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군(玉山君) 이제(李躋)가 졸(卒)하였다. 조회와 시장을 철폐하고 조제(弔祭)와 예장(禮葬)을 전례(前例)와 같이 하였다. 이제의 자(字)는 경보(敬甫)인데 태종(太宗)의 측실(側室)의 아들 근녕군(謹寧君) 이농(李禯)의 장자(長子)이다. 정통(正統) 임술년에 처음 원윤(元尹)에 제수되어, 갑자년에 명선 대부(明善大夫) 저천정(紵川正)이 되고, 병인년에 정의 대부(正義大夫)에 올라 옥산군(玉山君)으로 봉(封)해졌다. 천순(天順) 신사년에 또 승헌 대부(承憲大夫)에 가해지고 세조(世祖)가 원각사(圓覺寺)를 창건하자 이제(李躋)를 제조(提調)로 삼아서 사랑과 은혜가 매우 융숭하였고, 성화(成化) 기축년에는 가덕 대부(嘉德大夫)에 올랐다. 일찍이 산릉사(山陵使)가 된 지 얼마 아니되어 광릉(光陵)의 사초(莎草)가 무너져서 이 책임으로써 면직되었다가 곧 복직되었다. 을사년에 특별히 흥록 대부(興祿大夫)에 뛰어 올랐는데,
이에 이르러 졸하니, 나이가 62세이다. 시호(諡號)는 공간(恭簡)인데, 일을 공경히 하여 위에 이바지하는 것이 공(恭)이고, 평이(平易)하고 게으르지 아니하는 것이 간(簡)이다. 사람됨이 총명 민첩하여 여섯 조정을 내리 섬겨서 위(位)가 1품에 이르렀다. 아들은 시안군(始安君) 이탁(李擢)ㆍ영인군(寧仁君) 이순(李揗)ㆍ강원 부정(薑原副正) 이진(李振)ㆍ팽성 부정(彭城副正) 이정(李揁)ㆍ진강 부정(鎭江副正) 이찬(李攢)ㆍ검성 부정(劍城副正) 이읍(李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