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187/200605]금주禁酒 맹세, 무릇 기하였던가?
보름이나 한달만에 볼 때마다 아내의 성화가 ‘눈부셨다’. “당신 몸무게가 왜 이래? 65kg도 안나가지? 지금 당장 재봐! 나 없으니 날마다 술타령이지? 저녁에 운동도 안하지? 대체 당糖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저녁판만 되면 뒷골이 땡긴다벼? 불안해 죽겠어. 빨리 병원에서 찍어볼 것 다 찍어봐” 한때는 체중이 77∼78kg가 나갔건만, 1년 전부터 솔래솔래 빠지기 시작한 게 이제 65kg를 오르락내리락하니, 솔직히 은근하게 나도 걱정되긴 했지만, 참말로 신경질나게 고약한 일이었다.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도 내려오는 길, 전주 영상의학과의원에서 MRI와 MRA를 처음으로 찍었다. 의료보험이 안되니 80만원이라는데, 8년 전 선배인 원장을 인터뷰한 인연이 있다고 20만원을 깎아주었다. 결과는 동맥이 막히는 등 하늘이 놀랄 일은 없지만, 뇌腦의 노화老化현상이 여느 사람보다 10년은 빨리 온 것같다며 곳곳의 흰 반점을 보여줬다. “그럼 그만큼 빨리 죽는 거냐?”니까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자동차도 오래되면 카센터를 가듯 많이 걷는 등 관리를 하면 괜찮다”고 했다.
남원 병원장 친구가, 보름째 해거름에 골骨 때리는 것은 스트레스성 같다며 약을 지어줬다. 고정적으로 아침마다 네 알(고혈압 1개, 당뇨 3개)씩 먹은 지가 10년이 훌쩍 넘었다. 서울 명륜동 주치의 말로는 당뇨약에 체중이 빠지는 성분이 있고, 70kg 언저리에서 꾸준히 약 먹고 술 자제하고 많이 걸으면 괜찮다는데, 복약이야 습관이 되었지만, 술은 솔직히 친구 좋아하고, 모든 반찬이 안주로 보이는 악습에 쉽지 않은 게 사실. 하여, 나름 정해 놓은 것이 심한 노동을 한 후, 요즘 히트친 영탁이 노래제목처럼 “막걸리 한잔”이었다. 허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한잔이 두잔 되고 두잔이 한병 되는 벱이거늘.
엄마 말을 들은 큰아들이 가족단톡방이 아닌 개인카톡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뇌가 급속도로 노화되고 있다니 무섭지도 않으셔? 아들 생각하지 말고 손주 생각해 참으셔요. 건강하셔야지. 애 대학 가고 장가갈 때까지도 아니고 증손주 볼 때까지 사셔야 할 거 아냐? 윤슬이 성인 됐을 때 딱 첫 술자리에 술 마시겠다고 생각하고 끊으셔요” 솔직히 할 말이 없다. 이 녀석이 최근 술을 ‘한 방울’도 먹지 않게 단호히 끊었기 때문이다. 은행원인데, 회식도 잦을텐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 더구나 나처럼 분위기와 술을 좋아하는데. 금주한 이유는 무조건 건강(어지럼증과 난청이 동시에 나타나는 메르니에병) 때문이지만, 제 아들 생각해서가 정답일 것이다.
언젠가 장문의 글을 쓰며 반성도 많이 했지만, 나의 음주(대개 상습과음)와 음주 실수담은, 비교는 안되겠지만, 변영로 선생의『명정酩酊사십년』이나 양주동 선생의『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와 비슷하여 쥐구멍이 있어도 들어갈 염치가 없는 놈이긴 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오늘의 나’라는 게, 50년 동안 마신 “그놈의 술” 덕분이라고 하면 정말로 말이 안되는 것일까? 하지만, 이제는 앞뒤로, 아니 옆으로도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닥친 셈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끊을 도리밖에 없다. 구순이 넘은 아버지 걱정도 ‘한숨 한바가지’인 것을. 자식으로, 남편으로, 애비로, 시애비로, 할애비로, 동생으로, 오빠로, 수많은 친구들에게 ‘민폐民弊’가 장난이 아닌 바에야.
그래, 이제 일대 결심을 하자. 불멸의 안중근 의사가 구국충정 단지斷指하는 심정이라면 너무 비장한가? 그런데, 그렇게 해도 될까말까일 것이니 하는 말이다. 제 버릇을 개 주기가 어디 쉬울까? 내 평생 금주 맹세가 무릇 기하였던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내 마눌님이 아는 ‘사지四知’인 것을. 흐흐. 우천愚泉이 주천酒泉이 되지 않으려면 ‘한방울’이 문제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거늘. 술이 대체 무슨 죄가 있는가? 나는 결코 술이 만병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술을 이기지 못하는 나의 잘못인 것을. 하느님은 왜 하늘에 주성酒聖을, 땅에 주천酒泉을 지으실 정도로 술을 사랑하셨을까? 아아-. 이태백의「월하독작月下獨酌」4수에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일이지만 할 수 없다.
청정지역에서 날마다 신선놀음을 하는 바람에 ‘얼굴이 맑아지고 좋아졌다’는 말을 최근 수도 없이 들었는데, 왜 그렇게 몸무게가 빠져서 결국은 나에게 술을 끊게 하는지, 오직 원망스러울 뿐이다. 내가 생각해봐도 아프거나 이상한 증상이 하나도 없는데, 오직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하다는 이유로 절주節酒가 아닌 금주禁酒 압박이 사방 군데에서 이리 빗발치는걸 어이 하랴. 이제는 또 확실한 명분 하나가 더 생긴 것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찡하는 손자 때문에 술을 끊어야 할 판이니. 오호嗚呼 통재痛哉!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오늘로 벌써 나흘째이니.
첫댓글 금주는 못해도 절주만 할수있다는 강단만있으면 좋은데
술끊은지 십여년 처음엔 모든게 어색하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네요
살아가는 방법만 바꾸면됩니다.
마누라는 못해도 손주나 의사는 금주 시킬수있다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