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여기 있으니!(요일4:7-21)
갈등
1. 오늘은 사도 요한의 사랑 이야기를 나눕니다. 요한은 사랑의 사도로 알려졌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사랑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어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요한은 그이 형제 야고보와 함께 우레(천둥)의 아들이란 별명이 있었습니다. 마태가 열두 제자를 소개하며 말했습니다.(3:17)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을 때, 두 제자가 주님께 말했습니다.‘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주님이 두 제자들을 꾸짖으셨어요. 혼날 일을 자초했습니다.
요한이 젊어서는 이랬는데 사랑의 사도로 변화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 요한이 사랑 이야기를 합니다. 사랑 이야기 시작은 7-8절,“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은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선언했어요.
2.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요한의 사랑 이야기는 독특합니다. 요한의 사랑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지 않는 독특한 표현을 보여주었어요. 요한의 사랑 이야기는 9절,“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한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나타났다. 곧 하나님께서 자기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는데, 그가 오심은 우리를 살리려는 목적이었다. 요한은 사랑은 여기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요한이 전하는 사랑은 과연 무엇인가요? 요한이 이렇게 사랑 이야기를 전하며 그가 사랑의 사도가 된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갈등 심화
3. 사도 요한은 사랑은 여기에 있다고 선언하며 이어서 11절,“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였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은 사랑의 정의를 말한 후 사랑 실천 이야기를 말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에(수직적인 사랑), 우리도 서로 사랑(수평적인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지당한 사랑론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12절,“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형상이 없으시기 때문이에요. 요한은 우리가(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뤄진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상호작용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임하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세요. 그 결과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뤄지는 사랑의 순환입니다.
4. 사도 요한은 이런 사랑의 순환이 이뤄지며 20절,“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사랑의 실천 시리즈를 전해주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한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서,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에요. 진리는 이렇게 단순하고 상식적입니다.
사도 요한의 사랑 이야기는 17절,“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한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고 했어요.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고 말했습니다. 요한은 독자들이 듣기에 난해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한이 사랑과 두려움 이야기를 연계해서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실마리
5. 사도 요한의 사랑 이야기는 그의 사랑 경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요한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요한은 복음서를 기록하며, 자신을‘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라고 말했어요.(요21:20) 주님이 제자들 모두를 사랑하셨습니다만, 이렇게 자신을 표현한 사람은 요한밖에 없습니다. 그는 제자들 중 가장 어린 나이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고난당하실 때 제자들이 모두 도망하였지만, 그가 여성 제자들과 함께 십자가에까지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연소함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아직 미성년자였을 것입니다.
요한이 젊어서 열정과 절제되지 않는 감정 속에서 우레의 아들이란 별명도 받았습니다. 요한은 베드로와 더불어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서 교제와 동행을 했어요. 그의 형 야고보와 함께요. 이 세 사람을 주님의 수제자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기 전,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함께 했던 유일한 제자이기도 했고, 그만큼 주님이 요한을 아끼고 사랑하셨어요. 또 그를 신뢰하셨습니다. 주님의 다른 형제들-야고보나 유다 보다도요. 요한은 제자들 중 최고로 선택받고 행복했습니다.
6. 사도 요한이 젊어서는 자기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용하시고 함께 하심을 경험하면서 차츰차츰 그의 사랑을 깨달았어요. 형 야고보는 최초로 순교한 사도가 되었고, 자신은 최고 장수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복음서만 아니라 서신, 계시록의 신비까지 전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그가 깨달은 하나님의 사랑은 10절,“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한은 사랑의 이니시어티브(선취권)을 선언했습니다.
사랑의 순서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한 것이라고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은 오랜 인생 경험을 하면서 사랑의 실체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심을 요한이 경험했어요. 그 사랑이 내 안에 흘러넘치며 요한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그 사랑이 요한 속에서 흘러넘쳐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아가 이웃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사랑의 사도로 변해간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세상에 모든 일-사람의 인격과 성품도 하루아침에 변화되지 않아요. 요한처럼 차츰차츰 점진적으로 이뤄집니다.
7. 사도 요한은 사랑 이야기를 말하며, 실천으로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고 했습니다. 요한은 사랑의 실체를 발견하고 하나님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고 미워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요한은 오늘 본문을 맺기 전에 사랑에 두려움을 연계해서 말했어요. 요한이 여기에서 말한 두려움은 당시 엄청난 신앙 박해를 의미합니다.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두려움을 잘 알지 못합니다. 생활에 조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입니다. 제가 오늘 단톡에 지난 3월 파리에서 아프리카행 비행기를 타면서 보낸 짐 이야기를 했잖아요. 40여 일 만에 짐을 받으며, 여러 가지 불편과 스트레스를 나눴습니다.
그렇지만 선교는 멈출 수 없다고요. 사도 요한 당시에 박해는 이런 정도의 불편함이 아닙니다. 비교할 수 없는 극단적인 위협이었습니다. 로마 황제 도미티안 아래 박해는 교회사에서 가장 악명 높아요. 그 심한 박해 속에서도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을 요한이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자는 두려움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으면 그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직 충분히 채워지지 못한 것이다.(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를 경험하고 당시 누렸던 요한의 당당한 선포였어요.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없다.(로마서 8장-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복음 제시
8.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최고의 사랑은,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주신 것입니다.(10절) 예수님의 십자가와 희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입니다. 주님의 희생의 가치는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롬5:7-8,“의인을 위하여 혹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7절이 의미가 있어요. 의인이나 선인을 위해서는 혹 자기를 희생하는 자가 있다. 거의 없지만 혹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죄인을 위하여 죽는 이는 없어요.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가치가 없어 보이는 일, 실제는 가장 가치 있는 희생을 스스로 담당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통한 희생 제사가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할렐루야!
기대
9. 사도 요한의 변화된 삶의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한 사람이 누구를 만나서 영향을 받으면 이렇게도 변화될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요한이 만난 누구는 예수님입니다. 3년 동안 가장 근접 거리에서 만나고 제자훈련을 받았습니다. 십자가 현장에서 고통당하시는 주님을 직접 목격하고, 부활하신 주님도 만나고, 오순절 성령 강림 현장에서 또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요한의 변화에만 초점을 두면 곤란하고 그의 삶의 과정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과 만남과 교제가 이어질 때 누구든지 요한처럼 변화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오늘도 얼마든지 만나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기도합니다.‘나도 요한처럼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나도 요한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세상이 주는 두려움을 이기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