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사람이 세상에서 처음 배우는 학교요 가장 오래 머무는 안식처입니다. 가정은 가족공동체입니다. 부모와 자녀,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한 가정이 만들어집니다. 대궐 같은 집에 살아도 집안에 웃음이 없으면 차가운 공간이 되고, 초라한 집에 살아도 웃음과 사랑이 넘치면 가정천국입니다. 그래서 마터 테레사는 “가정은 사랑이 시작되는 곳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견본으로 보여준 가정 분위기는 어떤 모습일까요? 읽은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시128:3....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이런 행복한 가정 모습이 매일 그려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런 가정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식당에 늘 빈 의자 하나가 있었습니다. 단골 손님들은 궁금해하며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왜 저 의자는 항상 비워두나요?”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기를 “우리 가족은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 번은 꼭 함께 식사합니다. 혹 누군가 늦더라도 그 자리는 비워둡니다. 가족을 기다리는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요”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식당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단골손님들은 맛있는 음식 때문이 아닌 그 가정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 찾아온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복잡하고 힘들어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내 가정에 주인으로 모시고 가족끼리 함께 웃고, 함께 식사하며, 화목의 모습 서로 이런 작은 습관이 진정한 가정행복을 만들어갑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이 그렇습니다..... 6절뿐이 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고 행복한 이 가정에 복을 주시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는 가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말씀을 읽으면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봤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 부부가 들녘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 어머니는 저녁을 준비하고 아버지는 집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들이 아빠! 어서 들어 오세요 허겁지겁 들어온 아버지 밥상에 둘러 앉은 아내와 자녀들을 보고 노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빠는 바로 시인이 됩니다..... “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 부러울 것이 없는 아내와 자식들이 둘러앉아 식사하는 아름다운 가정을 보며 이것이 천국이구나 감동하며 이런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복이란 단어가 몇 번 나옵니까? 다섯 번이나 말씀하고 있습니다. 짧은 노래이지만 복을 아낌없이 주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시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냐 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1절 시작되는 말씀이 여호와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복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주는 복이 우선이 아니요 하나님이 주신 복이 먼저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아 그것을 감사하고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나누는 것이 복을 받는 기본입니다. .....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받았으면서 그 복을 받은 것을 잊어버리고 혼자 독차지 한다든지 가졌어도 나누지 않고 창고에 넣고 썩도록 놓아두는 잘못된 생각은 복 주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을 자주 씁니다. 경외(敬畏)란 '공경할 경(敬)'과 '두려워할 외(畏)'가 합쳐진 말로, 어떤 대상을 공경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어로 공경을 '야레(Yare)'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단순히 두려워 하는 경계를 넘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우러러보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이를 '비굴한 공포(Servile Fear)'가 아닌 '자녀다운 경외(Filial Fear)'로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종이 잘못하여 주인에게 매를 맞을까 봐 주인을 두려워하는 경외심이 있다면 또 다른 경외란...자녀가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릴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마음이 '경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할 때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분의 뜻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려워 하는 마음 상태를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표현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정 그렇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면 혼자 있을 때나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나 코람 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의 정신으로 살아가느냐입니다.
존 번연 (John Bunyan)은 그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모든 것을 두려워하며 산다."고 말했습니다. 아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신앙적 명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찰스 린드버그에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그 높은 하늘에서 혼자 비행할 때 무섭지 않았습니까?" 린드버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 앞의 계기판이 정확하다는 것을 믿었기에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게시판임을 믿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본문 말씀을 확신하며 나아갑니다. 1절.....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다 복이 있도다 라고 노래합니다.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시인이 성전을 오르면서 이렇게 노래를 합니다.
2절입니다......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입니까? 먼저 노동으로 얻는 수고의 복입니다.
사람이 열심히 땀 흘리며 수고하고 일하면(노동) 그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 베푸는 은혜의 손길입니다. 이런 은혜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부여 받는 특권입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고, 내 손의 노력이 가장 먼저 내 가족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일할 현장을 주시고 자나 께나 보호하시고 내 생업의 울타리가 되어 주신다는 '현재의 축복'임을 믿습니다.
그런데 땀흘러 일하는 수고의 복이 고스란히 가족에게 쓰여 질 때 그 기쁨과 감격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3절을 보면 가족의 분위기가 넘 행복하지 않습니까?.... 집안에 아버지가 일터에서 힘들게 일하고 집안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집 안의 아내와 자녀들을 바라보는데 힘들었던 무거운 짐들이 다 사라지고 가장의 입술로 한 편의 시가 저절로 나옵니다. “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이런 시는 행복한 가정에서 맛보는 최고의 축제의 분위기입니다.
시인이 노래한 '안방'은 단순히 공간적인 의미를 넘어 가정의 심장입니다. 밖에서 수고한 남편이 돌아왔을 때, 사랑하는 아내가 준비한 음식과 부드러운 사랑과 평안의 언어는 그 어떤 아늑함보다도 영적, 육체적 안식처로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동시에 아내의 모습이 마치 포도나무처럼 풍성한 은혜의 열매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이제 가장의 눈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선물 자녀에게 옮겨집니다. 일터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바라보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니 늘 들녘에서 바라보았던 감람나무가 떠오른 거예요 그리고 식탁에 둘러 앉는 자식들이 어린 감람나무처럼 보여진 겁니다.
그렇습니다.....이스라엘에서 자란 감람나무(올리브)는 척박한 땅에서도 수백 년을 버티며 귀한 기름을 내는 생명력 강한 나무입니다. 왕과 제사장으로 취임할 때 쓰여진 소중한 재료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그랬습니다..... 식탁에 둘러 앉은 우리 자녀가 당장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도 멀지 않아 정성한 감람나무가 되어 가정과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기름'을 공급하는 존재로 성장할 것이라는 꿈을 갖고 노래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느끼는 것은 무엇 일까요? 내가 사는 우리 집 안방이 바로 천국이구나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경외하며 얻는 이런 복이 또 어디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5절에......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노래하고 라고 했습니다
시온은 단순히 지리적인 산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법궤가 있었고,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은혜의 보좌'를 상징합니다. 또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예배하는 언약 공동체의 중심입니다. 시온과 예루살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가정과 자녀의 번성함을 누리고 하늘의 영적 공급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교회 중심적으로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사는 가정은 독립된 섬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같은 즉 교회가 평안하고 부흥할 때, 신령한 복이 개인과 가정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복은 절대로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에 머물지 않고, 내가 받은 복이 시온의 은혜를 거쳐 예루살렘같은 교회 공동체 전체를 살리고 그 복이 자손 대대로 미치게 됨을 믿습니다.
마지막 6절 다 함께 읽습니다......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누릴 복이 '시간적 깊이'를 보여줍니다. 이 복은 한 개인의 생애라는 짧은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시간을 뚫고 세대를 넘어, '자식의 자식'이라는 미래의 소망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함의 진정한 복은 절대로 단절되지 않고 영원함을 믿으십니까?
잘사는 대한민국 물질적인 유산은 아쉽지만 세대를 거치면서 흩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하는 자의 복 영적 유산은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가 더해질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요셉으로 이어지듯 조상 대대로 믿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오늘 본문에 등장한 시인의 신앙고백으로 이어졌기에 영적으로 아주 감동을 주는 찬양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의 복을 어어 받았기에 이젠 지금 시대를 넘어 다음 세대 자자 손손 영적 가문으로 견고히 서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