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1일(목)
* 시작 기도
주님...
밤새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선잠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다가 이 새벽 주의 말씀 앞에 나왔나이다.
나는 감히 말씀 앞에 나올 수 없는 자요 주 앞에서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오나 오직 주의 보혈을 의지하여 담대히 주께 나아왔사오니 이 종을 불쌍히 여기사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하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내 안에 죽여야 하는 땅의 지체들이 있사오니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우상숭배와 같은 탐심이온데 이것들이 나를 휘감아 죄의 세력에 꼼짝 못하게 만드나이다.
이 시간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죄의 몸이 왕의 명령으로 불구가 되었음을 선포하고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절름발이로, 한 팔이 없는 자로, 눈이 뽑힌 자로 서나이다.
사지가 멀쩡한 자로 다시 오실 우리 주님을 맞이하지 않게 하시고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일지라도 거룩한 불구자로 주를 맞게 하소서.
오늘도 내 안에 주의 거룩함을 나타내 보이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계 12:1-17
제목 : 우리가 피할 곳, 광야.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의 별 1/3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이벵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공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 나의 묵상
요한은 하늘에 나타난 큰 표적을 보았다.
그것은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할 때가 이르자 해산의 고통으로 부르짖었다.
그런데 하늘에 또 다른 표적이 보였는데 곧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일곱 면류관을 쓴 큰 붉은 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1/3을 끌어다가 땅에 던졌다.
그리고 그 붉은 용은 여자가 해산하면 아이를 삼키기 위해서 그 여자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여자가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가진 자이다.
그 아이가 하나님 보좌 앞으로 들려 올라갔다.
그리고 여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광야로 도망하여 1,260일 동안 곧 3년 반 동안 보호를 받았다.
한편 미가엘의 군대와 붉은 용의 군대가 하늘에서 전쟁을 하였는데 용의 군대가 미가엘의 군대에게 피하여 하늘에서 그 거처를 읽고 말았다.
싸움에 패한 용과 그의 사자들은 땅으로 추방을 당하였는데 추방을 당한 큰 용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로서 온 천하를 미혹하는 자이다.
그 큰 용이 쫓겨날 때 그의 사자들도 함께 쫓겨났다.
용의 추방으로 인하여 하늘에서 승리를 선포하는 큰 음성이 났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음을 외치는 선포이며, 성도들을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다는 선포였고, 또한 믿음의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신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생명을 걸고 싸워 이겼을을 알리는 선포였다.
그로 인하여 이 하늘에 거하는 자들에 대해서 기뻐하라고 하였으나 땅과 바다에 대해서는 화를 선포하였다.
왜냐하면 마귀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크게 노한 가운데 땅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이처럼 땅으로 내쫓긴 용은 여자를 핍박한다.
여자는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통하여 광야로 날아가 거기서 3년 반 곧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보호를 받는다.
옛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도록 시도하지만 땅이 여자를 도와서 용의 입에서 토한 그 물을 다 삼켜버린다.
한편 여자를 해하려던 궤계가 실패하자 용이 여자에 대하여 분노하면서 돌아갔다.
그러면서 돌아간 용은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지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성경에서 여자는 교회를 상징한다.
이 교회는 단순히 유형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살기를 투혼하는 영생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이다.
이 교회는 해를 옷 입고 달을 딛고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쓴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교회임이 분명하다.
이 교회가 임신을 하고 해산할 때가 되어 부르짖는다.
드디어 여자가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자로서 하나님 앞으로 올려갔다.
이 아이는 다름 아닌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물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낳으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자가 아이를 잉태하여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 낳았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출현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참 그리스도인 곧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늘 교제하며 아버지 품속에 있는 아들(요 1:18)과 같이 또한 아들의 품속에 있는 주의 자녀들을 계속해서 낳아야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하늘에 있는 큰 붉은 용이 이 아이를 삼키려고 온갖 술책을 다 써서 궤계를 부린다.
그러나 아이가 하나님 앞으로 올려가자 그는 여자를 죽이려고 그 입에서 강 같은 물을 토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으로 땅이 입을 열어 그 강 같은 물을 다 삼켜버린다.
그리고 그 여자를 독수리 날개로 업어 광야로 피신시킨다.
그리고 그 광야에서 3년 반 동안 양육시키신다.
광야는 도망가기에는 적합한 곳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숨을 곳이 없이 모두 오픈된 개활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곳곳에 온갖 들짐승들이 숨어 있어 어디서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곳이 바로 광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수리 날개로 업어 광야로 피신시킨 것은 하나님이 미련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광야가 바로 하나님의 품속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품속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마치 어린 아기가 엄마의 품속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평화롭게 안식을 누리는 것처럼 말이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광야로 가서 40일 동안 기도하셨다.
물론 그곳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았지만 그곳이 바로 아버지의 품속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넉넉히 그 사탄의 유혹을 이겨낼 수가 있었다.
이제 오늘 우리가 가야할 곳은 다름 아닌 광야이다.
어둠이 깊어지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광야.
혼자서 고독하여 낮아지게 하는 광야.
세상 어디에도 기대거나 의지할 것이 없기에 오직 주님만 의지하게 하는 곳 광야.
어디가 길인지, 어디가 물인지 알 수 없는 곳 광야.
그래서 오직 길 되신 주님만을 찾을 수밖에 없는 곳 광야.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광야교회로 이끄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셨던 하늘의 광야.
덕지덕지 붙어 있는 온갖 죄의 먼지를 다 씻기시고 벗겨내기 원하셔서 주님의 피가 묻어 있고 주님의 보혈이 넘치는 반석되신 주님의 광야.
내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곳 광야.
위로부터 다시 아들의 생명으로 태어나야 하는 곳 광야.
거듭남은 오직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 것인데(벧전 1:23), 그 말씀이 있는 장소인 광야.
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어로 ‘다바르’, 히브리어로 ‘미드바르’인 광야.
바로 이곳이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광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광야를 싫어하였다.
그래서 광야를 피하여 살기를 원했고 또한 그렇게 피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내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나를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는 곳이 광야인 것을 몰랐던 나는 너무도 어리석은 자였다.
하나님께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의 옷을 입혀주시고 달을 밟고 서 있는 놀라운 통치권과 열두 별의 면류관을 씌워주시는 승리의 왕권을 주시는 곳이 바로 광야인데 나는 그것을 몰라도 한참 몰랐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저 육신으로 편한 곳, 내가 좋아하는 곳, 내가 가기 원하는 곳으로만 나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곳은 또 다른 광야였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나를 추적하셔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시며 생명의 교제가 있는 곳인 광야로 나를 이끄셨다.
비록 유형적인 교회가 깨지고 난파선과 같이 넘어질지라도 생명이 있는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하여 고난의 광야 속으로 밀어 넣으신다.
용이 집어 삼키려고 토해내는 강물도 막아주시고, 독수리 날개로 업어 광야의 피난처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나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사랑의 결정체가 있는 고난의 광야에서 생명의 복음을 알게 되었고 가장 안전한 주님의 품안에서 안식과 평강을 누리고 있다.
지금 내가 있는 곳 역시 광야이다.
그 광야는 길이 보이지 않지만, 나의 길이 되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두렵지 않다.
진리의 두 중심축인 아들의 생명과 창세전 약속을 믿기에 나는 담대히 그 길을 걸어간다.
나와 함께 하시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님의 손을 잡고...
(찬양) 광야를 지나며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 곳,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내 자아가 산산이 깨지고
높아지려 했던 내 꿈도 주님 앞에 내어놓고
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
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광야를 지나며.....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가는 길은 광야, 그 자체입니다.
내가 피하길 원했고 피하여 왔던 광야였으나 그 알지 못하고 지나온 그 길이 바로 주님이 이끄신 광야였음을 고백하나이다.
내 인생이 험하고 마음은 지쳐 살아갈 용기가 없어지는 광야에서도 주님은 늘 나와 함께하시며 나의 도움과 의지가 되어 주셨나이다.
주님...
나를 돌아보면 나는 아무 쓸모없고 가치 없는 자인데 이런 나를 어디에 쓰시려고 이렇게 보호하시고 돌보셨는지요?
그런 나를 진흙구덩이에서 건지사 맑은 물로 씻어주시고 너는 내 것이라고 불러주셨음에도 나는 여전히 주님을 떠나 살아온 자요 배반자이며 패역자입니다.
이런 나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창세전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어 당신의 생명을 주셨사오니 내 안에 그 생명으로 인하여 하늘의 기쁨이 넘치나이다.
오늘도 그 기쁨이 나의 힘의 원천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 복음생명캠프의 마지막 날, 주께서 준비하신 생명의 보따리, 은혜의 보따리를 풀어 참석한 모든 이에게 허락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광야로 인도하소서.
연약한 주의 여종들을 붙드시고 여러 가지 암으로 고통 가운데 있지만 그 자리가 바로 광야요, 생명으로 들어가는 십자가의 자리임을 알고 육신의 질고를 넘어 생명으로 넉넉히 삼킬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