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어들은 어항 속에서 한 생을 보낸다. 키우는 인간의 배려에 따라 제대로 된 환경이거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며 알이나 새끼로 번식한다. 그들의 반짝이는 아름다움은 삶이 짧아서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예민한
그들은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지 않으면 키우기 힘들다. 때로 나는 열대어의 삶을 생각하면서 두려움을 느낀다.
한정된 공간이 전부인 세계, 키우는 인간의 의사에 따라 열대어의 본능은 배려되거나 전혀 배려되지 않고 죽음을
일찍 맞거나 늦게 맞는 것으로 그들은 오직 한 때의 휴식, 인간의 보는 즐거움을 위해서만 온 생을 바치는 것이다.
어항 속에 사는 물고기에는 자유 의지가 없다. 그럼에도 어항에는 삶이 빛나는 것으로, 간혹 인간이 어항속의
물고기가 아닌가 의심하는 나는 몹시 비관적인 것일까. 철저히 의존적인 삶, 인간의 의지에 따라 주어진 공간
속에서 살면서 그 공간의 협소함을 깨닫지 못하거나 설령 깨닫는다 하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삶. 모든 공간은
축소될 수 있다. 지구라는 공간이 어항으로 축소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녀가 키우는 열대어들은 보석 같았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면서 연방 공기방울을 뱉어냈다. 연녹색 수초가
한들거렸고 그 안을 헤엄쳐 다니는 주홍 물고기와 그보다 더 작은 물고기가 보였다.
“저건 왁 플레티예요. 그리고 저게 수놈이에요.”
내가 열대어에게 흥미를 보이자 상익이 엄마가 주홍빛 물고기를 가리켰다. 창 같은 지느러미를 배 밑에 달고
있는 놈이었다.
“나머지는 암놈이구요. 배가 불룩한 저 놈은 새끼를 뱄어요. 보tu요.”
특유의 느릿한 어투로 그녀가 다른 한 마리를 가리켰다.
“배 속에 까만 점이 보이지요? 저게 눈이에요. 조금만 있으면 새끼를 낳을 거예요.”
“물고기가 새끼를 낳아요?”
“열대어는 새끼를 낳아요. 새끼를 낳으면 어미가 먹기도 하고 다른 물고기들이 잡아먹어요. 그래서 따로
분리해두어야 해요.”
느릿한 어조로 그녀는 새끼통을 가리켜보였다. 그 새끼통은 작은 플라스틱통으로 어항 위쪽에 매달려 있었고
그곳에는 배가 유난히 불룩한 어미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붉은 실 꾸러미 같은 물체가 떠 있었다. 가느다란 실이 흔들거리는 그 물건은 징그러웠다.
“이건 실지렁이예요. 열대어에게 단백질을 공급해줘요.”
그녀가 다시 눈가에 주름을 잡으면서 웃었다.
“먹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거든요. 한 두달에 한 번씩 저렇게 실지렁이를 사다가 먹어야 해요.”
주홍빛 열대어 사이로 쏜살같이 헤엄쳐가는 작은 물고기가 보였다. 정지해 있는 듯 싶다가 화들짝 놀라기라도
한 듯 어느새 방향을 틀어 달아나는 것이다. 멸치보다 작은 회색 몸체에는 빨간 색과 파란 색이 공존하고 있었고
파란 형광 빛 줄무늬가 유난히 번쩍였다.
“네온 테트라예요. 플레티만 키우니까 눈이 심심해서 사다 넣었어요.”
“어항 청소는 어떻게 해요?”
래리 생각이 났던 것이다. 뮌헨의 하숙집 주인이었던 래리는 거실에 물고기를 키웠다. 그의 어항은 몹시 커서
어른이 들어가 헤엄쳐도 될 정도의 크기였는데 어항 벽에는 녹색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고 달팽이가 기어가면서
길다란 흔적을 남겨놓곤 했다. 달팽이가 기어간 흔적만 녹색 이끼가 없었던 걸로 보아 그 집의 어향 청소 담당은
달팽이였지 않나 싶다. 우리가 그 집에서 하숙하는 몇 달동안 그가 청소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처럼 큰 어항은
혼자 힘으로 청소할 수 있을 듯 싶지 않았으니 누군가 서비스하는 이가 와서 청소해주지 않았나 싶었으나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누가 언제 어항을 청소하느냐는 내 물음에 래리는 고개를 흔들었던 것으로 그의 태도에는
굳이 청소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숨어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극성부리는 것이 아닐까. 어항을
밝고 환하게 이끼 한점 없이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안달하는 것은 우리의 특성이 아닐까. 물고기보다는 우리의
즐거움을 위하여 우리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을 들게 했던 그의 집 어항.
“청소 물고기가 청소해줘요. 남은 먹이를 모조리 먹어치우거든요.”
그녀는 바닥에 깔린 돌 틈을 가리켰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보고 있으려니 수초 사이에
숨어 있는 듯한 재색의 물고기가 눈에 들어왔다. 숨어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물고기의 본능이 그랬을
것이다. 주둥이에 털처럼 몇 가닥의 돌기가 나와 있는 그 물고기는 느릿느릿 움직이면서 입을 뻐끔거렸다. 밝고
화려하고 재빠른 다른 열대어들과는 달리 청소 물고기는 크고 흉하고 밉살스러웠다. 보고 있으려니 물고기는
주둥이를 돌 위에 대고 뻐끔거렸다. 그 모습은 돌들을 남김없이 훑는 것처럼 보였다. 어항 속 물이 깨끗하고
맑은 것은 바로 그 청소 물고기 덕분이었다. 영양가 듬뿍 담긴 먹이를 공급받아 아름답고 재빠르며 원기 왕성한
다른 열대어들은 수면을 그리고 물속을 헤엄쳐 다니면서 눈을 끄는 존재였다. 그 이면에 숨어있는 청소물고기는
열대어들이 미처 먹지 못한 먹이들과 소화시킨 찌꺼기들을 먹어 물을 깨끗하게 유지해주고 있었다. 잘 드러나지
않는 수초그늘을 헤엄쳐 다니면서 흉한 모습으로 묵묵히. 그 물고기 이름이 비파였다.
첫댓글 전 20년 전에 열대 해군 기르다가 접었습니다. 청소해주는 게 넘 힘들어 다 죽였어요. 제가 기르던 청소 물고기는 약간 농땡이 같았어요. 청소를 다 해주지 않더라구요,ㅠㅠ 육군으로는 개를 여섯 마리나 기르다가 다 실패하고, 공군을 기르려다가앵무새가 넘 비싸서 (300만원) 포기했구요. 지금 학교에서 닭을 기르면서 그 꿈을 실현하고 있죠.^^
꿈의 실현이 아니지요. 그건 그냥 기르는 거지요.
ㅎㅎㅎ 기르는 것도 꿈....그쵸?
어항 속을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 보기는 처음입니다.
다음엔 더 자세히 실물을 보시겠네요. ^^
물고기를 키우려면 사는 사람하고 궁합이 맞아야 한대요. 벽걸이 어항을 하나 설치하고 싶은데 어디서 들었는지 남편이 자기하고 물고기는 궁합이 안맞아서 키우면 해롭다고 반대를 하네요..
아 그런가요. 흠...그런 것도 있군요. 식물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