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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내 영혼을 사랑하자!”입니다.
잠언서는 솔로몬왕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영감으로 기록한 것인데, 그래서 지혜서라고도 합니다. 인생을 지혜롭게, 슬기롭게 살아가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에만 ‘지혜’라는 단어로 번역된 것이 123회나 나옵니다. 솔로몬은 잠언서를 기록한 목적을 밝히면서 1장 3절에 지혜를 얻게 하고 명철과 훈계를 얻게 함이라고 합니다. 지혜롭게, 정의롭게, 공의롭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잠3:13에는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잠3:14)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혜로운 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깨달아서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정말 지혜로운 자가 되어 지혜로운 삶을 살라고 성경을 주셨습니다. 우리나 우리 자녀들이 어리석은 자가 되고 바보처럼 살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부모가 없듯이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가 지혜로운 자가 되길 누구보다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좋으신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잠4:6입니다.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지혜가 너를 보호하고 지킬 것이니 지혜를 버리지 말고 사랑하라 지혜를 얻으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명철을 얻으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지혜는 버린 모든 것을, 잃은 모든 것을 다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지혜는 가치 있습니다. 지혜는 단순히 정금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고 누리고 배로 불리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지혜로운 자가 되길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면 머리 좋은 사람, 많이 배워 똑똑한 사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창의력이 뛰어나고 분별력이 있고 융통성 있는 사람을 스마트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머리 좋은 사람이라고, 많이 배운 사람이라고 지혜로운 사람이라 한 적이 없고 도리어 이렇게 말씀합니다. 잠9:10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지혜의 근본은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공부해서 최고 권위 있는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모르면 어리석은 자라는 것입니다.
시14:1에도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그분께 나와 예배드리며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라면 적어도 지혜자입니다. 더 이상 어리석은 자가 아닙니다. 공부를 잘해도 자기 부모도 모르고 섬길 줄 모르면 그보다 못되고 악한 자가 없듯이 아무리 똑똑한 것 같아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순종할 줄 모른다면 실상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전12:13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것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정말 지혜자라면 하나님을 알고 믿고 사랑하는 자입니다. 할렐루야!
본문에서 지혜로운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는 자라고 합니다. 보통 영어 성경에는 영혼이라는 soul 보다는 자신이라는 oneself를 사용하지만 한글 번역은 영혼으로 번역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자신은 자기 영혼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영혼을 사랑하는 자는 영혼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육신을 사랑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를 위한다고 하는 대부분이 자기 영혼을 위하지 않고 육체를 위함입니다. 육체의 만족, 육체의 편안함을 추구할 때가 많습니다. 육신이 요구하는 것을 채우려고 살아가는 인생이 대부분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영혼을 위한 것이 아니고 고작 자기 육신을 위한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영혼을 위하여, 영혼을 사랑하는 자가 되길 소원합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진정한 나요, 나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가 본질이듯 나의 몸, 육신이 본질이 아니라 영혼이 본질입니다. 영혼이 나입니다. 육신이 껍데기라면 영혼은 알맹이와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겉사람과 속사람으로 표현했습니다. 고후 4:16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영혼은 속사람이고 육신은 겉사람, 껍데기입니다. 육신은 흙에서 왔으니 한 줌 흙으로 돌아가 사라지지만 영혼은 영원하기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주신 여호와께로 돌아가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욥은 욥19:26에서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라고 했습니다. 누가 껍데기를 위해 수고합니까? 껍데기가 존재하는 것은 알맹이를 잘 키우고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육신, 겉사람의 소욕대로 사는 것은 자기 영혼, 속사람을 학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육신을 위해 사는 것은 자기 영혼의 정원은 가꾸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육신을 돌아보는 만큼 자기 영혼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육신은 거울로, 사진으로 보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봅니다. 성경을 보면 영적인 존재, 영혼이 보입니다. 본질이 보입니다. 성경이 우리의 본질인 영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육신을 가꾸기 위해 거울을 보는 만큼 영혼을 비추는 거울인 하나님 말씀 앞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육신을 위해 달음질하는 만큼 영혼을 위해 달음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자기 영혼을 위해 사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탐내다 큰 것을 잃는다는 말입니다. 눈앞에 당장 보이는 이익 때문에 뒤에 있는 더 큰 유익을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가장 불행한 소탐대실은 육신의 것을 탐하다 영적인 복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땅의 것을 탐하다 하늘의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그게 가장 미련한 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내 영혼을 사랑하고 내 영혼을 위해 사는 것일까요? 진정한 지혜자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지혜자는 언젠가 반드시 내 영혼이 하나님 앞에 설 때가 있음을 알고 그때를 준비하는 자입니다. 이것은 인생이 한 번 있을 죽음을 예측하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든 영원히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나는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련한 자는 없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보편적으로 임하는 것이 죽음입니다. 죽음은 창조주가 정한 섭리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시90:3에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라고 합니다. 사람이 왜 죽음을 맞이합니까? 하나님께서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돌아갑니까?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 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셨습니다(히9:27).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날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10년, 20년 뒤일지, 오늘일지, 내일일지 아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이라도 천국 갈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오늘밤에 오셔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라고 물어도 아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입니다.
예수님은 한 부자의 비유를 전했습니다. 부자가 소출이 많아 창고를 헐고 거둔 곡식을 쌓아두면서 ‘내 영혼아 이제 편히 먹고 쉬자’라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찾으리니 그 쌓은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왜 어리석습니까? 그가 쌓은 것은 육신을 위한 것일뿐 영혼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육신을 위해서만 수고했지 영혼을 위한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부유치 못한 자가 이와 같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육체가 아니라 영혼을 위해 사는 자가 하나님께 부유한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부유한 자가 되길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청지기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를 도리어 칭찬했습니다. 한 청지기가 주인에게 잘못 보여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를 걱정하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서 탕감해줍니다. 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게는 팔십이라 쓰게 하고 오십 데나리온 빚진 자에게는 삼십이라 쓰게 합니다. 분명 불의한 행동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것은 이처럼 자기 미래를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의를 칭찬한 것이 아니라 불의한 청지기도 자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을 칭찬한 것입니다. 그런 자도 자기 미래를 준비하거늘 하물며 너희는 뭐하냐? 라는 것입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에게 쫓겨나기 전에 미리 준비한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자기 영혼을 위해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10년, 20년 뒤의 노후대책만 세우지 말고 하나님 앞에 설 때를 언제나 준비하는 자가 지혜자입니다.
그리고 그날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각각 행한 대로 상벌을 받습니다. 이것을 알고 준비하는 자가 지혜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분명한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믿어야 합니다. 믿는 것만으로도 안 되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혜자요 자기 영혼을 사랑하여 준비하는 자입니다. 지혜가 있어도 게을러서 그 지혜를 적용하여 살지 않는다면 힘이 있는데도 일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계획은 세우고도 실행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돈이 있어도 활용하지 않는 것과 같고 종이 있어도 부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집에 들어가면 옷을 갈아입듯이 내 영혼이 육신을 벗는 날도 하나님 앞에 서서 각각 선악 간에 행한 대로 받는 사실을 단순히 아는 자가 아니라 믿고 예비하는 자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한 대로 반드시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것은 단지 우리가 선하게 살고 착하게 산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느냐, 거부해버렸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느냐, 거부했느냐에 대한 심판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아들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오고 아들의 의를 힘입어서 우리도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 문제를, 사망과 심판의 문제를 해결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의롭고 선한 자로 인정받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그 행위를 심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6:8이하에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됨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를 받지 않고 거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여 심판에 이르지 않도록 준비하는 지혜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자기 영혼이 반드시 받을 심판을 피하기 위해 준비하는 자이니 지혜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반대로 이것을 준비하지 않는 자, 즉 믿지 않는 자는 가장 어리석은 자입니다. 알고도 믿지 않은 자나, 몰라서 안 믿은 자나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구원받은 자라도 똑같지 않고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각각 다른 상급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사는 것, 영혼을 위해 사는 것이 상급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 사는 것이 곧 내 영혼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이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상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받을 면류관을 준비하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잘 했다고 칭찬받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길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영혼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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