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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인간의 굴레
저-서머셋 모음
출- 성도문화사
독정-2019. 8. 27. 화
‘하루 한 권씩 책 읽기’가 내 실천 습관인데 오늘은 주제 사라마구가 쓴 『동굴』을 읽고 별로 발췌해 둘 것이 없어 남은 시간 오후 8시부터 서머셋 모음의 『인간의 굴레』를 집어들었다. 서머셋 모음이라면 ‘달과 6펜스’를 감명 깊게 읽어 호감 가는 작가이고 『인간의 굴레』는 예전에도 읽은 것 같지만 줄거리가 전혀 떠오르지 않아서 다시 빌려왔다.
도서관에서 9권 빌려왔는데 『오이대왕』『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싯다르타』『말테의 수기』는 3일만에 다 읽어 발췌해두었고 『양철북』『아라비안나이트』『장정일의 독서일기7』 3권은 아직도 책상 위에 놓여있다. 늘 열권 씩 빌려와 책상 위에 올려 두면 부자가 된 기분으로 지내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른 읽어야 한다는 스스로의 강박감에 끌리기도 한다.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책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너는 인간과 그 이름이 사람의 추억에 영원히 남아 있고 작품이 사라지는 쪽을 택하려는가? 작품이 오래 남고 너라는 인간과 이름은 흔적 없이 사라지는 쪽을 택하려는가?”
그런데 그 질문부터 모순이다. 긴 안목에서 보자면 내 작품이 살아 있어야 내 추억과 내 생각과 내 진실이 살아남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인간들에게는 부활이라면 부활이겠다.
어저께 읽은 책들 중 『오이대왕』빼고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책, 사고의 지평을 열어가는 책이라 좋았다. 그런데 『인간의 굴레』는 책 속에서 좋은 묘사글. 좋은 명언, 좋은 구성을 찾는 내게는, 한 군데도 줄 그을 곳이 없이 그냥 술술 읽히기만 하는 책이었다. 돌아보면 나는 책을 들 때 공부하는 마음(내 작품쓰기에 보탬 되는 것을 찾아 헤매는 사냥군이 된 듯)으로 책을 읽어온 것 같다. 『인간의 굴레』는 그런 것과는 아량곳 없이 뒤쪽이 어떻게 될까싶어 흥미를 가지고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책이었다. 재미로 읽는다는 말이 여기 통할까? 분명 내겐 재미가 아니라 주인공의 행적이 하도 바보같다 싶어서 ‘배신당한 여자한테 또 끌려 따라가?“ 분통을 터뜨리며 뒤의 이야기 전개가 궁금해서 순전한 호기심으로 310쪽 끝 페이지까지 읽어나갔다. 8시부터 12시 30분까지 읽었으니 4시간 30분만에 읽었다. 보통 생각하며 읽는 책은 평균 시간당 50쪽을 읽는데 줄거리 위주의 책이다보니 시간당 70쪽으로 읽혔다.
이 책은 1915년 간행된 서머싯 몸의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카타르시스를 위하여 이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서머싯 몸 역시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였고, 말을 심하게 더듬어 주변으로부터 심한 놀림을 받았다.
<줄거리>
필립 케어리라는 다리를 저는 내반족 아이로 태어나 30세까지 삶을 헤쳐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서머셋 모음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다.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 필립은 8살 때 사내아이를 분만하다가 죽는 어머니의 죽음을 맞는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 필립은 떨어지기 싫은 유모를 떠나 목사인 큰아버지를 따라간다. 백모는 애정을 가지고 길러줬지만 엄격한 목사인 큰아버지 밑에서 자라게 된 필립은 많은 책을 가지고 있어 여시서 필립은 그의 평범한 존재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독서를 즐긴다.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필립은 기숙학교로 보내진다. 성직자를 길러낸 학교에 입학하여 기형아라는 신체적 조건 때문에 놀림을 받고 불행한 아이가 된다. 그는 신에게 뭐든지 다 이뤄주신다는 말에 기도를 하지만 응답이 없자 회의를 품고 자퇴를 원한다. 그의 백부와 백모는 옥스퍼드에 마지막으로 다니기를 원하며 옥스퍼드에서도 장학금을 받을수 있다고 통보해오지만 그는 독일에 가고 싶어한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지내다가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했지만 재능 없음을 스승으로부터 직접 듣고는 접고 궁핍한 생활을 위해 의과대학에 들어가 조수 자격증을 받으며 공부한다. 파리 생활에서 얻은 것은 정신적인 자유였다. 영국의 신사들이 묶여 있는 굴레에서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이 무렵 친구랑 다방에 들렀는데 다방의 여급인 밀드렛이라는 별로 아름답지 않은 처녀가 쌀쌀맞게 대하는 바람에 오기로 심리전을 벌이다가 마음이 빼앗기는데 그 여자가 유부남과 결혼해 버리자 그는 노라와 동거한다. 그러나 밀드렛이 배신당하고 돌아오자 그는 노라에게서 진정한 애정을 느낄 수 없어 ‘과부와 더불어 행복하기보다 밀드렛과 더불어 불행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노라를 버리고 밀드렛을 받아들인다. 밀드렛과 파리로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워 놓은 어느 날, 친구 그리필드에게 밀드렛을 소개시켜 주고 함께 극장엘 갔는데 가운데 앉은 그녀는 손을 양쪽에 하나씩 주고 있었다. 그녀는 필립에게 돈을 타서 그 친구와 파리 여행을 즐긴 후 돌아오나 곧 집에서 나가 버린다.(그후 밀드렛은 그리필드에게도 버림받고 유부남과 사이에서 낳은 아기를 기르며 창부생활을 하며 연명하다가 아기가 죽는다)
한편, 필립은 병원에 근무할 때 환자로 입원한 소프 샐리네 가족을 알게 되어 그 집에 자주 들른다. 열입곱살의 큰딸 샐리를 만났을 때부터 마음이 이상스럽게 동요되었다. 샐리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저녁에 홍차를 사러 마을에 갔다 오는 길에 필립은 샐리의 처녀성에 이끌려 정을 통한다. (그 전에 필립은 밀드렛이 매춘부가 되어 고생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몇 번이나 도와주려고 허우적거린다. 이때 내가 주인공 필립에게 욕을 해대었다. 유부남과 놀아나고 친구랑 놀아나고 매춘부까지 하며 놀아나도 그녀 곁은 떠나지 못하는 필립의 마음이, 정 들인 인간에 대한 굴레인가? 하다 화가 나서 굴레라는 단어 뜻을 다시 찾아보았다.
굴레- 말이나 소 따위를 부리기 위하여 머리와 목에서 고삐에 걸쳐 얽어매는 줄이란다. 이 여자한테 얽어매인 줄대문에 필립은 생활이 파괴되고, 인생, 사랑, 죽음의 무의미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병원에서 처녀가 다 된 샐리를 알게 되어 서로 사랑하게 된 일이다. 비로소 필립은 허무한 사랑에 끌려 다니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됨을 의미한다. 필립이 끌려다닌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욕정이라 하고 싶다. 그런 욕정의 늪에 빠져들면 쉽게 헤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굴레일 것이다.
책명-동굴 (The Cave) 2019. 8. 28. 수.
저- 주제 사라마구(공산주의 작가-자본주의를 비판한 소설)
출- 해냄2006.6.6.(483쪽)
독정-
① <책 편집 형식면에서>
이 책은 483쪽의 장편이다. 거기다 글속에 나오는 많은 말들에 따옴표를 하나도 쓰지 않았다. 이런 책 편집은 처음 본다. 따옴표 뿐 아니라 일체의 문장부호를 쓰지 않았다. 줄도 하나도 바꾸지 않은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그렇게 해서 483쪽이니 줄을 제대로 바꾸고 따옴표를 제대로 갖추어 책을 출판 했다면 양은 두 배로 불어나 2권의 장편이 될 소설이었다. 이렇게도 책을 낼 수 있겠구나하는 신선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 책 저자는 묘사가 너무 섬세하다. 소변을 본다하는 장면 하나를 보더라도 ‘파운드는 한쪽으로 뛰어가서 다리를 들고 방광 속의 소변을 비운 다음, 꼬리를 흔들며 다시 돌아와’ 하는 식이다. 여기서 가장 공감하고 싶은 부분은 주인공 노인이 더 이상 도자기 만들 필요가 없어진 도공이 될 현실을 앞에 두고 딸과 사위가 이렇게 표현했을 때였다. ‘만약 당신이 아버님한테서 일을 빼앗는다면 그 일이 뭐가 됐든 아버님한테서 살아갈 이유를 빼앗는 거나 마찬가지야.”
65세라고 강사 자리를 잃었 때의 내 심정이 이랬으니까.
주로 묘사한 것들의 주제가 두드러지는 것들을 모아보았다.
② <동굴 묘사글>
도자기를 팔려고 받아둔 센터에서 도로 가져가라는 연락을 받은 도공은 동굴에 갖다 버리고 온다.
-오랜 새월이 흐르는 동안 그 동굴은 그냥 동굴이었어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에게는 마법의 문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안에 파편더미가 가득 찰 넨지 동굴도 마법의 문도 될 수 없겠네요. 그릇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그 위로 가시나무도 금방 자랄 테고. 그러니까 아무도 눈치 못 챌 거야. 그럼 그릇을 전부 거기다 놔두고 온 건 가요. 그래. 거긴 마을에서 가까운 곳이잖아요. 아직은 아이들이 그 이상적인 동굴에서 논다면 깨진 접시를 들고 집으로 올지도 몰라요. 지금은 그 물건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지만, 그런다고 내가 놀랄 사람이 아니지.
<동굴 비유>플라톤 –국가론 7권
지하 굴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굴의 입구는 빛을 햫애 열려 있고 굴의 전면을 차지하고 있네 그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여기 살고 있는데, 다리와 목이 사슬에 묶여 있어서 움직이지 못하지. 사슬 때문에 고개를 돌릴 수도 없으니 오로지 앞만 볼 수밖에 사람들의 머리 위와 등 뒤에서는 약간 거리를 두고 불이 타오르고 있고 불꽃과 우인들 사이에는 경사로가 있네. 자세히 보면, 인형술사들이 공연할 때 앞에 쳐놓고 그 위에서 인형들을 조롱하는 막처럼 그 경사로를 따라 서 있는 나지막한 병이 있어. 갖가지 그릇과 누무나 돌 같은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동물 조각상들을 그 벽 위로 들고 벽을 따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이나? 그들 중에는 이야기를 나누거나 침묵하며 자기 그림자나 서로의 그림자밖에 보지 못한다네 불꽃 동굴의 반대편 벽에 던져주는 그림자들 말일세. 사람들이 들고 지나가는 물건들도 역시 그림자밖에 보이지 않지. 자기들이 실제 눈앞에 있는 것을 믿고 이 감옥의 반대편에서 메아리가 들려온다면 벽을 따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을 할 때 그 목소리가 지나가는 그림자에서 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들에게 진실이란 문자 그대로 이미지의 글자에 지나지 않아. 만약 수인이 풀려나 자기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안다면 어떨까?
갑자기 빛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 심한 통증을 느끼는데 누군가가 당신이 본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당신이 존재에 가까이 다가가며 더 현실적 삶으로 눈을 돌리면 시야가 더 선명해질거라고 하면 자기가 전에 보았던 그림자가 지금 보는 물건들보다 더 진실했다고 생각하겠지. 만약 그가 빛을 똑바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면 눈이 아파 눈을 딴 데로 돌리겠지. 그리고 그것들이 지금 자기가 보는 물건보다 선명하다 하겠지. 그가 경사로를 끌려올라가면서 버티다가 태양과 마주하면 눈이 부셔 현실이라는 것을 전혀 볼 수 없겠지 그는 지상의 세계에 익숙해져야 하네. 처음에 가가 가장 발 볼 수 있는 것은 그림자. 그 다음에는 물에 비친 사람들과 여러 물건들의 그림자. 그 다음에는 그 물건들을 직접 볼 수 있겠지. 이제 그는 달빛, 별빛, 별들이 흩어져 있는 하늘을, 물 속에 비친 태양이 아닌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서 태양을 보겠지. 그러면 그는 계절과 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태양이며 태양이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을 수호해 준다고 주장할 걸게.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동료들이 익숙하게 보아오던 모든 것들의 원인이 바로 태양이라 할 거고. 자기가 옛날에 살던 곳과 그 동굴에서 통하던 지혜. 자기와 함께 갇혔던 사람들이 생각나면 이렇게 변한 자신을 축하하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겠지. 그에게 명예가 주어지면 그런 틀린 것에 대해 명예를 인정받는 게 명예로울까? 그런 사람이 갑자기 태양이 있는 곳에서 벗어나 과거와 같은 상황으로 돌아가면 눈에 가득 어둠을 채우겠지? 그 눈이 아직 적응하지 못해 시력이 약할 때, 눈이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는 데는 아마 상당 시간이 걸려. 만약 어떤 콘텍스트가 열러 그가 동굴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수인들과 그림자를 측정하는 경쟁을 벌이면 그가 우스꽝스러운 꼴지 되겠지 . 사람들은 그가 한 번 올라갔다 오더니 눈을 잃어버렸다고. 올라갈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다 하겠지. 누가 다른 사람의 사슬을 풀어줄고 빛을 향해 데리고 올라가려 하면, 범죄자를 붙잡아 사형선고를 내릴 걸세.
③ <도공의 마음, 인형 만들기 묘사글>
· 도자기 만드는 일은 찰흙을 파서 반죽하고, 그릇을 빚고, 가마에 불을 지피고, 그릇을 가마에 넣었다가 꺼내서 깨끗하게 닦고, 차에 실어서 팔러가는 것까지.
하지만 먼저 인형의 표면을 사포로 매끄럽게 다듬어 울퉁불퉁한 부분이나 마무리가 덜 된 부분을 없앤 다음, 갈아낸 가루를 깨끗이 닦아내야 한다는 걸 잊어버린 탓이다.
· 흙으로 만든 도자기를 사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조품이 새로 시장에 나왔는데 사람들이 그걸 더 좋아한대. 그거야 뭐 놀랄 일도 아니네요. 조만간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박에 없는 법이니까요. 흙으로 만든 도자기는 금이 가서 조개지기도 하고 쉽계 개지잖아요. 픞라스틱은 더 튼튼하고 유연하죠. 도자기는 마치 사람처럼 잘 대해줘야 한다는 게 달라 그건 플라스틱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아버지 말씀이 옳아요. 도자기만큼은 아니니까.
· 밥그릇 위로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는 것은 아버지답지 않았다. 마치 얼굴을 숨기려고 하는 것 같았다. 걱정을 숨기려고 애씀이 분명했다. 만약 센터가 아예 우리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하고, 사람들이 플라스틱 그릇을 쓰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내가 죽어 버리면 좋을 텐데. 엄마처럼 말씀이세요. 네 엄마느 도자기 물레에서 일 하다 죽었지. 나도 그렇게 운이 좋다면 얼마나 좋을까. 죽는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죽는다는 얘기를 하는 것도 다 살아 있으니까 가능한 거야. 죽은 다음에는 그런 애기도 못 하지.
딸 마르타는 이 장광설을 듣기만 했을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뻔히 알 수 있는 것처럼, 아버지가 뭔가 결정적인 말을 하고 싶은 것이라면, 아버지한테 그 즐거움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를 더 이해해 드려야겠다고만 생각했다. 아버지 입장이 돼서 자기 집고 가마와 평생의 삶을 두고 떠나야 하는 게 어떤 건지 생각해봐야겠어.
· 새 인형을 만들려면 너무 골동품 같은 건 안 돼요. 요즘 사람드은 옛날에 그 사람들이 뭘 했즌지 전혀몰라요. 하지만 너무 현대적이도 안 돼요. 현대적인 건 플라스킥 인형 몫이니가. 영우이나 람보나 우주비행사나 돌연변이 괴물이나 슈퍼 경할, 강도 인형들 말에요. 아 무기도 있지.
·인형 만드는 그의 손가락이 뇌의 명예를 자신의 법칙에 따라 스스로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형태가 잡혀갔다. 머릿속 뇌에서 본능적이거나, 마법 같거나, 초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사실은 손가락 속의 작은 뇌에게서 배운 것이다. 머릿속의 노가 돌이 무엇인지 알려면 먼저 손가락이 돌을 만져보고, 거친 표면과 무게와 밀도를 느끼고, 돌에 손을 배여 보아야 한다. 뇌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비로소 그 돌조각을 가지고 뇌가 탈이나 우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손가락이 촉감을 이용해 찰흙을 만졌을 때 피부를 훑고 지나가는 떨림, 조각칼의 날카로움, 동판을 파고드는 산, 평평하게 놓인 종이의 희미한 떨림, 질감의 결, 그물처럼 엇갈린 섬유, 돋을새김으로 조각된 알파벳을 오락애서 설명해 주어야 한다. 색깔도 문제다 사실 뇌는 색깔에 대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무식하다. 뇌는 눈이 보여주는 것을 비교적 선명하게 볼 수 있지만, 눈으로 본 것을 지식으로 변환시키는 문제에 오면 방향감각을 잃고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아. 평생 경험이라는 무의식적 자신감 덕분에 뇌는 기본색과 보색의 이름을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과의 경계에 서 있는 색깔의 이름이나 특생을 알려주는 표식이 될 만한 말을 만들어 내려 할 때는 금세 방향을 잃고 당황해서 불안해한다. 손과 손가락이 생각에 잠긴 눈의 승인과 동조를 얻어 새로 발명하고 있는 이런 색깔들은, 아마 결코 이름을 얻지 못할 것이다.
·센터의 취향이 모든 사람의 취향을 결정하는 거라면 우리는 누굴 위해 도자기를 만들게 될까.
·거푸집은 두 조각으로만 만들어야 해. 더 많이 만들면 일반 복잡해질 거다 두 조각이면 훙분할 거야. 인형 디자인이 간단하니까.
·사람들은 도자기에 대해 가마가 처음 생겼을 때와 똑같은 취향을 대대로 유지할 것이라는, 아니 적어도 그가 죽을 때가지는 유지해 줄 것이라는 알고르의 지레짐작이었다. 솜박하다 못해 거의 윈시적으로 보이는 물레도 보았고 밖에 있는 가마에서 현대인들이 도저히 용압할 수 없는 낡은 흔적도 보았다. 이제 알고르의 퇴행적 방법처럼 눈길이나 손가락 느낌이나 냄새만으로 일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는 달에게 자기 방법이 세상에서 제일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했지만. 찰흙이 좋구나, 습도도 적당하고 찰기도 딱 적당해. 일 하기가 쉽겠어. 하지만 우리는 의문이 생긴다. 찰흙에 손을 한 번 대본 적 없는 그가 어떻게 저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엄지와 검지와 중지로 찰흙을 살짝 꼬집어본 것이 전부이면서. 그는 눈을 감은 채 감각에만 의지해 붉은 찰흙, 고령토, 규토, 물이 균질하게 섞인 반죽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바단의 날실과 씨실을 만지는 사람 같다. 찰흙을 판정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손라갈일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알고르의 판결이 찰흙의 실제 상태와 맞아떨어진 모양이다.
· 인형 찰흙 만들기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인형의 옆모습과 뒷모습을 그려서 색을 입히는 거다. 거푸집은 두 개면 충분할 거다. 세게는 너무 많아. 그는 찰흙을 손질할 작정으로 뭔가 새로운 걸 배우기 위해 찰흙과 씨름하면서 잃어버린 솜씨를 되찾고 시험 삼아 익살꾼이나어릿광대나 에스키모나 간호사나 아시리아 인이나 중국인 관리가 아닌 다른 인형을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인형을 저렇게 크게 만들 필요는 없어요. 키가 한 뼘쯤 되는 인형을 만들 생각이었잖아요. 그것보다는 조금 더 크게 만들어야 돼. 그래야 센터의 진열장에서 돋보일 테니까. 가바 안에서 수분이 날아가면서 크기가 줄어드는 것도 감안해야 하고, 어쨌든 저건 그냥 시험 삼아 만들어 본 거야. 아니에요. 보기 좋은데요. 정말이여요. 저런 인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낯선 느낌하고 친숙한 느낌.
둘째날 거푸집에 쓸 회반죽을 사러 마을로 갔다. 해교제로 쓸 소다회와 물감, 플라스틱 물통 몇 개. 나무와 철사로 된 새 주걱, 납작한 막대기, 드릴에 끼우는 날도 사올 작정. 인형에 색칠을 한 다음에 가마에서 구울 것인지, 인형을 구운 다음에 색칠을 하고 재벌구이를 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다른 종류의 물감이 필요했다. 인형을 굽기 전에 색칠을 하면 광택이 더 좋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라고 마르카가 고집을 피웠다. 하지만 나중에 색칠하면 뜻밖의 결과를 피할 수 있어. 칠한 색이 그래도 남아 있을 태니 불이 물감에 미치는 영향에 연연할 필요 없지. 가마가 얼마나 변덕을 부리는지 너도 알잖니 따라서 색을 입히기 전에 반드시 통 속의 물감을 저어주어야 한다. 그건 기본 상식이야.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 다음을 읽어봐라. 작품에 직접 색을 입힐 수도 있지만 초벌물감을 먼저 칠한다면 착색이 더 잘 된다. 초벌물감으로 대개 광택이 없는 하얀색이 쓰인다. 그건 몰랐구나. 원래 자기가 모르는 건 생갹해 내기가어렵지.
초벌물감은 붓으로 칠할 수도 있지만, 분사기를 이용하면 처벌물감을 매끄럽게 칠할 수 있다. 분사기가 없어. 믈감에 작품을 담그는 방법도 있다. 그건 고전 방법이지만 그 방법을 쓰자. 그렇지 물감 마른 후에 작품을 다시 구우면 안 돼. 그래. 내 말이 그 말이다. 이 방법을 쓰면 시간이 절약돼. 여기 다른 조언들도 적혀 이?ㅆ어. 하지만 중요한 건 초벌물감이 완전히 마른 다음에 색을 입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색깔에 층이 지거나 추벌물감과 두 번째 칠한 물감이 섞여 버려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지. 우리가 원하는 건 속도다. 마르타는 거의 완성된 인형 여섯 개와 함께 공방에 혼자 앉아 선이 흐릿한 부분을 선명하게 다듬는 작업에 열중할 것이다. 원형을 만드는 과정에서 저절로 사라져버린 곡선들을 둥글리면서, 높이를 똑같이 맞추고, 바닥을 매끄럽게 다듬고, 거푸집 두 개의 이음매에 딱 맞는 위치를 잡아 줄 것이다. 목수에게 주문한 거푸집은 아직 오지 않았고 회반죽은 두꺼운 방수종이로 만든 커다란 자루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인형을 대량으로 만들 때가 다가오고 있다.
·인형 몇 개가 우리를 구해줄 거라는 어리석은 희망조차 사라졌다.
· 그게 쓸모가 있든 없든 상관없어. 만약 당신이 아버님한테서 일을 빼앗는다면 그 일이 뭐가 됐든 아버님한테서 살아갈 이유를 빼앗는 거나 마찬가지야. 만약 당신이 아버님한테 지금 하시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면 그 말이 옳다는 증거가 눈에 빤히 보여도 그 말을 믿지 않으실 거야.
캐스팅슬립을 너무 빠르게 쏟아 부어 거푸집 안에 공기방울이 생기기도 했다. 처음 사흘은 만들었다 부수기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실수에 절망했지만 섬세한 작업이 성공으로 끝날 때 기쁨에 몸을 떨었다. 나흘 째, 장난기 많고 교활한 도깨비 같읁 갖가지 재료들이 뜻하지 않게 새 작업을 하게 된 이 초보자를 잔인하게 대한 것을 참회하려 했는지 점점 수월해지고 유순하게 말을 잘 듣는 재료들이 너무 고마웠다. 재료들이 기꺼이 일러준 비밀이 그의 머리를 가득 채웟다. 오 분 마다 책을 참조했다. 끈적끈적한 손자국이 ㅅ방에 묻어 있는 책을 공방 안에 항상 펼쳐두고 있었다. 책 내용을 갑작스레 직관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가슴을 쥐어뜯는 고통과 더할 나위 없는 희열 사이를 오가며 내 평생 지금만큼 몸이 가뿐했던 적은 없어. 이 말은 사실이야. 머리가 하얗게 세고 망가진 이 커다란 남자. 그녀 아버지는 그녀에게 아들이기도 했다. 이 점을 모르는 사람은 인생을 모른다.
속이 빈 인형을 만든다면 시간과 재료가 많이 절약될 거다. 인형을 말리고 굽는 데도 시간이 훨씬 덜 들고, 찰흙도 절약할 수 있을 거야. 이성한테 만세라도 불러줘야겠네요. 하지만 새들은 속이 빈 둥지를 지을 줄 알면서도 그걸 자랑하며 돌아다니지 않아.
④ <개, 파운드에 대한 묘사글>
개는 문을 활짝 열고 개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파운드는 주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조심스레 한 발을 떼더니, 마치 자기가 명령을 제대로 이해한 건지 말 모르겠다는 듯이 걸음을 멈췄다. 들어와. 개는 그 말에 천천히 앞으로 걸어 들어와서 부엌 한가운데에 멈춰 썼다. 집 안으로 들어온 걸 환영한다. 하지만 이 집의 규칙을 당장 익히는 게 좋아. 볼일은 반드시 밖에서 봐야 하고, 음식도 반드시 밖에서 먹어야 돼. 낮에는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지만 밤에는 네 집으로 가. 그래야 집을 지키지. 너한테 말동무가 필요한 것 같다고 네 주인한테 얘기한 사람이 나니까 말이야. 마르타가 이렇게 강의 하는 동안 파운드는 그녀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녀석은 마르타가 무엇을 원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작은 뇌로도 뭔가를 배우기 위해 반드시 상대를 바라보며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쯤은 아는 것 같았다. 녀석은 마르타가 말을 끝낸 후에도 잠시 더 기다리다가 부엌 구석으로 가서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손전등을 켜서 개집 쪽을 비췄다. 개집 안까지 볼 수 있을 만큼 빛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굳이 개집 안을 볼 필요는 없었다. 반짝이는 빛 두 개, 두 눈만 확인하면 되니까. 그 두 개의 빛이 거기 있었다.
· 개의 몸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늘어진 귀와 포갠 앞발 위에 놓인 주둥이뿐이었다.
알고르는 개의 콧구멍에 거의 닿을 정도로 오른손을 내밀고 가만히 기다렸다. 개가 몇 번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차가운 코가 내민 손끝을 살짝 스칠 정도로 목을 쭉 내밀었다. 알고르는 자기에게 가장 까까운 개의 귀를 향해 천천히 손을 움직여 귀를 쓰다듬었다. 개가 마지막 한 발을 내디뎠다. 파운드. 파운드 전에 네 이름이 뭐였는지 모르지만 아제부터 네 이름은 파운드다. 털은 진흙과 풀잎들로 뒤덮여 있었다. 특히 다리와 배가 심했다. 녀석이 길을 따라 편안하게 이동하지 않고 들판을 힘들게 가로질렀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흔적이었다. 두 번째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렴 고개를 들어올렸다. 적어도 마르타의 눈에는 녀석의 몸짓이 그런 뜻으로 보였다. 알고르는 별로 말이 안 되는 소리를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았다. 녀석이 자기 목소리를 익히게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는 일부러 마치 후렴처럼 고집스럽게 파운드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마르타가 깨끗한 물이 가득 든 커다란 질그릇을 가져와 개집 옆에 놓았다. 모범적인 삶을 살면서 갖가지 기적을 일으킨 개들 이야기가 있지만 파운드가 새 주인 알고르를 마주본 자세 그대로 말이 다 끝나기를 기다려 꼼짝 하지 않고 있다가, 아제 물러가도 좋다고 말하는 듯한 몸짓을 한 후에야 비로소 몸을 돌려 물을 마셨다.
·자동차에 있는 접시 상자들 사이에 물병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놓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차에 올라 자리에 앉은 다음 시동을 걸었다. 파운드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 소리가 나면 항상 누군가가 떠나고, 곧바로 그 누군가가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앞서 시제품으로 만든 여섯 개의 인형을 처음으로 건조대 위에 올려놓았을 때, 파운드가 그 정체를 파악하려고 인형을 직접 만져보려고 하자 알고르가 대뜸 소리를 지르며 녀석을 후려친 것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녀석은 거만하게 꼼작도 앟고 서 있는 인형들 때문에 사냥 본능이 더욱 달아올랐지만 인형들을 조금도 해치지 않고 그냥 물러났다. 마르타는 뽕나무 그늘에서 경비원 노릇을 하고 있는 파운드의 착실한 호위를 받으며 에스키모 인형에 생을 칠할 준비를 했다. 그날부터 녀석이 인형들을 누구보다 열심히 감시하는 경비원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간호사 인형 여섯 개 위로 갑자기 바람이 불어욌을 때 녀석이 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짖어대는 소리를 들어봤어야 했다. 녀석은 계속 건조대 위에 앞발을 올려놓았다. 마치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바로 이것인지 철저히 확인하려는 것처럼, 이렇게 마르타가 끈을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는 동안 마르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여덟 번을 반복하자 녀석은 그 자리에 서서 집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내가 이겼어. 그럴 줄 알았어.”
·문을 두드려도 대답 없는 세 집에서는 집 지키는 개가 심하게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으므로, 파운드는 그 세 집 중 한 곳의 개일리 없다는 아전인수 격 결론을 내렸다. 마치 한 집에서 개를 한 마리 이상 기르면 안 된다는 우주적 법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 파운드는 이 집에 온 지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주인의 집이 자기 집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녀석이 주위를 둘러보며 모든 것이 다 내것이라고 말할 권리가 생간 것은 아니다. 게다가 크기나 품종이나 성격과 상관없이, 개는 결코 그토록 과감하게 소유권을 표현하는 말을 하지 못한다.
·여자는 얼굴로 예쁘고 몸도 예쁘다는 말은 파운드가 생각해 낸 것이 아님을 반드시 밝혀야겠다. 녀석에게는 추하다거나 예쁘다는 개념이 없다. 미의 기준은 인간이 생각해 낸 것이다. 어쩌면 주님은 그녀를 우연히 만나게 될지도 몰라. 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개들은 원래 이렇다. 가끔 주인 대신 생각을 해준다.
· 알고르가 가마 안으로 들어가 빗자루를 휘둘러대기 시작했을 때 파운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주인은 어떤 의미에서 해나 달 같은 존재이므로 주인이 사라졌을 때는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하는 법이다. 한 시간과 한 달과 일 년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니까. 개는 부재와 존재만 감지할 뿐이다.
이 건조대 위에 빽빽이 늘어서게 될 수많은 인형들이 점차 증발과정을 통해 물기를 잃는 데는 훨씬 더 많은 날이 필요하다. 물기가 없었다면 이 인형들이 애초에 지금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질 수 없었겠지만, 이제는 물기가 없어야 가마 안에서 안전하게 의도했던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 파운드는 한 줄로 늘어선 여섯 개의 인형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뒷다리로 일어서서 앞발을 건조대 선반 가장자리에 올려놓았다. 한 번, 두 번 코를 킁킁거리더니 금방 흥미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주인에게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고 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는 꾸지람을 듣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녀석은 그저 인형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냄새를 맡아보고 싶었을 뿐이데. 이렇게 하찮은 일을 가지고 저를 때리다니, 주인님 너무하십니다. 누가 보면 주인님은 개들이 바깥세상을 조사할 수 있는 눈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코를 또다른 눈처럼 사용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우리 코는 냄새를 본단 말입니다. 때릴 필요는 없잖아요. 아버지, 파운드가 그냥 궁금해서 그런 것뿐인데 마르타가 말했다. 알고르도 개를 못할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단지 본능적으로 행동했을 뿐이다. 본능은 지능보다 훨씬 더 빨라 자주 실수를 해서 조롱과 경멸을 당한다. 알고르는 자신이 애써 만든 것이 망가질까 봐 겁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했다. 모든 창조자들이 창조물을 아끼듯 하다 자기도 모르게 폭력을 휘두르고 나서 자기가 때린 개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러면 개들은 자기를 때린 손에 곧장 입을 맞춘다. 파운드는 주인에게 맞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을까.
내가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자고 있는 동안 네가 여기서 불을 지키고 있었구나. 네가 여기서 아무리 지키고 있어도 인형을 굽는 데는 전혀 도움 되지 않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여기서 지키고 있었다는 거지. 칭찬이 끝나자 파운드는 한쪽으로 뛰어가서 다리를 들고 방광 속의 소변을 비운 다음, 꼬리를 흔들며 다시 돌아와 구덩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누웠다. 불 속에서 인형을 꺼내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부엌에 불이 커졌다. 마르타가 일어난 것이다. 산들바람이 나지막하게 불어오자 구덩이 위의 재가 먼지폭풍처럼 휘날렸다. 무릎을 꿇고 앉아 강철 막대기를 걷어내고, 구덩이를 팔 때 사용했던 작은 삽으로 재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재와 함께 아직 다 타지 않은 숯 조각들이 딸려 나왔다. 거의 무게가 없는 하얀 재가 그의 손가락에 달라붙었다. 그보다 더 가벼운 입자들은 그가 숨을 들이쉴 때 함께 딸려 들어가거나 콧속으로 들어가 재채기를 하게 만들었다. 파운드도 가끔 재채기를 했다. 삽으로 구덩이를 깊이 파헤칠수록 재가 더 뜨거워졌지만, 매끄럽고 부드럽기도 했다. 앍로는 삽을 내려놓고 두 손을 재 속에 찔러 넣었다. 불에 구워진 거친 찰흙 표면이 손에 닿았다. 마치 산모의 몸에서 아기를 꺼내듯이 아직 재속에 묻혀 있는 인형의 머리를 엄지, 검지, 중지로 잡고 잡아당겼다. 꺼내고 보니 간호사 인형이었다. 그는 인형의 몸에 묻은 재를 털어내고 얼굴의 재는 입김으로 털어냈다. 마치 그가 그 인형에게 자신의 숨결과 심장박동으로 생기를 불어넣은 것 같았다.
· 대부분의 개들이 눈물의 짠맛을 아주 좋아한다.
·아버지와 딸이 뽀뽀를 하자 파운드도 뽀뽀를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녀석은 완전히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종종 누군가가 어깨에 손만 올려놓아도 울음이 터질 때가 있듯이, 우리는 순수하게 우리를 반기는 개를 보며 잠간 동안이나마 세상의 고통, 슬픔, 실망과 화해할 수 있다. 파운드가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분명히 존재하는 인간의 감정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
⑤ <재치 있고 섬세한 묘사들>
· 실패작들을 왜 저기 두는 거예요? 마음에 드니까 하지만 실패작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 마르타가 남편에게 전화하는 게 좋은 생각이라 한 것은 아버지 말처럼 그때 생각해 낸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말할 가치가 없거나, 딱 한 번만 말하면 되는 말들로 가득 차 있다.
· 아버님은 저희가 떠나면 혼자 사셔야 하잖아요. 세상에 혼자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뭘, 마르타는 틀림없이 그렇다고 생각할 걸요. 아이고. 할말이 없구먼. 세상엔 설명이 필요 없이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이 있어요. 사위가 삶의 기본 지혜를 이처럼 단호하게 천명하자 알고르는 이번에도 역시 대꾸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꿈속에서는 아무리 일을 해도 뭘 만들어 낼 수가 없다.
· 젊은이는 능력이 있지만 지혜가 부족하고 노인은 지혜가 있지만 능력이 부족하다
·밤새 호랑이가 찾아와서 그의 손에 놓인 먹이를 먹는 꿈을 꾼 다음이라,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하자마자 담요를 젖히고 일어났다. 창문을 열지 않고 날씨가 어떤지 보려고 덧창을 조금만 열었다. 적어도 생각은 날씨를 보자는 것이었다. 아니면 그런 목적으로 덧창을 연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그는 날씨를 확인하는 습관이 없었다.
·물론 지금 네가 주려고 생각하는 것을 그녀가 받을 준비가 됐는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 어쩌면 전부 다 내 상상에 불과할 수도 있으니까. 이 독백은 지금으로서는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장애물 때문에 중단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을 멈추고 보니 또 다른 걱정거리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한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가 하나로 합쳐진 걱정거리였다. 찰흙 인형, 센터, 구매부장. 이 세 가지, 이 모든 일이 어떻게 될지 정말 궁금해. 부장님이 금방 오실 겁니다. 접수원이 말했다. 십 분 후 구매부장이 아니라 구매차장이 나타났다. 상급자를 위한 차단막 역할밖에 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은 구매차장은 이 일을 더 끌고 가봤자 자기 일만 늘어날 뿐이며, 어떤 식으로든 결정권자가 결정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구매차장은 구매부장에게 안내한 뒤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구매부장은 몹시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 카드를 한 사람에게만 나눠주고, 필요한 경우에는 카드를 쥔 사람의 기분에 따라 카드의 가치가 바뀌는 게임이다. 물론 탁자 위에 인형 여섯 개를 가져와 놓았으므로 알코르가 유리하다. 왕은 익은 것을 먹고 잊지 않아 시퍼런 것을 내게 주더라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아직은 감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저한테 희망을 주셔서. 그것만으로도 이미 저한테 큰일을 해주셨어요. 희망을 믿지 마세요. 아 물론이죠. 하지만 저희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려울 때는 뭐라도 붙들고 매달리는 수밖에요. 안녕히 가십시오. 구매부장은 위계구조를 정확하게 유지하려면 모든 사람이 그 위계질서를 빈틈없이 존중하며 결코 무시하거나 위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 사위-마르살은 장인의 손을 덮고 있던 자기 손을 치웠다. 남자들 사이는 원래 그런 법이다. 남자들 사이의 애정표현은 반드시 잠간 동안 순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남자다운 조심성 탓이라 한다.
·지금 내가 큰 기대를 거는 게 문제가 아니지 않나. 결정권이 다른 사람 손에 있으니 우리는 아무런 손 쓸 도 없으니 그냥 기다릴 수밖에. 하지만 기디림은 길지 않았다. 전화밸이 울렸다.
· 창조가 원래 파괴보다 항상 훨씬 더 많은 자극을 준다.
·물건을 부리는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트럭에 물건을 싣는 것을 막으려는 남자에게 알고르는 지금 트럭을 돌리면 트럭 사용료는 누가 물어주느냐 물었다. 불만 신고서까지 달라고 했고 마침내는 구매부장을 만나게 해주지 않으면 절대 그냥 갈 수 없다는 필사적 작전도 동원했다.기초응용심라학 책 행동에 관한 장을 펼치면, 성질 고약한 인간들이 대개는 겁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우리가 심은 나무에 나중에 목 매달고 죽게 될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⑥ <줄거리>
주제 사라마구는 공산주의자라는 배경지식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도시에 있는 센터는 자본주의의 결정체, 사람이 사는 높은 아파트, 물건 구매하는 쇼핑센터, 놀이시설 등등 거의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다. 센터는 자본주의의 추악함을 알리려는 존재인 것처럼 보인다. 알고르는 동굴에서 벽에 비치는 그림자를 진실로 생각하며 갇혀있는 묶인 사람을 자신이라고 생각하여 센터에서 나오는데 사라마구는 자본주의를 그림자라고 생각한 듯하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동굴을 발견한 이후 센터에서는 역사학자나 지질학자, 그리고 철학자까지 부르는데 마르살이 경비원을 그만두면서 센터에서 바깥에 건 큰 포스터에 나온 문구를 통해 의도가 드러난 것이라 생각했다. "플라톤의 동굴 곧 개장, 센터에만 있는 세상 하나뿐인 명물, 지금 입장권을 구매하세요." 라는 문구인데 플라톤의 동굴이 지니는 의미나 그 가치가 자본주의 속에서는 단순한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고고한 가치 혹은 본질이 그림자로 둔갑하고 우리가 본질을 못 보는 묶여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자본주의 때문이라 말한다.
알고르는 자신의 상황과 역할에 메여 자신의 본심보다 본인의 역할에 맞게 행동하게 된다. 경제력을 잃게 된 후로는 경제력이 있는 사람의 의견을 따른다. 이사우라를 사랑하지만 자신이 정한 틀에서 남자로서 자격 미달이라 느끼고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다. 센터로 가는 날, 파운드를 맡아 달라 부탁하려고 이사우라를 찾아가지만 자신의 감정을 못 이겨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한다. 그리고 이사우라도 사랑을 고백하고 떠나지 말라고 알고르를 붙잡는다. 알고르는 이사우라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결국은 떠난다.
자식 부부와 센터로 돌아와 정착하지만 할 일 없는 노인이 되어 센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흥미는 없지만 흥미있는 척, 괜찮은 척 하며 자식 부부에게 센터에 있었던 일을 즐거운 듯이 이야기한다. 자식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정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노력이 눈물겹다. 그러다가 사위가 근무하는 아파트 밑 동굴에 내려가 동굴에 묶여있던 유골을 보고 자기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몸서리치면서 센터를 떠난다. 센터를 떠나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이사우라의 집이었다. 이사우라가 집에 없자 자기 집으로 가는데 거기서 파운드가 자신을 맞이했고 이사우라도 거기에 있었다. 개는 주인이 왔음을 기뻐했고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와 사랑을 나눴다. 이렇게 알고르는 자신의 몸을 묶었던 자신의 상황이나 역할이란 사슬을 풀고 본심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다. 끝은 알고르와 가족들이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는 여행을 떠난다.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의 의미를 곱씹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