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점장, 그린소주 개발(코브라팀)
92.2-95.2
맥주시장이 조금 안정되고나서 91년 10월 말 미국 어학연수를 떠났다.
두산그룹에서는 영어와 일본어 토익점수가 기준치에 달한 직원에게
미국은 2개월, 일본은 3개월 어학연수를 보내주었다.
미국 여러 대도시로 분산시켜서 보냈는데, 나는 보스턴이 배정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하버드, MIT 대학교도 있고
뉴욕과 워싱턴 DC 도 가까이 있어서 좋았다.
2개월간 공부하고 거의 매일 하버드 대학근처에서 맥주를 마셨다.
한달이 끝나고 일주일 휴가중에는 렌트해서 캐나다에도 다녀왔고,
귀국 전에 일 주일간은 뉴욕, 시카고, LA 지사를 방문하는 일정도 있었다.
올림픽과 드라이전쟁으로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기회였다.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자 곧 바로 있는 정기인사에서
울산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은 것이다.
직장생활에서 겹경사를 맞은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사택에서 근무할 수 있기에
전세금 뺀 것으로 피아노도 구입하고 장롱도 구입했다.
지점장은 한 지역의 책임자로서 책임도 크지만
권한도 있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휴일에는 맛있는 집을 찾아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고
경주 등 주변관광지도 둘러보았다.
게다가 유나는 전학을 왔지만 학생들과 잘 어울려
가야금을 배우고 울산 MBC 합창단에 합격하여 즐겁게 생활했다.
짧은 지점장 생활이었지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닌가 생각한다.
주위(울산공업단지)에는 바울리나 친구들도 살고 있었고
부산도 가까워 바울리나도 외롭지 않은 생활이었다고 생각한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1년 근무가 끝날 무렵 또 발령을 받았다.
새로 신설하는 소주팀을 맡으라는 거였다.
진로가 맥주사업에 참여할 예정이고, 하이트가 상승일로에 있어
우리가 소주를 갖지 않으면 시장경쟁에서 열세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소주가 필요한데 그 사업을 나에게 하라는 것이다.
그때의 심정은 정말 사형선고를 받는 기분이었다.
첫째 이유는, 소주는 뜨거운 감자로 필요하기는 하지만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사업이었다.
왜냐하면 진로의 선호도가 워낙 높아 대항하면
실패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둘째 가정적으로도
울산 MBC 합창단으로 일본에 갈 희망에 부푼 딸 유나와
바울리나에게 큰 실망을 주기 때문이다.
모처럼 잡은 행복한 시절인데….
못간다고 며칠 고민하다 조건을 걸었다.
본래 2년 이상 근무 후 이동인데 1년 만의 발령으로
서울에 갈 전세금이 부족하다는 조건.
어찌보면 당돌하고 회사에 반항하는 행동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돈을 빌려줄 테니 올라오라고,
내가 적임자라고 하여 마지막 보루도 무너졌고
가족들의 양해를 구해 또 다시 이삿짐을 꾸려야 했다.
유나는 초등학교를 4번(장위,약사,장위,오금)을 전학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93년 2월 서울에 올라와
코브라팀(두꺼비를 잡아먹는)에서 팀장으로
어떻게 하면 진로의 두꺼비를 잡아 먹을까 노력했다.
신제품을 만들기 위해 1년간 열심히 노력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경월소주를 인수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꿔 경월소주의 브랜드 네임을
그린(Green)으로 하고 녹색병으로 바꿔 94년 시장에 출시했다.
당시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때
자연 친화적 컨셉(그린소주, 녹색병)이 소비자에게 어필했다.
반응이 좋아 미친듯이 일했다.
정말 환상의 멤버였다.
이** 대리, 박**, 강**, 정**가 매일 도원결의를 하며
파이팅을 외치며 일했다.
이때 유**도 우리팀과 함께 행사진행을 했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으로
서울에서 20% 넘는 점유율을 보이며 히트상품으로 올랐고
맥주시장에서의 경쟁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때 각종 언론매체에서 취재요청이 있었고
대학교에서는 마케팅 성공사례로 지정하여
많은 대학생들이 찾아왔다.
회사생활에서 가장 보람된 시간이었다.
소주시장에서 성공적인 진입을 하여 성장할 즈음,
94년 11월에는 일본으로 3개월간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그린의 인기에 힘입어 중국시장에 진출을 목적으로
시제품 3가지를 가지고 시장조사하기 위해 용정공장에도 다녀왔다.
이때 백두산도 둘러보는 행운도 누렸다.
하지만 1993년 5월 출시한 하이트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위험을 느낀 회사는 어학연수를 다녀오자
95년 2월 나를 다시 맥주팀으로 발령을 냄으로써
환상의 멤버들과 헤어지고 말았다.
첫댓글
삶의 일지 오늘도
참 정성이 가득 합니다
세잎 클로버 님
책으로 펴내셔야 겠어요
그 한권의 책속에 남겨진다면
자손들에겐 유물이 될수도 있겠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