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가볼만한 전시 열개 (아트시월 김준기님 추전)

올 여름, 미술관들에서는 대박예감의 큰 전시들이 많이 열린다. 동아시아 한국인으로서 현대인의 정체성을 탐문하는 서도호, 영원한 자유-평화주의자 오노 요코, 열정적인 예술혼의 대명사 피카소, 동양사유를 선보이는 독일인작가 볼프강 라이프 등 그들의 인생을 걸고 예술의 길을 걷는 이들의 개인전이 굵직하게 펼쳐진다. 사진영상 페스티벌, 미술과 놀이, 10년후, 동화 속 미술여행 등 현대인의 일상과 밀접한 매체, 과학, 놀이, 아동 등 친근한 주제를 담은 전시들과, 청계천 복원프로젝트, 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애술가들의 이야기 등 우리 일상에 밀접하게 접근해있는 기획전들도 있다. 더운 여름날, 미술관을 찾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아주 특별한 일이다. '전시를 본다'는 행위 자체가 워낙에 힘겨운 일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이 있는 곳까지 자신의 신체를 이동하여 순차적으로 디스플레이된 작품들 앞에 서서 시각적 인지를 감성코드로 전환하는 '시각예술품 감상행위'라는 게 따지고 보면 몇 시간 동안 서성거리며 발품 파는 일이 아니던가. 전시를 본다는 일은 이렇게 피곤하기 짝이없는 무모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는 이유는 현대미술이 가지고 있는 심난함과 깊이, 동시에 기발함과 재치를 기대하기 때문일 터, 여기 몇 개의 전시를 소개한다. 서도호전, 아트선재센터, 6.28-8.31 / 733-8945-7 우리 현대미술을 세계에 알린 작가로 2년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작품 을 설치했던 재미 작가 서도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아트선재센터와 같이 커다란 미술관에서 하는 개인전에 출품작이 딱 여섯 점이라는 사실부 터가 심상치 않다. 그만큼 한작품 안에 담겨있는 메시지와 공력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서도호는 1962년생으로 서울대와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 예일대 를 졸업한 후에, 휘트니 미술관 필립모리스 분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 고,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과 본 전시에 참여했으며, 현재 뉴욕에서 활 동 중인 작가이다. 전시는 전반적으로 설치미술의 스펙타클한 면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작 은 인형들이 온통 바닥에 깔려있고, 그 위에 아크릴 판을 배치해 거대권력 과 개인의 관계를 표현한 것과 미군의 인식표를 붙혀서 거대한 옷을 만들 어 낸 것을 보면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현대미술은 알고보면 엄청난 에너 지와 재미를 가지고 있다. 서도호를 만날 때, 꼭 작품에 담긴 사연과 과정 에 대해 읽어보고 들어가야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오노 요코 : 로댕갤러리 6.20-9.14 / 2259-7781 1960년대의 서구는 반전평화의 목소리로 뜨겁게 달구어졌다. 68혁명으로 대변되는 변혁적 에너지는 가히 한국의 87년을 연상하게 하는 폭발적인 것 이었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대중들에게 평화와 자유를 노래한 거장 가 운데 하나가 존 레넌과 그의 아내 오노 요꼬이다. 흔히들 레넌과 요꼬는 그 유명세에 따라 레넌과 그의 아내 요꼬로 분류되었지만, 이 전시는 그 관계를 역전시킬만한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시청역에서 남대문 쪽으로 가다가 오른편에 자리한 로댕갤러리에서 <오노 요코 YES YOKO ONO전>이 열린다. 비틀즈의 멤버 존 레넌의 아내로도 잘 알 려진 오노 요코의 40여 년에 걸친 다양한 작업을 총망라하는 첫 대규모 회 고전. 예술의 영역을 확장시킨 서구 플럭서스(Fluxus) 운동의 형성기에 중 심적인 역할을 했던 오노 요코의 젊은 날을 돌아볼 수 있는 전시이다. 플 럭서스란 "흐름, 끊임없는 변화, 운동"을 의미하는 중세라틴어로서 J.매키 우나스에 의해 조직된 행위예술 단체인데, 요셉 보이스, 백남준(白南準), 백남준과 함께 비디오 첼로를 협연했던 S.무어맨 등이 이 운동에 참가했었 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존 레넌의 아내가 아닌 현대미술의 거장으로서 의 요꼬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몇 작품 소개하자면, 천정에 붙여놓은 액자 안에 가득히 예스(yes)라고 적 혀있는 그림 <천정회화-예스회와>를 보려면 사다리를 타고 천정 가까이 가 서 봐야한다. 요꼬가 이야기하는 세상에 대한 긍정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 이야. 참고로 이 작품의 시연회에서 레논을 만났다고 한다. 1965년의 <자 르기>는 사회의 부폐상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저항을 극단적으로 보여주 는 것으로서 관람객이 가위로 요꼬의 옷을 잘라내서 결국은 나체로 만들 어 버리는 퍼포먼스이다. <평화를 위한 침대시위>는 1969년 신혼여행을 이 용한 침대시위인데, 신홍여행지의 호텔 신방에 기자들을 불러 놓고 퍼포먼 스를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물위를 걷는 사람들-청계천 프로젝트, 서울시립미술관, 2124-8800 청계고가 도로가 지난 7월1일부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명박 서울시장 의 청계천복원프로젝트에 따라 운행이 전면 중단된 것이다. 청계천의 복원 은 역사와 생태를 복원하는 중요한 사업이어서 많은 이들이 동의를 얻었지 만, 그 이면에는 한국 근현대사 속에 묻힌 수많은 사연들이 존재한다. 록 그룹 천지인의 <청계천8가>를 떠올려 보시라.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샐틈 없는 인파로 가득찬 땀냄새 가득한 거리여 어느 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 그곳 사람들 삶의 애환이 물씬 풍겨오는 노랫말 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야심하게 기획한 이 전시는 국내의 주요 현대미술 작가 들이 총망라 되어있다. 회화, 조각, 사진, 설치, 미디어 등 다양한 현대미 술 매체를 통하여 한국의 근대화 프로젝트와 땀으로 얼룩져온 민생의 역사 를 예술적 기록으로 남기고, 새롭게 모습을 드러낼 생태적 환경에 대한 예 술적 상상을 펼치기 위한 이번 전시는 과거와 현재의 청계천의 모습을 담 은 다큐멘타리적 작업, 그 주변의 삶과 공간에 아로새겨진 문화적 맥락을 조명하는 개념적인 작업, 곧 모습을 드러낼 본래의 개천이 도심의 삶에 제 공할 생태주의적 비전 등의 테마로 이루어진 전시이다. 서울의 역사성과 생태환경도시로서의 비전을 담고 있지만, 서울시가 주관 단체라는 점에서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있는 부정적인 맥락에 관한 접근이 다소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청계천을 바라보는 미 술가들의 다양한 시각을 체험하는 것에 관람포인트를 둔다면 실패하지 않 을 전시이다. 피카소의 예술과 사랑, 호암갤러리, 7.11-9.14 / 750-7990-4 피카소. 그 이름은 20세기 현대미술의 신화로 영원히 살아있다. 이 전시 는 그의 대표적인 판화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한국에서의 스페인의 해에 맞춰 한국-스페인의 문화교류에 기여하는 것도 뒷 배경 가운데 하나 다. 출품작은 <볼라르 판화집>과 <347 판화집>에서 발췌한 205점. 피카소는 1881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입체주의의 선구자로서 현대미술에 커 다란 이정표를 남겼다. 92세의 삶을 통해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겼으며, 사랑과 성, 욕망 등의 주제가 그의 작품의 주요 테마이다. 이번 전시에는 두 개의 대표적인 판화집에서 '피카소의 솔직하면서도 익살스러운 표현, 대가로서의 예술적 고뇌,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던 여인들과의 사랑, 젊 음과 늙음에 대한 사색' 등 피카소의 인간적인 면모를 생생히 느낄 수 있 는 작품들이 소개된다. 구상과 추상을 동시에 담고 있으며,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와 예술가의 심 원한 욕망을 동시에 한 몸으로 추스린 거장 피카소의 작품 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대박 전시. 피카소의 삶에 대한 영상물이 이 전시와 피카소에 대 한 이해를 돕고 있으며 시간을 정해놓은 작품설명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 도 좋은 방법이다. 예술가의 애술 이야기, 사비나미술관, 7.16-9.17 / 736-4371 술을 매개로 한 감성 코드의 극대화 과정이 예술적 상상과 창작 과정에 깊 이 관계하고 있고, 음주에 얽힌 낭만과 열정 또한 예술성과 많이 닮아 있 다는 점에 착안한 기획전시이다. 전시 작품은 박영균, 방정아, 유재흥 등 17명 작가의 회화, 입체, 설치 등 여러 장르에 걸쳐있다. 출품작은 한잔의 유혹, 욕망의 해방구, 중독의 상처 등 세 부분으로 구성 되어있다. 관람객들은 술의 기능 가운데 매혹적이며 감성-욕망의 해방 기 능에 초점을 맞추겠지만,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 파괴의 방법인 중독의 상 처 파트에 들어서면, 일견 숙연해진다. 소주병이 늘어서 노숙자의 삶의 현 장을 확인하거나 쾡하니 초점을 잃은 눈빛들이 그것이다. 흥미로운 건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에게 관람에 앞서 미술관이 준비한 술 한 모금씩을 마시고 관람할 수 있다는 것. 이번 전시회를 위해 협찬받은 전통주를 미술관에 들어서면서 시음(試飮)하고 나서, 약간의 취기 가운데 작품을 감상하는 애술작품 음주감상(愛술作品飮酒感賞) 프로그램이다. 미 술계로선 이례적인 일이지만,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이색적인 이벤 트로 평가받고 있다. 제3회 사진영상 페스티벌, 가나아트센터, 6.20-8.31 / 720-1020 가나아트센터가 2년전부터 해마다 열고 있는 '사진영상 페스티벌'은 전세 계적으로 미술관 전시를 휩쓸고 있는 사진과 영상의 최근 흐름들을 묶어 서 국내에 소개하는 미술축제이다. 이미 사진과 영상 작가들이 국제적인 미술행사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고, 미술시장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는 점을 반영한 발빠른 기획이다. 이번 전시에는 아넬리스 스트르바, 요꼬 오노, 샌디 스코글런드, 히로시 스기모토, 스테판 꾸뛰리에 등 국내외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주요 작가 및 세계 유수의 비엔날레와 도큐멘타, 주요 미술관 등의 전시를 통해 실험 성을 검증 받은 젊은 작가들을 포함, 총 12개국, 22인 작가를 엄선하여 그 들의 사진과 영상 작업 80여 점을 선보인다. '금지된 허구', '보이지 않는 풍경', '비디오 포럼' 등의 부스로 구성되 며 'JVC 영상-슬라이드 쇼'와 '포토북 전시 및 페어'도 열린다. 학술행사 로는 '현대사진의 다양성'(이영준, 7.27(토),2시) '풍경이야기'(배병우, 8.2(토),2시) 등이 있고, 야외공연장에서는 넉넉한 휴식의 자리도 마련된 다. 가나아트센터는 경관이 수려한 평창동 북한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데, 전시를 볼 수 있을 뿐더러, 공연, 아카데미, 휴식 등의 복합문화공간 이 있어 한나절 시간 내서 방문하면 충분히 본전 뽑고도 남음이 있다. 인 사동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미술과 놀이 07/25~08/24 예술의 전당 / 580-1515 5개월간 새단장을 한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이 '유희와 놀이적 요소를 주제로 한 미술작품 기획전'을 연다. 회화, 만화, 사진, 조각, 설치, 영상 미술 등 150여점이 출품된다. 조습, 김준, 홍지연 김지원, 권기수 등 20대 에서 50대까지 폭넓은 작가군이 참여하여, 현대미술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 준다. 만화나 에니메이션을 비롯하여 각종 재료를 활용한 모자이크 퍼즐놀이 (jigsaw puzzle), 그림자놀이, 가면놀이, 가상공간체험 등 일반적으로 미 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분야를 포괄하고 있어 흥미를 더하고 있다. 관 람객이 함게 참여할 수 있는 작품들도 출품된다. 미술가들의 상상력이 풍부하게 드러나는 풍자와 위트, 재기발랄한 미술들 을 접할 수 있다. 현대미술이 나날이 거대담론을 담은 심각한 주제를 관람 객에게 제시해온 반면 작가들의 상상력은 엉뚱하게도 기발한 아이디어에 서 나온 유희와도 같은 창작을 지속해왔는데, 기실 현대미술을 이끌어온 힘은 담론의 깊이보다는 유희적인 창작 에너지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 서,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을 살펴보는 일은 현대미술의 앞날을 내다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10년후 / 인사아트센터 07/30~08/24 / 736-1020 “과학자와 예술가가 함께 10년 후를 꿈꾼다.”과학과 미술의 만남을 주선 한 전시이다. KAIST, 과학문화재단, 가나아트갤러리가 여름방학을 맞아 기 획한 야심작. KAIST, KIST, 미국항공우주국 NASA와 우주관측위성 “갤렉스 (GALEX)”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하고 있는 연세대학교 자외선우주망원경연 구단,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 디지털미디어센터 등 과학기술계에서 적 극 참여하여 미술과 과학의 만남을 적극 주선하고 나선 것. 미술을 통해 과학을 이야기한다는 점이 흥미를 끈다. 전시는 10년 뒤 미래의 도시, 주거 환경 및 작업공간을 보여주 는 'Living Space',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미래의 커뮤니케이션 환경 을 주제로 한 'Moving Space', 미래의 인간과 환경을 주제로 한 'Dream Space' 등 세 부스로 꾸며진다. 학생들이 만든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 디어 작품들을 공모해 전시하는 '제3의 눈', 관람객들이 직접 미래도시를 설계해 볼 수 있는 '내가 만든 미래도시(Digital Media City)' 등 부대행 사도 이채롭다. 동화 속 미술여행 / 07/04~08/17 갤러리현대 / 02-734-6111 갤러리현대가 마련한 어린이 특별전시다. 어린이 책을 소재로 감성교육의 보편적인 방식 속에 녹아 있는 예술과 교육을 찾아보는 것. 어린이 교육 은 무엇보다 감성 교육이 중요한데, 이때 시각적 인지과정을 통한 창의력 과 상상력 개발은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설치작가들이 동화 속의 공간을 만들어 놓고 어린이들의 입체적인 체험을 이끌어낸다. 동화의 원화를 볼 수 있는 것은 기본. 문학과 그림, 언어와 소리,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교차하는 공간이 동화책 뿐만 아니라 현실공 간에서 선보인다는 것은 시각, 청각, 촉각의 멀티-감각적 체험을 통해 그 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감성교육을 촉발한다는 것이다. 큐레이터의 말 가운데 흥미로운 것이 있다. "미술이 시대를 담는 그릇이라 고 한다면 무거움과 함께 가벼움도 담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미술이 할 수 있는 일은 가볍고 재미있는 영역으로 넓게 잘아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기쁨 주고 사랑 받는' 현대미술의 재미를 찾아보는 일, 동화 속 미술여행에서 찾아보시라. 볼프강 라이프 / 국립현대미술관 / -9.12 / (02)2188-6000 의학공부를 마치고도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미술가가 된 독일인 작가 볼프 강 라이프. 그는 전 근대의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에서 출발하여 서구의 자 연과학의 한계를 자각하고, 영적인 초월의 세계를 탐구한다. 라이프가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197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의 조각, 설치, 사진, 드로잉이 망라되어 라이프의 작품 세계 전반을 다양하게 보여 준다. 특히 그를 국제적으로 부상케 한 <꽃가루> 작업을 비롯하여, 여러 대표작들과 함께 작가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진, 드로잉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인간, 자연, 우주, 생명 등의 모티브로 문명적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예술에 대한 유토피아적 전망을 담은 다음의 말이 눈에 띈다.“그것 이 꽃가루이든, 우유 돌이든 나는 작품들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메시 지를 담고 있으며, 전시를 통해 보여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대 로 그의 작품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찾아 자연에 내재한 비가시적이며 영적인 에너지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