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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를 위해 오신 주님께 무엇을 드려야할까요?(마2:1-12)
2023, 8/20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마2:1-12절 말씀으로 “나를 위해 오신 주님께 무엇을 드려야할까요?” 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지난주에 태풍 카눈이 우리나라를 관통했는데, 이런 경로는 태풍관측이래 최초의 진로였고, 큰 피해가 예상되었지만 육지로 들어온 후 급격히 세력을 잃어 큰 피해 없이 잘 지나가게 되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1-2개의 태풍이 올라올 수 있는데, 가을 수확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기도해야겠지요.
지난 화요일이 더위가 최고의 피크였던 것 같은데 태풍 때문에 그 더위도 한풀 꺾여 이제 무더위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건강에 만전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2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주님은 고단한 인생과 겸손한 자의 목자로 오셨습니다.(6절)
둘째로, 여러분은 주님께 어떤 보배 합을 드릴 것입니까?(11절)
사랑하는 여러분!!!
2,000년 전에 이 땅에는 이 세상을 구원하실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메시야답게 전 세계 뉴스의 중심이 되었어야 하는데 전혀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오셨고, 사역도 전 세계가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로 떠들썩한 사역이어야 함에도 조용히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역을 하시니 사람들이, 특히 예루살렘 지도층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의 오심은 초라한 오심이었고, 이름도 빛도 없는 힘든 사역이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왜 조용하게 오셨고, 어렵고 힘든 사역을 하셨을까요? 주님은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겸손한자의 목자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님 때문에 결국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영생을 누리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최고의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여러분들은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나를 위해 오신 주님께 무엇을 드리시겠습니까? 최상의 노력으로 최고의 것을 드리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나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께 어떤 보배합을 드려야 좋을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주님은 고단한 인생과 겸손한 자의 목자로 오셨습니다.(6절)
본문 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아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800년 전에 미가선지자가 장차 메시야가 베들레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실 것을 예언하셨는데, 오늘 그 예언대로 메시야 되시는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로써 이 땅에 오실 때 왕으로 오셨습니다. 창49:10절에서 요셉이 그의 열두 아들에게 마지막 예언적 축복을 하실 때 유다에게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왕권이 영원히 유다지파를 통해 이어질 것을 말씀합니다.
이 요셉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의 왕은 과도기에 해당하는 제 1대 사울 왕만 빼고 그 다음 다윗부터는 유다지파를 통해 왕권이 계속 이어지다가 마지막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유대인의 왕으로,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이 세상의 왕이시고,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이라 가장 크고 화려하며 돈과 사람들이 모여드는 로마나 예루살렘에서 태어나는 것이 마땅하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왜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까요? 그렇습니다. 미가서 5:2절에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다는 그 말씀을 이루기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유다지파에게 분배된 땅은 바로 베들레헴과 헤브론입니다. 그래서 같은 유다지파인 다윗의 고향도 베들레헴이고,(삼상16:1, 17:12) 다윗의 후손인 예수님도, 그의 아버지인 요셉의 본적도 자연스레 베들레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로마황제 옥타비아누스의 호적명령에 따라 요셉이 베들레헴으로 가 그곳에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낳음으로 자연스럽게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일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쩌다 그냥 우연히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미가서의 예언이 이루어지기까지 수백, 수천 년간의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과정 속에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겠습니까?
이런 수많은 사건들이 이 예언의 말씀을 이루기위해서 하나하나 의미를 갖고 전체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갔다는 것인데, 정말 소름 돋는 일입니다.
아무리 양자 컴퓨터가 개발된다 한들 이런 수많은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얼키고 설킨 인생 전체를 계산해서 이 예언을 이룰 수 있도록 딱 맞는 답을 내 놓는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다시 돌아와 이렇게 예수님이 만왕의 왕요 만주의 주가 되시며, 이 세상의 왕이오, 유대인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다면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정말 온 세상이 떠들썩하게 정말 장엄하고 화려하고 호화롭고 찬란하게 오시는 것이 맞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태어나셔야 할 곳은 로마의 황제 궁이든가, 왕궁과 성전이 자리 잡고 있는 예루살렘이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동방박사들이 메시야를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찾아온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이 없었고, 대신 음흉하고 포악한 헤롯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겨야할 예루살렘에는 독사의 자식들만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인데, 이런 곳에서 우리 예수님이 태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이유들 때문에 황홀하고 찬란한 예루살렘이 아니라 작고 초라한 마을, 그것도 짐승들의 배설물로 가득 찬 마굿간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축하사절단이 있었나요? 왕과 고관대작들이 와야함에도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과 동방박사들만이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했을 뿐 그 누구도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헤롯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군대를 보내 베들레헴의 2살 미만의 아이들을 전부 죽이는 만행만 저지르지 않았습니까? 이걸 볼 때 앞으로 우리 예수님의 사역이 참으로 험난할 것임을 직감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서 잘살고 잘 나가는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고 대접을 받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가난한자와 약한 자, 그리고 소외된 인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더 많은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출생부터가 낮고 천한 곳에서 태어나셨고, 공생애 때도 산상수훈을 통해서 가난한자, 애통하는 자, 주린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등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연장선에서 죄인들을 친구로 삼으셨고, 병든 자를 치료하시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눅4:18)
반면에 부요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에게 화가 있을 거라 하셨는데, 마치 예수님이 가난한자와 부자를 갈라치기 한 것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그러나 대체로 고단한 인생들이 복음에 더 마음이 열려있고, 부자는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부자들과 기득권자들이 많은 예루살렘보다 소외되고 가난하지만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는 갈릴리에서 공생애 2/3 이상을 머물며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막2:17절에서도 주께서 죄인을 부르러 오셨고, 의원이 필요한 병자들을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떤 사람이 죄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너무 잘나고 잘살고 잘나가면 겉으로는 순응해도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처지의 천한 나사렛의 목수의 아들이라면 어떨까요? 진심으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주께서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구원사역을 할 때도 홀로 외롭게 감당하시다가 마지막 생도 죄수들 틈에 끼여 십자가에서 마감하십니다.
여러분!!! 베들레헴에 가면 2000년 전 주님이 탄생하셨던 자리에 주님 탄생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에 들어가는 입구가 너무 낮아서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입구를 좁게 만들어놓은 것은 바로 주님은 가난하고 겸손한 자의 친구로 오셨기 때문에 목이 곧고 교만한 자는 주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은 만왕의 왕이신 주님 앞에서 작은 권세만 생겨도 자랑하고 누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또 학2:8절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재물이 많다고 가난한자 약한 자를 무시하고 얕봐서도 안 됩니다. 또 사3:24절에 "그때에 썩은 냄새가 향기를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수치스러운 흔적이 아름다움을 대신할 것이며." 이렇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신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보잘것없는 외모도 자랑하지 마십시오.
오직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선한행실로 장신구를 삼으며,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높이는 자가 되어 고단하고 겸손한 자의 목자로 오신 주님과 함께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로, 여러분은 주님께 어떤 보배 합을 드릴 것입니까?(11절)
본문 1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아멘.
우여곡절 끝에 동방박사들이 마굿간에 도착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는데, 이런 행위는 당시 윗사람들을 찾아뵐 때 일반적으로 예물을 드리는 관행을 따라 드린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온 인류의 구세주인 주님 앞에 나아가면서 빈손으로 보이지 않고 귀중한 예물을 준비해 드린 것은 잘한 일인데, 이들이 드린 3가지 예물 중‘황금’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도 아주 귀한 것이고,‘유향’과‘몰약’은 동아프리카와 아라비아에 자생하는 나무에서 추출한 향수로서 유향은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제사용이고, 몰약은 톡 쏘는 냄새로 시체를 썩지 않게 방부제로 사용되는 아주 비싸고 귀한 최상의 것들입니다.
박사들은 이 귀한 물품들을 본국에서부터 가져와 주님께 드렸으니 그들이 메시야의 탄생을 얼마나 고대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이 예물들은 중요한 상징성을 갖고 있는데, 황금은 예수님의 왕권을 상징하고, 유향은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상징하며, 몰약은 시체에 발라 방부제로 쓴다는 점에서(요19:39)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박사들이 이런 의미를 알고 이 예물을 준비했을까요? 저들은 단지 유대인의 왕이요 특별한 분이 탄생한 것으로만 알았지 구체적으로 그분이 누구며, 무슨 일을 하실지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이런 물품을 준비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들이 준비한 예물은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메시야되심을 상징하는 예물이 되었으니 이것만 보더라도 기가 막힌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이 헤롯의 살육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 갔는데, 이것도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러내었다."는 호세야 11:1절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애굽에서 피난살이를 할 때 이 예물들이 그들의 생계를 유지시켜주는 수단이 된 것을 생각하면 이 또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임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맡겨야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여러분!!! 박사들이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경배하면서 최상의 예물을 드린 것은 정말 잘한 일입니다. 그렇게 고대했던 분이고, 내 죄를 대속하여 나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해주신 분을 만나는데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고 값진 것을 드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이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들어갔을 때 한 여인이 300데나리온이 넘는 향유옥합을 깨서 예수님 머리에 부어드리지 않았습니까?(막14:1-9) 또 베다니의 나사로 집에서도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씻겨드렸습니다. 이런 행위들은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께 최상의 마음의 표현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들에게 이런 대접과 환대를 받을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으십니다. 주님은 우릴 위해 당신의 목숨까지 아낌없이 버리심으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셨고, 지금도 하나님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런 분께 무엇을 드릴들 아까울까요?
미6:6-7절에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 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님께 예배하러 나올 때 어떤 것을 가지고 나오시는지요.
박사들처럼 가장 귀한 예물을 준비하고, 여인들처럼 최상의 것을 드리시는지요? 여러분!!! 예배는 그냥 한 시간 앉아있다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를 제물로 드리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큰 교회에서 잘 짜여진 화려한 예배를 드려도 예배에 중심이 실리지 않는다면 그 예배는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예배이고, 반대로 작고 초라한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라도 정말 중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면 그 예배야말로 오늘 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과 같은 예배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주님께 어떤 예물을 드리고 있는지요? 물론 "천 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드리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마음과 중심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장 귀중한 보배합이 아니겠습니까? 이 보배합을 여러분의 삶속에서도 계속 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중에 우리도 동방박사들처럼 주님을 고대하며 만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