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이 없는 걸 보니...떨어진 것 같네요.
앞 번호였던 그 남자는 붙었을까요?
짙은 눈썹에..곱슬곱슬한 머리가...
그녀 오빠랑 많이 닮았더라구요.
그래서 면접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사진 속 그녀가 자꾸 맴돌아서요.
언제 펼쳐볼 지 모르는 장식용 책,
하지만 버릴 것 같지는 않은 두꺼운 책,
예를 들면 대학 교재였던
<전산기 개론>이라든가, <공업열역학> 이라든가 하는 책 사이에
끼워둔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일부러 그런 책을 골랐어요.
쉽게 손가는 책 사이에 끼워두면 자꾸 펼쳐보게 될까 봐요.
그랬더니 이젠 진짜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있겠죠.
이걸 바란 거예요.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그녀의 사진이 한 장 남아있다는 위안.
그녀와 찍은 다른 사진들은 모조리 다 태워버렸어요.
겨울 바다 보러 갔을 때 찍은 사진도 다 없애고,
그 때 친구 누구 생일이라서 다들 모였는데,
갑자기 그녀가 겨울바다 보러가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다들 지금 갑자기 가자는데 의견이 모아져서..
갔던 기억이 나네요.
카메라 가진 사람이 없어서...
일회용 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찍었었죠..
지금도 그녀는 겨울바다 보러 가는 거..좋아할까요?
올해도 바다 보러 다녀왔을까요?
사랑했던 사람의 사진을 태워본 사람은 알 거예요.
함께 했던 우리의 추억이 재가 되어가는 동안,
이젠 정말 마지막인 것 같아서,
심장도 같이 재가 되어가는 그 고통을, 그 아픔을...알 거예요.
그 많은 사진을 두고, 책 속에 남겨둔 건 그녀의 증명사진이에요.
주민등록증에 있는 사진인데, 정말 촌스럽게 나왔어요.
근데 난 그 사진이 그렇게 좋더라구요.
아무리 한 장만 달라고 졸라도 없다고 하더니,
어느 날인가 집에 놀러갔는데...몇 장이나 남아 있더라구요.
그래서 슬쩍 한 장~ 지갑에 넣어왔죠.
아마 그녀는 지금도 그 사진이 나한테 있는지..꿈에도 모를 거예요.
이제 궁상맞은 옛날 생각을 그만하고,
증명사진이나 찍으러 가야겠습니다.
증명사진도 다시 쓰고 자기 소개서도 다시 써서,
다른 데도 지원서를 내봐야죠.
사랑이...사랑에게 말합니다.
책 속에 잠들어 있는 사진처럼 이제 그 사랑도 잠재우라고,
잊어야 할 사람을 잊지 못하는 건 인생을 낭비하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