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있네
- 대중가요 '산장의 여인' 중에서 -
서럽다. 노래를 부르다보면
노래 속 여인의 소멸이 예감된다.
낙엽 쌓이는 적막과 외로움 마저
이별해야 할 것 같다.
산장의 여인은 1950년대 당시 불치병으로
전염성이 강한 결핵에 걸려 마산 결핵요양소에
격리 수용되어 있던 여인에 대한 노래다.
1957년 작사가 반야월이 마산 결핵요양소에서
위문공연 중 객석 뒤쪽에 있던
미모의 젊은 여인이 흐느껴 우는 것을 보고서
병원 관계자에게 사연을 물어보니
결핵에 걸려 건너편 산 중턱에 있는
산장 병동에 격리되어 있는 환자라고 했다.
결혼을 약속한 연인도 있다고 했다.
이에 영감을 얻은 반야월이 가사를 쓰고
같은 요양원에 결핵으로 입원 중이던
작곡가 이재호가 곡을 붙여 나온 노래가
산장의 여인이다.
마산 결핵요양소는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어
지금은 국립마산병원이 되었다.
산장동이 있었다는 본관 건너편 산 중턱에 그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산길로 접어드니 출입을 할 수 없도록 쳐놓은
철망 너머로 성모마리아상인 듯
흰색 상이 보인다.
폐병이라 불리던 그 병마와 싸우던 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었으리.
산 중턱의 약간 평평한 곳에
흙에 묻힌 채 모서리만 모습을 드러낸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인다.
당시 병동을 헐어 내고 남은 콘크리트 기단일 것이다.
그것은 흙에 묻히고 이끼에 덮여 떨어져 남은
서러움의 한 조각이다.
가장 풋풋한 시절 끝 모를 절망과
외로움의 흔적이다.
마산 오동동 문화광장에 선다.
광장 한쪽에 16명이 남긴 마산의 흔적이라는 입간판이 있다. 백석, 임화, 나도향, 김주열, 김춘수, 김수환, 천상병 등등... 모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에 있는 산장의 여인 앞에 서서 밀려오는
허무에 전율한다.
「산장의 여인」당사자는 얼굴이 없다.
헝크러진 뒷모습, 무얼 응시하고 있을까?
합포만의 바닷바람일까, 산속 병동의 가을바람일까, 머리카락을 흐트린 것은.
가슴 속에서 이는 외로움과 서러움의 바람일까?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처음 들었을 때 같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온다.
나중에 어디서 읽은 내용인데 마산 결핵요양소의 산장 병동은 결핵이 호전되어 전염성이 거의 없는 환자들을 수용했다고 한다.
노래 속 그 여인은 가족과 연인에게 돌아갔다 해도 산장의 여인은 아직 그 산장에서 임 뵈올 생각하며 외롭고 쓸쓸히 살아가고 있다.
첫댓글
감사히 배워 주십니다~~^^
그 떄 그 시절은
정말 참옥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노래가 퍽 슬프더니 그런 실화를 바탕으로 지어진 노래군요.
종종 권혜경의 애절한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습니다만,
어찌 저런 슬픈 노래를 웃음기 띈 얼굴로 부를 수가 있을까 고개를 갸웃뚱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산장의 여인만 얼굴이 안 보이네요. 추기경님도 마산분이셨군요.
탐방기사 잘 읽었습니다.
저의 글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화면을 확대해 보니 김수환 추기경은 1966년 천주교 마산교구가 창설될 때
초대 교구장으로 2년 남짓 계셨다는 설명이 보입니다.^^
노래의 깊은 사연들이 다 있네요
조목조목 내용을 깊이 설명해주시고 올려주셔서 잘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김희태 선생님 산장의 여인에 대한 여러 가지 사연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후텁지근하고 무척이나 더운 날씨에 건강유의 하십시오
산장의 여인의 노래에 얽힌 사연 어설프게 풍문으로 들었는데
자세히 알게되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