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 (2017.2.13.) 말씀 /고린도 전서 12 5-6
하나님 나라의 배우들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오늘은 연극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세상은 거대한 드라마 세트장입니다. 하나님은 연출자시고 우리는 주님의 배우들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그냥 마음대로 살라고 태어난 것이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이 연출하시는 그 뜻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관객이 아니고 배우들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똑같은 능력, 똑같은 은사, 똑같은 생활환경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납니다. 각양 각색의 모양 성격 재능을 가지고 하나님께 캐스팅되어 구속 역사 무대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과 비교가 아니라 자신의 맡은 배역을 알고 충실히 감당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어린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나일 강가에 버려져 죽을 운명 이었습니다. 때는 이스라엘이 애굽의 고된 노예 생활로 신음하고 있을 때 였고, 애굽의 바로는 조연으로 발탁되어 노예 백성들을 잔인하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예들이 수가 불어나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여 산파들에게 명령하여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고 명령을 합니다. 바로 그 때 한 레위인의 가정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너무 잘 생겨서 그 부모가 석달을 숨겼지만 그 이상은 어떻게 할 수 없서서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 강에 버립니다. 그 부모와 누이가 일이 어떻게 되는가 멀리 지켜보았는데 마침 그 강으로 목욕을 하러 나온 바로 공주가 그것을 보고 데려다가 아들을 삼아 키우게 됩니다. 모세의 인생은 이렇듯 극적인 전환점을 맞아 죽을 운명에서 다시 애굽 궁에 들어가 모든 학문을 배우며 다음 후계자까지 될 정도까지 기회의 사람이 됩니다. 다행이 그 어머니가 유모 역할을 하여 신앙적으로 잘 지도하여 애굽의 문명 혜택을 받으면서도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기 동족을 생각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동족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말리다가 애굽인을 죽이게 되고, 이것이 문제가 되어 다시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는 신세가 됩니다. 거기서 모세는 40년동안 양을 치며 광야 생활을 하고, 때가 되자 불타는 가시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으로부터 애굽으로 돌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내라는 사명을 받습니다. 여러분, 모세 영화 다 보셨지요? 저도 십계를 여러 번 보았고 볼 때마다 은혜를 받았는데 지팡이 하나로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내리고, 60만 대군이 출애굽하는 장면과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은 정말 압권 이었습니다. 주인공 모세는 배우 찰스헤스톤 이었고, 바로의 역을 맡은 배우는 율부리너인데 배우들이 너무나 연기를 잘 해내서 불후 명작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블라디보스톡에 갔더니 거기에 율브리너 동상이 있느 것을 보고 도상 앞에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 때 러시아 배우라는 것을 저음 알았습니다. 영화는 감독이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만든 것인데, 어떻게 보면 모세의 삶 자세가 드라마 입니다. 400년 종살이 이스라엘의 대 출애굽 사건을 연출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모세를 주연 배우로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처음에 캐스팅되었을 때 자신은 입술이 둔하고 말을 못하니 다른 사람으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에게 가는 것도 두려웠습니다. 자기 배역이 안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르심을 철회하지 않으셨습니다. 조연으로 말 잘하는 아론을 붙여주시고, 소품으로 능력의 지팡이를 들고 가지고 가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연출자가 배역을 캐스팅할 때는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냥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연출가 주님의 부르심은 우리 자신의 의견이 첨가되지 않는 불가항력적인, 일방적인 주권입니다.일단 부름을 받으면 의상 배경 소품들, 필요한 모든 것, 그리고 행동지침들 다 연출가가 제공합니다. 심지어 점심 저녁도 간식도 먹여줍니다. 배우가 하는 일은 단지 최선을 다해서 자기 역할을 감당하는 것 뿐입니다. 고전 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하였습니다. .
나중에 이스라엘 열 왕의 역사를 보면 사울도 초대 왕으로 캐스팅되고, 이어서 다윗도 캐스팅 됩니다. 당시 사울은 보통 사람 보다 어깨만큼 더 컸고, 장사였습니다. 보기에도 왕이 될만 했습니다.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을 구하고 왕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연출자의 말을 잘 들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행동하길 잘 했습니다. 급하다고 제사장이 할 역할을 대신 자신이 하다가 선지자 사무엘의 책망도 들었습니다. 그는 불순종의 상징이 되었고, 사무엘의 책망을 받고 결국 버림받았습니다. 대신 다윗이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좀 달랐습니다. 그는 이새의 일곱 번 째 막내 아들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기 않았습니다. 볼품이 없었습니다. 사무엘이 왕이 될 사람을 택하여 기름 부으려고 이새의 아들들을 불러 모아 이 아이가 왕이 될만 하다 생각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결국 밖에서 양치를 맏내를 데려다가 기름을 부었는데 그 아이가 다윗 이었습니다. 다윗은 가자 어렸지만 믿음이 있었습니다. 양들을 보살 필 때 생명을 다하여 지켰습니다. 사울 밑에 들어가서 악기를 연주하고, 무기 잡는 시종 노릇을 하였지만 충성 되이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왕이 되었는데 사울과 달리 그는 늘 하나님께 물으며 무엇이든지 하나님 뜻 대로 행동했습니다. 백성들도 양 돌보듯이 돌보았습니다.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한 때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 통회의 시간도 가졌지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는 왕의 배역을 잘 감당하였고, 그의 씨에서 영원한 왕 예수 그리스도가 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에수님은 다웃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나중에 다윗은 자신을 돌아보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역대상 17:16) 주님의 부르심은 어떤 직분이던 은총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 전서 12 장에서 직분과 은사에 대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성령도 그리스도도 하나이지만 사람마다 그 맡은 직분이 배역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비교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왜 나는 모세가 아니고 아론인가? 왜 나는 다윗이 아닌가? 왜 나는 베드로가 아니고 도마인가? 또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에 나에게 없는가? 왜 다른 사람은 그수저이고, 나는 흑수저인가? 불평하고 원망하고, 낙담하기를 잘 합니다. 물론 겉보기에는 키 크고 잘생기고, IQ 높고 능력 많은 것이 좋아 보입니다. 그것은 세상 관점에서의 사람들의 생각이고, 하나님 편에서 보면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자기의 할 일 배역이 있는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게 바로 그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주님의 부르심 안에서 내가 어떤 배역을 받은 자인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은사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입니다. 연극을 할 때 작가가 각본을 쓰면 연출가는 그 연극의 맞는 배역들. 극중 인물 역을 가장 잘 소화해 낼 사람들을 캐스팅 합니다. 이것이 연극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연이 되고, 어떤 사람은 조연, 어떤 사람은 액스트라가 되기도 합니다. 캐스팅이 잘 되면 영화나 연극이 살아납니다. 그 후 무명이 일약 명배우로 뜨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연극이나 영화나 잘 맞는 배역을 찾는 것은 아주 중요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배역을 잘 소화해 내야만이 연극을 극 대화를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전 세계를 휩쓴 오징어 게임도 뒷이야기로 배우들의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몇 사람들의 배우들만 연기를 잘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정재의 돗보이는 연기력, 게임을 즐기듯이 하는 노인역의 오영수, 탈북자 정호연, 박해수, 허성태, 아누팜, 김주령 등 조연들의 연기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450명이 넘는 엑스트라들, 그리고 황동역 감독의 군더더기 없는 연출... 한 사람, 한사람 각자의 배역에 충실한 결과가 빚어진 것입니다. 결과 전 세계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즐기고 행복해야 하였습니다.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했습니다. 1억 천만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지금은 셀 수 없습니다. 주연만이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처음 출연해서 인정받는 조연도 있습니다. 이들이 나중에는 주연도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칭찬이 꼭 주인공에게 쏠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이 세상에서 우리의 연극 무대가 막을 내리게 될 때 그렇게 각자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자지 역할을 다 했는가 평가하실 것입니다. 그럼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은사를 받았든지 어떤 직분 어떤 역을 맡았든지 그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하는 자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채플린이라는 영화배우가 있습니다. 자서전을 보면 이 사람이 그렇게 유명한 배우가 되었는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은 어린 시절 늘 가난했습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정신질환을 앓는 어머니, 구멍난 신발과 너덜너덜 해진 옷, 빈민 구호소가 그의 현실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늘 낙천적이고 항상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살려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희극 배우이자 영화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일개 희극 배우였을 뿐 이었지만 세계전쟁의 폐허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 웃음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더 타임즈는 그에 대해서 '세기를 뛰어넘는 환상적이 성공스토리'라고 소개했습니다. 과거 불운했던 바로 그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었는지... 그렇게 세기적인 배우가 되기까지 저절로 된 것은 아닐 것이 아니라는 거입니다. 그가 자신의 배역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모릅니다. 채플린이 <시티 라이트 >라는 영화를 촬영할 때 눈이 먼 꽃 파는 아가씨와 부랑자 채플린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한 장면을 찍는 데 무려 1 년이란 시간을 바쳤다고 합니다. 당시 영화 시나리오에 나오는 장면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부랑자 채플린이 길을 건너는데 길가에 서 있는 고급 승용차가 앞을 막습니다. 그러자 그는 차를 돌아가지 않고 곧장 차의 뒷문을 열고 들어가 반대편 문을 통해 나옵니다. 이 때 그 차 옆에 서 있던 눈이 먼 꽃 파는 아가씨가 고급 승용차의 둔중하게 닫히는 문소리를 듣고 , 거기에서 나온 채플린을 백만장자로 착각하게 만들어야 하는 역 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이 먼 아가씨가 어떻게 부랑자를 밴만장자로 착각하게 할 수 있을까 채플린은 고심했습니다. 그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설사 아가씨가 승용차의 문 여닫는 소리를 듣고 그 안에서 내리는 부랑자를 백만장자로 착각한다 치더라도 그것을 관객이 믿게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채플린은 이 영화를 찍는 데 총 543 일이 걸렸는데 그 중 368 일을 꽃 파는 아가씨와 만나는 장면을 찍는 데 소비했다고 합니다. 즉 그는 이 한 장면을 찍기 위하여 수천 번도 넘게 승용차에 탔다가 내리는 연기를 반복한 것입니다. 역사 속의 수 많은 천재들의 한결같은 모습은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천재성'이 있습니다. 유대교 랍비들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질 수 있는 재능 300개 중에 하나는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 재능이 바로 천재성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찾아내지 않고 타인의 것만 바라보면서 인생을 낭비한다는 것입니다. 채플린의 뛰어난 연기도 그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그의 진가는 타고난 자질이 아니라 한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일년 동안 반복된 촬영에 임하는 그의 노력에 달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노력이 타고난 천재성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창조적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대학 시절 본의 아니게 연극에 캐스팅 되어 생전 처음 연극을 한적이 있습니다. 저에게 연극의 재질이 있는 줄 전혀 몰랐습니다. 맨 처음 역은 광주 여름 수양회 때 ‘생명의 빛 예수 그리스도 ’에 심봉사 역 이었습니다. 소심하고 숫기 없는 내가 대중 앞에 연극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지만 그 기회가 저에게 왔습니다. 한 마디로 선배 목자님의 눈에 발탁된 것입니다. 이왕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연습하고 연기를 하였습니다. 심청이가 이버지의 눈을 뜨게 해드리려고 인당수로 팔려가는 장면에 “청아 가지마라 ~ ” 외치며 따라가다 쓰러지고 일어서는 장면 이었는데 .. 그 때 제가 심봉사 역을 너무 잘해서 사람들은 웃고 울고 포복절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에 저는 계속 연극 주역 캐스팅이 되었고, 각본도 쓰고, 연출도 하였습니다. 제주도 개척시에 역시 학생들을 지도하여 성탄 연극을 하였고, 무안 개척 초기에도 연극을 했습니다. 연극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 배우의 몸짓 언어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 동작을 가슴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연출가의 지시를 잘 따라야하고, 또 스스로 얼마나 많은 연습을 반복해서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결과 내용 전달이 잘 되면 관객은 배우의 행동 하나 언어 하나하나에 의해서 울고 웃고 행복해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세상 무대를 향하여 움직이는 배우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 푸른장교회, 우주교회 동역자님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 구속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명 배우들입니다. 이제는 더이상 관객이 아닙니다. 학교에서는 선생으로, 공장에서는 CE0로서, 직장에서 간호사로, 기자로, 배달부로서, 요양사로, 그리고 온 세상에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목사로서의 배역을 받았으니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터에서 가정으로 돌아와도 연극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 돌아오면 극장이 시작됩니다. 가정에서는 아빠, 엄마, 남편 아내로서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가족들은 식구이기도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관객들입니다. 내가 배역을 어떻게 감당하는가에 따라 읏음과 감동을 주고 가정은 행복의 RHCDL 피게 되고, 연기를 잘 못하면 지루하고 삶이 재미없고 냉냉 할 수 도 있습니다. 내가 배역을 잘 하면 자연히 주변의 사람들도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자. 이해가 됩니까? 내가 관객이 아니라 배우라는 것!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아무리 보잘 것 없은 배역이라도 나의 작은 행동이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내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세계의 무대라는 것입니다. 나의 몸짓 언어 글 하나 하나가 세계적인 행동이 되어 전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세상 배우들과 다른 것이 더 있다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거룩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이 선전하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하고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어떻게 최선을 다해야하는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10-13 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결론,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배우들입니다. 말을 할 때 하나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행동 할 때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일이던, 봉사하는 일이던, 섬기는 일이던 ... 가정에서, 직장에서 내 맡은 일은 주님 대하듯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이렇게 믿음으로 배역을 감당함으로 범사에 하나님 영광 받으시고, 연극이 마치는 날 주님으로부터 아주 잘 했다는 칭찬을 받는 자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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