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산악회는 정말 못 말리는 모임이다. 산에만 열심히 가는 게 아니라 파티도 열심히
한다. 산악회원도 아니면서 늘 산악회를 위해 손님접대의 번거로움과 과도한 노동을
마다않고 멋진 파티장소를 제공해 주시는 이영구동문 내외께 그 감사한 마음을 어찌
다 전할까 고민 중인데 이번에는 또 윤봉용교수 내외께서 익산의 金壽慈교수
아틀리에 겸 慧村齋(혜촌은 윤교수의 아호)에서 송년파티를 제안해 오셨다.
‘불감청이나 고소원’을 이렇게 자주 읊게 될 줄이야.
미륵산 등반을 간단히 하고 익산의 문화유적지를 관광한 다음 혜촌재에서 바비큐
파티를 한다는데 어찌 손님이 안 모일 수 있겠는가. 평소 잘 안 오시던 김각중,
안희중, 박근준, 최영철, 이종범 동문에 젬마여사까지 19명이 납회산행에 참가했다.
동기회 사무총장이 된 임대장이 대장 이임 인사를 한다. 정말 명대장으로 수고 많으
셨습니다. 김경자여사도 대장부인으로서의 마지막 아침식사를 거하게 돌린다.
유여사 스트레스 좀 받겠는 걸. 김회장은 팔도 다 안 나았는데 또 고구마를
쪄오셨다. 어제밤에 장변호사님이 쪄 찐고구마와 군고구마 중간쯤 됐다는데
맛있기만 하다.
김고문이 47년 만에 미륵산을 다시 가게 돼 감회가 깊다고 한다. 61년 초 논산
훈련소 27연대 훈련병 시절 뗏장 떼러 올라갔던 산이 바로 미륵산 뒷산이었다는
것이다. 임대장은 윤교수가 미리 답사까지 했는데 왕복 4km에 2시간이 걸렸다니
우리는 3시간이면 충분하겠다고 한다. 익산 시내로 들어서자 미륵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을 올려다 본 현총무, “산이 저 정도여야지 너무 높으면 못 쓴다”
는 명언을 남겨 오랜만에 오늘의 명언상 수상.
9시 30분 미륵사지 주차장에 도착하니 윤교수가 가이드를 모시고 나왔다. 법학박사
이자 등반‘도사’이며 산악자전거 광이라고 소개한 김박사는 김수자교수의 오빠로
긴 팔다리와 날씬한 몸매가 남매임을 금세 알아보게 한다. 기껏 2시간짜리 430m
밖에 안 되는 산에 가는데 웬 가이드? 그런데 등반을 끝내고나서야 오늘 가이드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깨달았다.
정상인 장군봉까지 1시간 10분. 정상에서는 만경평야의 너른 ‘들’이 한눈에 들어
온다. 저 넓은 평야가 김제평야냐 만경평야냐 묻는 말에 익산 출신인 김각중
동문의 대답, “우린 그냥 ‘들’이라고 그래.” 백두대간 때의 풍경과는 너무
다른 ‘들’을 내려다보며 김박사가 이곳저곳 자상한 설명을 한다. 하산 길은
의외로 암릉도 있고 가파르다. 한참을 내려가니 갑자기 눈앞에 만리장성처럼
넓은 성곽이 나타난다. 둘레가 1,880m나 되는 거대한 성곽으로 최근 복원하면서
원래의 검은 돌에 하얀 새 돌들이 섞여 조각품처럼 아름답다. 성곽 위로 한참
걸어 내려가니 김박사가 성벽 밑 아늑한 풀밭에서 버너를 켜 뜨거운 커피를
만들고 있다. 바비큐 파티에서 잘 먹겠다며 다들 아침에 김경자여사한테 얻은
떡으로 간단히 요기만 한다. 산 속 찬 공기 속에 아라비카 커피향이 향기롭다.
다시 성곽 옆길을 따라 능선으로 올라가 獅子寺로 향한다. 모처럼 사진 찍을 게
많아 신이 난 김고문과 이종범작가는 어디서 뭘 하는지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김각중동문의 휴대폰이 울린다. 전화를 받은 김동문 하는 말이 요상하다.
“내복? 그래, 하나 사줘. 사이즈는 95야.” 뒤따라오던 임한석고문, 가만 있을
사람이 아니다. 누구냐, 애인이냐, 묻자 옆에서 누군가가 애인이면 사이즈를
모르겠어? 한다. 등산 간 남자한테 전화 걸어 내복 사주겠다는 여인이 도대체
누구냐로 한참 옥신각신하는데 김동문 왈, “아이구, 이거 또 산행기에
오르겠구만.” 김동문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올립니다. 자수해서 광명 찾자!
1시 30분, 4시간의 산행을 끝내고 미륵사지로 다시 내려왔다. 당초 예상보다
1시간이 더 걸렸다. 김박사 덕분에 미륵산을 제대로 구경하고 운동도 충분히
되는 산행을 했다. 임대장이 익산시 관광과에 전화를 해 예약해둔 문화 해설사와
미륵사지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에서 한 시간이나 늦어졌다. 익산은 노래로
사기를 쳐 선화공주를 아내로 뺏어온 薯童(백제 무왕)과 관련된 유적이 도처에
널려 있는 땅이다. 국보인 미륵사 西塔은 해체복원작업 중이고 東塔은 원래
탑을 상상해 만든 모형이 세워져 있는데 기계로 깎아 만든 하얀 석탑이 도무지
생경하다. 반 이상 해체된 원래의 미륵사 석탑을 작업장 안에 들어가서 본다.
석탑의 규모가 엄청나다. 지금은 주춧돌만 남은 미륵사지 전체의 규모도 어마
어마한데 복원 후의 모습이 실망스럽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익산에는 또
왕궁터와 국보인 왕궁리 오층석탑도 있다. 익산에는 백제의 유적이 부여나
공주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김고문은 백제가 아니라 마한의 왕궁이 있었던
곳이 아닌가하는 개인적인 의견을 낸다. 누구도 못 말릴 박식이다.
이제 배도 출출하니 문화 공부 그만하고 바비큐 먹으러 가자. 익산에도 온천이 있다.
시간이 촉박하니 30분 후에 버스 출발한다는 대장의 협박에 간신히 샤워만 하고
나왔는데 현총무는 혼자 15분이나 늦게 나타난다. 지각으로 아이스케키 벌이 내려
지자 “하도 서둘러 털도 다 못 말리고 나왔는데” 하며 툴툴거린다.
미륵산 반대편의 함라면은 함라한옥마을과 함열향교 등 전통 한옥이 늘어선 유서
깊은 마을인데 마을 가장 높은 곳에 3천 평 송림을 뒤로 하고 김수자교수의
아틀리에 겸 윤교수의 혜촌재가 있다. 멋쟁이 아틀리에 건물이 오래된 마을에서
단연 돋보인다. 버스에서 내려 아틀리에로 걸어 올라간 우리를 맞은 것은 놀랍게
도 미륵산과 미륵사석탑 그림까지 들어간 현수막 ‘1.7산악회 송년모임.’ 어떻게
이런 플래카드까지 준비했느냐는 회원들의 감탄에 윤교수, “손님을 초대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그리고 올해 우리 집 모토가 ‘방문객 감동의 해’다.” 일단 기념
촬영부터 하자. 원래 야외에서 열기로 한 바비큐 파티는 날씨가 추워 화실 안으로
바뀌었다. 마당에서는 두 대의 그릴에 김교수의 자원봉사 제자들이 미국산 LA 갈비
와 포도주에 숙성한 돼지고기를 굽고 있는데 벌써 맛있는 냄새가 동네를 진동한다.
천장이 높은 화실에는 사방에 김교수의 그림이 둘러서 있고 가운데 두 대의 큰
테이블에 근사한 식탁이 차려져 있다. 오늘 손님이 30명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하고
윤교수가 스테인리스 식판 30개에 대형 온풍기도 새로 장만했다 한다. 주인이
직접 담갔다는 매실주 두 항아리에 비주류파를 위한 하이네켄 생맥주도 있다.
송년파티에 샴페인이 빠질소냐. 팡, 팡 샴페인이 터지고 박근준동문이 멋진
건배사로 축배를 이끌었다. 앞치마를 두른 호스티스 김교수와 호스트 윤교수에
등반 가이드 김박사까지 고기를 구워 나르고 술을 따르고 완전 예상을 뛰어넘은
환대가 이어진다. 품위 있는 백자 주전자에 매실주를 담아내기 바쁘게 주전자가
비자 급기야 윤교수가 항아리째 식탁에 올려놓고 알아서 퍼마시라 한다. 30인분
준비했으니 다 먹고 가야한다는 주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순식간에 고기를
먹어치우자 이번에는 김교수의 특제 빈대떡이 나온다. 녹두를 슬쩍 갈아서 더
구수하다는 빈대떡과 굴을 넣고 끓인 시원한 배추국까지, 무슨 화가가 이렇게
요리를 잘 해? 도대체 본업이 화가야, 요리사야? 게다가 후식으로 나온 숯불에
구운 호박고구마의 맛은 또 어떻고? 먹고 마시고 너무 행복해진 동기생들이
질투와 부러움을 섞어 “윤봉용이 장가 잘 갔다”를 연발한다.
“오늘 손님 중 3분의 2 이상이 감동 안 받았다 하면 파티 다시 한다, 그런데
여러분은 따라하지 마십시오. 따라했다간 큰일 납니다. 내가 어제 밤에 접시며
식판 30개 씻고 닦느라 잠도 못 잤어요.” 윤교수의 너스레에, 식판도 30개나
샀는데 계속 써야 할 거 아니냐, 파티 자주 하자고 아우성이다. 술 더 마시고
늦으면 자고가면 되지 왜 서두르느냐고 떼를 쓰는 신임 김영길대장을 임대장이
달랜다. 우리가 일어나야 제자들도 설거지하고 집에 갈 거 아니냐. 술항아리도
아직 안 비웠는데 왜 벌써 일어서느냐고 아쉬워하는 윤교수가 2009년에는 좀
더 여유 있는 산악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인사말로 파티를 끝낸다. “여유 있는”
에 김대장이 제일 좋아한다.
화실 밖으로 나오니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고 불빛이 반짝이는 익산 시내와 멀리
검은 실루엣으로 우뚝 솟아오른 미륵산이 환상적인 야경을 연출하고 있다. 17산악회
사상 가장 아름답고 기억에 남을 납회 산행과 송년파티였다. 특히 김박사님까지
동원된 거족적 환대에 모두 할말을 잃었다. 윤교수님 내외의 따뜻한 초대와
감동적인 접대에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윤교수님, 김교수님, 진짜 감동입니다!!!
2008년은 산악회에 뜻 깊은 해였습니다. 백두대간을 완주한 대원들에게 축하를,
그동안 수고하신 임대장에게 감사를, 말 안 듣는 지공들 끌고 지금부터 대장 노릇해야
할 김대장에게 위로를 보내면서, 새해에도 열심히 산에 가고 열심히 파티합시다.
Happy New Year!!!
참가자(19명): 김각중, 김숭자(장원찬), 김영길(유수자), 김윤기(김계숙), 김종남,
박근준, 박정수(노순옥), 안희중, 이종범, 임종수(김경자), 임종홍, 임한석, 최영철,
현해수. (노순옥 기록)
뱀다리: 사진회가 매달 두 번째 금요일에 만나기로 날짜를 정한 것이 산악회보다
먼저였답니다. 사진회원 겸 산악회원인 동문들을 위해 산악회 모임이 2, 4 금요일
에서 다시 2, 4 토요일로 환원됐습니다. 토요일로 환원된 것을 환영하는 장변호사
님과 노기자가 감사하는 마음에서 다음 산행 때 합동으로 저녁을 사기로 했습니다.
첫댓글 金여사 畵室과 慧村齋라, 참 멋지네요! Thanks
익산에는 처음 갔는데, 그렇게 유서 깊은 고을인지 처음 알았네요! 김각중동문의 얼굴을 다시 보았읍니다. 윤동문과 김수자교수님 부부에게 다시한번 감사드림니다.
조난 소식이 없는 걸 보믄 김영길 신임 대장이 임무수행을 제법 한 모양일세그랴
첫 산행 추카
올씨다요
그런데 慧村齋라


아주 격이 다르네여
우리는 기껏 
, 짬뽕 하는 德風樓 밖에 안되는데



. 
. 
.
아마 김수자교수께서 노동들의 먹성에 놀라셨을 것입니다. 30인분 음식을 19사람이 다 먹어 치워서... 그런데 그것은 먹성 좋은 우리들의 죄 만은 아니고 김교수의 음식 솜씨 때문이 아닐찌.... 그리고 환영 플라카드는 감동 중에 하나였읍니다. 윤교수내외분 수고 많이 하셨고요,감사했읍니다.
윤교수 내외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산행안내해 주신 처남 김박사님께도 산행안내 고마웠고 산성에서 끓여주신 맛있는 아라비카 커피도 환상적이었노라고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멋있고 고마운 하루였습니다. 윤 교수내외분께 감사드리고 모두모두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역사탐방을겸한 멋진 산행이었습니다.1년을 마감하는 송년회를 베풀어주신 김박사님과, 김화백님, 윤교수님의 수고와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가내에 건강과 복록이 충만하는 기축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