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많이 늘어난 요즘, 직원이
무릎을 낮추고 손님의 테이블 높이에서 주문을 받는 광경이 그리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TGI프라이데이스에서 그런 퍼피 도그 서비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 레스토랑의 원산지인 미국에서조차 실시하지 않은 서비스를 한국지점에서
시작한 것이라서 그 효과는 더욱 컸을지도 모른다.
결국 퍼피 도그(puppy dog) 서비스는 호텔과 항공사까지 번져 나갔다고 한다.
물론 경쟁사인 다른 패밀리 레스토랑은 말할 것도 없고.
서비스가 좋은 식당일 수록 고객의 눈높이를 의식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것은 마음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행위로 보여질 때 고객의 감동을 얻어 낸다.
어제는 어린이 날이었다.
한참 롤러코스터의 재미를 알게 된 아들이 놀이공원을 외쳐대니 별 수없이
새벽에 서둘러 공원을 향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 들기 전에 재빨리 놀이기구를 섭렵하고는 여유있게 꽃을
감상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사람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놀이기구랑 별로 친하지 않은 나는 자연과 사람을 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다.
또한 어린이날의 주인공인 아이들도 구경했다.
아이들을 빙자(?)하여 동심을 즐기는 어른들도 많아 보였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진정 어린이의 눈높이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어린이날의 취지가 일 년에 하루 아이와 놀아주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어린이를 과잉으로 우대하는 것,
어린이를 과소비로 치장하는 것,
어린이를 어른의 축소물 쯤으로 여기는 것,
어린이를 어른의 기쁨조 쯤으로 여기는 것....
그 모든 것들은 또 다른 형태의 아동 학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학적인 학대가 적극적인 학대라면, 무시하고 잘못 대우하는 소극적 학대도 있을 것이기에.
진정한 이해의 출발은 바로 눈높이를 맞추는 것.
퍼피 도그 서비스를 아이들에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바로 그 서비스의 원조가 아닐까 싶다.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자기를 낮춰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신 것, 성육신이 바로
퍼피 도그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리로 나아오라고 명령하지 않으시고 친히 우리의 천한 자리로
낮추고 다가오신 예수님이시기에 말이다.
그렇기에 "부모의 성육신은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라고 했다.
어린이 날에 마냥 자유와 풍요를 주는 것이 아이에 대한 올바른 대접이 아니고,
아이에게 퍼피 도그 서비스로 다가가는 것이 바로 어린이 날의 취지라는 것이다.
알면서도 잘 실천하기 힘든 일.
그렇지만 때때로 식당에서 퍼피 도그 서비스를 받노라면,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남들은 돈을 위해서 저렇게 과감한 서비스를 하는 데, 돈보다 귀한 사람을 위해서
난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하면서.
사람을 얻기 위해서 이다.
자식을 얻고, 남편을 얻고, 부모를 얻고, 형제를 얻고...이웃을 얻기 위해서
퍼피 도그 서비스를 해야하는 것이다.
가정의 달, 5월.
과감하게 퍼피가 돼보는 거다.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 재롱을 부리는 퍼피가 돼보는 거다.
퍼피 도그 서비스는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