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1. 임종 전(前)>과 <2. 임종 시(時)>, 그리고 <3. 조념(助念) 염불>에 이어 마지막으로 <4. 49일 극락왕생 기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2/9일 토요일 9시 경 빈소가 마련되고 저는 꼬박 밤을 샌 상태로 조문객들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모친의 인연들 및 부친과 형의 문상객이었기에 저는 저와 인연 있는 스님들과 신도분들이 오실 때를 제외하고는 빈소 구석에서 기도를 하거나, 기도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빈소 한 켠에 노트북을 놓고 항상 염불 등을 틀어서 월요일 아침까지 한 순간도 빈소에 염불 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였습니다.(이는 12시간의 조념염불과 마찬가지의 원리입니다.)
2. 특히 문상객들이 오지 않는 23시 이후부터 아침 6시까지 마치 하루 전 모친의 주검을 앞에 놓고 조념염불을 하였던 것처럼 홀로 (부친과 형은 뒷방에서 쪽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빈소에서 간절한 기도를 행하였고, 2/10일 일요일 아침 6시 경 1시간 남짓 너무도 피곤하여 의도치 않게 살짝 잠이 들었는데, 모친께서 투병하실 때의 삭발을 하시고 아픈 모습이 아닌 예전의 건강하신 모습 그대로 하얀 옷을 입으신 채 공중에 살짝 뜬 상태로 벽 혹은 나무 같은 것에 기대신 채 누워 있는 저를 지긋이 바라보는 모습을 꿈속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3. 꿈에서 깨어난 순간 그 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혼자서 텅 빈 빈소에서 한참을 흘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임종의 순간부터 12시간의 조념염불까지 단 한 방울의 눈물이나 슬픔 등의 감정이 없이 어떻게 그렇게 집중할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사망 후 8~12시간 이내)에 간절히 극락왕생을 발원하면 다른 생각과 감정 등은 사라지는 것이 분명합니다.
4. 정신을 차린 후 모친께서 차디찬 영안실의 그 몸뚱이 속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를 벗어버리시고 극락으로 가시기 전에 빈소에서 저를 보고 또 제가 하는 모든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에 월요일 아침에 고향의 납골당으로 가기 전까지(발인) 또 다시 밤새 기도를 하였습니다.
5. 그리고 월요일 새벽 5시 경 발인 전에 짐을 싸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밤을 샌 상태이고 쪽잠을 자고 나오신 부친과 형님도 짐을 싸기 시작하였습니다. 빈소의 영정 위에 평소 제가 그린 그림 가운데 모친을 떠올리며 그린 '연화생'을 포함하여 모친께서 좋아하셨던 3점의 그림을 놓았습니다. 다른 짐들보다도 가장 먼저 그림을 정성스레 포장지로 싸는데 제 왼쪽 어깨 뒤에서 앞쪽으로 서늘한 기운이 몸을 통과하여 지나가는 것이 느껴지면서 왼쪽 귀에 약간의 사투리가 섞인 모친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지금도 생생한 그 다섯 마디. “잤나.. 안 잤나...?”
6. 제가 또 다시 잠을 자지 않고 기도하자 염려가 섞인, 그러나 아주 평온하고 낮은 음성으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금요일 밤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딱 1시간 눈붙이고 기도한 것을 내내 지켜보시고 빈소에서 짐을 싸는 그 순간에 바로 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7. 49재를 모시기로 한 서울 종로에 있는 법련사의 스님들이 오셔서 월요일 아침 발인제를 마치고 모친의 관을 운구차에 싣고 모친의 고향인 대구의 화장터로 향했습니다. 처음에는 대구까지 3~4시간 동안 잠깐 눈을 붙일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신기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8. 이번에는 오른쪽 귀 속에서 계속 염불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입 밖으로 염불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저절로 귀 속에서 염불소리가 정말 이어폰을 끼고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계속 맴도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다른 염불소리도 아니고 투병 중에 저와 함께 염불했던 가장 좋아했던 그 염불소리가 말입니다. 저와 함께 화장터로 가고 계시다는 생각이 나자 도저히 잠들 수가 없어서 버스에서 이동하는 내내 귀 속에서 들리는 염불을 마음의 귀로 들으며 염불을 하였습니다. 이런 경험은 지금껏 10년 넘게 나름 정토행자라고 염불을 해왔지만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9. 그렇게 화장을 마치고 저는 3/28일 막재까지 매일 법련사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는 조념염불을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A. 극락왕생 발원문 이후에 B. 염불 및 광명진언 / C. 사자의 서 및 아미타경 독송. 이것을 시간과 체력이 버티는 한 영정사진 앞에서 쉼 없이 하였습니다.
10. 제가 딱 하루 빠진 날은 2/22일 금요일 제 본사인 송광사 방장 보성 큰스님의 다비식에 운구를 하기 위해 참여한 날이었습니다. 제가 2002년 송광사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늘 뵈었던 가장 큰 어른스님이셨으며, 방장스님께서 평소 율원에 매우 애정이 많으셨기에 유언으로 율원스님들한테 운구를 부탁하셔서 송광사 율원 졸업생인 저는 운구를 하기 위해 가야만 했습니다.(나중에는 선방스님 10분과 율원 졸업생 10분 총 20명의 스님들로 운구조가 구성되었습니다.)
11. 운구조는 키 순서로 정해져서 공교롭게도 저는 앞에서 두 번째의 안쪽에 서게 되었는데, 어깨로는 끈을 짊어진 채 한 손으로는 관을 덮는 방장스님의 가사가 날아가지 않도록 잡고 가야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이렇게 영결식을 마치고 다비장으로 가는 약 30분 동안 운구를 하며 속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방장스님.. 부디 10일 전에 먼저 운명하신 저의 모친이 혹시라도 중음계에서 갈 길을 몰라 방황하고 계시거든.. 큰스님 법력으로 함께 손 잡고 극락으로 같이 모셔가 주세요...”
12. 제가 고개만 오른쪽으로 돌리면 바로 30cm 이내에 방장스님의 오른쪽 귀가 있기에 저는 분명히 듣고 계시다고 믿고 끊임없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운구를 마치고 저녁 늦게 서울로 올라와 잠에 들었는데, 그 날 꿈에 방장스님께서 꿈에 나오셔서 그 특유의 사투리 섞인 음성으로 껄껄 웃으시고는 환한 미소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니 모친 49재 잘 하그래이~!”
13. 꿈 속에서 방장스님까지 친견한 후 저는 더욱 발심하여 계속해서 기도를 하였고, 특히 잠들기 전 제 이부자리 서쪽 벽에 걸어 놓은 아미타불 앞에 매일 무릎을 꿇고 발원하였습니다. “부디 49재 막재를 마치기 전에 꿈속에서라도 모친을 만나 잘 계시냐고 한 번만, 부디 한 번만 대화하게 해주십시오...”
14. 아미타불께서 감사히도 제 기도에 응답해 주시어 저는 49재 동안 모친을 총 7번 동안 꿈 속에서 만나는 희유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2002년에 출가하였으니 올해로 출가한지 17년 정도가 되었는데, 지난 2018년까지 약 16년 동안을 통틀어도 모친의 꿈을 꾼 것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49일 동안에 앞서 말씀드린 빈소에서 꾸었던 꿈 속에서 뵌 것을 포함하지 않더라도 초재(2/14.목) 이후 막재 당일(3/28.목)까지 7번이나 보았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미타불의 가피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15. 하지만 저의 기도와 수행력이 부족한 탓으로 꿈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고픈 말은 전혀 하지 못한 채 깨고 나서야 후회하고 또 후회했습니다. 그리고 3/27 수요일 저녁, 즉 막재 전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저녁까지 기도를 마친 후, 문득 종로(안국역)에 위치한 법련사에서 멀지 않은 혜화역에 있는 서울대병원을 가야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친께서 1955~2019년까지 약64년을 사시면서 마지막 1년을 보낸 곳이 바로 서울대병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16. 암병동 10층에 도착해서 백혈병 환자의 병실은 보호자 외에 면회금지 구역임을 익히 알고 있기에 저는 모친과의 마지막 추억이 깃든 병원 10층 복도를 하염없이 걸으며 나무아미타불 염불과 광명진언을 외웠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발원하였습니다. “어머니... 이 곳은 더 이상 머물 곳이 아닙니다. 내일이 막재인데 혹여라도 마지막 숨을 거두신 이 병원 그 어디에라도 애착이 있거나 나아가 이 사바세계에 미련이 있다면 부디 다 놓아버리시고 반드시 극락왕생하십시오.”
17. 그렇게 병원에서 49재의 마지막 기도를 회향한 후 수요일 밤, 아미타불께 발원을 올린 후에 잠이 들었고 그 날 꿈 속에서 7번째 마지막 꿈을 꾸게 됩니다. 꿈 속에서 모친은 신기하게도 제가 기도한 서울대 병원의 그 병실 침대에 편안히 앉아 계시었고, 병실에는 오직 모친과 저, 그리고 의사 이렇게 세 사람만 있었습니다. 장소만 병실 침대일 뿐 침대 주위에선 밝은 빛이 나고 있었으며, 모친께서는 건강한 모습으로 새하얀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18. 지금도 눈에 보이듯이, 귀에 들리듯이 생생히 기억합니다. 의사가 모친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더 치료하고 싶으신지요..?” 이에 제가 모친께 “어떻게 하시겠어요..?”라고 의견을 여쭈니 모친은 천천히 손사래를 치면서 “저는 더 이상 치료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시고 환히 웃으시며 손으로 인사를 하시고 기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갈 때가 되었네요.”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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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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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생에는 오직 나무아미타불()
다음생은 반드시 극락정토에 태어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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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산스님 올려주신글 모셔가도 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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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