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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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눈이 되어준 여인 – 아랑훼즈 협주곡]
안녕하십니까? 이광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기타(guitar)가 대중화된 시기는 1960-70년대일 것입니다. 기타는 가격도 싼 편이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악기입니다. 대학교 때, 우리 집에는 기타가 4대(통기타 1대, 클래식기타 1대, 친구들 것 2대)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주말 밤이면 친구들이 모여 한 잔 하곤 포크송, 팝송, 가요 등을 가수라도 된 듯이 불렀습니다. 클래식기타를 배우는 친구들은 로망스(Spanish Romance),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을 뜯으면서 멋을 부렸습니다.
오늘은 스페인이 20세기에 배출한 세계적인 음악가 호아킨 로드리고(Joaquín Rodrigo, 1901-1999) 편입니다. 그는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Valencia)주 사군토 출생으로, 3살때 감염된 디프테리아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됩니다. 이 때문에 그는 일찍부터 음악에 심취했고, 결국 음악가의 길로 나아갑니다. 로드리고는 발렌시아 음악학교를 마치고, 파리에 7년간 유학하며 파리 고등음악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스페인 내전으로 파리에서의 학위를 포기하게 됩니다. 로드리고는 이후 스페인에 귀국해서 마드리드 대학의 교수로 재직합니다. 1940년에는 불후의 명작,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랑훼즈 협주곡(Concierto de Aranjuez)’을 작곡하여, 바르셀로나 초연에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는 신고전주의로 민속적인 색채를 훌륭한 선율로 만들어냈습니다. 로드리고는 1991년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로부터 에스파냐 음악 발전에 미친 공로를 인정받아, ‘아랑훼즈 정원의 후작(Marquesa de los Jardines de Aranjuez)’ 칭호를 하사 받게 됩니다.
빅토리아 카미(Victoria Kamhi de Rodrigo, 1905-1997)
로드리고는 파리에 있을 때인 1929년 4살 연하의 빅토리아 카미(Victoria Kamhi)를 만납니다. 카미는 터키 태생의 피아니스트로, 스페인계 유대인의 후예입니다. 로드리고와 카미는 사랑에 빠지고, 1933년 1월 발렌시아에서 결혼합니다. 그들은 결혼 후 내전 중인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와 독일로 갑니다. 타국에서 음악과 스페인어를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1939년 스페인으로 돌아옵니다. 카미는 피아니스트로서의 경력을 내던지고, 맹인 작곡가인 남편의 눈이 되어 헌신하고 자서전도 씁니다. 그 책은 ‘Hand in Hand with Joaquín Rodrigo: My Life at the Maestro's Side’로 영문 번역됩니다. 그들은 결혼 8년 후인 1941년 1월, 유일한 혈통이 된 딸 세실리아(Cecilia)를 낳습니다. 세실리아는 후에 바이올리니스트인 아우구스틴 레온 아라(Agustín León Ara)와 결혼하여, 역시 두 딸을 낳습니다.
로드리고는 97세이던 1999년 마드리드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딸인 세실리아가 세습 작위인 아랑훼즈 정원의 후작을 이어받습니다. 로드리고는 2년 전에 돌아간 그의 반려자였던 아내 카미와 아랑훼즈 묘지에 함께 묻힙니다.
제가 좋아하는 클래식 기타 음악 중에는 18세기 보케리니의 ‘기타5중주(Guitar Quintet)’가 있습니다. 이것은 현악4중주(바이올린 둘, 비올라 하나, 첼로 하나)의 기본 편성에 기타 하나가 추가된 것 입니다. 판당고(Fandango)라는 춤곡인데, 여기에선 기타와 바이올린이 밀고 당기고 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됩니다. 캐스터네츠(castanets)가 더해지면서, 금상첨화(錦上添花)입니다. 이 곡 이후 백 년 뒤인 19세기에 트레몰로 주법의 명곡인 타레가의 ‘알함브라의 추억’이 탄생하고, 그 오십 년 뒤인 20세기에 바로 이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이 기타 명곡의 대를 잇습니다. 이탈리아의 보케리니는 전성기에 그를 알아주는 스페인에서 활동하다 마드리드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타레가와 로드리고는 스페인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낭만과 정렬의 스페인이 무대였고, 기타로 불후의 명곡을 남긴 점입니다. 플라멩코와 판당고의 고장 스페인에, 함께 여행 한번 가실까요?
아랑훼즈 왕궁(Royal Palace of Aranjuez)은 마드리드 남쪽 고원지대에 있는 스페인 왕실의 별궁입니다. 로드리고는 아름다운 풍광과 오아시스가 있는 이곳에 신혼여행을 왔습니다. 그는 이 왕궁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영감을 얻어, 스페인의 아름다운 자연과 색채감을 표현했습니다. 그의 눈이 되어준 아내 카미와의 소통의 결과로, 명품 아랑훼즈 협주곡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로드리고는 아랑훼즈 협주곡을 사인스 데 라 마사(Regino sainz de la Maza. 1897~1982) 교수에게 헌정하여,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한편, 당대 최고의 기타 거장인 안드레스 세고비아는 이 곡이 자신에게 헌정 되지않았음을 매우 괘씸하게 생각합니다. 아차 싶었던 로드리고는 '어느 신사를 위한 환상곡(Fantasia para un Gentilhombre)'이라는 또 다른 명곡을 작곡하여 세고비아에게 헌정합니다. 여기서 신사 또는 귀인은 바로 세고비아를 지칭하는 것은 아닐까요?
지는 나이에도 통기타 연주의 고수들과 클래식한 보이스의 친구들이 모여서, 통기타 싱어롱을 만든다고 합니다. 저는 이제 양쪽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고백했지만, 이 칼럼을 쓰는 이유로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합니다. 친구나 보러 가야지요. 예전에 성가대에서 그랬듯이, 또 한번 립싱크로 고생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은 모두 3악장이나, 기타와 잉글리시 호른의 아름답고 구슬픈 선율이 돋보이는 2악장이 많이 연주됩니다. 오늘은 호주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존 윌리엄스의 협연으로 2악장을 감상합니다. 피아니스트 출신으로 세계적인 지휘자가 된 아르헨티나의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합니다. 10분만 투자하십시오.어려웠던 시절인 1970년대 KBS 토요명화 시그널 뮤직이어서 어렴풋이 기억이 나실 겁니다.
집 앞 목련은 바람이 심해서 그런지 벌써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랑훼즈 협주곡으로 또 흘러가는 봄을 만끽해 보시지요?
감사합니다.
이광호
https://youtu.be/CBHfPh5Ib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