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9 주일설교
본문: 벧전 4:12-19
제목: 그리스도인의 고난
1.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4:12)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이라고 했다.
돌 1톤에 금 2그램 이상이 들어 있으면 금강석이라고 한다.
이 2그램의 순금을 뽑아낼려면 불로 끓이는 용광로에서 분리작업을 해야 한다.
그 분리하는 작업 과정을 연단 또는 단련이라고 한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이전 번역은 정금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사람도, 단련하고 연단해야 순금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뭘 연단하고 단련하느냐? 순금 아닌 잡석들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내 속에 있는 옛 사람과 그 행위들을 제거하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불 시험’은 불과 같은 고난의 시련이다.
웬만한 고난과 시련으로는 버리지 못하니까 불과 같은 고난의 시련인 것이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신 새 사람을 입을려면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불 시험을 받으면서 속에 있는 옛 사람과 애굽을
벗어 버려야 했는데 그들은 끝까지 이를 버리지 않을려고 반항하고 불순종하다가 멸망을 당했다.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들도 이를 버리지 못해 가나안에서 멸망을 당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고서, 주님을 온전히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
우리는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게 유익하던 것 중에 그리스도를 위해 버리는 것이 없다.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고 버리지 못한다면,
그리스도를 알 수도, 그리스도를 얻을 수도, 그 안에서 발견될 수도 없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 스스로, 유익하던 모든 것을 못 버리니까,
불 시험, 곧 고난과 시련의 불로 연단하여 버리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가운데,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불 시험을 받는 것이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
잠깐 고난이라고 하신 것은, 우리에게 주실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를 친히 온전하게 굳건하게 강하게 터를 견고하게 하시는 것이 고난의 목적이다.
그러니,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3)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자가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재림 시에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6)
고난이라도,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받는 고난이 있다.
이런 고난은 악행에 대한 벌로써의 고난이니 의미가 없고 당연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을 때 그것은 복이 있는 자라고 하신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고난을 받는 자 위에 계신다는 것이다.
로마가 핍박하던 시절에, 그리스도인들을 얼음 호수에서 구멍을 뚫고 집어 넣어 죽였는데,
한 사람이 두려워하며 배교를 하며 살 길을 찾아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로마 병정 한 사람이 그 사람을 대신하여 자진하여 그 구멍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가 그 위에 머물고 계시는 성령을 하나님이 보여주셨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인의 이름 때문에 치욕과 고난을 받을 때는,
도리어 그 그리스도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신다.
초대교회와 발도인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평안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치욕과 고난을 맞이했다.
그것이 사람의 의지나 결단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그 위에 계셨기 때문이었다.
주님의 말씀을 영으로 생명으로 살았기에,
그 영을 따라 그들은 고난에 의연하게 순종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죽어갔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벧전4:17-18)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했다.
교회에서 심판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교회를 핍박하지만, 그 핍박으로 알곡과 가라지가 퍈별되는 것을 본다.
보통 평안할 때에는 다 교인 같고, 하나님의 백성 같지만,
큰 고난이 심판으로 임하면, 알곡과 가라지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의 사람과 육의 사람이 판별되고, 참 그리스도인과 유사 그리스도인이 판별된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먼저 시작된다면, 옥석의 구분이 일어난다면,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마지막은 어떠하겠는가?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치 않은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겠는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셨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다.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2:8)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15:9)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29:13)
교회라고 하면서도, 진리의 말씀을, 영으로 가르치지 않고 생명으로 살지 않으면,
전혀 무익함을 경고하시는 말씀들이다.
분별력이 없으면 속아 넘어갈 수 밖에 없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어 그리로 가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의 전통,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무장한 자들이 교회를 지배하고 대세를 이루고 있다.
교리와 신조들을 만들고 성경에 지적으로 충실해 보이니 속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교리조문, 율법조문, 철학조문들은 죽이는 것이라고 하셨다.
살리는 것은 오직 영이다.
먹으로 머리 돌판에 쓰는 것들을 다 영혼을 죽이는 것들이다.
영으로 마음판에 쓰는 것만이 영혼을 살린다.
모든 이론과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되는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4-5)
하나님의 집을 지배해 왔던 유대교회 로마교회 개혁교회 현대교회는 먼저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 심판에 제물이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려야 한다.
하나님과 성경을 팔아서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들,
곧 모든 이론과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해야만 한다.
청교도들이 만든 교리와 신조들도 옥석을 구분하여 버려야만 한다.
구분의 기준은 먹으로 머리 돌판에 쓴 것인가, 영으로 마음판에 쓴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3.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벧전4:19)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는다고 하셨다.(딤후3:12)
제도권을 장악한 그 시대의 지배적 교회들은 참 교회와 성도들을 항상 핍박하였다.
우리는 그 견고한 진들을 무너뜨리고 모든 이론들을, 교리들을 사로잡아 주께 복종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고난을 받게 된다면,
여전히 그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우리의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꼐 의탁해야 한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의탁할 분은 미쁘신 창조주 뿐이시다.
‘미쁘시다’는 것은 ‘믿음성이 있다’, ‘미덥다’의 뜻으로,
하나님은 모든 언약의 말씀에 대해 성취와 행함을 보장하시는 분임을 의미한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시며 주권적 하나님만이 모든 약속을 이행하고 성취하실 수 있다.
그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통치주이시고 심판주이시다.
세상의 그 어떤 세력도 사탄의 능력도 은혜와 믿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고 구원을 하시고 영원한 영광을 주셨다.
우리를 연단하여 새 사람으로, 정금으로 만드시기 위해 주시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자.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다.
우리가 잠시 받은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신다.
그 영광이 이 땅에서도 모세와 같이, 다윗과 같이, 이루어지기도 함을 믿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