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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기념관
이곳은 제주도의 아픈 역사를, 기억해야할 역사를 담아놓은 곳중 하나였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 곳을 방문하기 전까지 이 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이 사건을 다룬 글들과 영상, 사진 등은 건물의 미로 같은 길을 따라 배치되어 있었고 건축물 안으로 들어감에 따라 이 사건의 아픔을 더욱 모립해 느낄 수 있었다. 짧은 시간안에 그 추모공간을 쭉 돌아보면서 크게 와닿은 것 중 하나는 진실의 무게이자 기억의 중요성이었다. 하얀 벽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기억을 말살당한 곳에는 역사가 없다고,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지 못하는, 모른 척해야 하는,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스스로 기억을 망각으로서 죽이는 일을 ‘기억의 자살’이라고 부른다고, 이 글은 김석범이라는 소설가의 글로 대략적으로 줄여서 소개해 보았다. 올바른 정의를 실현한 분들은 억울한 죽음을 당하셨고 많은 주민분들은 말의 자유를 빼앗겨야만 했다. 제주도는 작은 섬인만큼 한데 뭉쳐 저항했지만 어쩔 땐 사방면이 바다인 감옥과도 같았다. 당시 제주도에선 4월 3일날 제사를 안지내는 집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숙소
제주도에서의 첫날, 빠듯했던 일정을 마치고 9신가 10시 사이 숙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전 목적지에서부터 숙소까지 얼마나 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차가 출발하기 전엔 분명 노을이 지고 있던 하늘이 어느새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다들 자고 일어난지라 짐을 술렁술렁 챙겨 어슬렁 거리며 차에서 내렸던 것이 기억난다. 차 안은 생각보다 더웠고 밖으로 내려 맞이한 바람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기지개를 피며 올려다본 제주도의 밤하늘, 예상치 못한 별들은 하늘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 같았다. 깨끗하게 다 보였다고 할 순 없지만 육지의 왠만한 곳에선 볼 수 없는 촘촘한 별들을 보니 서울의 텅빈 밤하늘이 떠올라 마음이 찡하다.
본태박물관
본태라는 의미는 본연의 모습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에선 제주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화가 전시되어 있고, 우리나라 말고도 세계의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박물관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축물로 이 작가의 특성을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건축물의 외부는 노출콘크리트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자연의 빛으로서 그림자를 활용해 특유의 경계선을 살렸고 미로같은 구조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게 만들어진 설계, 좁은 통로를 통해 넓은 장소로, 어두운 통로를 통해 밝은 장소로, 기묘하고도 몽환적인 느낌을 내는 등의 내부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궁금증을 일으키는 듯 했다. 이 박물관은 총 5가지의 건축물로 나뉘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전통공예를 전시해둔 제 1전시관, 많은 작가들의 다양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던 제 2전시관, 나 자신을 점으로 보았던, 볼 수 밖에 없었던 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개인 전시인 제 3전시관, 우리나라의 전통상례를 볼 수 있었던 제 4전시관, 마지막으로 기획전시를 하고 있던 제 5전시관까지, 따로따로 분리된 전시관들을 지도가 없이는 찾아가는게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이어진 길을 따라가야만 했는데 노출 콘크리트를 주로 사용한 건축물은 흑과 백을 조화롭게 섞었고 뚤려있는 하늘은 그 안에 색을 더해주는 듯 했다. 그렇게 찾아간 전시관들은 계속해서 색다른 자극을 주었고 다 재미있게 관람했다.
가장 특별하게 와닿았던 곳은 우리나라의 전통상례를 다룬 제 4전시관이었다. 이곳은 해설자분께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상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먼저 우리나라의 상례는 원래 이렇게 암담한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또한 꽃가마는 우리나라 전통 가마가 아닌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고 우리의 전통 가마는 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돌아가신 분 외롭지 않게 모셔다 드리라고 ‘꼭두’ 즉, 꼭두각시를 나무로 깎아 가마 이곳 저곳에 장식했다. 또한 우리는 이승과 저승이 분리되어 있으며 이승의 삶이 끝나면 저승의 삶이 시작된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기 떄문에 우리가 ‘돌아가셨다’ 라고 쓰는 이 당연한 말 또한 ‘돌아 가셨다’ 라는 뜻으로 새로운 곳으로 ‘되돌아 가셨다’ 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우리는 누군가 돌아가셨을 때 왠만하면 삼베옷을 입혀드린다. 하지만 이 삼베옷은 원래 옛시절 죄인들에게 입힌 옷, 옛날엔 부모를 먼저 떠나보낸 죄인인 그 아들딸이 입는 옷이 삼베 옷이었다고 한다. 또한 현재 우리는 음의 색상인 검은 옷을 입고 장례식장으로 간다. 하지만 원래 전통은 “저승사자” 라는 분을 맞이해야 하는데 우리가 전부 검은색인 저승사자와 같은 색상의 옷을 입게된다면 돌아가신분께서 누가 진짜 저승사자인지 구분하지 못해 한번뿐인 기회를 놓치게 되고 결국 이승에 귀신으로 떠돌게 된다고 양의 색상인 밝은 옷을 입었다고 한다. 또한 현재 우리는 장례식장에 향을 놓은 다음 국화를 한송이씩을 드리는데 원래 돌아가신분은 향을 배불리 먹고 저승세계로 떠나야한다. 하지만 국화의 향 때문에 향을 배불리 먹지 못해 긴 여행길 동안 굶주려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이야기, 근조화환에 대한 이야기이다. 장례식장에 가면 그 옆에 근조화환이 쫙 줄지어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조화환에 유래를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옛날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해 왔을 적이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왕이 돌아가셨을 때 그당시 서울 한복판에 근조화환을 쫙 깔았다. 그리고 이 관경을 수많은 사람들이 보게 된 것이다. 왕의 신하들과, 수많은 백성들, 엄청나게 많은 수의 화환이 한복판에 깔린 것을 본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게 마냥 좋은것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다음부턴 좋다니깐 그냥 계속 갔다 쓴 것이다. 하지만 화환의 원래 의미는 가운데에 있는 둥근 꽃들은 태양을 의미하며 그 옆에 뾰족뾰족하게 솟은 막대들은 방사형의 빨간줄을 의미하기에 이것은 다름아닌 욱일기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던 것의 의미는 생각보다 암담했다.
수풍석박물관
수풍석 박물관은 말 그대로 바람 박물관, 돌 박물관, 물 박물관으로 나뉘어 지어진 각각의 작은 명상공간이다. 자연속에 어우러진 그 공간들은 잔잔하고 숨죽인채 떠오르는 빛 속에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내는 듯했다. 하지만 이곳에 대한 생각을 돌아보니 정신없이 사진을 찍던 나의 모습이 강하게 보인다. 인디언 글에서 이런 말을 읽었다. 자신들은 기록하지 않는다고, 그저 그것들을 마음으로 느끼고 머릿속에 세긴다고, 다른 이들에겐 책이 있지만 우리에겐 기억이 있다고. 대략 이런식의 말이었는데 이 글을 읽을 당시에는 이 생각은 어쩌면 구시대적이지 않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기록이라는 것은 그 순간의 기억을 선명하게 해주며 후에 찾아보았을 때도 내가 배운점을 돌아보게 한다. 그런 것을 어떻게 자랑스레 하지 않는다고 하는 걸까?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순간을 기록하는 것에만 매달리며 정작 현재를 제대로 느끼고 그 배움을 추구하지 못하는 모습을 비판한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찰나를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일에만 매달려 그 순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 공간에 담긴 건축가의 마음, 의미하는 바를 가만히 앉아 바라볼 시간을 갖지 않았다. 내부 건물의 사진만 찍고 돌아나와 외부의 모습을 또 찍고는 그래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나는 그 시간 동안 뭘 한것인가. 그 공간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면서, 돌아보지 않으면서 마음이 담긴 사진을 찍으려 한 것이다. 사진을 찍는 다는 행위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진으로 멋진 추억을 남겨야 된다는 생각에 정작 나의 진정한 배움을 소올히 한 내가 안타까웠을 뿐이다. 그 공간에 대한 사진과 기억을 남겼으니, 내 사진기에 추억을 담았으니 그 기억을 떠올리려는 노력에는 무심해 진다. 차라리 카메라가 없었다면, 남겨놓은 사진이 없다면 나는 그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려 했을 것이다.
마무리
제주도에 여러번 오가면서도 이런곳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이번 경험을 통해 제주도는 바다나 귤이 전부는 절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건축 여행 답게 특이하고 재미있는 건축물을 볼 수 있어 좋았고 본태박물관을 그리기 위해 앞에 앉아 등이 뜨거워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본태박물관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재미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빡빡한 일정에 마음놓고 느긋하게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후에 가족과도 한번 더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본태박물관, 202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