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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의 남자] 03
S#1. 기풍집 (밤)
거실로 쳐들어오는 채린, 기풍 따라 들어 오며
기풍 : 당신,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여기 들어와 살겠다는거야?
채린 : 어디야?
기풍 : ..뭐가?
채린 : 내가 살 방이 어디냐구? 여기야? (기풍방으로 가려면)
기풍 : (막아 서며) 나가!
채린 : ..?
기풍 : 너같은 것들 수도 없이 많이 봤어. 여자라는 무기로 엉치고 뭉개려고 드는 것들. 아주 진력이 나.
채린 : (OL) 함부로 말하지마.
기풍 : (비웃으며) 그럼 약혼자까지 있는 여자가 오밤중에 짐 싸들고 딴 남자 집에 찾아오면서..너는 다르다고 얘기하고 싶은거야?
다르니까 믿어 달라고?
채린 : (치욕스럽다) 난.. 그런 여자 아니야.
기풍 : (놀리듯) 그럼 어떤 여잔데?
채린 : (노려 본다)
기풍 : 어떤 여잔데에? 한번 보여줘 봐. 응?
하며 툭 건드리는데, 채린 모욕감에 기풍의 뺨을 친다.
불끈한 기풍 이번엔 즉시 채린에게 갚아 버린다.
악 소리와 함께 한쪽 구석에 나가 떨어지는 채린. 입가에 피가 맺혔다.
기풍 : (당황해서) 어?
채린 : ...
기풍 : (쫄려서) 니가 먼저 시작한 거야. 이거 정당방위야... 알어?
채린 : (앉은 자세로 바닥을 바라보며) 한가지만 부탁할게.
기풍 : 뭐, 뭔데?
채린 : 내일 채권단 회의에만 나타나지 말아 줘.
기풍 : (어이 없다)
채린 : 당신만 없으면 내가 어떻게든 채권단들 설득해 볼께. 아니 설득할 자신 있어.
기풍 : 허.
채린 : (일어서며) 당신이 날 어떻게 생각해도 좋아. 웃기는 여자라고, 지조없는 여자라고 생각해도 좋아. (처절하게)
하지만, 지금 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야. ..나 하나 죽이고 살리는 거 지금 니 손에 달렸어. ..도와줘, 제발.
기풍 : (올리브 흉내) 도와줘~ 제발... 우끼지마, 니 눈엔 내가 뽀빠이로 보이냐~ 널 뭘 믿고 도와줘?
채린 : (본다)
기풍 : (외면하며) 죽든지 말든지 그건 니 맘대로 해. 대신 내 집에선 죽지마. 날 더운데 경찰서 오락가락 하는 것도 피곤...
하는데 문소리가 난다.
기풍 보면, 채린 이미 나가고 없다
S#2. 문 밖 (밤)
기풍의 집을 내려오는 채린, 죽고 싶은 기분이다.
입술을 물고 거리로 내려서던 채린, 걸음 멈춰선다. 참았던 눈물이 핑글 도는….
S#3. 기풍집 안 (밤)
기풍 : 씨.. 죄도 없는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정말.. (채린 가방 발견하고) 어이 씨. 야!
기풍 가방을 들고 창으로 가 소리를 지르려다 멈춘다.
가로등 아래 주저앉아, 어깨를 들썩이는 채린을 보고 조금 싸 해지는 기풍. 채린 모습 부감으로 보이면서.
S#4. 승우 집무실 (밤)
굳은 표정으로 창밖을 보고 있는 승우. 노크소리와 함께 들어 오는 팀장.
신팀장 : (서류를 내밀며) 채권단 명단이야. 삼송에 우호적인 그룹과 적대적인 그룹, 둘로 나눴어.
승우 : 고마워, 형. (넘겨본다)
신팀장 : 아무리 우호적이래도 빚쟁이는 빚쟁인데 말야.
승우 : (보면)
신팀장 :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없는 신임사장을 믿어 주겠어?
승우 : 힘들겠지... 형, 일단 내일 아침까지 30억 준비해 줘.
신팀장 : 우리 자금 사정도 빠듯해. 내일 결제할 어음만도 100억이 넘어.
승우 : 그래서 부탁하는 거잖아.
신팀장 : (담배를 물며) 아무리 부자지간이지만, 회장님 명을 거역하면 니가 힘들어 질텐데.
승우 : (무거워진다)
신팀장 :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천하의 최승우가 왜 그런 모험을 해? 그래서 얻는게 뭐야?
승우 : 글쎄.. 사랑하는 사람 얼굴에서 웃음을 지켜주는 거,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닌가?
신팀장 : (웃음) 부럽구만..
승우 : (씁쓸한 미소)
걸려오는 핸드폰. 승우 받는다.
승우 : 채린이니?
채린F : …오빠…
승우 : 전화는 왜 꺼 놨었어? 무슨 일 있는거야?
S#5. 달리는 차 안 (밤)
승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차를 달린다.
그 위로 덮히는 채린과 승우의 통화.
채린F : 오빠… 나 그냥 오빠랑 결혼해 버릴까? 다 팽개쳐 버리고 나 오빠한테 도망가 버릴까?
오빠 하자는대로 그냥 오빠 뒤에 숨어 살까?
가까워 오는 백화점 건물을 보며 제발 있어야할텐데…..하는 승우.
그 표정 위로
채린F : 근데… 안 되겠지? 그럼 안된다구 아빠가 저렇게 날 쳐다보는데 그럼 안되겠지?
승우, 백화점 입구에 차를 세우고 내린다.
S#6. 백화점 앞 (밤)
셔터가 내려진 백화점 입구. 승우, 입구 쪽을 살피면 아무도 없다.
걱정스런 표정으로 돌아서던 승우의 눈에 들어오는 큰 기둥 뒤에 기대선 그림자... 다가가 보면 채린이다.
승우, 안타깝고 속상한 기분인데
승우 : ...이해 할 수가 없다.
채린 : (흐느낀다) …
승우 : (안타까운) 왜 이러는 건데? 그냥 나 믿고 나한테 기대면 안 되니?
채린 : 그러지 마 오빠. 오빠까지 이러면 나...
승우 : (누그러지며 다가가는) 힘들다는거 알어. 그렇지만 이건 아냐. 이렇게 헤매는 너 보는 거 (한숨쉬며) ..힘들다.
채린 : (안기며) 아빠만 생각하면... 가만 있질 못하겠어. 편하게 웃고 밥 먹는 것두 너무 죄송하구. 흑..
승우 : (갑갑하다)
채린 : 오빠, 나 도와 줄거지?
승우 : (끄덕끄덕)
채린 :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오빤 내편 돼 줄거지?
승우 : 그래..
채린 : 나 혼자 해볼꺼야. 내일 채권단 회의. 나 포기 안해. 나 혼자서 막아 볼꺼야.
승우 : (안된다는 거 뻔히 알기에) 채린아, 그건..
채린 : 알아, 오빠가 무슨 얘기 하려는지 알아. 그래서 더 그래.. (떨어지며) 오빠.. 내일 채권단 회의에 오지 마.
나 험한 꼴 당할지도 몰라. 그런 모습.. 오빠한텐 보이기 싫어.
승우 : (그 맘 알겠다. 눈물 닦아 주며) ..힘들면 전화 해. 기다리고 있을께.
채린 : (북받쳐 끄덕이며) ..너무 힘들면..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면.. 그땐 오빠 하자는 대로 할께.. 그래도 되지?
승우 : (한숨) 그래.. 니가 원하는 대로 해. 하지만, 니 옆엔 항상 오빠가 있다는 거, 그것만 잊지 마. 알았지?
채린 : (끄덕인다)
승우 : (안아 주지만, 앞 일이 암담하다)
그 모습 부감에서. (F.O)
S#7. 기풍집 안 (아침)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채린의 가방. 열린 문으론 대자로 뻗어서 잠들어 있는 기풍이 보인다.
그 단잠을 깨우는 초인종 소리.
기풍 부시시 일어나 벅벅 긁으며
기풍 : 이 새벽에 어떤 싸가지가..
문을 확 열어 제끼던 기풍, 채린을 보자 표정 처리가 애매해진다. 어제의 일도 있고 막 해대기는 미안한 기분인데..
기풍 : ..뭐, 뭐야? 새벽부터 왜 또 쳐들어 오구 그래?
채린 : (말없이 기풍을 밀치고 들어 간다)
기풍 : 야! (따라 들어오면)
채린 : (가방 찾아 들고, 욕실로 들어간다)
기풍 : 야, 지금 뭐하는 거야? (하는데. 전화기 울린다)
기풍, 전화부터 받는다.
S#8. 산사 (아침)
기풍F : (소리 치듯) 새벽부터 누구야?
장삼부 : 여지껏 퍼자고 있네?
기풍F : 할배!
장삼부 : 오늘 채권단 회의 아임메?
기풍F : 어, 할배가 그걸 어떻게 알어? (하다가) 할배, 나한테 준거 쓰레기 채권인 거 다 알고 준거지. 그치?
장삼부 : (히죽) 알고 준거면 또 어쩔거인데?
S#9. 기풍집
기풍 : (열뻗쳐) 진짜 넘하는 구만. 손주 놈 거지새끼 만들어 놓으니까 기분이 그렇게 좋아? 누군 새벽부터 골져 죽갔는데,
할배는 거기서 띵까띵까 노니까 좋냐구~
장삼부F : 자업자득이지비.
기풍 : 정말 나랑 인연 끊고 싶어서 그런거야?
장삼부F : 그럼 나야 고맙디. 호적 정리 해주까?
씩씩거리는 기풍의 등뒤로 욕실을 나서는 채린이 보인다. 정장에 머리를 틀어올린 채린, 분위기가 훨씬 성숙해보인다.
채린 나타나면 기풍, 그녀의 변화에 잠깐 얼떨떨하다.
기풍 : 그래 좋아, 인연 끊자고! (채린 보며) 야, 너 거기 서!
채린 : (무시하고 나간다)
기풍 : (부아가 더 난다) 긴 말 필요 없고, 할배, 앞으로 나 부를때, 백기풍이라고 불러 줘.
장삼부F : 와 하필 백기풍이네? 차라리 천기풍, 만기풍 하지비?
기풍 : 왜냐구? 백부자 할마이한테 내 성 확 팔아 먹을꺼니까! 끊어!
장삼부F : 뭐이, 어드래? 야, 이 간나야! 장기풍이~ 이런 호랑말코..
기풍 : (부서질듯 수화기를 내리며) 호랑말코 같은 영감이 감히 날 물 먹여?
기풍 화장실에서 가방 들고 쫓아오며.
기풍 : 야! 송채린! 가방 안 갖구 가? 야!
채린 : (돌아서며) 다시 한번 부탁할게. 오늘 회의에만 나타나지 말아 줘. (문 닫고 나간다)
기풍 : (가방 내던지며) 어우~ 씨! 저걸 그냥 엎어 버려? ..말어?
S#10. 백화점 앞 (낮)
정문에 올라가는 '삼송백화점 채권단 1차회의' 라고 적힌 플랭카드.
복규, 왔다갔다 하며..
복규 : (신났다) 왼쪽! 왼쪽! 더 올리라니깐~ 야, 그 쪽이 삐꾸 나잖아. 아이~ 참. 거 하나 딱딱 못 맞춰?
화면에 들어오는 채린. 표정이 굳는다. 정문을 밀고 들어가는 채린.
복규, 채린의 뒷모습을 보고 히죽 웃는다.
S#11. 부사장실
손가락을 까닥대고 있는 미라.
복규, 들어온다.
미라 : 채권단들은, 다 모였어?
복규 : 예. 오늘자 어음 소지자들까지 몽땅 모여서 바글바글합니다. 완전히 돛대기 시장이예요.
미라 : 송채린이는?
복규 : 지금 막 올라가는 거 보고 왔습니다.
미라 : 안색은 어때?
복규 : 글쎄요. 뒷통수만 봐서 잘 모르겠는데요.
미라 : 근데 그 작자 오늘 나타날까?
복규 : 누구? 송채린이 약혼자요?
미라 : 100억.
복규 : 아~ 장기풍? 그야 당근이겠죠. 백억이면 채권단 결정도 들었다 놨다 할 액수 아닙니까?
미라 : 근데도, 아무도 장기풍이 존재를 모른다 이거지? 재미 있겠어.
복규 : 안 올라 가십니까?
미라 : 침몰하는 배에 같이 탈 이유가 없잖아. 요 앞 찜질방에 있을테니까 수시로 상황보고나 해.
복규 : 예. (인사하며) 그럼 깨끗히 씻으십시오. 구석구석~
미라 : (휙 돌아본다)
복규 : (당황) 모, 목욕 잘 하시라고..
미라 : (한심하다, 휙 나간다)
복규 : 흐흥~ 우리 미라씬 화내는 것도 귀여워..
S#12. 사장실
초조하게 왔다갔다하는 채린. 핸드폰을 들어 본다. 단축키를 누르면, 뜨는 '최승우' 벨 소리가 가면.. 전화를 끊는다.
마음의 갈피가 안 잡히는 채린. 책장으로 다가간다. 책장 열고, 상자를 소중하게 꺼낸다.
아버지의 낡은 구두를 소중하게 만져보는.. 충선, 들어오다가, 그런 채린을 보며 뭉클해진다.
채린 : (충선 보면)
충선 : 시간 됐습니다.
채린, 구두를 내려다 보다가 눈 감으며
(채린) : 아빠, 도와 줘.
눈을 뜨면.. 결의가 가득한 채린의 얼굴위로
기풍E : 혹 우리 할배 빚 받아 내는 비법 아슈?
S#13. 사채골목 좌판
가느냐 마느냐 고민중에도 왕성한 식욕을 보이는 기풍.
아줌마 : 와? 기풍이 총각, 어데 돈 떼인 거 있어?
기풍 : 먹고 죽을래도 없는데, 남줄 돈이 어딨어?
아줌마 : (야채 썰다 칼 들고 설치며) ...왜 돈 꿍쳐놓고 배 째라 하는 인간들 있잖어. 그런 것들한텐 해결사를 동원했다는
소문도 있긴 하더만, 그야 난 겪어보질 않았으니 모르겠구. 왜 우리처럼 가진 거 없는 인생들은 꼭 밥벌이를 시켜
악착같이 받아내셨잖여. 나 이 좌판도 영감님이 빚 갚으라고 차려주신건데. 몰랐어?
기풍 : 아줌마 빚이야 좌판 하나 차려주고 받아낼 수 있지만 이건.... (묘책이 안 선다)
아줌마 : (다시 야채를 썰며) 그래도 받을 거 있는 팔자가 상팔자여. 줄 돈 못 주고 쫓겨다니는 거, 그 심정 당해보지 않음 모름지.
그럼. 내가 말야... (하고 신세타령 할려면)
기풍 : (O.L) 여기 얼마야?
아줌마 : 잉, 튀김 2천 오백원허고, 오뎅에.. 사천원인디.
기풍 : (긋는 시늉) 달아 둬.
걸어 나온다. 오백원짜리 동전 꺼내, 공중에 던졌다, 받았다하며
기풍 : 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복잡한 것일수록 단순하게… 숫자면 확 부도! 학이 나오면?.. 고민 더 때리자.
휙 던졌다 받는다. 학이 나온다.
기풍 : 운이 좋은 기집애구만. (다시 던지면 또 학이 나온다) 이거 왜 이래? (다시 던지면 또 학이다) 어, 씨~
(있는 힘껏 공중에 던진다)
사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동전이, 멀찌감치 떨어진다. 다가와서 확인하려는 순간.
차 바퀴가 동전을 깔고 멈춰선다. 폭스바겐에서 고개를 내미는,
찬비 : 야~ 탈래?
기풍 : (어이없어) 머리에 소똥도 안 벗겨진 기집애가.. 그냥 콱! 야, 차 빼! (바퀴에 달라 붙으며) 차, 빼라니까!
찬비 : (혀를 낼름 내밀며) 오빠 사는데 어디야?
기풍 : 우리집은 알아서 어따 쓰게? 너두 쳐들어 올 일 있냐?
찬비 : .....? (내리면서) 우리 집이지, 어째 오빠집이야?
기풍 : 암튼.. 뭔 일인데?
찬비 : 응~ (친절하게) 내 친구중에~ 시집간 언니네 집에 얹혀 사는 애가 있는데, 눈치 보인다구 해서~ 이 집 빌려줄려구.
기풍 : (당황) 너네 할마이가 그러라 그래?
찬비 : 응!
기풍 : 진짜?
찬비 : 으응! 가난한 사람은 도와줘야 된다는게 할머니 신조야. 울 할머니 착하지.
기풍 : 집 없는 놈 쫓아내는게 착한거냐? 비켜봐. (찬비, 밀치며 운전석에 오른다)
찬비 : 뭐하는 거야, 오빠~ 이거 오늘 처음 뽑은 거란 말야.
기풍 : (부웅 차를 몰다가 끽 멈추고, 내려와 동전을 줍는다. 또 학이다) 미치겠구만~
S#14. 차 안 (낮)
기풍 : (거칠게 운전하며) 대한민국 늙은이들 단체로 노망났냐? 집 빌려달라고 그렇게 얘길했는데, 그걸 고새 까먹어?
찬비 : 살살 좀 몰아~
기풍 : 부서지면 너네 할마이가 고쳐줄 거 아냐~
찬비 : 무슨 소리야, 이거 내 돈주고 산 차라구.
기풍 : 너는 벌써 상속 받았냐? 니네 할마인 쓰레기 채권 같은 거 안 주디?
찬비 : 무슨 소리야?
기풍 : 그런게 있어. 꽉 잡아!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기풍의 차.
비명을 지르면서도, 기풍에게 매달리는 찬비.
기풍 : 얘가 왜 이래~ 떨어져, 임마! 사고 나~
찬비 : (그럴 수록 비명 지르며 더 달라붙으며) 오빠, 기분 짱이다. 더 밟아!더 밟으라니까!
기풍 : (뭐 이런게 다 있노~)
S#15. 회의장
뒷좌석까지 선 사람들이 빼곡이 차 있다.
채린 들어서면, 시선이 집중되고.. 긴장해서 멈춰서는 채린. 승우가 와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돌아보지만,
채권1, 2, 3 등 (1부에서 보였던)만 싸늘하게 돌아본다.
호흡을 가다듬는 채린. 걸어가면 길을 열어주는 채권자들.
단상에 마련된 자리에 착석하는 채린. 충선은 우호적인 채권자들 (2부에서) 옆자리에 앉는다.
진행자 : 삼송백화점 채권단 1차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채린 : (초조하다)
문이 열리면, 채린, 혹시나 해서 보지만 복규 들어와 뒷쪽에 선다.
실망스러운 채린.
진행자 : 송채린 사장님. 앞으로 나와주십시오.
채린, 일어나 나간다. 채권자들의 냉냉한 눈빛에 몸이 굳어 버리는 채린.
채린 : (겨우) 송채린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진행자 : 채권단에 오늘부로 결제일인 어음 30억원이 접수되었습니다. 삼송측은 30억에 대한 결제능력이 있습니까?
채린 : ...없습니다.
실망하는 채권자들의 웅성대는 소리들. 충선, 우호적인 채권자들 걱정스럽다.
싱글거리는 복규.
S#16. 백할머니 뒷뜰 (낮)
쨍쨍 내려쬐는 햇볕. 밭고랑 한 가운데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기풍. 발이 저리다.
벌레를 잡고 있는 백부자와 양산을 받치고 있는 찬비.
기풍 : (코에 침을 바르며) 할마이~ 그러지 말고 집 좀 빌려달라니까! 공짜로 달라는 것도 아니잖아. 나도 돈 있어.
(채권을 이마빼기에 붙이며) 봐 봐.
찬비 : (떼어 보더니) 와, 오빠 부자다~ 할머니 백억이예요!
백부자 : (힐끔 보더니) 그 돈이면 딴 집 알아봐, 이놈아. 귀찮게 하지 말고.
기풍 : 에이~ 씨. 지금 당장 못 받으니까 그렇지.
찬비 : (채권을 백부자 보여주며) 할머니가 깡해주면 안돼요?
백부자 : (채권 흘낏 보더니, 인상 굳어진다. 모른 척) 부도난 회사 채권 받아서 어디다 써? 빳빳해서 밑닦개로도 못쓴다. 버려.
기풍 : (한쪽 다리 살며시 펴며) 어~ 할마이도 여기 알어?
백부자 : 이 배추버러지란 놈은 말이다..
찬비E : 네. 할머니. 배추벌레가 왜요?
기풍 : (뭔 소리 하나 보고)
S#17. 채권단 회의
치승 : 한별은행 여신부장. 원치승입니다. 저희 은행은 종전 입장과 마찬가지로 삼송백화점에 신규여신을 제공할 수 없는 바,
30억에 대한 결제를 거부합니다. (앉는다)
웅성대는 사람들.
진행자 : 삼송측 입장을 밝혀주십시오.
채린 : (가다듬으며) 전 어제 처음으로 대표이사 직함을 받았습니다. 아직 백화점 상황도 파악 못했고,
심지어 부채가 얼만지도 정확히 모릅니다. 지금의 저로서는 있지도 않는 장미빛 계획으로 여러분을 속이거나
그렇다고 무한정 기다려 달라고도 않겠습니다.
채린, 단상 옆으로 걸어 나온다.
사람들 채린의 말을 기다리며 목을 길게 빼는데
채린, 무릎을 꿇는다.
웅성대는 사람들.
채린 : 제가 여러분앞에 내놓을 대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일주일만 시간을 주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습니다.
제 뼈를 깎으라면 깎고, 피를 팔라면 팔겠습니다. 삼송백화점 여기서 죽이지 말아주십시오. 여긴 저희만의 회사가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수십년 동안 거래하며 함께 일궈 온 회사잖습니까? 기횔.. 주십시오.
충선, 민망해져 고갤 숙이고
웅성대는 사람들. 이때, 일어나는 우호1.
우호1 :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채권단 : (본다) 그 얼굴들 위로
백부자E : 배추벌레란 놈은 배추속부터 파 먹질 않아.
S#18. 백할머니 뒤뜰
백부자 : 물론 맛이야 연한 속살이 더 있겠지. 하지만 그걸 파 먹었다간 배추가 말라 죽고 말거고 그러면
저도 굶어 죽고 말지 않갔어?
기풍 : (일어나다가 귀를 쫑긋 기울인다)
백부자 : 그렇다고 질긴 겉껍질도 안 먹지. 요렇게 속닢이 하나씩 더 날때마다 꼭 그만큼만 중간잎을 야금야금 먹어 치우는 게지.
찬비 : 아하~ 배추벌레도 머리를 쓰네.
기풍 : (뭔가 깨달은 듯한 심각한 표정에)
우호1E : 저흰 오늘 어음을 돌리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S#19. 동 채권단 회의
채권단 : (웅성거린다)
채린 : .... (본다, 고맙다)
우호1 : 저흰 타계하신 전임 사장님께 큰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그런 분들이 많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체 채권단에 제의를 드리고자 합니다. 어음 만기 연장을 해서 기회를 줄 지,
아니면, 최종 부도처리를 할 지 표결로 결정을 하게 해주십시오.
채권1 : 무슨 소리야, 지금? 저런 핏덩이가 뭘 안다고 기회를 줘?
채권2 : 시간 준다고 달라질거 같애?
채권3 : 회사를 쪼개서 팔든지 어쩌든지 당장 대책을 내 놔야 될거 아냐!
점점 험악해져가는 분위기.
채린, 참담하다. 승우라도 와 줬으면 돌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S#20. 백화점 앞
차에서 내리는 승우. 승우차 뒤로 급하게 멈추는 다른 승용차. 팀장 내린다.
급하게 다가오며 고개를 끄덕이는 팀장.
신팀장 : 일단 30억은 준비 시켰어. 회장님 아시면 나 죽는 거 알지?
승우 : (끄덕) 갑시다!
S#21. 동 채권단 회의
채권단과 말을 마친 후, 마이크 앞에 서며..
진행자 : 좋습니다. 채권단에선 00어패럴 김사장님의 제의를 수용, 삼송부도를 표결에 붙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신임사장도 이의 없으시죠?
채린 : (어쩔 수 없다, 끄덕인다)
충선 : (다가와 채린을 일으켜 세운다)
진행자 : 주거래 은행인 한별은행과 제일투신은 기관투자가 자격인 바, 투표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오늘자 어음 30억에 대해 표결로써 결정하겠습니다. 먼저 투표용지에 각자의 어음액수를 밝혀 주시고
S#22. 백 할머니 뒷뜰
기풍 갑작스레 부엌에서 식칼을 쥐고 나와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얼굴위로
진행자E : 삼송 백화점에 기회를 주자는 분은 동그라미를, 나머지 분들은 엑스표를 해서 투표함에 넣어 주십시오.
찬비 : (놀라) 오, 오빠.. 지금 뭐하는 거야? 왜, 왜 그래?
백부자 : (흔들림 없이 본다)
기풍 : 할마이. 나 배추 한포기만 짤라 갈게.
기풍, 식칼을 들어 휙 내리찍듯이 후린다.
비명을 지르는 찬비, 돌아보면 배추포기를 들어 올리는 기풍.
영문을 몰라 보는 찬비.
기풍 : 할마이. 다시 올께, 그 집 남 주지 마! (나간다)
찬비 : (눈치 보면)
백부자 : (가보라는 눈짓)
찬비 : 오빠! (따라 나간다)
백할머 : 호부에 견자 없다더니 귓구멍은 열렸구먼. 흐흐. (웃는다)
S#23. 동 회의장
긴장감이 흐르는 실내. X 표를 긋는 적대적인 채권자들.
우호적인 채권자들 소중하게 동그라미를 그린다.
채린 : (초조해져 손수건만 만지작거린다)
충선 : (불안하게 주변을 흘낏대고)
복규 : (채권자5.6.7들 등너머로 본다. 채권자들 망설이면, 빨리 X자를 그리라고 혼자서 몸살난다)
진행자 : (투표함을 들며) 체크 하신 분들은 여기 투표함에 넣어 주십시오.
기도하듯, 눈을 감는 채린.
이때, 들어오는 승우. 땀에 흠뻑 젖어있다. 시선들 모인다.
고개를 들던 채린,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오빠~' 승우,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가면,
채권5 : 저 친구 누구야?
채권6 : 신우그룹 기획실장이잖아. 송채린이 약혼자.
채권5 : 그럼, 삼송뒤에 신우그룹이 있다는 거네?
채권7 : 둘이 결혼하면 회살 합칠거 아냐?
채권5 : 그렇겠지? (하더니)
일제히 동그라미를 그려 넣는다. 일그러지는 복규. (경과)
채린 : (이마에 식은 땀이 흐른다)
승우 : (이마를 가리킨다)
채린 : (어색하게 웃으며, 땀을 닦는다, 오빠도 닦으라는 눈짓)
승우 : (닦으며, 부드럽게 웃어준다)
복규 : (회의실 뒷편 벽에 기대고, 핸드폰에 낮게) 부사장님? 예, 이제 곧 투표결과가 나오는데요?
리얼타임으로 중계해 드릴려구요. 지금 어디 씻고 계십니까? (소리지르는 지 귀에서 뗀다)
진행자 : 개표결과, 총 30억 어음에 참가자 45명중에 기권자가 5명입니다.
어음 만기연장에 찬성하신 분들이 총 40명중에 18명으로...
채린 : (어두워진다)
충선 : (한숨)
진행자 : 어음 총 액수는..
복규 : 총 40명중에 18명이 찬성이랍니다. 이제 송채린이는 완전히 끝장나.. 엌..
이때, 문이 쾅 열린다. 한 손엔 배추, 한 손엔 식칼을 들고,
기풍 : 안녕들 하슈~
채권단들 : (돌아본다)
채린 :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다)
기풍 : 어~ 회의중이구만. 계속들 하슈. 계속해~ (걸어 나온다)
진행자 : 거기! 식품코너는 지하에 있습니다. 관계없는 잡상인은 여기서 나가주세요.
벽에 달라붙어 주륵 미끄러지는 복규.
기풍, 뚜벅뚜벅 걸어오면. 채린, 제발 돌아가 줘~ 하는 눈으로 기풍 보지만, 무시하고 채린 앞으로 다가온다.
노려보는 승우. 채린을 향해 가슴패기를 내미는,
진행자 : 송사장님. 저 분도 채권잡니까?
채린 : (묵묵히 기풍을 노려본다)
기풍 : (가슴패기에서 어서 채권을 꺼내라는 듯) 빼!
채린 : (마지못해 꺼내며, 낮은) 나쁜 자식~
기풍 : (놀리듯 빙글 웃는다)
진행자 : 송사장님?
채린 : ..예 .. 맞습니다.
진행자 : 어음액수가 얼마죠?
채린 : ..백..억 입니다.
기풍 : (유들유들) 안들리잖아~ 크게 말해야지. 더 크게~
채린 : (체념과 기풍에 대한 분노가 터지며) 백억..입니다!
일시에 술렁대는 사람들.
승우, 당황해서 채린을 보지만,
채린, 끝났다.. 고개를 떨구고 주저앉는다. 기풍, 조회대에 배추를 턱 올려놓는다.
기풍 : (마이크 툭툭 치더니)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충선 : (기풍보고) 어.. 프랑스..
기풍 : 에~ 여러분은 내가 돈 못 받아서 난동이라도 부리러 온 줄 아는 모양인데~ (하더니)
식칼로 배추를 내리친다. 반으로 짤리는 배추. 기겁을 하는 사람들.
기풍 : 나도 성질 같아선, 이 놈의 회사 단칼에 아작 내고 싶은 사람이야. 하지만, 그렇겐 못해! 왜냐?!
진행자 : 지금 무슨 얘길 하려는 겁니까?
기풍 : (칼로 가리키며) 가만 있어, 당신!
진행자 : (찔끔한다)
기풍 : 이 지랄같은 회사에 내 돈 백억이 물려 있어! 나보다 더 크게 물린 사람있어? 없지?! 좋아. 그럼. 한마디 하지.
에~ 여러분! 우리 모두, 배추벌레가 됩시다!
영문을 몰라 보는 사람들.
기풍 : 나도, 당신들도 모두 배추벌레가 돼야 돼! 배추벌레! 알았어?! (식칼 쾅 꽂으며) 이상! (걸어나가면)
뻥해 있는 사람들. 채린도, 충선도..
진행자 : (기풍에게) 지금 어느 쪽 편을 든겁니까?
기풍 : (자신 가리키고) 배추벌레! (채린 가리키며) 배추! (휙 돌아 나간다)
벽을 붙잡고, 비틀비틀 일어나며,
복규 : (핸드폰) 부사장님. 얘기가 이상해져 버렸슴다. 그게 말이죠.. (돌아서면)
다시 날아오는 문짝. 처절한 신음소리.
S#24. 회의실 앞
걸어 나오는 채권자들.
채권2 : 뭐야? 그럼 일주일 더 기다려야 되는 거야?
채권1 : 새파란 년이 일주일 안에 무슨 수로 자구대책을 내 놔. 어차피 끝난 께임이야. 기다리면 돼!
채권3 : 아까 그 놈 누구야? 웬 배추벌레 타령이야? 농촌 지도소에서 나왔어?
S#25. 사장실
문을 닫고, 벅차게 돌아서며
채린 : 오빠!
승우 : 힘들었지?
채린 : (눈치 못채고) 고마워. 오빠가 안 왔으면, 나 포기했을지도 몰라.
승우 : 왜 얘기하지 않았니?
채린 : ..응?
승우 : 어음이 백억 더 있다는 거,
채린 : 내가 해결하고 싶었어.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 아빠랑, 오빠한테 보여주고 싶었어.
승우 : ... (착잡하다)
채린 : 울 아빠가 일이었으니까, 울 아빠가 나한테 남긴 일이었으니까.. 오빤.. 내 맘.. 알지?
승우 : (그 맘 알지만, 자신 어깨가 너무 무거워진다)
채린 : 고마워, 오빠.. (안긴다)
승우 : (안아 주지만, 앞 일이 까마득하다)
S#26. 복도 (사장실 밖)
기풍 옆에 달라붙어.
충선 : (싱글벙글) 역시 자네 처음 볼 때 부터 범상치 않은 인물인줄 알았어.
기풍 : (뭔 소리 하냐는 듯 보면)
충선 : 그 뭐시냐. 불란서말도 잘하고.. 근데 사채꾼이 불란서엔 왜 갔나? 갸들도 사채 쓰나보지? 봉쥬르 사채~
기풍 : 아이씨. 만원만 줘 봐.
충선 : 만원? 왜?
기풍 : 여기 오느라고 점심도 못 먹었다니까. 빨리 줘 봐봐.
충선 : 거금인데. (얼결에 주려다가) 언제 갚을 건데? 이자는 몇부 줄건데?
기풍 : 지랄같은 회사 구해줬더니, 만원짜리 한 장에 벌벌 떠냐~ 관 둬~ 사장한테 받을테니까.
S#27. 사장실
기풍, 사장실 문을 벌컥 연다.
포옹을 하고 있는 채린과 승우. 놀라서 떨어진다.
기풍 : 어? 백화점인 줄 알았더니, 호텔이네~ 보기 좋시다~ 계속하슈. 계속해.
기풍을 보는 승우의 눈에 불꽃이 튄다. 이죽거리는 얼굴로 돌아서는 기풍.
채린 : 오빠, 잠깐만.. (나간다)
승우 : (채린을 부르려다가 만다)
S#28. 승강기 앞
충선 : 왜, 사장님도 안 주신데?
기풍 : (괜히 심술나서) 회사 살리랬지, 누가 연애하라 그랬어? (벽 한 번 걷어차고,승강기 버튼 꽉꽉)
채린 : 장기풍씨!
기풍 : (돌아보면)
채린 : ..고마..워요..
기풍 : (승강기에 오른다) 고마울 거 없어. 어음이야 언제든지 돌릴 수 있으니까.. 각오하고 있으라구.
(엄지 손가락을 거꾸로 내린다)
채린 : (불안해진다)
S#29. 야외 주차장 (낮)
차에 기댄 채, 핸드폰을 누르고 있는 찬비. 기풍 나온다.
찬비 : (흘낏 보며) 어디 갔다 이제 와?
기풍 : 배추 팔러 갔다 왔다. 왜?
찬비 : (여전히 핸드폰에 신경) 오빠, 진짜 배추벌레 맞나 보네?
기풍 : 이게~ (때리려 하면)
찬비 : 잠깐만.. (하더니, 핸드폰 버튼을 빠르게 누른다)
기풍 : 뭐하는 거야?
찬비 : 예스! 800원 뛰었다.
기풍 : 뭐가 뛰어?
찬비 : 생명공학 주식 샀거든, 흑사봉이 연짱 껴서 망치 칠때가 됐다 싶었는데 드디어 오늘 튀겼어!
기풍 : (뭔 소린지 몰라, 꿈벅거린다) 너도 주식하냐?
찬비 : (끄덕) 몰랐어? 나 선수잖아. 대학생 실전 증권투자 대회 1위. 229.87%의 신화! 소 찬 비!
기풍 : (눈만 껌벅껌벅)
찬비 : 가자! 내가 오늘 쏜다!
기풍 : 뭘 쏴?
S#30. 불 한증막
미라 : 뭐야? 장기풍이 채린이 손을 들어줘?
복규 : 예~ 갑자기 혜성처럼 솨악 나타나더니, 제 코피를 터뜨리고..
미라 : 그 놈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이야?
복규 : 제가 얼굴을 볼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틈을 안주고 말입니다. 다시 제 면상을 그냥, 콱..
미라 : 시끄러워! (골치 아픈 듯 주저앉는다)
복규 : 이제 어떡합니까? 송채린이 진짜 사장이 되버린거죠? 그쵸? 부사장님?
미라 : 닥치지 못해! 내가 이대로 물러 설 것 같애! 송채린, 이 애숭이 기집애.. (독기가 흐른다)
S#31. 신우그룹 기획조정실
승우의 얼굴위로 들리는
최회장E : 대체 무슨 일을 그따위로 처리하는 거야!
묵묵히 서 있는 승우와 팀장. 팀원들.
최회장 : (팀장에게) 막지는 못할 망정, 그 장단에 춤추는 놈은 또 뭐야! 신팀장, 너 제정신이야!
신팀장 : 죄송합니다.
승우 : 제 책임입니다. 신팀장 나무라지 마십시오.
최회장 : 꼴 좋다. 니가 그렇게 장담하던게 고작 이거였냐?
승우 : (참담하다) 아직 다 끝난 건 아닙..
최회장 : (O.L) 여러 소리 할 거 없어! 넌 앞으로 삼송에서 손 떼! 이제부턴 내가 처리한다! (나간다)
난감해지는 팀장과 팀원들. 외면한다. 넥타이를 거칠게 잡아 빼는 승우의 표정 길게 잡히고.
S#32. 백화점 앞
플랭카드가 내려지고 있다.
충선 : (신이 나서) 확 잡아 당겨 버려!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힘이 없어! 찢어져도 되니까, 확 당겨버리라니까!
지켜보고 있는 채린에게 함박 웃음을 지어 보이는 충선. 이때, 들어오는 미라와 복규.
충선과 복규. 눈빛으로 신경전을 나누고..
채린 : (돌아보다가, 반갑게) 언니~
미라 : (웃음) 고생 많았지. 미안하다, 내가 하도 바빠서 말야.
채린 : 아냐, 언니. 신경써줘서 고마워.
미라 : (웃음) 무슨 소리야~ (가시 있는) 니가 채권단 설득시켜준게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인데.
그럼 오늘은 들어가서 푹 쉬어라, 응? (돌아서는 얼굴이 차가운데)
채린 : 언니!
미라 : (어느새 밝은 얼굴로 돌아보면)
채린 : 자구대책안 세우려면, 백화점 경영상태를 알아야 되는데, 자료 좀 주실 수 있어요?
미라 : (내키지 않지만) 그러지, 뭐. (하다가) 어차피 자구대책 만들려면 백화점 현황정돈 파악하고 있어야겠지. 안 그래?
채린 : 고마워요.
미라 : 고맙긴. (돌아서다가) 참, 오늘 장기풍이란 사람 때문에 살아 났대며?
채린 : ... (밝지 않다) 그런 셈이죠.
미라 : 그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이니?
채린 : ... (사실 불안하다)
미라 : 회사운명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손에 달렸다니, 참~ 그럼 그 인간 마음 바꾸는 날이 우리 백화점 제삿날이 되는 건가?
채린 : (무거워진다)
S#33. 부사장실
의자에 털썩 앉는 미라.
미라 : (기막힌) 하~ 겁도 없는 기집애. 벌써 날 부리려 들어? (뭔가 생각하다가) 97년 자료부터 하나도 빠짐없이 몽땅 갖다 안겨!
복규 : 뭐하러 복잡하게 그럽니까? 작년 재무제표 자료만 보면 훤하게 알 수 있는데..
미라 : 재무제표는 새로 작성해서 보내.
복규 : 예?
미라 : 회계원장하고 다른 재무제표 뽑아 주란 말야.
복규 : 아, 그러니까, 실제 장부랑 다른 걸 보면.. 이사회때 개망신은 기본이고, 자구대책 세워 봤자 말짱 헛 거라 이거죠.
느낌이 팍 오는데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부사장님 (나간다)
미라 : 어디 멋대로 까불어 봐라.
S#34. 사장실
사장실 책상위로 사진틀 (1부에서)을 올려놓는 채린. 사진속의 아버지 얼굴을 만지며,
채린 : 이제 시작이야, 아빠. 아빠의 꿈, 반드시 이뤄낼꺼야.
이때,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충선과 용역원들.
채린 : 김과장님.
충선 : (자랑스럽게) 일동 차렷!
용역원들 : (뚤레뚤레 차렷을 하면)
충선 : 신임 사장님이신 송채린 사장님께 대하여~ 경례!
채린 : (웃으며, 경례를 받는다)
충선 : 뭣들 합니까~ 파리가 미끌어지도록 빡빡 광내야지.
용역원들 청소를 시작하면,
채린 : 고마워요. 김과장님.
충선 : 고맙긴요. 이제 시작입니다. 사장님.
채린 : (굳게 고개 끄덕)
충선 : (청소하는 걸 보며 마뜩 찮아) 아~ 그걸 끌고가면 어떡해? 들어서 옮겨야지. (하면서 달라 붙는다)
채린 : 저도 거들께요! (붙는다)
사이좋게 웃으며 물건을 나르는 채린과 충선.
발을 걷어 부치고, 물청소를 하고 있는 채린과 충선의 표정이 밝다.
낑낑대며 키 높이가 넘는 장부를 들고 오던 복규. 사람들의 신이 난 모습 보고,
복규 : (괜히 찜찜해져) 내가 잡은 줄이 썩은 새끼줄은 아닌지 몰러~ (하면서, 발을 옮기다가 비눗물에 발라당 자빠진다)
S#35. 검도관
호구를 입고, 대련중인 승우와 신팀장.
기합과 함께, 거칠게 몰고 들어가는 승우. 신팀장을 미친 듯이 가격한다.
채린E : 울 아빠 일이었으니까, 울 아빠가 남긴 일이었으니까.. 오빤, 내 맘 알지?
최회장E : 넌 앞으로 삼송에서 손떼! 이제부터 내가 처리한다!
기합이 더 커지며, 내려치는 승우의 죽도.
나동그라지는 신팀장.
신팀장 : (호면 벗어 던지며) 야, 최승우. 너 사람 잡을 일 있어?
승우 : (그제서야, 호면을 벗고 숨을 몰아쉰다)
S#36. 바가 있는 술집 (밤)
술을 거푸 마시는 승우.
팀장 : 천천히 해. 오늘 너답지 않게 왜 이래?
승우 : (피식) 나다운게 뭔데, 형?
팀장 : 힘든 거 알아. 니 말대로, 우호적인 합병을 한다쳐도, 삼송 부채가 너무 커..
차라리, 법정관리 후에 공매로 사들이는게 합리적일 수도 있어.
승우 : 회사 도산시켜서 헐 값에 사들이는게 어떻게 합리적이라는 거지? 그런 논리라면 기업경영자가 사채꾼이랑 다를 게 뭐 있어?
팀장 : 어차피 회장님 뜻은 정해졌어. 설사 회장님이 안 나선다해도, 송채린이 뭘 할 수 있겠나? 막말로, 회사 도산하고 나면,
니가 백기사로 나서서 구해주면 되는 거 아냐?
승우 : 형은 그 친굴 몰라. 회살 도산 시킨 게 우리쪽인 걸 알게 되면, 아마 날 용서하지 않을꺼야. (벌컥 마신다)
팀장 : (안쓰럽게 본다)
S#37. 경영 지원팀 회의실
브리핑을 받고 있는 채린. 다른 현장 (자회사 의류)의 실물사진들이 곁들인 슬라이드와 백화점 현황. 매출액 등등..
기획팀과 일일히 악수를 나누는 채린. 빠져 나오면, 긴 한숨.
S#38. 불이 꺼진 백화점 전경 (밤)
S#39. 사장실 (밤)
탁자 가득 쌓여 있는 장부들.
꼼꼼히 읽으며, 책장을 넘기는 채린. 울리는 핸드폰 소리.
채린 : (무의식중에 뻗어) 여보세요.
승우F : …
채린 : 여보세.. 오빠야?
승우F : .. 채린아.
채린 : 응?
승우F : 채린이.. 너 오빠 믿지?
채린 : 그럼~ 내 가장 든든한 백그라운든데. 오빠 술 마셨어?
승우 : .. 그래 .. 오빠만 믿어… 오빠 말고는 아무도 믿지 마.. 알았지?
채린 : (웃음) 오빠, 술 많이 마셨구나. 그치? 오빠, 술 취한 거 첨 보네~
승우 : 채린아.. 채린아.. 오빠 말고 아무도 믿지 마. 알았지?
채린 : (이상하지만) 알았어.. 오빠.. 피곤할텐데, 그만 들어가서 쉬어. 응? 그래..
전화를 끊는 채린. 뭔가 찜찜하지만 자료에 눌려 다시 집중한다.
S#40. 나이트클럽
테이블에 앉은 기풍, 술 벌컥 들이키고. 찬비 안주 챙겨주고
기풍 : 바로 그 순간! 내가 사시미 칼을 팍! 꽂으면서 그랬지. 야! 이 배추벌레만도 못한 따식들아!
찬비 : 오빠~ 죽음이다. 넘 멋져~
기풍 : 우헤헤~ 오빠가 한 멋짐 하쥐. 그깟 돈이 문제냐~ 백억? 맘만 먹으면 한 큐에 긁는 다는 거 아냐~
찬비 : 그으럼~ 오빠 돈 얘긴 그만하고 나가자!
기풍 : 그때! 채권자들이 뭐라 그런줄 알어?
찬비 : 와아~ 박수치고 난리났대며? (지겹다) 알았으니까, 나가서 춤 추자. 빨랑~
기풍 : (후회가 되는 지) 에이씨, 괜히 배추벌레 한다고 했나? (하다가 끌려 나간다)
신들린 듯 춤을 추는 찬비와 헤롱거리는 기풍.
S#41. 나이트클럽 앞
파장이다.
다 빠져 나가고.. 찬비와 기풍. 웨이터들만 달랑 남았다.
기풍 : 마, 전표 끊으라니까~
웨이터 : 형님. 프랑스 뜨기 전에 애들 몰고와서 만땅고 채웠잖습니까? 이제 더 못 긁어드린다니까요.
기풍 : (찬비 앞에서 쪽팔리다) 내가 마, 오늘 백억을 쏜 사람이야. 백억!
웨이터 : 우리한테 백원이라도 쏘아 보십시오. 예?
찬비 : (불쌍한 듯) 오빠, 돈 없어? 내가 내줄까? (웨이터에게) 여기 얼마예요?
기풍 : (말릴 힘도 없이, 낮게) 야~ 하지마. (하다가) 어이씨. 이런 개쪽 팔림....
S#42. 사장실
통화중인 채린.
채린 : 지금 무슨 소릴하는 거야? 일주일 연장시킨다고 큰 소리친게 누군데?
기풍F : 시끄러! 나 오늘, 플로어 뛴 지 십년 만에 스타일 완전히 구겼어. 이런 개쪽이 누구 때문인지 알어? 다 너 때문이야!
채린 : (나쁜 놈.. 이를 악문다) 도대체 원하는게 뭐야?
기풍F : 낼 날 밝는데로 어음깡해서 넘길꺼니까. 잘난 니 애인한테 어음 막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 그래.
채린 : (미치겠다) 도대체 왜 이러는데? 왜 사람 속을 뒤집고 난리야?
기풍F : 분명히 얘기했다. 나 내일 어음 돌린다! (끊긴다)
채린 : 여보세요! 여보세.. (갑갑하다. 울고 싶어진다) 나쁜 자식!
S#43. 사채골목 앞
차에서 내리는 기풍. 취했다.
찬비 : 오빠~ 낼도 우리집에 올꺼지?
기풍 : (인상 찡그린다) 도대체 니네 할마이, 집 빌려준대는 거냐, 만다는 거냐?
찬비 : 할머닌 아무한테나 돈 안 빌려줘. 삼고초려는 기본이니까. 꼭 와야돼?~ 알았지. 간다~
찬비 차 가면 기풍 건물 본다.
S#44. 백화점 앞 (밤)
서류뭉치를 들고 택시를 기다리는 채린.
슁슁 달리는 택시들. 겨우 잡아 탄다.
S#45. 차 안
채린 : 00호텔로 가주세요.
뒷좌석에 몸을 기댄다. 피곤하고, 걱정스럽다.
미라E : 그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이니? 회사운명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손에 달렸다니, 참~
그럼 그 인간 마음 바꾸는 날이 우리 백화점 제삿날이 되는 건가?
기풍E : 분명히 얘기했다. 나 내일 어음 돌린다!
채린 : (모질게 결심한듯) 아저씨. 명동 사채골목으로 가주세요!
S#46. 기풍집 (밤)
기풍 효자손으로 침대밑의 동전 하나를 필사적으로 끄집어 내고 있다.
기풍 : (신나서) 신라면 하나 건지시고..
쿵하고 문닫는 소리 들리면.
기풍 : 도둑님, 이 집엔 묵고 죽을래도 돈 없네요.
거실로 밀고 들어오는 채린.
기풍 : (짜증난다) 밤마다 왜 이러는 거야 정말. 당신 진짜 여기 들어와서 살겠다는 거야?
채린 : 언제까지 그러구 있을건데? 몸매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지?
기풍 : (그제서야 자신의 몸을 보면, 팬티 차림이다. 런닝을 끌어 내려 가리면)
채린 : (기풍을 밀치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린다)
기풍 : 야~ 거긴 안돼! 거긴 내 방이라니깐! (안되겠다, 일단 옷부터 챙겨입고.. 욕실로 간다)
S#47. 기풍방
어질러진 침대 위의 배추 한 포기. 코코한 냄새.
코를 잡고 인상을 찡그리는 채린. 도색잡지에 벽면 가득한 전화번호들. 여자 이름들.
못 말리는 놈이군~ 싶다.
S#48. 욕실 안
집 크기에 비해 상당히 넓은 욕실. 커다란 나무욕조 (일식)가 놓여있다.
빨래통을 뒤집어, 바지를 꺼내 입으며,
기풍 : 저 기집애 장난 아니네~ (거울 한 번 보고, 물 한 번 묻히고, 하~ 입냄새 확인하고, 나간다)
S#49. 거실
기풍 : 뭐야~
채린 : (긴 다용도문을 애써 당긴다)
기풍 : 거긴 왜 열고 난리야? 뭘 찾아? (하면서도) 비켜 봐.
문을 힘껏 당기면, 쏟아지는 물품들에 짓눌리는 기풍.
먼지를 털어내며 버둥대며 일어나면, 접이용 침대 (선텐용)를 주워들고 내미는.
기풍 : 이걸 왜 날 줘?
채린 : 침대가 하나 밖에 없잖아.
기풍 : 나더러.. 여기서 자라구?
채린 : 아니. 저기 (사무실을 가리킨다)
기풍 : 다, 당신 뭐 착각하나 본데? 여긴 내 집이야. 집주인은 바로 나라구.
채린 : 월세 낼꺼야. 얼마면 돼?
기풍 : 월세? (궁색한 나머지 반가워서) 어, 얼마 줄껀데?
채린 : 백억에 매달 덧셈해.
기풍 : 어이, 씨 보자보자 하니까, 증말~
채린 : 왜? 돈 받기 싫어? (뻔뻔해지기로 작정한 표정이다)
S#50. 사무실
먼지투성이 바닥에 접이침대를 펼치는 기풍.
기풍 : 받아야지. 내가 악착같이 받아내고 만다. (벌렁 눕는다)
몸을 움직일때 마다 삐걱대는 침대.
버둥대다가, 화가 나는 지 벌떡 일어난다.
기풍 : 내가 왜 여기서 자야 되는데? 내 집 아냐, 내 집!
벌떡 일어나 거실 문을 왈칵 연다.
S#51. 거실
쿵쾅대며 채린 방문을 벌컥 여는 기풍.
웃옷을 벗다가 화들짝 놀라 다시 가리는 채린.
채린 : (버럭) 노크도 할 줄 몰라?!
기풍 : (무시하고 침대위의 배추를 집어 턱 안기며) 배추벌레란게 있다!
채린 :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기풍 : 배추벌레는 속부터 파 먹어 배추를 죽이지 않는다!
채린 : ...?
기풍 : 배추벌레는 배추속닢을 키워서 잡아 먹는다!
채린 :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기풍 : 인간 장기풍이 앞으로 당신 인생에 배추벌레가 되겠어.
채린 : ....!
기풍 : 내 빚을 다 갚을때까지, 송채린 넌 죽을 권리도 없어. 아니 절대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어.
채린 : ...!!
기풍 : 니 인생은 나한테 저당 잡힌거야. 알겠어?
채린 : 내 조건 받아 들이겠다는거야, 지금? 어음 안 돌리겠다고 약속하는거지?
기풍 : 날 만만하게 보지 마. 난 대한민국에서 가장 지독했던 사채업자의 손자야!
채린 : 나 역시 만만하게 보지 마. 내 아버진 백화점 최고의 경영자였어.
눈빛이 부딪치는 두 사람.
지지 않겠다는 채린의 눈빛과 넌 끝났다는 듯한 기풍의 시선에서 불꽃이 인다. (F.O)
S#52. 승우방 (아침)
와이셔츠를 입은 채로 잠들어 있는 승우. 눈을 뜬다.
창문으로 드는 햇살에 반사되는 사진틀. 승우와 채린의 사진이다. 물끄러미 본다.
S#53. 승우집 식탁 (아침)
2층계단을 내려오는 승우.
승우 :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머니.
엄마 : 그래 잘 잤니? 어서 앉아라.
승우 : (앉으며) 아버지는요?
엄마 : 새벽 댓바람에 나가셨다. 은행사람들이랑 조찬모임 있다고 그러시더라. (국그릇을 놓아준다)
승우 : ..한별 은행사람들요?
엄마 : (앉으며) 그런거 같더라.
승우 : (표정이 어두워진다)
엄마 : 웬 술을 그렇게 마셨어? 무슨 고민있니?
승우 : 고민은요.. (하다가) 어머니.
엄마 : (보면)
승우 : (망설이다) 저, 채린이한테 청혼할 생각입니다.
엄마 : (끄덕끄덕) 상 치른지 얼마 안됐는데, 흉 안될까 모르겠다.
승우 : 어머닌 채린이 반대 안하시죠?
엄마 : 난 니가 니 아빠 피 닮는 거 별루 싫여. 남자가 꼭 야망으로만 살라는 법 있니?
지 여자다 싶은 사람 만나, 평생 오순도순 깨 볶으며 사는게 사람답게 사는 거지. 안 그래?
승우 : (웃는다, 고맙다)
S#54. 백화점
커다란 서류가방을 든 채 출근하는 채린. 어슬렁거리며 뒤쫓아 오는 기풍.
채린 : 언제까지 졸졸 쫓아 다닐거에요?
기풍 : 지구 끝까지~ (사이) 밥 안 먹어?
채린 : 밥 먹을 시간이 어딨어요? (간다)
기풍 : (좇아가며) 그럼 밥값이라도 줘!
채린 : (승강기 앞에 서며) 먹고 죽을래두 없네요~
기풍 : 어~ 씨.. 무슨 사장이 딸랑 5천원두 없냐? 딴데 가지 말고 사장실에 꼼짝 말고 있어. 어디 가면 간다고 나한테 보고해야 돼.
화장실 갈때도.. 알았어?
채린 : (한심하다) …
기풍 : 그럼 여기서 난 이만. (휙)
채린 : (어이 없고 얄미워 쥐어박고 싶어서) 어휴~ 어휴.
S#55. 백화점 식품코너
미라, 복규 걸어온다.
미라 : 송채린인 어때?
복규 : 지금쯤 가짜 재무재표만 열나게 외우고 있을걸요. 회계원장이랑 틀린지도 모를겁니다.
암것도 모르다가 내일 이사회때 퍼엉! (히죽 웃는다)
미라 : (짧은 미소) 장기풍이 사진 입수해 와.
복규 : 장기풍이요? 왜요?
미라 : 그 놈만 포섭하면, 게임이 쉬워질 수도 있어.
복규 : 아, 장기풍을 꼬셔 송채린을 한 방에 퍽 날려 버린다? 부사장님은 역시 천재이십니다. 천재. 지니어스(genius)!
걸어가는 두 사람 너머로, 시식코너에서 음식을 주섬주섬 먹던.
기풍 : 아줌마. 밥 같은 건 없어? 반찬만 팔면 뭐해? 밥도 같이 먹어야 맛을 알지.
미라 : (흘끔 돌아보면)
기풍 : (보며) 언니도 한 입 할래?
미라 : (사무적 미소, 돌아서 걸으며 복규에게) 저런 쓰레기들 처분할 방법 없어?
복규 : 그래도 고객이잖습니까? (하고 보다가 고개를 갸웃한다) 저 뒷통수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S#56. 승우 집무실
승우 : (인터폰에 대고) 김비서. 나 잠깐 외출합니다. (일어서는데)
신팀장 : (급하게 들어오며) 회장님께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승우 : (보면)
신팀장 : 지금 한별은행하고 제일 투신 사람들 만나고 오는 길이야.
승우 : (인상 굳는다)
신팀장 : 아침부터 급한 호출이길래, 무슨 일인가 달려가 봤더니.. 은행권 사람들하고 조찬모임을 하고 계셨어.
승우 : 무슨 얘기들 오갔어?
신팀장 : 처음엔 삼송쪽 자구대책을 먼저 들어보겠다고 했는데, 회장님께서 몰아 부치셔서 법정관리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어.
승우 : (급하게 밀치고 나간다)
S#57. 회장실
승우 : (벌컥 문 열고 들어오며) 회장님!
회장 : 문 닫아라.
승우 : (문을 확 밀쳐 닫으며) 꼭 이런 식으로 해야 됩니까? 삼송을 기필코 도산시켜야지 속이 시원하시냔 말입니다.
회장 : 어디서 목소리를 높이는 거냐?
승우 : 채린인 제 약혼잡니다. 아버지 며느리가 될 여자라구요!
회장 : 난 망한집 딸 들여 아침 저녁으로 얼굴 보면서 살고 싶은 맘 없다.
승우 : 아버지!
회장 : 정리해. 여자는 많아.
승우 : 아니오. 저한텐 하나 뿐입니다. 전 무슨 일이 있어도 채린이와 결혼합니다! (휙 나간다)
회장 : 승우야! ... 한심한 놈!
S#58. 차 안
굳은 얼굴로 운전을 하고 있는 승우. 복잡한 심정이다.
결심이라도 한 듯, 핸즈프리로 전화를 하는..
S#59. 사장실
자료를 보고 있는 채린. 전화 오면,
채린 : 여보세요. 어, 오빠.. (속도 모르고) 나 죽기 일 분전이야. 자료를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 어떡해? (만나자 그러는 지)
오늘? 글쎄.. 오늘도 (밤)새야 될 거 같은데.. 미안해. 내가 연락할께. 응. (끊는다)
기풍 : (흉내) 오빠~ 나 죽기 일분 전이야...
채린 : (심술나는 표정으로 보면)
기풍 : 앞으로 공적인 전화든 사적인 전화든 다 나한테 보고해.
채린 : (어이 없다) 어련하시겠어~
기풍 : (회중시계 보더니) 휴~ 벌써 점심시간이네. 오늘 직원식당 메뉴는 뭘까나~ (채린 보며) 어이 가지. 점심은 내가 쏠께.
S#60. 아파트 (낮)
기본 세팅이 다 된 실내.
두리번 거리는 채린모. 뒷편의 승우.
승우 : 급하게 마련하느라, 좀 비좁으실 겁니다.
채린모 : (맘엔 안들지만) 아니, 뭐~ (욕실쪽으로 가며) 욕조는 넓나? 난 매일 반욕해야 하는데.. (본다, 심드렁)
(승우를 보고는, 부러 밝게) 고마워, 최서방.
승우 : 괜찮습니다.
채린모 : (미안해져) 채린이 그 기집앤 엄마 이사하는데 와 보지도 않네~
승우 : (망설이다) 어머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채린모 : 뭔데?
승우 : 날짜를 잡았으면 합니다.
채린모 : (환하게 밝아지며) 결혼 날짜?
S#61. 사장실 (밤)
탁자에 앉아 회계장부를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는 채린.
뒷 편에 앉아 키득키득 스포츠신문을 보고 있는 기풍.
신경 쓰여, 몇 번 야리지만, 기풍은 모르고..
채린 : (탁! 볼펜 놓고) 그만 좀 웃을 수 없어? 다람쥐도 그렇겐 안 웃겠다.
기풍 : (입을 삐죽이더니 다시 키득인다)
채린 : (짜증에, 머리를 감싸쥔다)
기풍 : 뭔데? 뭔데 하루 죙일 붙잡고 그래? (기웃 보더니) 합계잔액시산표? 손익계산서?
채린 : (확 당기며) 본다고 알어?
기풍 : 참내~ (기분 나쁘다) 그러는 당신은 알어?
채린 : 그쪽 아니어도 충분히 복잡하니까 제발 좀 나가줄래?
기풍 : 나도 여길 이용할 충분한 권리가 있네, 이사람아~ (소파에 벌렁 눕는다) 어~ 배고파 벌써 야식 타임 됐나?
채린 : (얄밉게 본다. 낮게) 식충이!
S#62. 승우 집무실
업무, 정리를 하고 인터폰하는 승우.
승우 : 아까 내가 부탁한 거 준비 됐어요?
비서 : 네, 실장님.
비서, 미니 장미 다발과 도시락 포장을 건넨다.
승우 : 고마와요.
S#63. 불꺼진 백화점 전경
울리는 전화벨(E)
S#64. 동사장실
채린 : (핸드폰 울리면, 받으며) 여보세요.
(승우) : 바쁜 모양이구나?
채린 : (밝아지며) 오빠~ 웬일이야? 아까도 전화해 놓구선.
(승우) : 저녁도 굶으면서 일하는 건 아니겠지?
채린 : 저녁? (시계보더니)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투정) 배고프다~ (비비며) 눈도 아프고.. 어디야, 오빠?
(승우) : 글쎄, 어딜까? 맞춰 볼래?
채린 : 어딘데?
순간, 전원이 틱하고 나가 버린다.
깜깜해지는 실내.
채린 : 어머, 어떡해? 관리과에서 다 퇴근한 줄 아나 봐. 불이 꺼졌어. (어둠속에서 더듬거리며) 오빠, 잠깐만~ (하는데)
전원이 들어오며, 밝아진다.
채린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승우.
채린 : (여전히 수화기를 든 채, 반가워서) 뭐야~ 놀랐잖아.
승우 : (들어온다) 여전하구나. 한 번 시작하면 온통 빠져드는 거.
채린 :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승우 : 글쎄. 꼭 여기 있을 것 같던데?
승우, 뒤에 감추어 두었던 긴 상자를 꺼내 들어 보인다.
포장을 열면, 환상적인 초밥들이 빛난다.
승우 : 너 초밥 좋아하잖아.
채린 : (감격스럽다) 오빠..
승우 : (보온병에서 장국을 따라주며) 어서 먹어. 배고프겠다.
채린 : 응. 배가 등에 붙었나 봐. (승우가 건넨 젓가락을 받아 먹는다)
입안 가득 물고 웃는 채린.
S#65. 해장국집 (밤)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기풍을 보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충선.
충선 : 자네 이뻐서 사주는 거 아냐. 우리 아가씨 도와준게 고마워서 사주는 거지.
기풍 : (다 비우고 꺼억 트림하면)
충선 : (주방에 대고) 아지메. 여기 해장국 하나 더~
기풍 : 됐어. 내가 돼지야?
충선 : 김치국 마시지 마셔~ 우리 아가씨 갔다 줄꺼니까.
기풍 : (이 쑤시며) 송사장 왜 결혼 안한대? 신우그룹 그 뺀질이랑 결혼하면 만사 오케이잖아.
왜 여럿 민폐 끼치고, 사서 고생이냐구.
충선 : (얼굴 무거워지며, 술을 벌컥 들이킨다)
기풍 : 아이씨가 좀 나서봐. 좋은게 좋은 거 아냐~
충선 : (버럭!) 좋긴 뭐가 좋아, 임마! 너 같으면 니 부모 죽인 집안이랑.. (하다가) 에이~
(홧김에 물컵을 소주를 따라 원샷 한다) 나쁜 놈들~
기풍 : (뭔가 있구나 싶다)...
S#66. 사장실 문 앞
세워져 있는 꽃다발 인서트.
S#67. 사장실 안
마주앉아 있는 두 사람 커피 마시며.
채린 : 근데 이 시간에 웬일이야? 진짜 나 저녁 굶었을까봐 온 거야?
승우 : (끄덕끄덕)
채린 : 에이, 아닌데~ 오빤 거짓말 하면 금방 티가 나.
승우 : 어떻게 티가 나는데?
채린 : 여기 이마에 쓰였잖아. 거.짓.말.
승우 : (웃다 정색하며) 채린아. 나 너 한테 할 말 있어.
S#68. 백화점 앞 (밤)
포장한 해장국을 들고 비틀대며 걸어오는 충선.
기풍 : (포장봉투를 당기며) 아이씨~ 내가 들께. (그렇게 흔들면) 국물 다 엎질러지잖아.
충선 : (휙 뿌리치며) 놔, 임마. 너 같은 놈, 이거 들 자격 없어?!
기풍 : (기 막혀 보면)
충선 : 돈이 그렇게 좋냐? 장차 사돈될 사람을, 돈 때문에 생 목숨 뺏어가게 할 만큼 돈이 좋냐고오?
기풍 : 내가 누구 목숨을 빼앗았다 그래? (하다가) 사돈? 최승우 아버지가 송채린이 아버질 죽였어? 에이 설마.
충선 : 죽인거지! 부도 막겠다고 그렇게 애원하시는 사장님 내쫓아서 자살하게 만든게 죽인거지 뭐야!
기풍 : 진... 짜야!
충선 : 너도 똑같은 놈이야. 임마.
보도에 그려진 표식을 보더니, 흔들흔들 서서 보면서
충선 : 사장님~ (포장 봉투 흔들며) 이거, 사장님이 좋아하시던 해장국임다. 채린 아가씨 갖다 드릴라구.. 싸왔슴다.
사장님.. 거기서도 이런 해장국 팝니까? 선지 팍팍 들어간 해장국 파냐구요..
하더니, 털썩 주저앉아 오열하며..
충선 : 사장님~ 그때 최회장한텐 죽어도 못가시겠다는 걸..저희들 때문에.. 못난 저희들 때문에.. (윽윽) 사장니임~
기풍, 물끄러미 본다.
(경과)
택시에 충선을 밀어 태우는 기풍.
충선 : (해장국든 포장지를 흔들며) 야~ 이거 우리 아가씨.. 갖다 줘야돼. 차 세워. 차~
기풍 : 출발하세요!
차, 출발한다.
물끄러미 보는 기풍.
S#69. 복도 (밤)
걸어오며..
기풍 : (혼자말) 부도나기 전에는 안 도와주고, 부도 난 담엔 도와 주겠단건 뭐야?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아냐?
하면서 골똘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기풍 모습이 사장실 앞 화분대 위의 꽃다발 너머로 보이며..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