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表情
오 상 원
숨이 콱콱 막힐 듯이 무더웠다. 그러한 무더움을 깔고 어둠이 다가왔다. C 자형의 산으로 둘러막힌 이 소도시, 어둠은 급격히 내린다.
어느덧 먹을 끼얹은 것처럼 이 소도시는 어둠 속에 잠겼다. 그러나 조그만 단층집에도, 고층 건물에도 창가에는 희미한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처럼 무더운데로 겹겹이 방문까지 잠겨져 있다.
넘어선 전선주, 무너진 담벽, 보도 위에 헝클어져 줄줄이 끊어진 전선·…· 하늘에는 금세 비라도 퍼부을 것같이 구름이 무섭게 깔려 있다.
거리 모퉁이를 몇 번 돌아도 사람의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어느 집 문을 두들겨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기척도 들릴 것 같지가 않다.
무덤 속처럼 겹겹이 깔리는 어둠과 침묵 속에 이 거리는 마치 생명을 잃은 잔해(殘骸)처럼 쓰러져 있다.
판자 또는 널따란 천막 조각으로 깨어진 문마다 빈틈없이 둘러친 방 안은 밀폐된 공간처럼 숨이 막혔다. 한쪽에 무질서하게 밀어 놓은 금고, 서류함·책상·탁자 등 예전에는 사무실이었던 모양이다. 한 중가운데 놓인 테이블 위에는 천정에서 직사(直射)되는 고촉 전둥 빛이 무대 위의 스포트처럼 원추(圓錐)형으로 내려비치고 있다.
의자에 앉은 군복 청년이 다시 잉크를 찍으며 손등으로 흘러내리는 이마의 땀을 씻었다. 군복은 땀에 함빡 젖어 있었다. 탁하고 무더운 공기에 내쉬는 숨소리마저 고통스러워 보인다. 군복 청 은 펜대를 만지작거리며 상대방을 힐끔 쳐다보고 기다렸다.
내려비치는 불빛 밖에 있으므로 상대방의 얼굴은 잘 보이지가 않는다. 다만 하반신 쪽이 불빛 속에 들어 있을 뿐이었다. 땀과 먼지에 물든 작업복 하의와, 투박한 구두 위에 몸을 움직일 때마다 어두운 상반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총살 27명 중 남자 21명, 여자 6명.”
군화마냥 투박한 음성이었다. 군복을 입은 청년은 급히 펜대를 움직였다. 빳빳한 종잇장 위에 긁히는 펜촉 소리가 묘한 촉감을 남기면서 이어 갔다.
투박한 목소리는 곧 칟천히 계속되었다.
“나머지 일 명은 계속 심문을 위하여 집행을 보류 중, 수비 상태 양호 식량에는 지장이 없으나 음료수의 보급 부족으로 고통을 받음. 전획품ㅡ소총 12 정, 수류탄 8개, 소총 탄환 2백 36발, 무전기 1대, 전지 3개, 야광 시계 1개.”
무뚝뚝하게 울려오는 음성을 따라 펜대를 쥔 군복 청년의 손은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자를 남기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군복 청년은 이윽고 손을 멈추며 다시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문질렀다. 그리고 기다렸다.
“이상 무.”
음성이 뚝 떨여지자 군복 청년은 펜대를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상대방의 손이 책상 위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기며 불빛 속으로 나타났다. 음성 처럼 뼈마디가 굵은 투박한 손이었다.
군복 청년은 곧 지금 막 쓴 보고서를 그 손에 넘겼다. 보고서를 받은 손이 뒤로 약간 물러가는 것과 함께 상대방의 상박신이 불빛 앞으로 나타났다. 터부룩한 머리카락이 짓는 그늘 밑으로 뭉두룽하게 솟은 코가 다시 턱 밑으로 크게 그늘을 지었다. 굵다란 시선이 보고서 위에 던져지는 순간 전등 빛에 번득 빛났다. 그 굵다란 시선은 보고서를 죽 훑어 내려갔다.
역시 위에도 작업복을 결치고 있었다. 흔히, 기동 부대 대원들이 하듯이 가죽 띠를 어깨 뒤로 돌려 왼쪽 가슴 곁에 찬 권총대에서 권총 손잡이가 불빛에 반들반들 빛났다. 역서 그의 어깨 머리도 땀에 함빡 젖어 있었다.˙
씨근씨근 흘러나오는 숨소리와 함께 굵게 힘줄이 드러난 그의 목덜미는 후줄근히 땀에 젖어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골을 이루면서 땀방울이 줄을 긋고 흘러내렸다.
보고서에 이상이 없음을 검토한 그는 군복 청년에게 그것들을 다식 돌렸다.
“본부로 연락하도록 하시오.”
밖에는 캄캄한 어둠뿐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비틀어진 쇳대만이 남아 있고 문짝은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형체도 없는 입구 쪽에서 천막이 약간 곁으로 걷우면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그와 동시에 어두운 그림자가 하나 불빛을 등에 지면서 쑥 어둠 속으로 빠져 나왔다. 밖에 나온 그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작업복을 입은 친구였다.
그는 육중한 몸집을 들먹거리면서 천천히 어둠 속에 잠긴 가로를 따라 걸어 내려갔다.
부서진 건물들을 지나 거리 모퉁이를 돌아서려 할 때 캄캄한 담벽 곁에서,
“누구냐?”
하고 나직하면서도 긴장이 서린 음성이 짧게 울렸다.
다음 순간 담벽 곁에서 안전 장치를 퉁기는 소리가 잘가락 하고 울려 왔다.
그는 암호를 대었다. 그러자 캄캄한 담벽 귀퉁이에서 그림자가 총구를 밑으로 떨구며 쑥 나타났다. 그 그림자는 작업복을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하였다.
“몹시 무덥군.”
작업복이 말하였다.
“네.”
어두운 그림자는 손등으로 목덜미를 쓱 문지르며 대답하였다. 작업복도 손등으로 목덜미를 씻었다.
“한 소나기 퍼부었으면 좋겠읍니다.”
어두운 그림자는 구름이 무겁게 덮인 캄캄한 하늘을 올려 쳐다보며 말하였다.
“그러나 비가 오면 우리에겐 불리해. 놈들은 비가 마구 쏟아져서 우리의 수비진이 마비되기를 원하고 있거든.”
작업복도 무겁게 구름이 덮인 하늘을 쳐 다보며 중얼거렸다.
작업복이 걸음을 한 발자국 옮겨 서자 어두운 그림자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 캄캄한 담벽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거리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꼭 같은 일들이 반복되었다.
그는 대강 거리의 중요 지점을 순시한 다음 어느 고층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험상궂게 탄환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는 부서진 난간 때문에 차단되어 버린 계단을 조심스럽게 더듬으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서는 소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대로가 바로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샌드백으로 구축된 총좌 쪽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하나 슬며시 일어서며 그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작업복도 같이 손을 들어 보이며 그 쪽으로 갔다.
두 그림자는 서로 마주 섰다. 작업복과 마주 선 그림자는 불과 십 팔구 세밖에나 보이지 않는 어린 친구였다.
“어때?”
“아무런 동정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린 친구는 아득히 바라다보이는 강 건너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하였다. 작업복도 같이 그 쪽을 바라보며 샌드백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비스듬히 앉았다. 어린친구는 그 곁 샌드백 위에 한쪽 발을 짚고 무릎 위에 팔꿉을 고이며 허리를 굽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거리는 쥐죽은 듯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약 한 달 전만 하여도 이렇지 않았다. 평온한 속에 시민들의 생활이 그대로 아무 일도 없이 이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란이 일어나고 반란군이 이 소도시를 공격하기 시작하고부터 이 도시는 죽음 속에 잠겼다. 반란군은 이 도시를 점령하였다. 강 건너로 후퇴한 정부군은 다시 탈환을 기도하는 작전 준비 중에 있었다.
어린 친구는 죽음 속에 가로덮인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왜?”
작업복이 물었다.
“싸움이 있기 전엔 이 도시가 참 아름다웠는데요. 밤에 이처럼 옥상에서 불빛이 찬란한 거리를 내려다보면 참 멋졌어요. 더우기 안개가 자욱이 낀 날이면·…˙.”
“누구나 자기가 살고 있는 거리가. 무참하게 되어 버린 것을 볼 땐 마음이 우울하지. 그러나 더 좋은 내일을 위해선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해. 우리가 완전히 승리를 거두는 날 이 거리는 네가 살았던 때보다 더 아름다워질 거야.”
어린 친구는 그대로 묵묵히 어둠 속에 잠긴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총살당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이 도시에서 조그만 신문사를 직접 경영하고 있었다. 반란군이 일어나 기세를 올릴 때 아버지는 정부에 불리한 기사를 게재함으로써 민심을 교란하고 반란군을 간접적으로 도운 셈이 되었다는 이유로 체포된 것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체포되기 직전 아버지를 은닉 시키고 도피를 방조하였다는 죄로 동시에 체포되었다. 그리고 후퇴하기 직전 약식 재판에 의해 총살을 당하였던 것이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지?”
작업 복이 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어린 친구는 쓸쓸히 대답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총살되는 것을 보았다고 했지?”
“네.”
“그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표정을 보았나?”
“……”
“그럼 쏘는 순간의 사수(射手)들 표정을 보았나?”
작업복이 또 물었다.
“네.”
“어땠어?”
“무표정하더군요. ”
“쏜 다음에는?”
“쏘고 나서도 역시 무표정 했어요.”
어린 친구는 천천히 어둠 속에 잠긴 거리를 내려다보며 말하였다.
“바로 그거야, 그들은 무표정했어. 너도 그들을 죽일 때 그처럼 무표정해야 한단 말이야. 그들이 네게 준 것처럼 너도 그래야 해. 무자비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성에 대한 문제는 결정적인 승리가 온 다음의 문제지. 그 때는 다시 논의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안 돼.”
‘……“
어린 친구는 그대로 어둠 속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오늘 전부 합해서 몇 명을 쏜 셈이지?”
“다섯 명 쏘았어요.”
어린 친구는 천천히 대답하였다.
“다섯 명 중?·….”
“남자는 넷 여자 하나…….”
“쏘기 직전 피살자들의 표정을 자세히 보았나?”
“모두 창백하게 질려서 입술을 파르르 떨더군요.”
“그 다음?…….”
“쯔봉 가랭이로 오줌을 줄줄 흘리는 놈도 있었어요.”
“그 다음?”
“방아쇠를 당겼어요.”
“무표정하게?”
“네.”
천천히 대답하는 어린 친구보다도 작업복의 태도는 더욱 무뚝뚝한 게 아무런 감정 의 변화도 없었다.
작업복은 입성하자 어린 친구의 부모가 총살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를 곧 찾아 내어 자기 밑에 둔 것이었다.
어린 친구는 어둠 속을 내려다보며 눈을 깜작거렸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가 총살되던 순간 그 모습들이 냉엄한 영상(映像)으로 가슴 속에 와 박힌 것이었다. 그 순간 그는 모든 감정이 일시에 싸늘히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그러한 그의 마음은 작업복에 의하여 자극되고 무표정한 형태로 유발된 것이었다.
그는 오늘 다섯 명을 자기 손으로 쏜 것이었다. 어린 친구의 마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총살되던 순간의 아버지 어머니 모습만이 냉엄한 영상으로써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오늘 그는 다섯 명을 쏘면서 어쩌면 그들이 이처럼 죽음에 임하여 비굴한 자기를 마지막으로 나타내고야 마는 것일까, 하고 인간에 대한 환멸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 어머니는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의 최후 모습은 더욱 어린 친구의 가슴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만약 다섯 명 중 한 사람이라도 아버지나 어머니 같았더라면 그는 결코 쏘지를 못했을 것이다.
바로 작업복이 그에게 쏠 것을 선동하였을 때 어린 친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왜?”
작업복이 물었다.
“저들을 죽여서 뭐합니까?”
어린 친구는 쓸쓸히 물었다.
“그런 것은 물을 필요가 없어. 너는 이미 우리 편이야. 만약 우리가 저들한테 잡혔다면 우리는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저들이 무표정하게 당기는 총알에 쑤러져야 했을 거야. 저들은 우리에게 잡혔다. 우리는 저들이 했을 것처럼 저들에게 하는 거지. 일은 이미 시작됐어. 죽이느냐, 맞아 죽느냐, 둘 중의 하나지, 중간은 있을 수 없어.”
사실 그렇기도 하였다. 횝쓸린 이상 둘 중의 하나였다. 지금 그는 그 둘 중 죽는 입장이 아니라 죽이는 입장에 서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죽이는 입장에 서서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의 무표정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죽는 입장에 섰을 때와 아버지 어머니 표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무표정하게 죽일 수 있는, 죽여야만 하는 냉엄한 현실을 터득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총을 들었다. 피살자들은 얼굴이 새하야니 질려서 바들바들 떨었다. 그 때의 그 표정들…… 그것은 인간으로서 더없이 비굴한 표정들이었다. 그 순간 그는 인간에 대한 모욕감 같은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한 이상 그는 무표정하게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던 것이었다.
둘 사이에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들은 묵묵히 무덤 속과 같은 거리의 잔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옥상에는 역시 바람 한 점 없었다.
“몹시 무덥군.”
작업복은 상의 단추를 하나 끌렀다. 어린 친구도 휴! 길게 숨을 내쉬며 단추를 끌렀다.
그 때였다. 바로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대로로 어두운 세 그림자가 점점 가까워 왔다. 한 명은 앞에 섰고 바로 등 뒤에 한 명이 총을 메고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은 약간 옆에 떨어져서 맨 앞서가는 사람 등 뒤로 총구를 향하고 뒤따르고 있었다. 세 그림자는 곧 건물 앞으로 지나 옆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유심히 세 그림자를 내려다보고 있던 작업복은 샌드백에서 엉덩이를 들며 일어섰다.
“같이 오겠어?”
작업복이 말하였다. 둘은 곧 옥상에서 내려왔다. 무너진 층계와 장애물 때문에 그들은 조심스러이 더듬으며 계단을 내 려섰다.
드리운 천막을 조심스러이 걷어 올리며 세 그림자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총 소제를 하고 있던 젊은 군복 청년이 손을 멈추고 들어선 그들을 돌아보았다.
세 그림자는 강하게 직사되는 불빛 앞으로 나타났다.
“이놈을 강변에서 체포했읍니다.”
총을 멘 친구가 말하였다. 총을 든 친구가 총대로 책상 앞으로 나설 것을 잡혀온 친구에게 지시하였다.
잡혀 온 친구는 불빛 앞에 나서자 눈이 부신 듯 잠시 눈을 껌벅거렸다. 군복 청년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 자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갔다. 잡혀 온 친구는 낡은 양복 바지에 푸른 색 자켓을 입고 있었다. 구레나룻 수염이 터부룩한 검은 얼굴이었다.
“소지품은?”
군복 청년이 물었다.
“권총 일정과 탄환 삼십 발 하고 세밀한 강변 지도와 정밀한 시가도(市街圖)를 갖고 있었읍니다.”
총을 멘 친구가 대답하며 그가 가졌던 소지품을 책상 위에 내놓았다. 소지품을 내려다보던 군복 청년의 시선이 다시 구레나룻의 얼굴로 옮겨졌다.
“알겠어.”
그 때 드리운 천막 한쪽이 다시 걷히며 두 그림자가 불쑥 안으로 들어섰다. 작업복과 어린 친구였다.
작업복은 구레나룻을 연행하여 온 두 청년을 돌려보낸 다음 소지품을 하나하나 조사해 가면서 구레나릇에게 말을 걸었다.
“언제 강을 건너 왔소?”
“……”
구레나룻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도강 지점은?”
작업복은 씁씁하게 입가에 웃음을 지어 보이며 다음 질문을 하였다. 그러나 역시 대답이 없었다.
잠잠히 구레나룻의 표정을 뜯어 보며 작업복은 그 다음 질문을 또 던졌다.
“도강 사명은?”
“……”
구레나룻의 태도는 시종 마찬가지였다.
어린 친구는 작업복과 구래나룻의 얼굴을 흥미 없이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작업복은 질문을 중지하고 담배를 꺼내어 책상 위에 내놓으며 싱긋이 눈가에 웃음을 죽였다.
“자, 담배나 한 대 태우시오.”
그 때서야 구레나룻은 어깨를 크게 뒤로 으쓱이며 몹시 피로에 지친 듯 하품을 죽였다.
“우선 좀 푹 잠들 수 있었으면 좋겠소.”
구레나룻은 자연스러이 이렇게 말하고 나서 졸리듯이 눈을 끔벅이며 손등으로 서너 번 비볐다.
“내일 아침이면 자연 소원이 풀릴 거요. 푹 마음껏 다리를 뻗고 열흘이고 한 달이고 잠들 수 있을 거보. 안심하시오.”
작업복은 힐끗 구레나룻의 표정을 홈쳐 가며 담배를 붙여 물었다.
담배 연기가 순간 불빛 속으로 길게 흩어졌다. 작업복은 불빛을 지나 어둠 속으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의 마지막 한 가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얼마 남지도 않은 시간을 잠자는 데 소비하는 것보다도 다만 한 마디라도 더 얘기를 나누고 담배라도 피우면서 사람의 말소리를 들어 두는 게 좋을 거요. 그렇게 생각지 않으시요?”
“좋은 의견이나 뭐 신통한 얘깃거리가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미안하군요.”
구레나릇은 또 하품을 죽였다.
“서로 총구를 들이대고 싸우던 친구들과 얼굴을 마주 보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도 구리 불쾌한 일은 아닐 거요. 그 다음은 별 문제지만·….”
작업복은 몹시 흥미 있게 구레나룻을 흘끔흘끔 노려 가며 말하였다. 구레나룻은 말없이 또 크게 기지개를 하며 눈을 끔벅였다.
“몹시도 수면 이 부족하셨군.”
작업복이 또 넌지시 말을 결었다.
“뜬눈으로 삼 일간을 지냈소.”
“저 쪽 같으면 그것이 공로가 되었겠지막 이 쪽에서 그렇지가 못해 섭섭할 거요.”
말끝과 함께 작업복의 눈매에 싱긋이 웃음이 감돌았다
“그렇게라도 생각해 주니 감사하오. 저 쪽에서 내가 훈장을 못 받게 된 대신 이 쪽에서 당신이 공로를 세우게 되었으니 아마 당신에겐 큼직한 훈장이 떨어질 거요.”
구레나룻의 표정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든직하게 자연스러이 울려 나오는 음성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신 생명을 내가 보장한다고 했댔자 내 말을 곧이 믿어 줄 리로 만무하겠지만 하여튼 이렇게나마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반갑소. 그렇지 못하였더라면 당신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몰랐을 테니까.”
작업복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하였다.
군복 청년은 지루한 듯이 이마의 땀을 쓱 문지른 다음 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무더움을 이기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어린 친구는 무미 건조한 태도로 그들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몸시 당신 신상에 관한 얘기가 듣고 싶은데 해 볼 의향은 없으시오? 흑 아들이나 딸이라도 있어 이 다음에 서로 만나게 되면 얘깃거리라도 될 터니까·……”
작업복이 또 입을 열었다.˙
“그런 것보다도 날씨에 대한 얘기가 더 흥미롭지 않으시오? 나는 한 소나기가 퍼부었으면 싶소. 땀에 얼룩진 얼굴을 보니 몹시도 무더운 것같이 보이는데 한 소나기 쏟아지면 퍽 서느러울 거요.”
작업복은 그 말에 입맛이 쓰게 웃었다. 그리고 담뱃재를 가볍게 손끝으로 떨구며 말하였다.
“내일 아침이 지나면 다시는 보지 못할 거요. 당신이 살던 세상, 물건들·… 몇 가지 되지도 않지만 전등 불빛, 펜과 잉크, 테이블, 그리 달가운 얼굴들은 아니겠지만 사람의 얼굴들…… 담배라도 태워 가며 마음껏 한 번 돌아보시오. 그리고 당신이 가졌던 갖가지 과거를 한 번 회상해 두는 것도 이 시간뿐일 거요, 그러나 혹 세상에 대한 애착이라도 다시 솟아날지 모를 게 아니요. 그 땐 우리 서로 다정한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거요.”
구레나룻은 작업복이 은근히 웃음을 던져 가며 꺼내어 주는 담배를 받아 작업복이 피던 담배불에 마주 대고 불을 붙였다. 그는 길게 천천히 짙은 담배 얻기를 내뿜으며 말하였다.
“오랜만에 피우는 담배에 취해 다행히 잠이 잘 올 것 같소.”
“좋소. 그럼 자게 해 드리리다.”
작업복의 말이 떨어지자 군복 청년이 총에 탄환을 재우며 일어섰다. 구레나룻이 총구의 지시를 받으며 나가려 할 때 작업복이 입가에 쓴 웃음을 흘리며 말하였다.
“끝으로 이 어린 친구에게 인사라도 해 두는 게 홀을 거요. 내일 아침 아마 이 친구의 신세를 지게 될 테니까·….”
구레나룻은 어린 친구를 돌아보았다.
“어린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수고를 끼치게 되어 안 됐소. 그럼 잘 부탁하우.”
그들이 천막을 걷어 올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작업복은 피던 담배를 천천히 비벼 끄며 말하였다.
“저런 자일수록 쏘는 데는 묘미가 솟는 거야. 총살 직전까지 지금과 같은 침착한 태도를 취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상상 이외로 발악을 하든가 둘 중 하나지. 둘 중 어느 쪽이건 역시 무표정하게 방아쇠를 당겨야 해. 어쩌면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상대방의 표정을 볼 때 흔히 주저하는 수가 있지. 그러면 결국 지고 마는 거야. 아버지, 어머니 생각이 나지 않나?”
“……”
어린 친구는 묵묵히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최후의 순간까지 인간답게 담담한 표정을 지었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무표정하게 쏘았어. 알겠나?”
조그만 철창문 틈으로 희미하게 흘러들어오는 불빛은 길게 사선을 그으면서 맞은편 돌벽에 가 부딪쳐 더욱 약화되면서 몽롱한 구형의 형체를 이루고 있었다. 바로 그 자리에 등을 붙이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한 그림자가 있었다. 총살을 보류당하고 있는 친구였다.
그늑 뾰빗한 토끼귀에 해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지런히 세운 무릎을 팔로 감싸고 그 위에 얼굴을 묻고 비비대다가는 조용히 자기 발 밑을 내려다보곤 하였다.
길게 죽이는 한숨 소리가 들렸다. 마치 그를 한 구석지로 묵아 넣고 어깨 위에서부터 내려누르는 중압된 이 감방의 무게가 감당하기에 몹시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주위에는 아무런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 무거운 침묵만이 겹겹이 내리고 있었다. 그는 또 무릎 위에다 얼굴을 비벼 대었다.
그 때 멀리서 침묵을 조용히 헤치며 복도를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귀를 뾰빗하여 몸을 으스스 떨었다.
자식들이 또 오는 모양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는 이제부터 다가올 여러 가지 일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창문마다 겹겹이 드리운 천막, 숨이 막힐 듯 답답한 공기, 직사되는 전등 불빛에 반쯤 얼굴을 드러내면서 작업복은 또 싱긋이 웃음을 죽이며 말을 던져 올 것이다. 왜 자식들은 나를 빨리 죽여 주지 않는 것인가?
당신은 좋은 기술을 갖고 있어. 당신의 말 한 마디면 우리와 좋은 동료가 될 수도 있다. 아이가 둘이라고 했지? 귀여울 거야. 어린 놈은 몹시도 보채겠지·…… 어린애들은 자다가도 엄마품을 찾으며 보채곤 하는 거니까, 그 보채는 어린애에게 젖꼭지를 물리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내 모습이 보고 싶지 않는가? 어때? 말 한 마디면 우리와 좋은 동료가 될 수도 있을 텐데. 토끼귀는 이처럼 은근히 말을 건네 오던 작업복의 음성이 떠오르자 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한 얘기를 들을 때는 참으로 발광이라도 할 지경 이었다.
발자국 소리는 점점 가까와 오고 있었다. 그는 숨죽이며 발자국 소리를 조심스럽게 검토하였다.
하나·…· 둘·…·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군복 청년이겠지만 또 한 사람은 누구일까, 작업복일까·…·뚜벅뚜벅 걷는 발자국 소리는 분명 군복 청년이지만 또 사람의 발자국 소리는 작업복의 발자국 소리가 아니었다.
점점 가까와 오던 발자국 소리는 철창문 앞에서 멎었다.
토끼귀는 무릎 위에 얼굴을 묻고 기다렸다. 어떡하면 빨리 끝장을 지을 수 있는 것일까. 방도가 떠오르지를 않았다. 빨리 죽여 주었으면 하지만 이미 죽는다는 것도 자기 의사 밖에 있었다.
분명 죽음은 그 자신의 것이나 죽는다는 것도 몇 시간 더 산다는 것도 심지어는 죽는 시간까지도 작업복의 수중에 들어 있었다.
무거운 금속성의 조고만 쇳대 구멍 속에서 부딪치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삐그덕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토끼귀는 몸을 으스스 또 떨었다.
죽는다는 것은 이미 문제가 아니었다. 죽는 시간까지 지루한 시간을 수없이 감당해 나가야 한다는 고통도 문제가 아니었다. 기묘하게 그의 감정을 자극하면서 가족들에 대한 애정을 유발시키는 작업복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죽음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 순간만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는 기다렸다. 그러나 곧 또 쇠를 잠그는 소리가 절그럭 하고 무겁게 울렸다. 발자국 소리가 곧 뒤이어 뚜벅뚜벅 점점 멀어져 갔다.
토끼귀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바로 철창문 안에는 희미하게 흘러 들어오는 불빛을 등에 지고 한 그림자가 우두커니 서서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고 있었다. 토끼귀는 곧 그도 자기처럼 포로가 된 친구라고 생각했다.
잠시 주위를 돌아보고 있던 친구는 벽에 기대어 자기를 쳐다보며 묵묵히 앉아 있는 그림자를 보자 그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구레나룻 수염이 시커먼 친구였다. 그는 토끼귀 곁으로 가서 털썩 벽에 기대며 주저앉았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서로 눈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또 작업복이 심문을 하러 오는가 싶었소. 어디서 왔소?’,
토끼귀가 나직히 말하였다.
“강을 건넜오?”
구레나룻은 졸리운 듯 눈을 껌벅이며 마라였다.
‘언제?“
“그저께 밤에.”
“나도 그저께 밤에 강을 건넜오.”
토끼귀는 반가운 듯 웃어 보였다.
“지점은?”
“하류 3·5 지점이오.”
“나는 상류 P 지점이었소.”
“단독?”
“7명, 여섯 명은 그 자리에서 잡혔고 나는 갈밭 속을 숨어서 제 2 선까지 돌파했었으며, 약 세 시간 전에 잡혔소.”
구레나룻은 아쉬웠다는 듯이 코끝을 문질렀다.
“우리는 8명 중 2 명이 사살되고 6 명이 그대로 붙들렸소.”
“그런데?”
“다섯 명은 어제 총살되고 나만 남았소.”
의문에 가득 찬 구레나룻의 시선이 힐끔 토끼귀를 노렸다.
“나는 이거요.”
토끼귀는 손가락 끝으로 무전치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자식들은 지금 나를 이용하여 우리의 통신 암호를 탐색해 내려는 거요. 어차피 죽겠지만 당신보다는 더 지루하게 시간을 끌어야 할 것 같소.”
“안 되 었소.”
그 때서야 구레나룻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한 번 두들겼다. 두 시선은 또 서로 마주치며 싱긋이 웃었다.
“아마, 나는 내일 아침까지는 당신하고 같이 있게 될 거요.”
구레나룻은 벽에 머리를 비스듬히 기대며 피로한 듯 어깨를 뒤로 으쓱했다.
“그런데 딴 것보다도 자식이 자꾸 가족 얘기를 꺼내는 데는 발광을 할 지경이오. 나도 내일 아침쯤 당신처럼 끝장이 났으면 좋겠소, 어쨌든 당신이 부럽소. 퍽 피로해 보이니 끝장이 나기 전에 한잠 폭 주무시기나 하시오. 하도 잠을 잤더니 인제 잠도 오지 않고. 내 잠든 당신 얼굴이나 곁에서 보고 있으리다.
토끼귀가 자리를 비키며 말하였다.
“안됐소.”
구레나룻은 또 미안한 듯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한 번 두들겼다.
“비라도 한 소나기 쏟아져 주었으면 시원할 텐데, 무더워 잠자리가 고될 거요.”
잠시 후 구레나룻은 코를 골며 깊이 잠에 떨어졌다. 그 곁에서 토끼귀는 잠든 구레나룻의 얼굴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음 날 이른 새벽부터 강변에서는 사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감에 따라 사격전은 맹렬하게 확대되어 가는 듯 전 강변을 뒤흔들고 있었다. 거리 한복판에까지 음산한 음향을 남기며 유탄이 자주 떨어졌다.
구레나룻과 토끼귀는 언덕 밑에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은 저 멀리 강변 쪽에서 치열하게 울려 오는 총성에 묵묵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구름이 무겁게 깔린 하늘에서는 이따금 굵은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고 었었다.
“마음껏 마지막 남은 얘기들이나 주고받으시오.”
작업복은 싱긋이 눈가에 웃음을 죽이며 그들에게 말하였다. 전선이 갑자기 불리해지기 때문에 토끼귀도 그대로 해 치우는 것이었다.
어린 친구는 묵묵히 두 사람의 얼굴만 지키고 있었다. 그는 지금 어젯밤 작업복이 하던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어젯밤 확실히 작업복보다도 구레나룻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담담하고 든직하였었다. 과연 죽는 그 순간까지 그렇게 담담할 수 있을 것인가. 또는……. 그것이 큰 의문이었다.
“같이 동행이 될 수 있어서 반갑소.”
“지루한 시간이 이젠 끝나는가 보오.”
토끼귀가 구레나룻에게 말하였다. 구레나룻은 담담한 표정으로 눈을 한번 감아보였다.
그 순간 어린 친구는 눈알이 뽀ㅡ얗게 흩어지는 것 같은 환각에 사로잡혔다. 담담하고 침착한 구레나룻에 비하여 조용하면서도 해사한 얼굴……·.
“자제가 계시오?”
구레나룻이 물었다.
“아들이 둘 있소.”
토끼귀가 대답하였다.
“그렇소? 나는 하나요. 자 그럼 우리 마지막으로 악수나 한 번 나눕시다.”
둘은 서로 손을 쥐었다.
“마치 우리가 오늘 악수를 나누는 것처럼 이 다음에 어디선가 당신 아들과 내 아들이 어쩌다 서로 알게 되면 이처럼 악수를 나눌지도 모를 거요.”
구레나룻은 웃었타. 토끼귀도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눈을 감아 보였다.
“자, 그럼 인제 어린 친구에게 마지막 수고를 끼쳐야겠어.”
구레나룻이 말하였다. 그들은 정면으로 가지런히 섰다.
굵은 빗방울P1 후둑후둑 떨어졌다. 그 순간 또다시 어린 친구의 눈앞은 찡하니 소리를 울리며 뽀―얗게 흩어졌다. 조용한 그들의 표정……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총살되던 순간이 떠오른 것이였다. 아버지와 어며니가 이처럼 최후의 순간까지 조용하고 담담하였다. 그려한 얼굴을 마주 보면서 무표정하게 총을 쏘아 제치던 열굴들…… 그 때 자기 가슴에 냉엄하게 와 박히던 영상이 그의 가슴에 떠올랐다.
만일 이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이고 비굴하게 안색이 변하여 떨렸던들 그는 무표정하게 그들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총에 맞아 쓰러지는 그 순간이 끝인 것이다. 그 순간까지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의 긍지를 이들은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긍지를 가진 그들을 향하여 자기가 무표정하게 방아쇠를 당길 수는 도저히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러한 얼굴들을 인간은 무표정하게 쏠 수 있을까?
“사격 준비!”
작업복이 어린 친구에게 짧게 명령조로 말하였다. 어린 친구는 묵묵히 서 있었다.
“왜?”
짧게 또 작업복의 음성이 울렸다. 어린 친구는 안전 장치를 풀고 앞으로 나섰다.
아무래도 죽을 사람들인 것이다. 자기가 안 쏘면 결국 작업복이 쏠 것이다. 저처럼 담담한 표정에 결코 무표정한 총알을 받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쏘고 나서도 무표정하게 총을 메고 돌아설 그러한 손에 죽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도 처참한 것 같았다. 그들은 너무도 인간다왔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다운 것을 그는 무언가 자기 가슴에 남기고 싶었다. 냉엄한 하나의 영상으로서 가슴 속에 묻어 두고 싶었다.
어린 친구는 약간 떨구었던 총구를 다시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요란한 총성이 여러 번 울렸다. 그는 눈을 꾹 지려 감았다.
총성은 담담하게 서 있던 두 인간을 쓰러뜨리고 바위에 부딪친 총탄처럼 되돌아와 그의 가슴을 뚫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언가 뜨거운 핏물 같은 것이 가슴 속에서 주르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작업복은 흐믓한 듯이 등 뒤로 다가서며 어린 친구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말하였다.
“쏘고 나서도 역시 무표정해야 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쏘고 난 친구들이 그리하였던 것처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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