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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도 독도에는 애국 의용수비대만 있는 것이 아니였다.” | ||||||||||||||||||||||||||||||
10여년간 제주에서 독도로 해녀일을 해온 독도할머니 인터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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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여전에 거린사슴봉사회 회원들과 독도해녀출신이신 김순하할머니댁에서 빨래와 청소를 하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독도관련 이야기를 듣고 한번 더 찾아뵈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다행히 연락이 취해져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얼굴에 환환 미소를 지으면서 “저분이 이 노인네가 힘들괴 외로울때 기초수급자 신청을 해주어서 중간에 끊겼던 지원을 다시 받게 되어 너무 좋아”라며“이 늙은이의 모든 서류를 다 만들어 몇 번이나 지역 읍사무서에 제출하면서도 난 이분에게 단지 고맙다는 소리만 하고 있으니 너무 미안해서......”하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강홍순회장은“공직생활을 정년퇴임하면서 공직에서 살아온 나날들의 보상을, 이제는 다시 갚을 일만 남았다”면서“공무원들이 최선을 다해 국가의 복지정책을 실현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중에는 지원에 필요한 서류나 기타 증빙문서를 작성 못해 지원을 못받는 분들이 더러 있다. 다행스럽게도 김순하할머니와 연이 닿아 이렇게 도움을 드릴 수 있어 제가 더 고마울 따름이다”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갑자기 할머니가 일어나시더니 부엌으로 가시기에 괜찮다고 했지만 할머니께서는 아무말 없이 차를 내주셨다.
차를 한참 마시는 중에 필자에게 서류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이것봐, 기자양반! 국민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의료보험증이랑 매월 무료입욕권을 받게 되었고, 전화선마저 개설 시켜 주었어”라며“이 공을 어떻게 갚나, 고마운 사람들......”이라면서 강홍순회장의 손을 붙잡으시면서 다시금 눈물을 글썽이셨다. 강회장이 또 고맙다는 이야기를 할까봐 먼저 김순하할머니께“이 기자분께 독도 이야기를 해주세요, 할머니”라고 화두를 돌렸다. 그러자 김할머니는 잠시 천장을 쳐다보며 아껴둔 말씀을 시작하셨다. “내 나이가 85살이니까 아마 50여년전쯤이겠지. 전쟁이 끝난 다음해니까, 아마 54년정도일것이야. 그때 전쟁의 피해로 제주지역은 완전 초토화 되었지. 먹고 살아나갈 방법이전혀 없었어. 얼마나 먹을것이 없었냐면 전분쭈시(현재말로 감자 가공공장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돼지사료로 먹었던 내용물이다)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연장해 나갔지. 그러다가 울릉도에서 해녀를 구한다기에 곧바로 지원해서 갔지. 그때 내 나이가 30이 넘었고 아픈 남편과 어린 자식을 위해서라도, 그런 가족들을 위해서 나라도 일을 해야 했으니까”며 잠시 숨을 고르시더니 “3월부터 6월까지 약 3개월정도 독도에서 집을 만들어 살았지. 그때는 접안시설이라는 것이 없고 바다가 험악해서 섬으로 들어가기가 힘들어서......” 필자가“왜 3개월만 그곳에 계셨나요?”라고 묻자“그 이후에는 바람이 거세지고 눈발이 날리면 도저히 살수가 없었어, 그나마 그 시절이 독도에서 가장 평화롭고 조용할때니까” 필자가 다시“그곳에서 무엇을 하셨나요?”묻자 “그 시절에 독도 수산물, 특히 미역은 굉장히 유명했어. 일본사람들이 독도미역을 최고라 불러서 가격을 높이 쳐줄때거든. 그래서 3개월간 미역을 주로 채취하였고, 그 외에 소라, 전복 등 각종 수산물을 채취하고 그랬지. 제주에서 독도 해녀활동을 하기위해 왔다갔다 왕복생활, 그 생활만 10여년을 했을 거야” 다시 필자가“혹시 독도의용수배대원분들하고 만나신적이 있으셨나요?”라고 묻자“아하, 그 분들”하시면서 잠시 미소를 지으시더니“독도라는 섬이 너무 외롭고 쓸쓸한 섬이야,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면 어느 누구 가릴 것 없이 친 가족 같고 평생의 친구가 되지. 얼굴이 까맣고 비바람에 면도까지 하지 않아 무섭게 보여도 우리를 보면서 미소지을때의 모습은 영락없는 장난꾸러기였어” 필자가“그때 독도상황 좀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하고 묻자 할머니는“처음 독도에 갔을때 주변에 침몰한 선박과 난파선, 그리고 그런 파편으로 바다밑을 가득 채웠어, 처음에는 굉장히 무서웠지만 몇 년간 해보니 적응되더라구.” 다시 독도의용대와의 만남과 그 과정을 자세하게 알려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할머니가 잠시 생각하시더니 시간이 걸려도 상관없겠느냐라고 묻자 쾌념치 마시라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할머니는“독도는 2개의 섬으로 되어 있어. 그리고 우리 제주에서 온 해녀 약 6~7명정도는 서도에 살았고, 독도의용대사람들은 동도에 있었지. 서도에만 물이 나오는 곳이 있어서 동도에서 물을 가지러 뗏목을 타고 넘어와야만 했지. 그런데 독도는 참 알 수 없는 곳인데 낮에는 그렇게 평화롭다가도 밤만 되면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앞뒤 분간을 못할정도니까, 하여간 알 수 없는 섬이였어. 그래서 물을 가지러 올 때는 낮에 뗏목타고 와서 물을 수통에 가득 담아 가지고 갔지. 한번은 엄청난 태풍이 불어서 몇일간 물질(해녀들이 바다속에서 수산물을 채취는 일을 가리킴)을 못한 적이 있었어. 태풍이 지나간 후에 의용대 사람이 물을 가지러 오기에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었더니 그 양반이 물은 빗물을 받아먹고, 배가 고플 때는 주변에 갈매기알을 먹으면서 버티었다는 거야. 처음에는 그들이 무서웠지만 외롭고 사람이 그리우니 금방 친해져서 가족이 되 버렸지. 그 양반들이 오면 음식도 나누어 먹고, 그때 제주좁쌀도 서로 나누어 먹고, 세상사는 이야기도 나누었지. 특히 제주에서의 신변잡기같은 주변이야기에 너무들 좋아하더라구. 그곳에서 제주에서 가져간 감자로 감자전도 만들고 빙떡(제주만두라 불리는 지역 고유토종식품)도 만들어 나누어 먹었지.” 그분들로부터 일본에서 독도에 대한 야욕으로 문제발생이나 그 외 어떤 급격한 상황에 대해 들어본적이 있었느냐라고 묻자“아니, 그런 이야기를 전혀 안했지. 우리들이 걱정할 것 같아서 그런건지, 그런 내색을 전혀하지 않았어. 같이 밥이나 간식을 먹다가도 무슨 소리가 나던지 시간이 좀 지나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얼굴이 굳으면서 재빨리 가버리더라구. 그로부터 몇 년후에 그 양반들이 보이지 않아 궁금했는데 나중에 나라에서 지키기로 하여 돌아갔다고 이야기를 들었어. 지금 생각하면 참 훌륭한 분들이었지” 김순하 할머니는 독도 이야기를 하면서 살며시 웃기도 하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는 등 그때의 일상을 돌아보면서 감정이 복잡하게 밀려오시는지 옆에서 보는 필자도 가히 느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다가 왜 제주에 혼자계시냐고 묻자“남편은 대만에서 배를 타는 사람인데 그곳에서 돌아가셨어. 나도 독도에서 해녀를 그만둔 후에 대만에서 살았지. 그곳에는 아들도 있고 해서..... 그런데 남편이 사망하고 애도 결혼하고 그러더니 지속적으로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물이 자꾸 나오는거야. 주위에서 향수병이라 그래서 결국 2000년도에 제주로 혼자 와버렸지. 여기 한림 협제는 내가 태어나고 놀던, 어린추억이 깃들여 있는 내생에 가장 행복했던 곳이야.”
강회장님과 필자가 점심이라도 먹으러 가시자고 하자 한사코 거절을 하시면서“내 점심은 2시경에 읍에서 제공해. 그 배달하는 양반이 네가 밥 먹었다고 하면 섭섭해 해서 안되잖아.”그 이야기에 필자가 왜 식사를 2시에 드시냐고, 제공하는 측에서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고 화를 내자 할머니는“아니, 주변에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식사를 나누어주고 마지막으로 내게 오게되면 그 정도 시간이 되니까. 그리고 나는 늙은사람이고, 하는 일도 없어서 그냥 기다리면 되거든. 나야 식사제공해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뭘더 바라겠어”라며 넉넉한 배려심을 가진 마음씨 좋은 웃음을 필자에게 보여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화를 낸 필자의 얼굴이 화끈거린 것은 당연지사다. 마지막으로 김순하할머니께 하고싶은 말씀 계시냐고 묻자 “이제 내 아이들도 나같이 늙은이가 되버렸어. 그래도 어미이니 걱정이 되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아마 잘살겠지. 난 그저 편안하게 남들에게 피해 안주면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 만나 이야기 나누고, 그냥 이렇게 살았으면 해. 조용히......” 다시 한번 찾아뵙겠다는 이야기를 마치고 김순하 할머니댁을 나섰다. 그 시절 나라에서 신경써주지 못한 우리나라의 독도를, 어떠한 금전적 보상도 없는 오로지 애국심으로 독도를 지키신 우리들의 영웅, 독도의용대분들에게 너무나 외롭고 지칠때 엄마요, 누나요, 동생같이 그들을 지지해준 독도할머니분들. 그런분들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신경쓰지 않아 어려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우리네 착한 할머니들은 그들에게 화를 내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그저 내 운명이라 받아들이시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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