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서원에 도착했다.
어떤 사람이 내게 소수서원은 그냥 작으니까 후딱 보면 될꺼라고 했는데.. Oh~~ No!! 아니다!!
우리는 다행이도 단체 관광객을 만났다. 가이드가 있단 말이다. 아싸!
역사를 전공하신 한 아저씨가 가이드인데... 어찌나 설명을 잘하시고 해박하신지. 난 견학온 학생같이 열심히 따라다니고 적는다.
그냥 봤으면 별 거 없다고 했을 소수서원에 얽힌 사연이 참 많다.
<tips>
1. 소나무숲
소수 서원에 들어서면 만나는 소나무들은 대부분 500년 넘었고 1000년이 넘은 것도 있단다. 소나무는 500년이 넘으면 껍질이 거북이 등딱지 같이 갈라진단다.
소수 서원의 입구에 소나무 숲을 만든 것도 다 뜻이 있단다.겨울에도 푸른 소나무같이 인생의 어려운 때가 와도 유생들만큼은 푸르게 견디라는 깊은 뜻.
그리고 이 서원 앞의 소나무들은 "학자수"라고 부른단다.
2. 숙주사지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큰 절 앞에 있는 두 개의 기둥으로 악귀를 쫒기 위한 깃발
을 걸던 것이다.
소수서원은 절이 아닌데 왜 당간지주가 있는가?
이 숙주사지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이곳이 예전에는 절터
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단다. 절간은 모두 불에 타 소실되고 이 돌기둥만 세월을 견디며 서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냥 평범한 돌기둥같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감동이다.
3. 소수사원 옆을 흐르는 작은 강
(소백산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의 원류가 되는 강이다)
소수사원은 또한 단종 복위운도의 근거지가 된다.
세조의 친 동생 금성대군은 나이 어린 단종을 밀어낸 세조(수양대군)에 대항하다가 이곳 순흥으로 유배당한다. 그뒤 금성대군은 세조의 정권 찬탈이 싫어 자진해서 순흥부사로 온 이보흠과 모의하여 단종을 복위시킬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거사 직전에 관노의 고발로실패해 반역죄로 처형당하고 만다. 단종복위운동의 실패로 한때 부유하고 유명했던 순흥은 반역자의 마을로 전락하고 이보흠과 금성대군을 비롯, 이 지방의 모든 양반들이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
이 때 죽은 사람들을 강에 수장했는데 그 피가 15리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곳의 마을을 핏끝마을이라고 한다고 한단다.
강 옆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에 흰 글씨로 백운동, 빨간 글씨로 '경'이라고 써 있다. 붉은 글씨는 원래는 흰 것이였으나, 수장 된 사람들의 원혼이 우는 것 때문에 선비들이 괴로워하자, 제사를 드리고 빨간색으로 칠하고나니 울음이 그쳤다고 한다.
4. 백운동은 소수서원의 예전이름이다.
당시 풍기군수였던 신재 주세붕선생이 고려말 유학자인 안향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백운동서원을 설립한데서부터 기원이 시작된다. 이후 퇴계 이황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재정이 바닥난 사원을 위해 사액을 받기 위해 이름을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다시 닦게 하였음"이란 뜻의 "소수"라고 바꾸었다. 그 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사립고등교육기관으로 공인되었다.
5. 작은 잔디언덕 성생단
이 곳은 일년에 2번 제사 때 제물을 잡던 곳이다. 반성의 '성', 희생의 '생'이란 뜻이다. 원래는 소를 잡았으나, 소가 농경사회에서 꼭 필요한 귀한 동물이기 때문에 왕이나 하늘의 신을 위한 제사때 사용되고 영의정 이하는 염소나 돼지를 잡았단다.
9명의 선비들이 제물이 될 돼지가 흠이 없는지 살피고 모두 동의하면 깨끗히 씻긴 뒤 이곳 성생단에서 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푸른 잔디일 뿐이지만 예전엔 피가 묻어나는 곳이였다니 좀 깨름직하다.
7. 사방에 문이 있는 강학당
소수사원에 들자마자 보이는 강학당은 유생들이 수업을 듣던 곳인데.
선생의 앞에서 등을 보이지 않고 나갈 수 있도록 사방에 문을 내고 툇마루부터는 등을 돌릴 수 있었다고 한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하늘을 찌른다... 요즘과 너무 다르다....
8. 선생님들의 공간 직방재, 일신재
왼쪽은 원장을 위한 직방재, 오른쪽은 부원장을 위한 일신재가 나란히 붙어 있다. 이 위치 역시 의미가 있단다. 설명을 놓쳐 버렸다...
9. 학생들의 기숙사 학구재
3은 학문을 뜻하는 수란다. 천,지,인.. 뭐 이렇게 완벽한 수라고 한다.
그래서 이 학생 기숙사가 3칸짜리 건물이다.
재미있는 것은 학생기숙사를 선생님들의 직방재, 일신재와 나란히 지을 수있는 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옆으로 비껴서 뒤에 가있다는 것이다.
어디 감히 선생님과 제자가 나란히 있으랴 해서 1칸을 물렸는데, 건물의 그림자를 밟게 되어 다시 1칸을 물렸고, 바닥의 높이도 선생님의 숙소보다 1자를 낮추어 지었단다.
기숙사의 가운데 칸은 앞 뒤가 뻥~ 뚤린 구조인데 사시사철 산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단다. 참 멋스러운 우리 조상들이다. 자연을 사랑했던...
근데 우리는 참 많이 변했다. 더이상 이토록 선생님을 존경하지도, 자연을 사랑하지도 않는 듯 보인다.
10. 유물관
작은 유물관에는 국보 111호라는 안양 선생의 영정과, 보물 717호인 주세붕 선생의 영정이 있다.
주세붕 선생은 안양선생을 기리기 위해 백운동 서원을 지은 분이다.
특히 훌륭한 것은, 중국 사신들이 방문할 때마다 요구 하던 물건중의 하나인 인삼을 공출하라는 임금의 지시가 떨어지면 각 지방에서 모든 일을 제치고 백성들이 인삼을 캐러 다녀야하는 것을 보고 열매를 따오게 해서 인삼을 인공재배하게 한 사람이란다. 그래서 이곳 풍기가 인삼으로 유명하게 되었단다. 참 훌륭하다...
또한 오리 이원익의 영정이 있는데 이 분은 광해군과 인조에 걸쳐 영의정을 5번이나 했단다. 광해군을 죽이려는 인조에게 목숨을 건 충언을 해서 광해군을 강화도에서 살게 하고, 5년뒤 인조가 광해군을 죽이려 하자, 울며 충언을 해서 광해군을 제주도에서 살도록 했단다. 그 곳에서 광해군은 늙어죽었단다. 참 대쪽같은 의리 있는 분이였던 것 같다.
설명을 정말 재미있게 해 주신 아저씨 덕에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녹음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여기에 적은 것 말고도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너무 빨라서 놓쳤다.
소수서원에서 나와 부석사로 가려고 하는데 버스시간이 한참 남았다.
아저씨 아줌마가 부석사로 간다기에 좀 얻어탈 요량으로 한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이 차는 우리가 대절한 차야. 셔틀버스가 아니라고~'한다.
피! 좀 태워주면 어디가 덧나나...
기 죽지 않고, 다시 시도. 이번엔 고급 승용차를 타고 온 노부부와 할머니다. 아저씨는 태워주려고 하는 것 같은 눈치였는데... 옆좌석에 앉은 아주머니 "우리 가다가 밥도 먹어야하고 그래서 안돼"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좀 서운타....
도넛 이후에 아무것도 먹지 못해 무지 무지 배가 고프다...그치만 군것질은 안 땡겨서 쫄쫄 굶고 앉았다. 맛있는 산채 비빔밥 먹어야지!!
결국 정류장도 없는 곳에서 바닥에 앉아 기다리다 차를 하나 놓치고 겨우 버스를 타고 부석사로 향한다.
첫댓글 허걱 신나서 썼는데 내가 보기에도 너무 길다.. 하지만 다음에 소수서원 가는 사람들은 가이드 아저씨 못 만날지도 모르니.... 갈사람들은 꼼꼼히 읽어주겠지..
그랴 언니의 꼼꼼함이 크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필시 있을껴...
암.~ 도움이 되고 말고. 꼼꼼이 읽어 뒀으니, 나중에 소수서원 여행할때는 가이드가 따로 필요 없을것 같아.^^
안읽을꼬야..ㅋㅋ ..다 읽어 부렀넹..우히히..
나도 꼭 갈거야...치이 치 ^^ 부럽당..
수학여행 돌아오는 차에 들렸지요 거기 좋습니다. ㅋㅋ 그리고 저는 길거리에서 밥을 먹었답니다.
소수서원에는 인근 시청에서 봉사활동 나오신 아주머니들이 언제나 대기하고 계십니다...5명 정도만 되도 부탁드릴수 있고 그분들의 설명만해도 충분하구여...가끔 거기 부팀장쯤되시는분이 계시는데 그분이름은 개인적으로 알려드릴게요 그분이 갈쳐주면 더 좋다고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