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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슈아이아 지역의 해변에서 목격한 수많은 바다 새들. |
오래 전 아메리카 대륙의 남쪽 끝자락은 거대한 빙하 덩어리로 덮여 있었다. 후에 이 빙하들이 녹아 마젤란 해협을 만들어 냈으며, 하나의 커다란 섬과 섬 주변으로 높은 절벽으로 구성된 수많은 작은 섬들이 형성됐다.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의 항로를 여행하던 탐험가들은 이 섬의 거대한 크기 때문에 이곳을 대륙으로 여겨 ‘테라 오스트랄리스 인코그니타(Terra Australis Incognita)’라는 라틴어 이름으로 부르곤 했으며, 이곳이 지구의 평형추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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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거친 파도가 이는 곳으로 악명 높은 케이프혼. |
이 지역은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섬들과 오래된 바위섬들이 복잡하게 자리 잡고 있어 배를 타고 이 해협을 통과하다 보면 마치 미로를 헤매다 빠져 나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눈으로 덮인 산봉우리들과 거대한 빙하를 본격적으로 볼 수 있는 지점도 바로 이곳부터다. 산 정상의 눈이 녹아 내려 폭이 좁은 시냇물을 형성하고, 이것이 강으로 이어지고 흐르며 잔잔한 강물 위로 다시 눈 덮인 산이 비치는 모습이 티에라 델 푸에고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총 길이가 1,005km에 달하는 티에라 델 푸에고 땅은 전체 면적의 3분의 2에 해당되며, 동쪽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고 있는 아르헨티나령과 서쪽 일부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칠레령으로 나뉜다. 남미 대륙과 남극 사이에 자리 잡은 이 거대한 섬 티에라 델 푸에고는 지질학상으로 또 문화인류학적으로 많은 연구 가치를 지닌 매력적인 곳이다.
원주민 봉화 보고 ‘불의 땅’이라 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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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슈아이아에서 가장 유서 깊은 호텔. 트레킹을 즐기기 위해 온 수많은 관광객들이 머문다. |
1520년 10월21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탐험가 중 한 명인 마젤란은 오늘 날 그의 이름이 붙여진 마젤란 해협을 발견했다. 티에라 델 푸에고 땅을 목격한 최초의 유럽인이 바로 마젤란이었다고 전해진다. 그곳에 살던 인디오들은 생전 보지 못한 거대한 선박들이 자신들의 땅 근처로 다가오자 불을 피워 서로에게 경계를 알리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그들이 피운 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목격한 서양인들은 이곳을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 즉 ‘불의 땅’ 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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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슈아이아에서 가장 유서 깊은 호텔. 트레킹을 즐기기 위해 온 수많은 관광객들이 머문다. |
1584년 페드로 사르미엔토 데 감보아(Pedro Sarmiento de Gamboa)는 이곳에 스페인 왕실의 이름으로 최초의 식민지를 세우고자 했다. 일차로 300여 명이 이곳에 와서 도시를 만들고 정착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올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들의 식민지 계획은 완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2년 후 300여 명 중 단지 18명만 살아남았고, 그들 중 2명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나마 남아 있던 사람들마저 굶주림으로 모두 죽고 말았다. 그래서 이곳은 푸에르토 암브레(Puerto Hambre), 즉 ‘굶주림의 항구’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얻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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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에라 델 푸에고 지역의 한 작은 마을의 평화로운 분위기. |
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사람들은 단지 가장 소박한 삶을 선택하여 자연에 순응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그곳 원주민 인디오들뿐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셀크남(Selknam), 야마나(Yamana), 오쉬(Haush), 그리고 카베시카르(Kauveshkar) 등의 이름으로 불렀으며, 이들 대부분은 바다에서 수렵생활을 하던 집시 부족이었다.
몇몇 탐욕스러운 유럽인들만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도 이들은 오늘날까지도 똑같은 생활방식을 유지하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유럽인들이 이곳에 발을 디딘 후 채 50년도 안 되어 이 온화한 성품의 인디오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날 티에라 델 푸에고 전 지역에 걸쳐 야마나족 순수혈통을 지닌 인디오 할머니 한 분만 살아 계시다. 그녀는 자신의 부족들이 대량으로 학살된 슬픈 역사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