좋아하는 장징후이가 또 헛소리한다는 생각에 장쭤린은 불신이 가득한 태도로 장징후이가 가져온 문서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차츰 장쭤린의 표정이 굳어져 가자, 장징후이는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경한철도를 비롯한 철도와 조병창 등이 전부 공산주의자 놈들이 조직한 노동조합에 의해 장악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국민당에서도 지시한 게 아니라고?”
“직예군벌도 공산주의자들과 협력을 하면서도 국민당이 어디까지 개입했는지 확실하지 않아, 군을 남쪽으로 돌리면서도 협상을 위해 광저우에 대표단을 파견했다고 합니다.”
“잠깐, 뭐라고?”
“대표단이 남쪽으로….”
“아니 그 전에 말이야!”
탁자에 놓여있던 문서를 전부 밀어서 바닥에 떨어뜨린 장쭤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리둥절한 장징후이가 당황하는 사이, 눈치 빠른 장쉐량은 양 주먹을 꽉 쥐며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예군벌이 주력군을 남쪽으로 보냈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산해관을 넘어 북경을 탈환하고, 명망 있는 인사들로 새 내각을 꾸려야 합니다. 아니, 소문 그대로 황제가 되시는 겁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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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망의 1921년 9월 1일, 직예군벌과 봉천군벌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보고를 들은 쑨원은 전 병력의 북진을 지시하였다. 바야흐로 2차 호법운동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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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함머슈타인에크보르트는 만협추에서 독일제국 군사정부 수장이었던 그 자 맞습니다.
첫댓글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똑바로 서라 표트르. 왜 그놈의 목이 인장강도 이상의 힘을 받도록 하지 않았지?
그럴 정도면 표트르는 돌고래 지능 아닐까요?
@렌지파일 생각해보니 이때쯤 지능이 올랐었네요. 너프 됐어도 그정도면 안할만한지도요!(..)
@통장 사실 돌고래도 친구와 적은 구별하므로 (...)
@렌지파일 음? 친구? 세계혁명의?(..)
@통장 그것도 맞죠.
@렌지파일 흠... 아무생각 없이 쓴거라 진지하게 생각한 건 아닌데 어렵네요. 레닌-트로츠키 계통을 따른다고 해도 바텀업 방식? 전도 방식?을 선호하는 식이었는데 권모술수를 통한 방식이 일어나고 실제로 통한다? 주변 유일한 동지는 이미 막는걸 실패했다?
지금은 제 캐릭터가 아닌 렌지파일님 소설의 인물이지만 아무래도 예전 플레이했던 게임의 기억이 있다보니 계속 지켜보게 되네요. 사실 데이빗슨과 체카의 막장성과 최종목표(..)에 더 주목해야 될테지만
다음화 재촉을 하면 안된다고 배웠으니 굳이 말하진 않겠습니다(??)
@통장 사실 바텀업 방식이 레닌 방식이 아니라 룩셈부르크 방식이기 때문에 이미 소련에서는 이단아입니다 (?)
@렌지파일 앗..
@통장 뭐 마르크스주의의 정통 입장에선 둘 다 이단아고(룩셈부르크가 '조금 더 나은 수준') 레닌은 그냥 블랑키주의 독재자(...)이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레닌주의자들이니까요..?
역시 기대한대로 대만주제국이 나왔군요.
장황제!!
@렌지파일
그와중에 장쉐량 마약중독자쉑 황태자 되고싶어서 눈치 빨라진 거 보게…
@E.E.샤츠슈나이더 어디선 거점이고 망명지고 모든곳에서 빈털털이로 쫒겨나 거지가 되었는데 말이죠.
만주협동공화국 집정 장징후이 각하… 왜 이런데서 고생하십니까.. 상덕코인 타면 만사가 편해질텐데 읍읍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장징후이는 정샤오쉬나 짱스이에 비하면 전형적인 간신캐릭터라..
ㅋㅋㅋㅋㅋ
대충 구도는 잡히네요. 소련+독일+중국+체코/헝가리 등등 코민테른 vs 미영프일이 파쇼동맹이라…
@E.E.샤츠슈나이더 프랑스 노선 추종자들은 곳곳에 숨어있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