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11시 환경재단 레이첼 카슨룸에서 구제역 사태에 대한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호소하는 교수 지식인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번 호소문에는 강국희 명예교수(성균관대 생명공학), 환경철학회 한면희 회장,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교수, 전 서울대 보건대학원장 백도명교수, 씨알의 소리 편집장 김조년 교수, 전 민주화를 위한 교수 협의회 김서중 대표 등 225 명의 원로교수와 지식인들이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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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정현진 기자 |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들은 먼저 살처분 방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현재 구제역은 진정국면으로 들어가고 있고 정부는 방역문제와 축산문제에 대한 대책팀을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살처분 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라면서 “그러나 구제역은 성체 동물에선 감염 사망률이 5% 이하로 매우 낮고, 대부분 2주 안에 항체가 생겨 자연치유 된다. 일부 동물들이 구제역에 감염되었다고 하더라도 근처의 건강한 동물까지 모두 살처분 하는 것은 바이러스에 대한 획득면역력 뿐만 아니라, 자연면역력을 갖춘 동물까지도 모두 없애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과적으로 면역력을 갖지 못한 동물만 남게 될 것이고, 같은 바이러스가 들어올 때마다 이런 일은 되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성남 교수(중앙대 의과대학)는 “인류 역사를 보면 수많은 전염병이 돌았지만 초기에는 사망률이 높았던 질병도 시간이 지나면서 면역력을 갖춰, 이겨낼 수 있게 됐다. 구제역 역시 살처분이 아닌, 질병과 싸워 이겨낼 수 있는 강한 개체를 만드는 방식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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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김선경 교수는 참고발언을 통해 구제역과 조류독감에 의한 인체감염 피해사례를 들면서 "구제역에 의한 피해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으며, 조류독감에 의한 피해 역시, 주로 후진국에서 15세 이하의 어린이에게 발생한다"라며, 바이러스 뿐만 아니라 '빈곤'의 문제가 주요한 피해 원인이라고 말했다. | 이들은 이어서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과 바이러스 변종 가능성에 대한 대안으로 가축 사육환경 개선을 위한 ‘축산 복지’를 강조했다. 닭에서 시작되어 오리까지 발병하고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의 사례를 들면서, “이는 다른 종 사이에 전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축산 환경이 밀집되고 서로 다른 종들이 근거리에서 사육된다는 것을 고려할 때, 다른 종 간에 변형된 바이러스가 생겨날 수 있고 이는 인간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열악한 환경에서의 집단사육은 동물들의 면역력을 극도로 약화시킨다. 우리나라 동물들은 비인도적인 살처분 뿐만 아니라, 교배, 사육, 운송, 도살과정에서 국제동물기구(OIE)가 권장하는 지침에 의한 보호는커녕, 생지옥과 다름없는 생존조건에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가축 사료에 포함되는 항생제 종류와 용량, 성장호르몬 사용 유무, 사육환경 등에 대한 철저한 관리로 국민건강을 지키고 생명으로서의 가축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 과밀사육을 소규모 친환경사육으로 전환하고 과잉 축산농가는 유기농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또 “불행하게도 이번 구제역 사태는 총체적인 정책의 실패다. 이번 구제역 사태를 통해 우리는 국지적인 정책의 실패가 국가적인 쇠망을 낳을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으며, 경제지상주의, 무비판적 선진국 추구, 생명경시 사상 등 지난 수십 년 간 추구해 온 한국사회의 병폐가 집결되어 빚어낸 비극이다”라고 지적하면서 “정부당국 및 국회는 이번 사태를 방역행정의 실패로만 보고 원인분석과 대책마련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축산정책과 방역정책을 그 근본에서부터 다시 살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친환경 복지축산의 기본적인 내용이 없는 <동물보호법>, 인도적 도살의 내용이 전무한 <축산물가공처리법>과 <가축전염병>에 대한 규정들이 국제적인 기준에 맞게 전면 개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동물보호법 관련제도에 대한 정책과 지침에 대한 분석, 육류와 유제품 수입확대정책 비판 등 다양한 측면에서 대안을 제시하며, 향후 구제역 사태 극복을 위한 상시적인 문제제기 기구로서 “구제역과 AI 극복을 위한 교수 지식인 연대기구”를 제안하고 출범시킬 계획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