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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 60:1-5)
오늘은 2024년도 두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간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그렇게 그리워하던 고국 이스라엘로 희망을 안고 돌아왔을 때입니다. 막상 돌아와 보니 폐허가 된 예루살렘성과 너무나 피폐한 경제적 현실앞에 두려움과 절망이 앞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그들을 대적하는 적들은 여전히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삶의 여건이 어둡고 침침했습니다.
그러니 돌아온 예루살렘 백성들은 주저 앉아서 낙담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과연 이럴 수 있는가?", "예루살렘은 다시 거룩한 도성이 될 수 있을까?" "바벨론 포로생활보다 나은 삶은 과연 가능한가?“ 답답한 현실 앞에 원망과 불평하며 주저앉아 있을 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의 메세지를 들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저절로 회복되고 부흥된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이 말씀 속에는 이스라엘이 마땅히 해야 할 명령이 들어 있었습니다. (1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밤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미 해가 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그 백성 위에 비치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영광의 아침이 동터 오는데 이 빛을 보지 못하고 여전히 불평과 불만에 사로잡혀 원망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한 책망과 경고이기도 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진 세상에서 죽음과 절망의 고뇌속에 시달리고 있는 인생들에게 하늘의 산 소망을 주시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저는 새해 우리 양문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요 명령이심이라고 믿고 아멘으로 마음에 새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일어나라.
일어나라는 말을 '이제 잠에서 깨어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인 무감각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저들이 주저앉아 있으면 해결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히려 원망하고 절망하고 불신앙의 늪에 빠져서 마귀의 종노릇이나 할 뿐입니다. 먼저 자기가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영적으로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마냥 앉아 있는다고 시간이 가면 저절로 해결되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야 합니다. 정말 점점 세상이 어두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전체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날마다 전쟁의 고통스런 소식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온갖 자연 재앙이 점점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다 영적인 현실은 죄악이 관영하고 이단과 사이비가 판을 치고 교회가 빛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대로 주님앞에 선다면 우리는 어떻게 설 것인가를 생각해보셨습니까? 미련한 다섯처녀처럼 신랑이 찾아왔는데 졸며 자고 있습니다. 신랑을 맞이할 기름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기도하라고 외쳐도 행동하지 않는다면 다 자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 권사님들이 자원해서 신년기도회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이 시대를 바라보고 우리의 자녀들의 영적 현실을 바라본다면 지금 이 상태로 마냥 앉아 있으면 안되겠다는 긴장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첫번째 말씀이 바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빛, 하나님의 영광이 네위에 임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현실을 바로 보고 지금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패배의식 가운데서 일어나라, 안일의식에서 일어나라, 너희들의 그 위기 가운데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ㅇ이 네위에 임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일어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일어나라는 명령은 현재형입니다. 그리고 계속형입니다. 지금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한 번 일어나려고 하다가 주저앉지 말고 계속해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현재입니다. 앉아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영적인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처럼 교회당은 오지만 아무런 영적활동이 없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찬송도 없습니다. 기도도 없습니다. 전도도 없습니다. 성경을 읽는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종교적 행위입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예배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신령과 진정한 예배는 없습니다. 축복에는 관심이 있지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마지막 결론에 가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7:22-25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하나님께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하긴했는데 그속에 하나님의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자기자신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욕심,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자의 결론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죄악의 자리에서 뿐 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굴레에서 벗어나 주님께로 나아와야 합니다. 섬김을 받는 자리에서 섬김의 자리로 일어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시간에 기도하지 아니하고 잠자는 제자들에게 다가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으라고, 일어나 기도하라"(눅22:46),
또 사명을 외면하고 딴 길로 가서 잠만 자는 요나에게 "일어나라"(욘1:6)고 하셨습니다. 우리모두는 마지막 시대의 파수꾼입니다. 파수꾼이 잠을 자면 큰일 납니다. 잠들어 있으면 분별을 못합니다. 주위 상황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도둑이 들어와도 모릅니다. 불이 나도 모릅니다. 이러한 영적으로 잠자는 성도를 향해서 예수님은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성도가 주일에도 영업을 하다가 가게 문을 닫고 신앙생활에만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주일날 장사를 하는 것에 미련을 떨쳐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깨달음을 주신 것입니다. 이제 영혼의 기쁨을 회복했습니다. 전에는 교회에서 봉사하지 못하던 몫까지 열심히 했습니다. 평일날 손님들이 몰려와서 사업이 아주 흥왕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주일날 문을 닫고 영적인 기쁨도 되찾고 돈도 버는 중에 주일날 예배드리고 마치면 시간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가게문을 열 수 없고 이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 노는 것도 한 두 번이고 이 사람이 주일예배를 마치고 남는 시간에 가게를 열지 않는 대신 내가 이것을 해야겠구나 했던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교회에서 전도행사를 할 때마다 한번도 전도를 해 보적이 없는데 '그렇다! 이 남는 시간에 전도를 해야겠다'고 교회 전도지를 가지고 매 주일마다 오후시간에 아파트단지를 돌아다니면서 야외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예수 믿읍시다. 예수 믿읍시다" 전도지를 주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전도자로 변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에게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를 통해 믿는 자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는데 하나님이 전도지를 받은 사람들 속에 역사하시면서 예수를 믿었다는 소식들이 들려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2024년도 우리에게 주신 표어는 ”한 영혼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교회”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내 자녀들, 내 가족들, 그들의 구원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결과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재림의 예수님이 가까이 다가와 나팔을 불면 기회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에게 기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먼저 저들을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내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방법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여러분, 세상적으로 잘 나간다고 위로받지 마십시오. 그것 잠시입니다. 하나님앞에 인정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해야 영원한 안식이 있는 것입니다. 잠시 세상에서 잘 산다고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다섯처녀처럼 기름을 준비하고 주님을 맞이할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빛을 발하라.
1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일어나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둔 세상에 빛을 발하기 위해서입니다. 주저앉아서는 빛을 발할 수가 없습니다. 드러누워서는 빛을 발할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빛을 발하라는 명령은 우리에게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2절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태양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기불이 없어서 어둠이 아닙니다, 복음의 빛이 없어서 어둡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기갈입니다. 그래서 양심이 마비되었고 도덕성이 상실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점점 어둠이 땅을 덮을 것입니다.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고 있습니다. 물론 환경적으로 말하면 지금처럼 잘 살고 풍부한 때가 언제였습니다.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하고 그 문명의 이기를 현실 세상속에서 누리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점점 자기밖에 모르는 시대로 급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대한 성경의 가장 실질적인 경고는 (딤후 3:1-5)입니다.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바로 이것입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둠이 온 땅에 덮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두워지면 뭐가 절실하게 필요합니까? 빛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5:14,15)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을 부르셔서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너희는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빛의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옆사람에게 이렇게 가르쳐주십시다. “당신은 세상의 빛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이 있는 처소에서 빛을 비추고 있습니까? 빛을 비추기 위해서 행해야 할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빛을 비추기위해서는 자기가 녹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촛불이 녹아야 빛을 발합니다. 석유등이 태워져야 빛이 드러납니다. 빛은 자기를 녹인 결과입니다. 이처럼 자기를 하나님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기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렇게 내가 희생하고 내가 부인되고 내안에 계신 예수님이 드러날 때 세상에 빛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은 그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빛은 바로 착한 행실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착한 행실입니다. 이제는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착한 행실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빛입니다.
말씀이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빛된 삶을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내 삶을 통해 착한 행실을 보여주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묵상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내 삶과 연결시키기 위해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먹는 것입니다. 말씀을 잘 듣고 믿으면 내 생명양식이 됩니다. 영의 양식이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밥을 먹으면 그 밥이 우리 몸속에 들어가서 분해가 되어서 영양소를 만들어 내고 온몸으로 전달하여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됩니다. 다시말하면 내 몸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먹으면 그 말씀이 내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날마다 먹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사랑하고 날마다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다니면서 성경 한 번도 안읽고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새해 결심합시다. 올해 목표는 성경 한 번 읽는 것입니다. 하루에 3장 읽고 주일에 5장을 읽으면 1년에 1독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사랑하면 말씀이 나를 이끌어 갈 것입니다. 착한 행실을 보일 때 나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빛은 무엇입니까? 첫째 착한 행실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를 말씀드린다면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은 말씀을 원저자입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말씀이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성령을 받아야 진짜 예수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렇게 많은 것을 보고 배웠어도 실제로 성령을 받지 않으니까 무력했습니다. 빛이 없었습니다. 어두움에 침몰된 것처럼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이후에 저들은 달라졌습니다. 빛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두움과 싸워서 물리치고 생명의 빛을 발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을 사모하십시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성령님을 인정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빛을 발할 때 어두움이 도망가고 생명의 빛이 비쳐지고 우리를 통해서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병든 영혼이 치료받고 예수를 모르던 영혼이 예수앞으로 나오는 구원의 역사가 나타날 줄을 믿습니다.
3. 보라.
2-3절,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보라, 바라보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빛을 발하는 성도는 바라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 무엇입니까? 성경말씀에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말씀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기대하면서 믿음으로 내 속에 품으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4,5절에서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5]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고 했습니다.
네 눈을 들어 무엇을 보라는 것입니까? 사면은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 “…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창13:14) 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이 주실 축복의 땅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눈에 보이는 것 없고 환경적으로 위기가 닥쳐왔지만 믿음의 눈을 떠서 하나님이 행하실 약속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통해서 하실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을 바라보십시오. 이번 주가 2024년도 두 번째 주일입니다. 이제 한해의 12월 마지막을 바라보고 내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이 행하실 일을 이루실 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루실 위대한 역사를 바라볼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비젼이 무엇입니까?
1)사면에서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일어나 빛을 발한 성도에게 주어진 결과입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았습니다. 빛을 발했습니까? 이제는 그 결과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본문 4,5절에 나오는 중요한 동사적 표현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온다'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3-4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또 여기서 무엇을 보라는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부어주신 축복을 보라는 것입니다. 일어나 빛을 발한 결과를 보라는 것입니다. 모여 오는 것을 내게 오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 이방사람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나 때문에 믿지않는 한 영혼이, 내 사랑하는 가족이 주앞에 나아와서 회개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때 (5절)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2)하나님의 역사와 구원받는 영혼을 보고 놀라며 기뻐하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뿐 만 아닙니다.
3)하나님의 약속은 물질적으로도 넘치도록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환경을 바라보고 실망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음을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하나님이 하실 일을 보라. 이것은 2024년도에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제 일어서서 빛을 발하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 가지 약속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잃어버린 영혼이 주께로 돌아옵니다. 2)하나님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를 보고 놀라며 기뻐하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3)물질의 복도 넘치도록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축복과 은혜가 오늘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